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 - 인생의 진짜 목표를 찾고 사랑하는 법
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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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깨달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

 

 

 

사랑에 관해 공부하면 사랑을 잘 할 수 있을까?

연애에 관해 도가 트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대답은 '아니오'가 될 것이다.

실제로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이론과 실제는 항상 다른 법이니까. 마찬가지로,

행복을 연구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도 똑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집필이 경제적 성공과 무관하게 자신을 행복하게 했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데, 그가 살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함께 있고, 함께 일하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행복의 샘이라는 진리를 발견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사회적 배제이며, 그 결과가 두려움, 우울, 절망을 준다는 점 또한 확인했다고 한다.

하나의 명제를 일반화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증명들을 거쳐야 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인간으로서 이 책을 쓰면서 배운 통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저자가 몸소 체험한 행복에 대한 명제들을 이토록 쉽게 날로 얻어먹을 수 있다니...

책이라는 도구는 이렇게도 적은 투자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한다. ^^

 

 

 

물질에 둘러싸인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경제'와 '행복' 이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경제학자가 행복에 관해 논하는 이 책에 대해 흥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는 인간의 행복과 만족감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경제 분야는 오로지 돈, 멋진 자동차, 그리고 빠른 쾌락만을 추구할까?

경제 분야에 더 깊은 의미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있을까?

인간의 협동과 지위 경쟁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소확행' '워라밸' 등의 용어가 우리 삶에 급속도로 빠르게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있는 중이기에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경제논리로 따지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노동과 일, 경제활동을 하는 도중에 쌓인 피로는 저절로

이렇게 하나의 '현상'이 되어 나타난다.

 

'일과 삶의 균형'

'작지만 확실한 행복'

 

경제학자로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행복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더라도

결국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철학자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종교학자들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행복을 향해 떠나가는 여정을 걸어가는데

그 과정이 색다르기에 관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인상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알 수 없으나 일곱 번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남은 프라네 셀락이라는 사람이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온종일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갈고 닦아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마티유 리카르라는 사람이 있다.

앞의 사람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급기야 마지막에 복권에 당첨되었고

마티유 리카르는

 과학적으로 인정받은 훈련된 정신의 소유자다.

어떤 이가 진정 행복에 가까운 사람일까?

다르게 질문하면 행복의 원형이 존재할까? 아니면 여러 유형의 행복이 있을까?

 

행복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갈림길에 서보도록 하는 에피소드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행복의 본질도 모른 채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건 아닐까?

 

슬퍼서 가난하고, 가난해서 슬픈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딸린 부분을 읽어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돈이 역시 행복에 도움이 되고 슬픔도 줄인다는 결론에 동의할 수 있다.

 

불행해지기는 어렵지 않다. 당신보다 월등히 잘 사는 동네로 이사하면 된다. 혹은 당신보다 훨씬 부자인 친구를 사귀면 된다. 반대로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보다 더 잘사는 친구와 이웃을 사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내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이 필요치 않다. 비록 성격을 맘대로 고를 수는 없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다스릴 수는 있다.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달라이 라마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마티유 리카르를 생각하라. -119

 

어쩔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과 부대껴 살아야만 하는 존재인 우리.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행복보다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관계를 통해 행복을 나누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소비하라,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꼭지에서는 나를 잃지 않는 소비의 기술을 알려 준다.

1. 물질적 상품 대신 경험을 구매하라.

2.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써라.

3.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사라

4. 구매를 결정할 때는 소소한 일상을 고려하라.

 

행복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측정하고 비교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 경제학자가 내린 결론은, 행복을 측정하고 파헤치려 애쓸수록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누리는 것이며 행복은 쫓아가 잡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해내는 것이라는 말이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어쩌다 발견하는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지만 항상 수북이 모여 있어 작은 동산을 이루는 세 잎 클로버들은 '행복' 이다.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지금,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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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타자 - 정체성의 환상과 역설 무의식의 저널 Umbr(a)
슬라보예 지젝/ 러셀 그리그 외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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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환상과 역설 [나의 타자]

 

 

 

솔직히 이 책은 이해하기 버겁다.

정신분석학 이론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라깡이니 프로이트니 하는 대가들의 이론을 어느 정도 알아야 아는 척이라도 해볼 텐데...

 

 

 

<무의식의 저널 엄브라> 총서 중 하나인 이 책은 저널 엄브라를 번역한 것이다.

이번 호는 정체성으로 향해가는 여정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각 논의가 제시하고 있는 철학적, 논리적, 성적 함의를 살피고 있다고 한다.

 

저널에 실린 필자의 면면을 살펴 보면 그 무게와 깊이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갈 것이다.

