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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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악의 탄생은 언제부터? [죽어야 하는 남자들 데스미션]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철학은 머리 아프다.

그래도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로 닥친다.

사람은 원래 악한가? 아니면 선한가?

악한 사람은 끝까지 악한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가?

 

추리소설을 읽으면 현실의 내 문제점은 아주 작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다.

말하자면 소설과 내 현실을 대비해가며 '음, 그래도 나는 아직 살 만한 세상에서 살고 있군.'하는 작은 위안을 얻게 된다고나 할까.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지만 뉴스를 보면 아주 가까이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여자의 이야기로 오늘도 세상은 떠들썩하다.

 

좀 더 어렸을 적에는 소설은 소설, 현실은 현실.

이렇게 확실히 가를 수 있는 단순함이 존재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건 내 오판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현실은 어쩌면 더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사람이란 멀쩡한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추체험하게 해 주는 것은 소설의 힘일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의 힘일까.

 

[데스미션]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은 형사와 악인의 대결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것도 둘 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인, 죽어야 하는 남자들이다.

심지어 같은 병원을 다니며 병원에서 한 번 마주친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았다면 소오름 돋았을 한 장면이 똭 펼쳐진다. 아, (내 마음대로 선정한) 두 주인공의 얼굴이 떠오를 듯 말 듯...

 

범인인 사카키는 주식으로 성공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학창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거기서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미노를 만나 사그라들지 않은 애정을 확인한다. 사카키는 사실 '사람'이 아닌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어두운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 충동을 잘 가두어놓고 성공한 사람의 삶을 살았지만 위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속에 잠재되어 있던 악이 깨어났다. 사카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비쩍 마르고 힘 없는 한 남자가 불쌍해 보이지만 연쇄 살인을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또 그 짠함이 싹 사라진다. 악의 충동은 언제, 어느 시점에서 싹트게 된 것일까? 어린 시절의 어떤 일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암시가 여러 군데서 나오며 그 때와 연계해서 첫사랑 스미노도 같이 떠오른다. 계속해서 그 때의 일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신의 한 수.

한편, 연쇄살인을 쫓는 형사 아오이 또한 위암 말기로 판정을 받는다. 일 때문에 가족을 뒤로 한 벌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이들과도 소원한 상태다. 보통의 형사 같았으면 이번 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란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할까? 즉각 사표를 내고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가족과의 관계 회복에 힘을 쓸 터이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레 맡은 사건에 매달린다. 지독한 이기주의자란 욕을 속으로 하고 또 하고, 이러다 이야기가 끝날 것 같아 할 즈음에 그와 아내만의 이야기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두 명의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나오지만, 그 둘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한 명은 마지막 순간 악을 세상에 풀어놓고, 다른 한 명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불사르며 살인범 체포에 뛰어든다. 죽음도,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이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재미있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을 이룬 자신과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형사라. 이토록 재미있는 만남이 또 있을까. 사카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이 눈으로 범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싶어. 언젠가 사형대에 매달릴 그 녀석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그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261

 

죽음의 순간에 내 곁에 누군가 남아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이겠지?

가족의 의미가 날로 퇴색해가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요즘,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을 다시 한 번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 악의 탄생은 그저 악마 메피스토바르트에게 영혼을 판다고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든지 어떤 계기가 있어야만 시작되는 것인데, 그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야쿠마루 가쿠가 꺼내든 악의 탄생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에 짠, 하고 나타나는데 그게 또 사람을 억, 하게 만들고 스읍, 숨을 들이마시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지는 형사의 멋진 마지막 한 방!

[데스 미션]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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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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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마음을 흔드는 강연이란 이런 것! [크로스 사이언스]

 

문과생들은 과학적 지식에 약하다.

그렇기에 더욱 자주, 잘 알지도 못하는 수학이나 과학 언저리를 뱅뱅 맴도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제목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든지 [공각기동대]라든지 하는 문학작품이나 만화, 영화 등을 보면 저도 모르게 눈이 반짝하는 것들...

