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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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은 참 좋다.[사람 보는 눈]

 

비단에 혹은 종이에 담채 혹은 채색된 그림들. 우리 그림은 좋다. 참 좋다. 인간과 자연 온갖 것을 담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 진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섬세한 붓놀림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어보자면, 그린 이의 마음이 슬금슬금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만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림에 눈길 줄 시간 없이 종종거리며 다녔지만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때부터는 그냥 말 그대로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아이들이 옆에서 떠들어도, 뭐라고 물어대도 소리들은 귓바퀴 뒤로 흘러간다. 그림과 나, 둘만의 세상에 손철주의 해설이 곁들여진다. 황홀한 순간이고, 호사스러운 순간이다. 오래도록 이 순간을 누리고 싶은데, 너무 빨리 끝난다. 좀 더 길고 긴 여정을 함께 걷고 싶었는데...이 짧은 시간이 마냥 아쉽다.

 

 

 

이재관, <강이오 초상>부분.

 

단정하게 손을 포개고 밝은 분홍의 옷에 파란 허리띠를 두른 이는 누구인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허리장식이 귀한 신분임을 짐작게 하는데, 곱게 그려진 수염 위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표지에서부터 한껏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컨셉이다. 제목이 [사람 보는 눈]인데 정작 얼굴이 안 보이다니...재기 넘치는 표지 디자인이다. 힌트를 받은 바에 의하면 표지를 걷으면 얼굴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책을 받자마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표지를 쑥 걷어보았더니, 아니다다를까...이런 얼굴이 나타났다.

역시. 단정한 매무새에 어울리는 단정한 이목구비. 흔들림 없는 곧은 눈동자. 마주하는 이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눈매다. 이렇게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책을 보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예에~"하고 누가 뭐라한 것도 아닌데, 혼잣말로 냉큼 대답을 하고서는 읽어나갔다.

역시, 우리 그림들로 꽉 찬 책이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기대에 부응하는 훌륭한 그림들에 찬사가 절로 터져나온다.

덜 그려도 다 그렸다, 보는 사람을 보는 눈, 여기 저기 다 보는 겹눈, 꼭 보아야 알겠는가 등 사람 애를 태우는 제목을 달아놓고 그림이 바로 나오지 않아 잔뜩 목이 타게 만드는 부분도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편하게 그림을 감상하게 두지 않는구나...속으로 혼자 원망 아닌 원망도 했더랬다.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산수와 인물, 풍경 등의 그림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인물화, 사람을 보는 눈을 먼저 틔워보기로 했다.

꼼꼼하게 옷매무새에서부터 표정, 주름, 장신구, 소품들, 발끝까지 눈길을 두루 주어야 그린 이의 눈으로 본 "사람"을 온전히 보아낼 수 있다.

 

1                                     2

                                        3                                            4

 

1. 작자미상의 여인 초상.<야무지게 오므린 입에서>

로열 패밀리다운 과묵함이라고 평했다. 입을 얼마나 야무지게 오므렸는지, 시중들 다 주눅들겠다며 한껏 눙치는 작가의 말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2. 그가 그린 이 자화상은 국보다.

공재 윤두서. 처음에는 옷도 귀도 다 그려진 상태였지만 세월이 가면서 닳아버렸는데도 묘한 아우라를 빚는다. -99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그려진 터럭엔 영혼이 송두리째 담겨있는 듯하다.

3. 구한말의 패셔니스타  대원군 이하응. 칼집에서 칼을 빼고 옆에 세워두었다나...대원군의 서슬, 어디 숨었나...라는 제목의 의미를 늦게서야 깨달았다!

4. 정조의 특명으로 그려진 채제공 초상. 자세히 살펴보면 사시에 얽힌 곰보자국까지 다 보인단다.

