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도서관 문화주간 행사로 김영하 님 강연이 있었다. 원래는 갈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이들 어린이 미사와 어린이날 행사로 성당에서 아이들이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가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작년부터 하고 있는 책모임에서 간다고 하는 벗들이 있어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 작가님 초창기 겨자색 게시판에서 보던 사람들과 작가님을 가깝게 본 적도 있고 강연회도 다닌 적이 있지만 이제는 꿈결인듯 오래된 시절이다.
지금은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야 제맛이지, 하고 꽤나 쿨한 척 하고 있었는데 난 세련되거나 쿨하지 않고 질척거리는 면이 많아 그런지 역시 이렇게 우르르 몰려 보니 또 좋구나.
알쓸신잡의 여파인지 꽤 넓은 회의실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고 앞자리에 고 3 여고생들이 앉아 있을 정도였다.
어려서 온라인 모임 사람들과 만났던 작가를 그때는 전혀 살아볼 거라 짐작도 못한 낯선 도시에와서 나이들어 전혀 다른 성격의 온라임 모임 사람들과 강연을 듣게 되어 기분이 묘했다. ( 문장 이거 뭔소리임 )
아무튼 오늘 강연회에서 작가님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작가님이야 물론 절대 나를 알아보거나 하시진 않았고 나도 민망한 닉네임으로 한두 번 소개한 적이 다라서 열심히 듣기만 했다.
처음엔 가볍게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셨다.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게 책을 권하고 독후활동을 강요받으며 아이들이 책과 멀어진다고 하셨고
책을 부모가 읽어주어도 아이의 성취엔 큰 영향이 없다는 것.
다만, 집에 장서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
집에 있으면 언젠가 책과 만나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
강연 내용은 보다, 말하다, 읽다 에세이집에서 많이 들어본 내용인데
시의적절하게 대한항공 일가, 미투, 통일, 김생민, 4차산업혁명까지 언급되는 신기한 강연이었다.
그냥 연결 안 되는 술자리 이야기인듯하면서도 나름 주제의식이 있는 강연이었다.
굳이 이름 붙히자면 고급? 독자의 즐거움과 괴로움 내지는 그러니 이제 고전을 읽자, 그 정도.
고전은 거의 대개는 하마르티아, 즉 인간의 성격에 잠재해 있는 중대한 약점을 건드리는데
그 중대 약점이 대개 휴브리스, 오만일 경우가 많다.
고전을 통해 이런 인간의 약점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실상
고전이라고 함은 아무도 제대로 읽지는 않았으나 읽은 듯한 책.
읽은 척을 하게 되는 책.
읽을 때마다 새로 읽는 듯하고
남에게 소개할 때 늘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말야, 하고 소개하는 책들이 고전이다.
마담 보바리, 돈 키호테, 오만과 편견, 외투, 오이디푸스 왕, 논어 등등 많은 고전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 많이 다를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신간의 무익함. 아니 해로움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시간의 풍화를 견뎌낸 고전의 가치를 중년 이후에야 발견하게 된다는 것. 어느 정도 독서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발견하게 된다는 점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전을 잘 안 읽고 안 읽히게 되는 건
스마트폰 예능 탓일까.
아니 뭐 인간이 원래 책읽기보다는 먹고 놀고 뛰고 하는데 더 최적화되었다는 말씀에도 동의한다. 나의 본질도 결국 테순이이므로.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드라마나 영화, 가끔은 책에서 본 대로 진부하게 행동한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마저마저 하는 사이 강연은 끝이 났고
끝으로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 못하고 있는 사이 어떤 고위공무원 분이 썰렁한 아재 개그로 모두의 손과 발을 꽁꽁
작가님 이름 듣고 분위기가 썰렁할 줄 알았는데(김영하님이라서 영상 영하를 연상하시고는)
이렇게나 사람이 많아 놀랍다고 ㅜ.ㅠ
이젠 초딩들도 안 할 이름 개그.
분위기 폭망.
질문을 하면서 강연이 정리되어야 하는데 뭔가 마무리가 되지 않고 끝나버린듯해서 아쉬웠다.
해서 모임 벗들과 아시아 문화전당 하늘마당에서 간단히 생맥주를 한 잔씩만 마시고
20대 처자들처럼 까르르 하며 사진도 찍었다.

참, 마음만은 늙지도 않지.
모임에 서울서 살다오신 분이 있어 하이퍼텍 나다 이야기 하다가
거기서 마지막으로 본 아무도 모른다, 에서처럼
아이들이 밤 9시 무렵까지 자기들끼리 있을 게 걱정이 되어 택시 타고 날아왔더니만
애들이 영화 속 아이들처럼 자신들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더라는 얘기.
원래 열혈육아기를 거치며 10시 이전에 잠드는 생활을 몇 년 지속해 왔는데
오늘은 잘 시기를 놓쳐 잠이 오지 않는다.
신기한 봄 밤이네그려.

*사진은 고운 벗님이 찍어보내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