잘 모르는 분야를 제대로 파려면 진입장벽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직감하기에 조금은 쉬운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순정만화를 보면서 파라오나 유럽중세의 세상 들을 엿보다가 어느새 역사에 푹 빠지게 되는 경험을 해보았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딱딱한 전공서적이나 대학교수의 저서를 볼 정도의 강심장은 아니기에 (헉! 소리가 나면서 심장마비가 올지도 모른다.)조금 말랑말랑한 매체들을 찾는다.

그러면 매체의 특성에서 오는 진한 감동에 약간의 수학, 과학적 지식들을 덧붙여 으흠, 나는 이런 어려운 학문의 맛을 살짝 보았어! 하며 헛기침을 헤대는 것이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정말 수학, 과학의 주변에 들어서지 못하고 계속 수박 겉핥기만 계속하게 된다.

이제는 정말로 '수학, 과학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 아니, 적어도 수학, 과학이 우리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인문학만큼 파고들었을 때 내가 얼마만큼 더 알게 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수학, 과학을 재미있게, 의미있게 설명해주실 분 안 계신가요?

 

[크로스 사이언스]의 저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이다.

그의 강의는 서울대 대표 교양과학 강의가 되었으며,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멋진 신세계], [프랑켄슈타인], [가타카] 등의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다고 했다.

직접 본 영화나 책 등이 꽤 눈에 띄었으므로 그의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명작 또는 현대의 고전 속에 과학의 쟁점을 색다른 시선으로 풀어주는 책.

저자는 과학이 우리가 접하는 문화 속에 이미 아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했다.

문화 속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의 얽힘을 잘 읽어내는 작업은 두 문화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교두보가 된다는 그의 말에 크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과학에 관한 책이 나온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괴물이라고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그를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며, 프랑켄슈타인은 이름이 없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그 책에 관해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프랑켄슈타인]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의욕이 일어난다. 멀쩡한 두 눈을 두고 왜 그 책을 읽지 않았던가. 2018년 출간 200주년을 맞은 고전 중의 고전이니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당시의 과학기술을 집약하여 죽은 사람을 살려내었다-금기에 도전하였으나 지식이 책임감 있게 사용되지 못하고 통제가 되지 않았다-자신과 주변이 파멸에 이르렀다.

소설 속 과학연구의 결과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전체의 60%를 차지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소설 속의 과학은 다르며, 이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책 전체의 고작 일부분만 읽었을 뿐인데도 머릿속에서 생각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과학이 결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 문학 등을 읽을 때 무작정 어렵다, 힘들다고만 여겨 밀어내기 급급했었는데 이렇게 현실과 연계하여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완벽한 유토피아를 설계하며 피력했던 [유토피아], 보이지 않는 빅브라더의 존재를 현실과 관련지어 생각하게 하는 [1984] 등을 통해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옥자], [가타카]에서는 우월한 유전자만 살아남는 세상을 상상하게 하고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사이보그의 위치를 가늠하게 하면서 로봇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대중문화, 세상, 인간,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를 시도하면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생각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름지기 마음을 흔드는 강연이란 이런 것!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강의를 듣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고 생생한 만큼 얼른 다른 매체들을 통해 과학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직 과학에 단단하게 뿌리내릴 만큼 기초가 쌓이지 않았지만 문과생도 계속 읽고 질문하고 궁금해하면 멋진 크로스를 통해 과학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흥분된다.

설 연휴 마지막날에 올해 할 일 한 가지를 다시 꼽아놓게 되었달까.

이런~ 다 같이 달려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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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디테일 - 고객의 감각을 깨우는 아주 작은 차이에 대하여
생각노트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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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실마리를 열어주는 디자인 [도쿄의 디테일]

 

 

 

아카데미 힐스는 '현대의 근로자'들을 위한 공간인 롯폰기 힐스 모리타워 49층에 있다.

첫째, 사무, 주거, 쇼핑, 문화 등 도시인의 모든 생활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

둘째, 모든 공간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 경험을 추구한다.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 롯폰기 힐스 에서 아카데미 힐스는 '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저자는 철저하게 멤버십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곳에서 8시간 머물면서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는지 기록했다.