 

 

 

류블랴나의 거인으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을 비롯해 러셀 그리그, 조엘 도르, 커스틴 힐드가르 등의 필진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들의 소논문을 읽는 느낌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는 현대정신분석이론의 연구자들이 정체성과 자기 동일성 개념, 또 사회구조에 대항한 주체의 저항가능성 등을 어떻게 이론화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전문용어와 이론체계 등에 문외한이라 100%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간간이 눈에 띄는 문학작품, 영화 등에 나오는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통해 어렴풋이 소경 코끼리 더듬듯이 실마리를 잡아 가며 읽었다.

 

보통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인문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좀 더 심도있게 파고든다.

정체성, 주체, 실체의 본질 등을 각기 다른 기호를 써 가며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역자 서문에서 밝힌 인상적인 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 본다.

 

정체성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한 일종의 가면과도 같은 것이라면, 주체란 그 가면 뒤의 '나'라는 어떤 실체이며, 그 실체의 본질은 틈이다.

이 주체의 틈으로부터 라깡이 이론화하고 지젝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한 '윤리적 행위'가 빛을 발하고 나온다. 결국 정신분석이론의 행식믄 상징질서에 균열을 내는 행위자는 다름 아닌 주체라는 점이다.-12

 

역자 서문에서 이 책의 지향하고 있는 이론적 분석의 대상을 좀 더 확실히 짚어주고 있는 셈이다.

오리무중인 것처럼 보이던 시야에 한 줄기 밝은 빛이 비치는 느낌이랄까.

이 부분을 지침 삼아 더듬더듬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 본다.

 

"정신분석에서 동일화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 유대헤 대한 최초의 표현" 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랭보의  "나는 타자" 라는 선언은 끝없이 타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정체성에 대하여, 나와 타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틈새와 차이가 있다는 것에 대한 주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본격적으로 SNS상에 자기를 노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요즘, 진짜 나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자기과시욕 때문에 화면 안에서는 멋지게 포장하지만 현실의 자신은 제시되는 프레임만큼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와 실체의 나 사이의 간극은 스스로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

정신분석은 바로 이처럼 알아채기 어려운 그 간극을,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노정된 모순과 역설을 탐색하는 것이라 말한다.

분석은 치유의 과정일 뿐이라는 말은 얼핏 냉정해 보인다.내부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툭하면 위로니 힐링이니 하며 기대려 하는 어설픈 과정에 대해 내뱉는 쓴소리다.

정신분석의 목적은 '주체의 결핍'을 겪는 것이라 주체 내부의 상처와 마주하기, 미완성의 나, 실패가 불가피한 '나'를 만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한다.

세상에 던져진 순간부터 상처입고 실패하게 되어 있다, 라고 먼저 선전포고를 하고 있으니 어쭙잖은 다독임을 기대하고 있는 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책장을 넘기시길.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라깡의 유명한 문구는 주체의 욕망이 '내 것'이 아니라 대타자가 무엇을 욕망하는가의 문제, 대타자의 결여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대타자가 수수께끼라면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된다. "그가 이렇게 말했어. 그런데 도대체 무슨 뜻이지?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나는 그에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수수께끼는 진술이 없는 발화이다. 따라서 어떤 발화도 수수께끼가 될 수 있다. -88

 

<환상으로서의 성과 증상으로서의 성>이라는 커스틴 힐드라르의 글이 가장 가깝게 느껴졌다.  '미투운동'이 한 때 시끄럽게 사회를 달구었었는데, 도대체 성에 있어 남성과 여성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읽어보면 좋을 내용인 것 같다. 남성적 극이 더 문화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가치를 논리학적으로 차분히 풀어나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취해졌기에, 여성은 남성에서 나왔다. 남성은 클리셰이고 여성은 이 형식과 규범에서 파생된다.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상징계에서 증상으로 변장한 채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나 환상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대답한다. 환상은 불가능성에 대한 답이며 결여를 덮어버리고 질문이 계속되기를 막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성의 모든 표상들은 환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과 여성은 '실재'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대충 이런 맥락으로 이해해 보자면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조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계속적인 수수께끼를 던지면서 우리는 여성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것 같다.

 

얇은 책이지만 '나의 타자'라는 제목을 충실히 파고드는 책이다.

비록 용어와 이론에 있어 막히는 부분이 있지만 정체성, 특히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이라면 수수께끼를 풀어나갈 해답을 하나쯤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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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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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우선 순위를 돌아보다 [시간을 멈추는 법]

 

 

 

 

 

 

"첫 번째 규칙은 사랑에 빠지지 않는 거야."