조선 초상화에 곡필은 없다. 체제공도 마찬가지. 시선은 엇나갈망정 불편부당한 탕평을 꾸준히 옹호했다. 그 화가에 그 모델이다. -81

 

채제공의 다른 그림 하나를 다른 책에서 찾았는데,

 

 

이 그림은 작자 미상이다. 사시 역시 표가 나고 자세히 보면 마마 자국도 보일 것 같다. 사진만으로는 판별하기 어렵다. [사람 보는 눈]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채제공은 추사 김정희의 어린 시절 <입춘첩>을 보고 장차 명예를 누리게 될 것과 인생이 평탄하지 않을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여기서 본 그림과 저기서 본 그림을 끼워맞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얘기가 나온 김에 추사의 글씨를 볼까.

 

 

 대나무는 곧은 것과 비틀린 것이 섞였고, 화로는 다리굽이 네 개인데 불씨가 겨우 살아 있다. 지()자에서 향기로운 훈김이 피어오르고, 실(室)에서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방이 금세 떠오른다. -161

멋진 글씨에 화답하는 좋은 풀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 하나하나 다 올리고 기가 막힌 해설을 곁들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이만 자제하려 한다.

 

책이 끝날 즈음에 한 해가 오갈 때 보는 그림이 실려 있어서 딱 이 시기에 맞는 걸, 잘도 때맞춰 읽게 되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이인상의 <송하독좌>, 이재관의 <송하처사도>, 이재관의 <파초제시>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마음을 비워가게 되었다. 올 한 해도 다사다난 했었지. 한 해를 반성하는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세속을 초탈한듯한 저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번잡함이 스윽 물러난 사람으로 비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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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 - 사육사가 들려주는 동물원 가이드 지식은 내 친구 7
아베 히로시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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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

 

 

부산에는 대형 동물원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이렇다할 동물 구경을 시켜 주기가 힘들다.

직접 본 것은 기껏해야 공작이나 타조, 미어캣, 독수리, 돼지, 염소 정도이고, 사자나 호랑이, 기린, 코끼리같은 동물들은 2차 자료들로만 만족해야 한다. 그림이나 사진, TV로만 보여주었다는 말이다. 대형 동물들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어떤 소리를 내며 어떻게 어슬렁거리는지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하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항상 동물에 관한 자료라면 아이들보다 엄마인 내가 더 갈급하여 어디서든 구해서 보여주고 싶어한다.

[동물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

실제로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관찰한다 하여도 동물들의 생태나 특징들에 대해 미리 공부해 가지 않으면 놓치고 오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은 앞으로 직접 보게 될 동물들에 대한 사전지식을 쌓기에 아주 유용한 책이다. 비록 사진자료는 아니어도 정감 있게 그려진 그림과 특징을 부각시킨 그림들이어서 오히려 유아나 초등학생들에게는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표지를 보라. 낙타의 등에 기대어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하는 말 “낙타의 혹은 도시락이래.” 이 책의 성격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준다. 동물과 친구처럼 기대어 스스럼없이 하는 대화에서 낙타의 혹에 대한 지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이 책의 표지가 설명하는 것은 책 전체가 담고 있는 내용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육사가 들려주는 동물원 가이드. 엄마보다 아빠보다 TV 동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나레이터 보다 더 확실하고 친근감 있게 동물의 모든 것을 알려줄 사람으로 적임자이지 않은가.

책장을 펼치면 동물원 친구들이 1번부터 40번까지 나온다.

동물이름만 읽어도 머릿속이 꽉 차는 듯하다.

낙타, 코끼리, 기린, 얼룩말, 캥거루 같은 흔한 동물에서부터 펠리컨, 홍학, 레서판다, 포큐파인, 라쿤처럼 이름이 좀 생소한 동물들까지 40 종의 동물들이 총망라되어 있어 작은 동물사전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책을 받아든 순간 함박웃음을 짓더니, 동물의 표정을 따라하느라 익살맞은 얼굴이 되는 우리 아들.

 

40종의 동물들을 점선따라 짚어가며 살피더니 꼬불꼬불 엮인 동물이름의 퍼레이드에 곧바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동물원 여행이 될 듯싶다.