높은 천장과 넓은 창문은 롯폰기 49층이라는 고층에서 자연을 만나게 해주었고 내부에서 밖을 내다보는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아카데미 힐스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비즈니스 분야 잡지에 기획으로 준비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근로자들이 생산적으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지적 공간. 그 곳이 바로 아카데미 힐스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컨셉트와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기록활동가'인 저자는 생각노트라고 이름 붙인 블로그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기록 활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딘가를 다녀오면 그곳에 다녀와서 느낀 점을 블로그에 남겼고 호감이 생긴 브랜드와 관심이 생긴 트렌드에 대해서는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분석과 견해를 기록했다.

<도쿄의 디테일>은 2017년 12월 2일부터 6일까지 4박 5일 동안 도쿄를 여행하며 기록했던, 모든 발견과 영감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은 여행을 다녀 온다고 하면 사진 찍기 바쁘거나 식도락을 즐기기 바쁜데, 저자는 여행에서 얻어온 것이 남들과 달랐다.

발견과 영감에 대한 기록이라니...

4박 5일간의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질 분량이면 엄청나게 많은 글을 여행하는 내내 머릿속에 담아 온 셈이다.

오~ 도전의식 땡기는데?

아무 생각 없이 여행 일정을 짜고 숙박과 음식에 신경을 쓰며 다니는 곳에서는 찰나의 반짝이는 느낌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알차게 보냈다고 여겼는데.

한 권의 책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전리품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무엇이건 경험하는 것에도 컨텐츠가 필요한 법.

브랜드와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저자였기에 <도쿄의 디테일>이라는 책을 엮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도쿄의 디테일에서 말하는 디테일은. 완벽한 상태 또는 세부 사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고객 입장에서 체감하는 감동의 순간이라고 한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잘 파악한 뒤 혜택이 느껴지도록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선 구워드립니다. 1,000원.'고객의 불편을 찾아내어 그것을 새로운 수익과 혜택으로 바꾸면서 고객을 향한 배려를 전달한 사례이므로 다른 생선 가게와 차별화하는 강력한 포인트를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도쿄에서 감동을 느낀 순간이 이렇듯 배려와 감동의 차원에 집중되어 있다면, 나는 어떤 도쿄를 즐길 수 있을까?

 

<도쿄의 디테일>을 읽는 내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저자가 부러웠다.

나같은 평범한 독자가 읽었을 때조차 전율이 일 정도면, 마케팅 관련 종사자나 디자이너에게는 또 어떻게 다가갔을까 궁금해진다.

 

내게도  생각의 실마리를 열어주는 순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가까운 시일 안에 떠날 여행지에서 색다른 나만의 컨텐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쿄 #디자인 #마케팅 #생각노트 #퍼블리 #자기계발
#마케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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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의 비밀 편지
스텐 나돌니 지음, 이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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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이 있나요? [마틸다의 비밀 편지]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 이야기가 나왔을 때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기차역 중간의 벽 사이로  뛰어들어가면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고

거인과 상상 속의 동물들이 존재하며 마법 지팡이와 마법 빗자루로 휘리릭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세계.

아직 어리며 수업 중인 호그와트 마법 학교 학생들이 주인공이며, 부차적인 인물로 나오던 선생님들도 시리즈가 지나면서 점차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어른들까지 단숨에 판타지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흡인력까지.

상상력을 자극하던 책의 내용은 곧 각 장면을 그대로 현실에 옮겨놓은 듯한 영화로 상영되었고

해리포터 신드롬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해리포터를 능가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걸까.

여기, 해리포터와는 또다른 결로 마법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틸다의 비밀 편지]는 111세까지 살았던 마법사 파흐로크가 손녀에게 전하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화 될 것을 미리 예견하기라도 한 듯,

파흐로크를 주인공으로 상정한 시나리오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파흐로크가 손녀 마틸다를 보다가 깃털에 잉크를 묻혀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노인이 1955년 아들에게 썼던 편지를 60년이 지나 젖먹이 손녀에게 고쳐 쓰는 이유가 회상을 통해 밝혀진다.

마틸다는 성년이 되어 이 편지를 읽게 될 것이다...

 

2005년에 태어난 마법사 파흐로크는 1955년부터 중병에 걸린 아들 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손녀 마틸다에게 보내는 편지로 고쳐쓴다.

마법사 능력은 부모에게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불모지에서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거라서 그는 꼬마 마법사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를 낳았다.

