어제 비오는 토요일에 다시 집으로 왔다.

금요일, 토요일 사이에 읽은 책들이다.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본가로 가면서 읽었고

<검은 꽃>은 본가에서 가져와 집에 오는 길에 다시 읽었다.

 

이동하는 공간에서 책을 읽으면 눈도 나빠지고 멀미도 한다지만 이상하게 그런 공간에서 책이 더 잘 읽힌다.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환상의 빛>, <금수>로 유명한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이라 엄청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읽고 나서는 영 개운하지 않다.

 

구성이나 문장 모두가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미야모토 테루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기에 이번 미스터리식 구성을 통해서는 미야모토 테루만의 서정적인 문체도 빛을 발하지 않았다. 한 작가가 쓰는 모든 작품의 질이 균등할 수는 없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신기하게도 '옮긴이의 말'이 나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건의 진상에 점점 다가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세속적인 조마조마함은 마침내 자괴감만 남기고 허탈하게 사라진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미야모토 테루,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비극적인 모성애 앞에서 무슨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    407쪽

 

(결말 유출 매우 위험)

 

겐야는 로스엔젤레스 대저택에서 기쿠에 고모가 남긴 유산을 처리하다가 나약한 결혼이민자이자 거대한 가정폭력과 범죄의 희생자인 고모의 삶을 발견한다.

 

고모가 여섯 살 때 잃어버린 레일라가 실은 친아버지의 소아성애로 인해 엄마의 주도로 캐나다로 격리되어간 것을 알게 된다. 레일라가 어렸을 때 기쿠에는 능력 없는 결혼이민 여성이었고 이언은 돈, 권력을 가졌기에 딸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장된 영아 유괴라는 방법밖에 없었다고는 하는데 개운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지극히 선한 의지를 가진 주변 인물들(대저택 일꾼들, 법률회사 사람들, 동네사람들, 사설탐정)이 등장하고 이국적인 풍광, 슬로우 푸드, 차고 넘치는 경제적 여유, 천진난만한 아이들도 삽화로 자주 나오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비극적인 추함을 덮는 데 역부족이다.

 

미국인인 기쿠에의 남편 이언은 총명하고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인품도 훌륭해 보이나 실은 위험한 소아성애자이기에 기쿠에가 또다른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딸과 남편을 분리시키는 걸로 나온다.

 

그런데 위장 유괴까지 봐준다 쳐도 이후 27년간이나 이언과 결혼을 지속하며 몰래 딸에게 송금한다는 설정은 진정 이치에 닿지 않는다.

 

친아버지마저 딸에게 범죄를 저지르는데 친분 있는 부부가 레일라를 자신들의 자녀로 곱게 키워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지?

여섯 살이나 된 아이가 원 가정을 잊고 아무런 트라우마도 없이 양부모에게 온전히 기댈 수 있다고?

조카가 고모의 유지를 받들어 거액의 유산을 바르게만 써줄 수 있을까?

 

딸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에 도피시켜둘 것이 아니라

정원의 꽃을 가꾸며 딸의 장래를 막연하게 염려할 게 아니라

박차고 나와 딸과 함께 '들풀'처럼 살아 갔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기쿠에는 결혼 전에 영어를 잘 하는 꽤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었다.)

 

소설은 정치적인 올바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불가해한 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 미국 사회에 대한 품평과 편견이 드러나 불편했다. 소아성애라는 건 꼭 미국,서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없이 약하고 올곧은 일본인과 소수 인종들 vs 이윤에만 골몰하고 가학적 성향을 가진 미국인

(국제 결혼한 교코와 기쿠에의 첫남편은 각각 가정폭력범, 소아성애자) 

 

이런 구도를 보는 나도 역시 일본사회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것일까.

 

그래도 식물 무식자인 내가 소설을 통해 여러 꽃과 식물을 접했다는 데 만족하려 한다. 소설 속 분위기를 느껴보려 꽃 이름들을 검색하다가 '풀꽃'같이 소박하고 곱게 사는 분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것도 소득이라면 하나의 소득이다.

 

소설 전체에 자주 등장하는 자카란다 거목

 

 

남미나 아프리카의 벚꽃이라고도 하는데 호주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은 빌려왔다. 저장하면서 출처도 찾을 것을. )

 

그리고 '신비로움, 수수께끼'라는 뜻의 꽃말을 지닌 '거베라'도 자주 등장한다. 자주 화환이나 꽃다발에 보이는 다홍색 꽃인데 기쿠에가 딸을 생각하며 가꾸는 꽃으로 등장한다.

 

 

 

 

할머니는 말이야,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꽃을 그렇게 보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야. 그런 생각이, 마음이란 우주가 아닐까 하는 식으로 변한 거지. 159쪽

 

아아아.

정말 신비로웠던 '우주'라는 단어는

지난 암울한 시기를 거치며 너무나 오염되어버렸고 실소를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곳곳에 공들여 구현한 문장을 보고도 이번에는 감탄하지 못했다.

 

풀꽃에게 딸의 생사를 빌 게 아니라 들풀같이 일어서야 했어, 이 생각만 가득.

 

 

미야모토 테루라는 작가는 그저 <금수>, <환상의 빛>으로 만족해야겠다. 엇나간 운명, 회한을 그리는 데 주특기가 있지만 이런 과도한 설정, 무리수는 서정적인 문체나 이국적 배경으로 아무리 치장해도 심오한 주제의식을 바로 담기에 역부족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하고 싶다는 작품인 <검은 꽃>은 잘 읽고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정말로 통탄할 일이 가득인데 신파에 빠지지 않고

건조한 시선으로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신산한 삶을 추적한다.

 

출간 당시에도 읽으며 언젠가 영화화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강산이라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강과 산이 없는 세상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카탄엔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도로 밖의 너무나 당연한 강과 산이 차창 밖으로 지나쳐 가는 것을 보며 그들이 느꼈을 막막함에 다시 마음이 아팠다.

 

 

 

 

 

 

 

 

 

 

 

 

 

 

 

 

본가에 갈 때 아무래도 책에 몰두하는 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때문이겠지.

 

본가 상태와 노쇠한 엄마의 일상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해진다.

 

뭔가를 마시고 과일을 깎을 때마다 그때마다 컵과 접시를 새로 닦고

한숨을 쉬다가 왔다.

 

티내지 않으려 해도 엄마는 다 알았을 것이다.

딸들이 어떤 마음일지.

 

 

 

요 며칠 소설을 너무 많이 보았는데

<식물 산책>, <우울한 땐 뇌과학>을 읽어보고 싶다.

 

다른 과학, 사회과학, 종교 분야도 읽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을 것 없이

하루하루 나의 기력과 정성을 모아

일상을 지켜가야겠다.

 

그리고 카랑코에 화분을 죽였던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식물에는 욕심내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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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박약 별주부의 요란한 맹세

 

-아이들 첫 영성체 과제 성경 필사 꾸준히 함께 하기

아이들 글씨보다 내 글씨가 아직은 더 많다.

 

-수업 준비 잘하기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

 

-집안 정리하고 정리하기

미니멀리즘은 아니더라도 애들 친구 아무 때라도 와서 놀라는 일 없게

 

-수면 주기 식욕 조절

불규칙한 수면으로 식욕이 늘고 몸무게는 ㅜ.ㅠ

 

-동네 산책

이 지역 독립 서점 탐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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