표지에서 낙타의 혹은 도시락이라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낙타의 혹 속에는 물이 담겨 있다는 말은~ 삐삐. 틀렸습니다. 낙타의 혹 속에는 지방 그러니까 버터같은 것이 잔뜩 들어 있단다. 그래서 영양 만점. 혹으로 몸 상태도 알 수 있다니 이런 신기한 일이...1번 동물 낙타의 설명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듯, 평소 같았으면 동물의 그림만 보고 휙휙 넘긴 다음, “다 봤다”고 할 녀석이 차근차근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40번 까마귀ㅡ 비둘기, 참새까지 다 보려면 한참이나 시간이 걸릴 듯 하다.

2번 코끼리에서는 사람의 손같은 역할을 하는 다재다능한 코끼리의 코에 정신을 빼앗겨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 녀석. 이래서야 책 한 권을 오늘 안에 다 못 볼 것 같다.

 

늑대는 개가 아니다. 뭐가 다를까? 멍멍 짖지 않는다. 날고기만 먹는다. 친구들과 합창을 한다. 아빠 늑대도 새끼를 잘 돌봐 준다. 사람한테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늑대랑 개는 닮았다.^^

홍학은 분홍색 솜사탕. 아, 이런 사랑스런 대사 너무 좋다.

이 왜 싫어? 그럼, 이런 뱀이 좋아?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항상 생글생글, 혀를 날름거리지 않는다. 귀여운 꼬리, 털이 있다. 다리가 있다.상상이 되나?^^

뱀은 역시 뱀다운 게 최고. 간간이 유머를 잃지 않는 설명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공작의 깃털은 눈동자 무늬.

 

봄이 되면 공작은 마음이 싱숭생숭. 짝을 만나고 싶어져. 깃털의 눈동자 무늬를 예쁘게 단장하고, 수많은 눈동자로 ‘네가 좋아’하고 고백해.

 

아이 대신 엄마인 내가 신나서 휘릭 휘릭 책을 넘겨보고 행복해한다.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동물 소개가 40번에서 끝이 아니었다.

 

41번. 마지막으로 사람을 살펴보자.

 

허걱.

사람도 동물이야.

아이들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말이 아닐까.

이제까지 관찰과 볼거리의 대상이었던 동물들이 거꾸로 사람을 구경하고 있다.

사람은 정말 이상한 동물이야.

아이들은 그저 이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기발하다며 낄낄거리겠지만, 어른의 눈으로 보면, 갑자기 숙연해지게 만드는 엔딩이다.

동물인 사람. 이상한 동물.

정신차리고 제대로 살게 만드는, 여름철의 등목물처럼 등을 타고 내려오는 한기를 느끼게 하는 말이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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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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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들어볼까요...[인생 수업]

 

 

기억은 참으로 단순해서 노랗게 빨갛게 단풍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계절이 오니, 봄꽃을 보고 언제 감탄했나 싶게, 단풍이 아름답다 생각하게 된다. 그야말로 봄꽃, 바이~ 짜이지엔^^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구절을 보고 무심결에 말의 뜻만을 생각하니, 나의 생각없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스님의 깊은 뜻은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 그대로의 뜻은 아닐 터. 비참하지도 초라하지도 않게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렷다. 그렇다면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문즉설’의 대가답게 스님의 말씀은 한 점 머뭇거림이 없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하고, ‘단풍처럼 물들어 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스님의 인생수업은 쉽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는 대로 맞아, 맞아...하는 말이 절로 터져나온다. 이 좋은 책을 어떻게 혼자만 읽을 수 있겠어...하며 아는 사람과 책을 펼쳤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펼친 책의 한 구절을 내려다보며 제목을 읽는다.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법.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두고도 먼 훗날을 걱정하는 그이와 나는 참,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이다. 제목만 보고 그 장을 펼쳐도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면 고구마순 당기자 고구마 줄줄이 딸려나오듯이 할 말들이 줄줄줄 쏟아져 나온다. 자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자에서 시작해서 노후준비, 늙어서는 시골의 한적한 주택에서 살고 싶다. 그러면 시골생활은 어떻게 시작할까,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은 어떻게 적응해서 살고 있나...등등...몇 날 며칠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기세다.

결론은 뭐냐,

아무리 사랑하고 헌신하며 키웠다 해도 내 품을 떠난 뒤에는 기대와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자식을 효자로 만들고, 지난 내 인생도 보람 있게 만들고, 나도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238

 

 

 

 

이별도 사흘이면 족하다.