2012년 아직 넉 달도 되지 않은 마틸다가 요람 밖으로 팔을 길게 늘여서 그의 코에 걸쳐 있던 안경을 잡아채 던지자 그 때 마법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기가 태어난 걸 알게 되었다.

그는 편지로 중요한 마법 경험들을 전한다.

편지 한 통에 마법 한 가지씩 주제로 삼아 쓴 것이다.

그 편지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12가지 마법이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팔 늘이기부터 시작해 아름답게 그리고 다르게 보이기, 공중에 뜨기와 날기, 사랑 찾기, 투명 인간 되기, 벽 통과하기, 강철 되기, 생각 읽기, 돈 만들기, 사람을 번창하게 만들기, 지혜에 도달하기, 세상에 이별 고하기.

 

이 편지들 속 이야기를 읽으면 현실과 마법의 경계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게 될 것이다. 정말 이게 가능해?거짓말 아니야?

물론, 소설 속 이야기를 믿고 안 믿고는 독자의 마음이다.

웬만하면 믿는다는 마음으로 읽고 싶지만, 에이, 그게 가능하겠어? 라는 의문이 반 이상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매력을 가지는 것은, 우화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삶의 지혜 혹은 진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더 오래 살고 싶다. 그동안 알고 지냈고 보고 싶고 때로는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편지를 보내오지 않지만, 삶의 아름다움은 구하기 어려울수록 귀중한 법이지.-39

 

내 삶에서 마법이 늘 함께했지만 그건 부차적인 요소였어.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또 크고 작은 어떤 일들을 도모하고 실행해왔는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때가 온단다. 그 때부터 우리 인생은 부지런히 떨어지고 새로 돋아나지만, 전체 잎사귀의 숫자는 한결같은 나무 한 그루처럼 서 있는 자리를 무던하게 지키지. -307

 

남을 돕는 일이 마법의 진의에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삶의 진의에는 일부분이나마 포함되는 것 같단다.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정상에 가깝다는 증거가 아니겠니. 가끔은 의지할 곳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통해 자기 삶을 회복하기도 한단다.-315

 

정말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동료 의사에게 보냈어. 하지만 정상적인 불행아들은 내 방식만으로도 충분했지. 나는 그 누구도 고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을 열어줄 수는 있다고 생각했어. 공명심에 골몰하는 대신 두 발로 걷고 코로 호흡하며 자신의 경험 중 감사할 만한 것을 찾아내는 법을 가르쳤지. 그들은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고 놀라워했단다.-337

 

지혜에 이르는 마법은 없어. 하지만 그게 아쉽지도 않단다. 그런 통찰은 대부분 성공보다 좌절과 함께 온단다. 어떤 통찰에 이르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게 마련이야. 고통 없이는 무분별함이 선물한 안락함에서 헤어날 수 없단다. -343

 

젊은 시절부터 공중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벽을 통과하거나 몇 초 동안 강철이 되는 능력을 익혔던 마법사 파흐로크. 그는 이 기술들 덕분에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무사히 살아남는다. 돈을 자유자재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 금세 마법의 대가 반열에 오르지만, 라디오 수리공, 발명가, 심리치료사 등으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변신을 거듭한다. 그랬던 그가 106세 되던 해에 손녀 마틸다를 위해 쓰기 시작한 편지는 열 두 통이 되어 첫 번째 부인 엠마와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가 얻은 지혜를 담아낸다. 둘째 부인 레일란더는 그 편지를 마틸다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고 [마틸다의 비밀 편지]프롤로그를 열게 된다.

 

하늘을 날거나 죽고 난 뒤에 나뭇잎으로 변하게 될지라도 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거나 가방을 시시각각 바꿔 들고 다닐 수 있는 마법은 없지만,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 하나 쯤은 갖고 싶지 않은가?

남 앞에 서면, 남들이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게 만드는 마법이라든지

사람들이 지갑을 열 수 있게 만드는 마법...같은 것?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마법이 아니라도 조금만 수련을 하거나 마음을 쓰면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인 것 같다.

마법이라는 이름을 씌우고 보면 마법이 되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 해서 보면 굳이 마법이랄 것 까진 할 수 없는 것들.

