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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하다.

나들이 하기 딱 좋은 날씨다. 규원이와 손을 잡고 지하철 역까지 걸었다. 맘이 설레고 기분이 좋은지 규원이는 연신 조잘조잘이다.

“엄마, 엄마. 내가 얘기 하나 해 줄까?” 전에 없이 이야기도 지어 주려나 보다. “응. 해 봐.”

 “있잖아. 한 유령이 살았어. 그런데 유령은 아주 더러웠어. 어느 무시무시한 집에 유령이 들어갔거든. 사람을 잡아 먹었어. 그리고 깨끗이 씻었어. 끝.”

줄거리가 간단 명료한 것이. 무슨 이야기를 흉내낸 이야기도 아니고, 독창성은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끝나고 너무 짧다는거.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 이후로도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 몇 개나 지어냈지만, 거짓말해서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가 등장한 것 외에는 더러운 것이 깨끗해졌다는 얘기의 반복이다. 그래도 규원이의 이야기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역에 닿아서 부산 시민회관으로 고고.

성철스님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갔다가 후기를 썼더니, 성철스님 테디 베어(누더기 두루마기 의상을 입은 곰)를 준대서 받으러 가는 길이다.

사실은 김*아 라는 이름이 3등,탈모 시술권 10만원권에 당첨이 되었다. 그런데 왜 테디베어냐? 1등 국내 왕복 항공권부터 3등까지 상품이 나뉘고 나머지는 모두 묶여 테디베어에 당첨되게 되어 있었다. 1등 5명, 2등 3명, 3등 5명, 4등 100명이니 말이다. 사실, 100명 넘게까지 후기를 남기진 않았단 말씀. 1등이 아니면 별 구미가 당기지 않는 선물들 뿐이지만 테디베어는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해서 후기를 남겼었다. 그런데 내가 후기를 쓰려는데, 이미 김*아 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글을 올려 놓았더라. 그래도 실명을 써야지, 하면서 내 이름 그대로 썼더니, 3등에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2명이면 하나는 3등, 나머지 하나는 다른 곳에 이름이 있어야 할 터였는데, 이름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테디 베어에라도 이름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말이다. 그것은 주최측에서 김*아를 한 명으로 알고 3등에 당첨시켜 준 것이 아니냐 말이다. 그래서 전화를 해 봤더니, 역시나 그들은 2명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잠시 확인하는 것 같더니, 날짜상으로 앞의 글, 내가 쓴 글이 아닌, 다른 김*아의 글이 3등이었다. 그러더니, “테디베어 받으러 오세요.”했다. 연락처 남기는 것도 없이, 로그인도 없이 덩그러니 이름만 남기고 후기 쓰는 이벤트여서 본인 확인 절차가 따로 없다. 받으러 갈 때, 신분증 지참이 다다. 내가 그냥, 신분증 가지고 가서 3등 경품을 꿀꺽 했으면 어쩔 뻔했냐. 그러나 내가 가져봤자 휴지 조각 신세일 것 같아서, 나는 자진 신고하고, 테디 베어를 받아왔다. 동명이인의 그늘에 가려 정당하게 순위경쟁도 못해 본 내 신세. 두 명의 이름을 하나로 보아 3등을 준 것이면, 난, 테디베어 2개 요구할 권리 정도는 있을 테지. 그래서 테디 베어 2개를 받아왔다. ^^

예상대로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스님의 누더기 두루마기 입은 테디베어를 보고 하나라도 배우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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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메시지

 

나는 글쓰기로 힐링한다.

 

 

이유는? 게을러지기 쉬운 나이기에 매일 일기를 쓰면서, 책 읽고 리뷰도 쓰면서, 나의 내면을 지그시 응시하기 위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메시지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3가지로 요약한다.

 

1. 나의 아이들-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는 존재들

 

2. 고전 읽기-그 중에서 박지원의 글을 골라 보았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딱 걸린 삐딱 남아, 중국 기행문<열하일기>로 당대의 인기를 한몸에 끌었던 박지원

그도 글쓰기를 통해 힐링을 했을까?

그의 누이가 향년 43세에 세상을 등졌을 때, 나루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지었던 묘비명의 구절이다.