스님은 편안한 어조로 마음을 끊어내는 법을 설파하고 계신다.

그러나 “미망”에 사로잡힌 속세의 인연들은 ‘끊어내기’가 힘들다. 어떤 인연에도 얽매이지 않은 스님의 고고한 말씀은 한편으론 매정하다, 냉정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반감이 살짝 느껴지기도 한다.

살아보면 스님,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답니다. 말처럼 그렇게 단칼에 끊어지고 정리될 거라면 이렇게 힘들어하지도 않지요...

 

그 외에도 일어난 일은 언제나 잘된 일이다. 지금부터의 삶은 덤이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신호, 상대가 아닌 내 마음부터 살펴라,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해서 외로운 것, 간병은 복을 짓는 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다툼이 사라진다, 잔소리와 간섭은 자식과 등지게 한다, 등..귀에 쏙쏙 들어오면서도 일침을 가하는 말들이 이어진다.

감정의 과잉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보면 많이 차분해질 것 같긴 하다.

‘易地思之(역지사지)’

내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자.는 것이겠지...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온다.

이것은 선명한 명제다.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를 읽으면서도 접하게 된 것인데, 스님의 [인생 수업]에서 또 다른 맛으로 만나게 되었다.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러한 대전제를 깔아놓으니, 그야말로 인생이 단순명쾌하게 보인다.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 란 질문을 던져서 답답한 마음에 얹혀진 돌의 무게를 살살 가늠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더니, 슬슬 그 무게를 덜 수 있는 법을 제시해 주신다.

그림과 함께 마음을 쉬어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명강, [인생 수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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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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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이야기하다. [모든 게 노래]

 

올봄에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 속 한 구절,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를 유난히도 많이 흥얼거렸다. 계절을 느끼기에 딱 좋은 노래였고 멜로디였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UhUh )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 봄 얘기를 하는 게 좀 멋쩍긴 하지만, [모든 게 노래]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계절을 이야기하게 된다. 지나간 계절이라도...

한동안 가사가 있는 노래란 것은 ‘동요’, 아니면 ‘노부영’(노래로 부르는 영어)뿐이었던 나의 단조롭고도 유치한 세상에 화사한 연분홍의 흩날리는 벚꽃 이미지와 함께 황홀한 봄을 선사해 준 그 노래, <벚꽃 엔딩>

 

[모든 게 노래]의 저자 김중혁은 계절을 노래로 느낀다.

이지형의 <봄의 기적>에 스며 있는 아지랑이 같은 봄도 있고, 가슴 아리고 눈물나는 <봄날은 간다>의 봄도 있고 롤러코스터와 김현철이 함께 한 <봄이 와>의 경쾌하고 나른한 봄도 있다.-53

 

봄뿐인가, 사계절 다양한 우리나라에서 계절을 느낀다면 여름, 가을, 겨울도 있어야겠지.

각각의 계절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에 따라, 김중혁이 알고 있는 노래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어써니, 이렇게 샛노랗고 예쁜 표지의 책이 되었다.

채소에 소금을 치면 샐러드가 되듯 날씨에 노래를 쳐야 비로소 계절이 되는 것 같다.(...)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둘러보면, 모든 게 노래다.-프롤로그 中

 

<응답하라 1997>의 후속작으로 <응답하라 1994>가 방영되고 있다. 앞의 것은 대충 보았고, 뒤의 것은 띄엄띄엄 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1994와 가까운 나이이고, 딱 내 세대의 이야기여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중이다. 그 즈음의 노래라고 딱 집어 말할 순 없어도 적어도 그 시기를 거쳐온 사람이라면 카세트 테이프 한 두 개 정도는 집 어딘가에 놓여져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카세트 테이프와 CD가 반반의 비율로 서랍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꺼내 스테레오에 넣으면 음이 ‘지~익’늘어져서 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다. wax 2집-화장을 고치고, 머니, west life-my love, 신해철, GOD등등...