삶을 바꿀 수 있는 마법 같은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덤으로 팔 늘이기 기술도 하나 장착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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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마흔입니다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마음철학 수업
키어런 세티야 지음, 김광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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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않고 원하는 것 얻기[어떡하죠. 마흔입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릴 줄 몰랐다.

"갑자기"라는 말을 쓴 이유는, 나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버려서이다.

나는 아직도 '소설(小雪)의 절기에도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공을 차며 뛰어노는 저 철없는 청춘들마냥

언제까지나 파릇파릇한 마음을 지녔다고 웅변하고 싶다.

실상은 히터가 켜져 있는 따뜻한 실내에서 가디건을 걸치고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운동장을 내다보고 있는 처지이면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청춘이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중년의 아주머니'라는 대롱 사이의 시선이다.

아..슬프다, 라고 읊조리는 순간조차 슬퍼지는 나이 사십대.

마흔을 넘긴 지 몇 해 되었는지는, 마흔을 넘긴 순간부터 이미 세어보지 않은 터라

억지로 손가락을 꼽아 헤아려야만 알 수가 있다.

이 마음과 육체의 부조화라니.

 

아침에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나 본 지 얼마나 되었으며

거울 속의 얼굴에서 흰 머리카락과 늘어난 주름들을 마주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허리 마디마디, 무릎 관절 사이사이 움직일 때마다 뚜두둑 소리가 나면서 순간순간, 일초마다 늙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건만

마음 속 메아리들은 아니라고, 아직은 사십대가 아니라고 그렇게 울부짖고 있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에서 일어나는 이상야릇한 기분을 사십대의, 혹은 중년의 위기라고들 하는가.

이 때쯤 되면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에 늦었고, 늘 시간에 쪼들리고, 직업을 바꾸기에 힘들고 과감히 이혼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고 옭아매는 말들에 현혹되기 마련인가.

상실과 후회, 성공과 실패, 원했던 삶과 실제의 삶에 대한 의문들, 나아가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의 유한성, 어떤 식이든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공허함.

위에 나열한 여럿 중 하나라도 문득 떠올려 보지 않은 이는 없을 터이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를 느꼈던 순간부터, 내 것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철학적 질문들이 파고들었을 테니까.

탱탱했지만 지금은 쪼그라들고 있는 모공들을 보면서 한숨 한 번 쉬는 나날들의 주름 한 겹에 떠오르는 질문 하나.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는 내 삶이 한없이 공허해 보이고, 하루하루가 그저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질 때,

이 허한 마음을 기댈 곳이 어디에 있었던가?

어떤 이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 눈을 돌리고,

어떤 이는 게임이나 환상의 세계 속으로 도피하고

어떤 이는 도박이나 쇼핑 등 중독될 만한 무언가를 찾는다.

겨우 책에다 마음을 매어 놓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텐션.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를 외치면서 방심하고 있는 때에 찾아온 키어런 세티야의 책은 중년의 위기에 맞닥뜨린 사람들에게 조근조근 철학적 조언을 해준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 때,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고통을 해석하면서 행복의 본질과 행복의 추구에 대해 탐구한다.

급격하게 허무주의로 빠져드는 것과 중년의 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대조한다.

 

누구나 이따금씩 그럴 때가 있듯이, 나도 신경쇠약에 빠져 있었다. 재미도, 쾌락적인 흥분도 느끼지 못했다. 다른 때 같으면 즐거웠을 법한데도 무미건조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졌다.(...)이런 마음 상태에서 나를 엄습한 의문이 있다. "당신 인생의 목표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면, 당신이 갈구하던 제도와 여론의 변화가 지금 이 순간 완전하게 달성되었다면,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당신에게 크나큰 쾌락과 행복이 되어 줄 것인가?"그러자 억누를 수 없는 내 자의식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아니!"라고.-56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는 좋은 책.

일상의 공허가 채워지면 이상주의적 계획 속에서 '결과가 없는 데' 따른 근심도 물리칠 수 있다는 명쾌한 해답을 던져 준다.

새로운 시각으로 내 주름과 흰 머리를 쳐다볼 수 있게 해주어 기쁘다.

약간의 철학적 나레이션을 감수할 수 있다면 일독할 가치가 있다. ^^

 

#마흔,#중년,#중년의위기 #철학 #자기계발 #키어런세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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