무뚝뚝할 것 같은 조선 선비의 속내가 절절이 드러난다. 자, 보시라.

 

嗟乎。姊氏新嫁。曉粧如昨日。余時方八歲。嬌臥馬效婿語。口吃鄭重姊氏羞。墮梳觸額。余怒啼。以墨和粉。以唾漫鏡。姊氏出玉鴨金蜂。賂我止啼。至今二十八年矣。立馬江上。遙見丹旐。翩然檣影。逶迤至岸。轉樹隱不可復見。而江上遙山。黛綠如鬟。江光如鏡。曉月如眉。泣念墮梳。獨幼時事。歷歷又多。歡樂歲月長中間。常苦離患憂貧困。忽忽如夢中。爲兄弟之日。又何甚促也。

去者丁寧留後期。猶令送者淚沾衣。扁舟從此何時返。送者徒然岸上歸。

 

아, 슬프다!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응석스럽게 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을 내어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댔다. 누님은 옥압(玉鴨)과 금봉(金蜂)을 꺼내 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랬었는데,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 해가 되었구나!

강가에 말을 멈추어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이 휘날리고 돛 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기슭을 돌아가고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보이지 않는데,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니, 유독 어렸을 적 일은 역력할 뿐더러 또한 즐거움도 많았고 세월도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노상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으니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촉박했던고!

 

떠나는 자 정녕히 다시 온다 다짐해도 / 去者丁寧留後期

보내는 자 눈물로 여전히 옷을 적실 텐데 / 猶令送者淚沾衣

조각배 이제 가면 어느제 돌아오나 / 扁舟從此何時返

보내는 자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 送者徒然岸上歸

 

극에 달하면 통한다고 했다. 그의 슬픔이 극에 달하여 글로 풀어낸 이 묘비명이 그의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을까..

 

3.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뭘 써?” 쇼타가 물었다.

“그러니까, 답장 말이야. 이대로는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바보냐, 너?” 아쓰야가 말했다. “그런 게 마음에 걸려서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31-32)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158-159)

 

세 가지를 꼽고 나니, 노래 한 구절이 입에서 맴돈다.‘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데, 내게 기쁨을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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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2-2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것 자체로 감동이네요 ㅎㅎ
힐링이 뭐 따로 있나요 ㅎㅎ 내게 소중한 '그대' 가 있는데 ^^
책과 아이와 글쓰기 , 아름다운 삶 이어가세요 ^^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특별전

-부산 시민회관 한슬갤러리 1,2층

 

 

 누더기 두루마기가 나를 마중 나와 있습니다.

환한 웃음 띄며 "어서 오너라."하시는 성철 스님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려 집니다.

 

 

 

 

 

 

 

 수행이란...

 

 

 

 

 

 

 

 

 

 

 

 

 

 

 

 

 

큰스님이시니 이런 영롱한 사리가 나왔지. 나는 죽고 나면 한 줌 사리로조차도 남지 못하는 미천한 몸.  

 

 

 

 

 

 

 

<열반의 종소리>

가야산 단풍이 빨갛게 타오르던 1993년 늦가을 창밖에 환해질 무렵이었다. 큰스님께서 해인사 퇴설당에서 11월 4일(음력 9월 19일) 열반에 드셨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참선 잘 하그래이"하시고는 앞의 열반송을 남기셨다

 

<영원에서 영원으로>불필스님 회고록-363P.

 

 

 

오욕과 칠정에 사로잡혀 내가 내 속을 팔팔 끓이고 있을 때---

 한줄기 청량한 소나기, 산사의 고요함을 내리치는 죽비소리 처럼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열반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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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신간평가단님의 "13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리뷰도서 "

어느덧 에세이 분야 리뷰어로 활동하는 것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열 두권의 책들을 죽 훑어보니 다들 마음에 남을 만한 책들입니다. 한동안 쓰담쓰담 해야 할 듯~~다음 기를 기약하면서. 마지막을 열심히 달려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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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신간평가단님의 "알라딘 13기 신간평가단 첫번째 리뷰도서! "

우아~드디어 책이 오네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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