 

 

 

 

이제는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감내하느라 지치고 늘어져서 들려주고 싶어도 노래를 들려줄 수 없는 슬픈 카세트 테이프들이 그저 추억의 물건들로 남아 서랍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은 6살 아들 녀석이 서랍을 쭉 빼서 열더니, “이게 뭐야?”하고 물어본다. 뭔지 모를 법도 하여 직접 들려주려고 스테레오에 넣었더니, 역시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끝내 씹혀버려서 잡음만 들려주더니, 어쩔 수 없이 잡아빼자 줄줄이 딸려오는 저 연약한 기억 속의 흐늘거리는 테이프들...내 한 때의 추억이 이렇게 잡아먹히나...하며 좀 허탈해 있는 사이, 아들 녀석은 재밌다면 다른 걸 꺼내더니 사정없이, 말릴 틈도 없이, 수타면 빼는 중국 요리사처럼 신나서 테이프를 죽 죽 잡아빼서 뱀처럼 구불거리는 모양을 감상하며 꺄르륵거린다.

나의 Queen이며, 본 조비, 뉴 키즈 온 더 블락, 토미 페이지, 케니 지...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언제고 처분했어야 될 것들이어서 마음의 준비는 해야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나의 1994가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자 휑하니...찬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음원을 다운받아 저장하면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

시절의 강을 건너고 건너면서 노래는 살아남는다.

나의 시절은 지나가고, 또 다시 시작되고...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의 의미를 알 나이가 되어서인가...내 마음의 현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곤 한다. 느닷없이. 불현 듯. 그래서 울컥 또 울컥. 아직 클래식에는 조예가 없어 쇼팽이나 모차르트를 들으며 감동 먹기는 하여도 눈물 흘린 적은 없었는데, 영화 Mission의 주제곡으로 유명했던 ‘넬라 판타지아’는 들을 때마다 , 열에 아홉은 눈물을 떨구고 만다. 아침 운동을 하며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아 걷던 중에 국카스텐의 노래를 들으며 찌릿한 감정의 전율을 느낀 적도 있다. 국카스텐이 부른 씨스타의 <나혼자>, 패닉의 <달팽이>, 이용의 <잊혀진 계절>, 조용필의 <촛불>...숲으로 난 길을 따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걷던 중에 느닷없이 만난 국카스텐의 목소리는 아침이고, 말짱한 정신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후춧가루, 고춧가루를 뿌려댄 듯 코가 맹맹해지고 눈이 따끔해지는 최루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떡해야 되지...발걸음을 일정한 보폭으로 떼어가면서 팔을 앞뒤로 박자 맞춰 흔들다가 눈물을 후두둑...아침운동하면서 어젯밤 실연당한 여자의 몰골로 눈물을 흘리는 나란 여자. 졸지에 그의 카랑카랑하면서도 감성적인 목소리에 압도되어, 이어폰을 통해 나의 귀에만 울리는 그 목소리의 널뜀에 때와 장소를 구분 못하고 그만 ...아, 나 왜 이러지...

 

 

 

그 날 이후 한동안 노래를 멀리했었는데 가을, 겨울에 어울릴 만한 노래를 실어 놓은 걸 보니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걸, 들어, 말어?

가을의 센티멘털, 겨울의 시린 마음...어쩔 것이야...감당할 수 있겠어?

혼자말로 묻는다.

 

아련한 슬픔이 느껴지지만 울 것 같지는 않은 그런 기분이다. 마음이 건조해진다는 얘기는 아니고, 뭐랄까, 햇볕에 말린 마음같이 된다는 거다. 마음이 뽀송뽀송해진다.

Everything but the girl <Amplied Heart>, 1994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또 1994다.

이러니 들어볼 마음이 안 생길 리 없다.

울 것 같지는 않다잖아...소곤소곤 내 마음에 말을 건네 본다.

노래를 이야기해주는 김중혁의 산문집.

이제는 나도 노래를 듣고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떨구는 눈물을 자음과 모음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이상도 하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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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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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새 없이 내달린다! [이 인간이 정말]

 

아이고, 작가님.

정말 쉴새 없이 내달려 주신다.