"다른 규칙도 있지만 이게 가장 중요해.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 사랑에 계속 빠져 있으면 안 된다는 것. 백일몽 속에서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 이 규칙만 잘 지켜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7

 

 

 

톰은 핸드릭으로부터 들은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다.

439살의 톰이 900살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말이니 그 무게가 엄청나다.

다른 많은 규칙들 중에서도 어떻게 사랑이 금기 일순위가 될 수 있을까?

일단은 '사랑'이 금기가 되는 그들의 삶에 궁금증을 느끼며 [시간을 멈추는 법]을 읽어나간다.

 

길어봐야 100년을 사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들에게 '하루살이' 같은 존재다.

한 정신과 의사가 '에너제리아' 라고 명명한 이들은 정상인들보다 15배쯤 성장 속도가 느리다.

에너제리아를 앓는 사람들은 몇 천 명쯤 되지만 사람들은 이들의 비밀을 잘 모른다.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라는 조직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핸드릭은 그 조직의 수장이다.

톰은 핸드릭의 관리하에 들아오고 나서는 8년마다 거처를 바꾸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에이브러햄이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톰 스미스는158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에스티엔느 아자르였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외모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마녀로 몰려 물에 빠뜨려졌다. 어머니의 유품인 류트를 메고 터벅터벅 걸어 런던에 도착한 그는 로즈라는 여인을 만난다. 가정을 꾸리는 그는 매리언이라는 딸도 낳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그는 오히려 로즈와 매리언의 삶을 힘들게 할 뿐이라고 느꼈다. 어렵사리 아내와 딸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딸인 매리언이 쥐어준 징표인 동전 하나를 소중히 챙겨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떠나 있는 사이 로즈는 병사했고 매리언은 어딘가로 떠났다. 지난 몇 세기 동안 톰은 딸 매리언을 찾으러 다녔다.

딸을 찾으러 다니면서 절망에 빠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간이 백 살을 넘겨 살지 못하는 이유는 심리적으로 기진맥진하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 나갈 의지가 없기 때문에. 지겹게 반복되는 생각과 인생에 지쳐 버리기 때문에.-52

 

모든 것이 영영 깨지지 않는 사이클에 갇혀 버린 것 같다, 스스로 귀를 뜯어 버리고 싶을 만큼 진절머리 나는 후렴을 가진 노래 속에 갇혀 버린 기분이다. 죽을 만큼 외롭다.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톰은 방황하기 시작했지만 매리언을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함께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핸드릭으로부터 새로운 미션을 받기 위해 톰은 런던으로 돌아와 역사 선생으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다.

공원 산책을 할 때 만났던,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를 읽고 있던 프랑스어 악센트의 여성을 학교에서 다시 만난다.

카미유는 첫 만남 때 그를 간파해냈던 것 같다.

파리의 시로스라는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는 묘한 남자의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1920년대에 촬영된 흑백 사진 속의 남자.

카미유에게 진실을 말한 톰은 이제 그녀에게 마음을 열려 하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핸드릭에게서 전화가 온다.

1891년부터 핸드릭과 그의 조직에 가입된 톰은 자신과 같은 에너제리아 오마이를 포섭하러 가야 한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아. ...그들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다.-445

 

카미유에게 진실을 말하면서 사랑의 싹을 틔워가던 톰은 오마이를 다시 만남으로써 이제까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을 걷어내게 된다.

안정적인 삶을 제공하고 딸인 매리언을 함께 찾아주겠노라며 자신을 포섭했던 핸드릭이 사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놀라운 반전이 나타나면서 톰은 결국 깨닫는다.

 

다 부질없다는 것을. 제각각의 페이스로 나이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시간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해도. 우리가 아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458

 

시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는 하루살이에 불과할 뿐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사랑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하는 에너제리아의 삶을 일부 훔쳐보면서 또한 깨닫게 된다.

시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 비로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미래라는 것을 깨달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몇 세기를 무료하게 살아가던 톰이 그래도 잠깐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고 느끼던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 키스. 그리고 음악.

 

"키스. 그것도 음악이랑 비슷해. 시간을 멈추게 하니까."-211

 

톰은 차이콥스키와 빌리 홀리데이를 제치고 1985년 빌보드 차트 52위에 올랐던 추억의 노래 돈 헨리의 <보이즈 오브 섬머>를 골랐지만 나는 왠지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듣고 싶어진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키스와 음악도 좋지만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라야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시간을 멈추기보다 시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도 던지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https://youtu.be/gxEPV4kol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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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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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한 줄이 다 내 얘기[시 읽는 엄마]

 

시를 읽는다는 게 알 수 없는 남의 얘기를 들여다보고 한숨 쉬며 덮어버리는 일로 귀결이 되어버리자 시를 읽지 않게 되었다.

