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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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안~주면 가나봐라~, 그~칸다고 주나 봐라~

 

한동안, 이 책을 읽고 내 입에서 시도 때도 없이 중얼거려진 말이다.

키들키들 거리면서 한 번씩 소리죽여 그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즐거움이 퐁퐁 솟아오른다.

 

옛날 옛날~하면서 시작된, 과부와 스님의 어이없는 줄다리기 한 판 이야기이다.

어쩌다 푸르디 푸른 몽골 초원에서 열 두 명이 여섯 명씩 편을 갈라 술병을 두드리며 한 편은 -안~주면 가나봐라~를, 다른 한편은 -그~칸다고 주나봐라~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점점 염불소리처럼 장중해졌다.

한 외국인 여자의 원더풀, 원더풀 소리와 뭐에 홀린 듯한 얼굴 때문에 일행은 끝없이 반복해야만 했다는 이야기.

 

그 사이에 초원의 풀꽃들이 입을 다물고, 먼 길을 떠났던 말들이 돌아오고, 해가 저물고, 초원에 살던 몽골 소년은 밥 먹으러 집으로 불려들어가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대.-160

 이야기에 곁들여진 달의 모습은 독자의 양손에 안겨주는 작가의 보너스다.

 

신경숙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가다.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가고, 급기야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침잠하고 만다.

내 안에 고치를 틀고 한동안 그 안에서 끙끙대야 한다.

한 뼘 자라고, 또 한 뼘 자라 우화할 때까지 고치 생활이 계속된다.

실로 칭칭 동여매어진 그 속에서 나는 내 영양분을 보충 해야 하고, 스스로 상처를 보듬어 안아보고, 핥아보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어루만져야 한다.

신열이 나도 참아야 하고, 온몸이 땀에 젖어도 어찌할 수 없다. 네 활개가 웅크려진 몸속에 가두어져 있어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신은 말짱하다. 날개를 달고 나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하나만을 빛줄기로 삼아 기도한다. ‘어서 빨리 날개를 달고 나가게 해 주세요.’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덜 자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바이올렛>, <외딴 방>, <깊은 슬픔>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찔러 대는 가시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나를 드러내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한없이 관대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조망해온 삶의 이야기들이 ‘바로 내 이야기’인 듯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다.

은은한 달빛 아래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한 치 거스름도 없이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자연의 섭리에 맞춰, 내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

“나도 아마 그랬을 거야.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나라도...”

한없는 수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미소짓는 동안, 어느새 책장은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있었다.

 

휘영청 떠오른 밝디 밝은 보름달 아래, 갈색 줄무늬와 어두운 청회색의 잔등을 가진 고양이 두 마리가 담벼락에 서로 기대어 앉아 있다.

신경숙은 두 마리의 고양이가 그러했을 것처럼 부드럽고 영리한 시선으로, 담벼락 아래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고, 소곤소곤 얘기해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말이다.

아이들을 붙잡고, “얘들아, 오늘은 말이야, 엄마가 맛있는 걸 만들었거든? 한 번 와서 먹어볼래?”

라든가,

“오늘은 일이 어땠어요, 힘들진 않았어요?”

라는 식으로.

가족에게도 한 발짝 먼저 다가가 한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나로 변신시켜주는 마법의 가루가 달빛 속에서 흘러나오기나 한 듯이 말이다.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환하게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작가의 말

 

마음 먹은 대로, 글을 쓰고 그 글의 의도대로 이루어졌으니...작가님. 마음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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