우하~ 씬나~

경쾌함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읽어나가던 것이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 신나~에서 씬나~의 경지에 이르렀다.

 

표제작인 <이 인간이 정말>, 정말로 궁금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입말이어서 여기도 붙여보고, 저기도 붙여보고 하다가 버릇없게 아무 데나 그런 말을 붙이는 것 같아 제풀에 무안해 하기도 했다. 좀, 무례한 어투이기는 하지 않나.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에서 <이 인간이 정말>을 처음부터 펼쳐 본 것이 잘못이었나.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중후해지기를 바랐던 나만의 기대가 너무 컸었나...^^

맞선 자리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 은근히 주고받는 기싸움 중에도 거리낌 없이 쏘아지는 남자의 속사포 랩과 같은 대사를 따라가느라, 내 40 좀 못 미치는 평생의 독서력에서 기를 써가며 키워온 속독의 내공을 첫 단편을 읽는 데 소진해버렸다. 허탈~무슨 놈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도 없으며 , 적당히 웃을 타이밍도 주지 않고 그렇게 주욱~ 이어나가느냔 말이다. 이 인간은 정말~~^^그러다 마지막에서 빵 터질 시간을 주신다.

“됐다, 새끼야. 제발 그만 좀 해라.”

과연 실시간으로 그 자리의 믿기지 않는 상황을 눈앞에서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실감나는 대화와 그 대화를 한 방에 종결짓는 센 “마무리”가 아니었나 한다. 좀 부드럽게 다루었다면 달달한 연애드라마에 약방의 감초처럼 한 번씩 나오곤 하던 재벌의 아들과 돈을 보고 선자리에 나온 여자의 에피소드 같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성석제식의 필터를 거치고 나면 이렇게 신랄하면서도 함부로 웃지 못할 포스를 갖게 된다.

 

[이 인간이 정말]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러 해에 걸쳐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성석제의 소설이라는 네임을 붙이지 않아도 “성석제표”임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징표들이 박혀 있다. 어느 곳을 펼쳐 보아도 따라 읽어 가다보면 ‘이거 이렇게 가다가 어디 부딪치는 거 아니야? ’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정도로 빨라지는 속도감 있는 문체 때문에 심장이 쾅쾅거리기는 부지기수이고, 읽는 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갑작스런 전환에 어리둥절해지기도 여러 번. 게다가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면서도 허풍을 떠는 인물들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묘한 연민과 동정이 샘솟게 되는...각각의 개성 있는 인물들을 하나로 뭉뚱그리긴 뭐하지만 말이다.

 

자동차 사고와 보험 처리의 상황을 다룬 <론도>, 특이한 사기꾼 동창생 이주선의 모습을 그린 <홀린 영혼>, 어린 시절 부잣집 딸로 찬미의 대상이었으나 고아로 전락한 민주가 살아온 인생편력이 소설의 화자 서정우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서술한 <찬미>, 라오스 여행길에서 만난 자칭 사업가 박씨의 이야기 <남방>, 어쭙잖은 한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의 역사를 떠벌리고 다니다 누군가 진실을 지적하면 발끈해버리고 마는 엉터리 해설가 <해설자>, 아버지의 외투에 관한 이야기 <외투>, 임진왜란의 와중에 나랏일에 소홀한 복수장 기원에게 바른말을 했다하여 억울한 죽음을 하게 된 유희의 억울한 사정을 밝힌 <유희>,그리고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이 인간이 정말>

 

하나하나 해부하기엔 능력이 부족하여 성석제 소설의 미덕을 자세히 다루지는 못하지만, 정신없이 읽기를 밀어붙이는 통에 이야기의 줄거리조차 읽을 당시에는 머리에 제대로 입력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그래, 맞다. 살아간다는 건...”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제자리에 돌려보내주는 예의 있는 작가. 성석제.

밀려오는 글자의 파도에 정신없이 떠밀려 후다닥 읽게 만들어도, 읽는 중간에 나의 삶과 비교해보고 나의 상황에 대입해볼 수 있게 쉬어갈 수 있는 섬 하나는 만들어주는 사려 깊은 작가. 성석제.

그는 이번에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인간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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