뭉뚱그려 읽으면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지 않는 낱낱의 글자들이 나를 어지럽혔다.

시는 왜 이렇게 어렵게만 쓰여지는지.

그러다 시 읽기를 포기하고 줄거리가 있는, 뭔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 책만 골라 읽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편식을 하다 보니 이번에는 상상력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골고루 먹으라고,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잔소리하면서 정작 내게는 적용하지 않았던 엄격한 틀.

[시 읽는 엄마] 속에 나오는 시들은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뒷부분에 나오는 시인 신현림의 독백들을, 잔잔한 에세이들을 읽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신현림의 글을 읽으면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시에 나오는 구절들이 한 줄 한 줄 다 내 얘기 같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시들이라서인가.

딸에게 가 닿으려는 엄마의 모성애가 느껴졌고

가끔은 위로가 필요한 내 모습에서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한 번 더 들어 짐작해 볼 수 있었고

곁에 있지만 잘해 드리지 못하는 나의 엄마의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딸-나-나의 엄마에게로 죽 이어지는 그 시간의 흐름을, 이제까지는 따로따로 각각의 칸에 나누어 분리해 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에는 그 점들을 하나로 이어야 아름다운 선이 만들어지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부산에 사는 내가, 엄마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독서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청도로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시조 시인인 이호우, 역시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의 여동생 이영도의 삶이 녹아 있는 청도였다.

오누이 공원을 지나 그들의 생가를 찾았다.

아직 옛스러운 정취가 남아 있는 호젓한 시골마을의 한 집.

한 때는 부유했으나 영락하고 말았다는 오누이의 사람에서 초점은 여동생 이영도에게 가서 머물렀다.

시인 유치환과의 러브스토리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나

결국은 시로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시에서만 진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

19살 어린 나이에 청상이 되었고 어린 딸을 홀로 키웠고 교편을 잡은 동안에도 결핵을 앓느라 고단했던 이영도에게 대쉬하던 문학인이 있었으니...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영도에게 평생 3000여 편의 편지를 보내고 단 몇 분간의 만남을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왔던 남자 유치환.

지금에 와서 '스캔들'로 치부하기엔 애틋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해설가의 말을 듣는 동안 떠올랐다 스러져갔다.

여자이기도, 엄마이기도 했던 시인의 삶이 [시 읽는 엄마]를 읽는 시기와 겹쳐져서인지 더욱 또렷이 각인되었다.

 

샬럿 브론테의 <인생>, 정원도의 <파스>, 윤후명의 <강릉 가는 길>, 김광규의 <밤눈>,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시들이 딸-나-나의 엄마의 시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그저 읽어내려가기만 했을 땐 남의 일인 듯하던 시들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부여하면

내 이야기가 된다.

엄마의 이름을 벗어놓고 잠시 다녀왔던 청도기행에서 또다시 엄마이면서 여자이기도 했던 시인 이영도를 만난 것이 아이러니하다.

죽는 날까지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면, 제대로 나를 짚어보고 나 자신이 힘들 때 적당한 위로를 던져주자.

시 읽는 엄마. 이 이름도 하나 더 나에게 얹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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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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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스럽지 않은, 담담한 위로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의 시대는 이제 사라졌는가.

청춘들을 어루만지는 문구의 대명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대놓고 아픈 청춘들에게 번잡스러운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던 그 문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대신 토닥토닥, 청춘들의 현실을 들어주는 기류가 흘러들어왔다.

사실, 위로라는 것은 나보다 앞선 선배들에게서 어쭙잖은 동정을 얻어듣는다거나 남들로부터 섣부른 결단을 해결책으로 제시받는대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그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없이 낮고 비루한 사람이라 느껴질 때가 한 번씩은 다들 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그 때의 해결책 또한 다르겠지만 나 혼자만의 고민으로 당장 이렇다할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이렇게 책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라는 제목은 다소  삐딱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경험을 정면으로 때림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다.

 

"나는 시시한 사람이지만 그럼 어때."

 

한 번 배를 툭 내밀고 내뱉고 싶어지는 말이다.

꼭 따라 해 보고 싶어지는 말이다.

하고 나면 왠지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말이다.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다양한 이직 경험이 실패담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이 한 마디 할 수 있는 배짱을 배울 수 있었던 작가가 부럽다.

 

 

 

어느 날, 우연히 어느 회사의 구인 공고를 봤다. 하고 싶은 일이었다.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회사의 지원서에는 내 모든 실패 경험을 그대로 털어서 썼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닸다. 그리고 그 다음 주,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

입사 후 나를 뽑은 이유를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핍과 실패를 아는 사람이.-45

 

실패를 겁내고 시작조차 않으려는 수많은 청춘들, 그리고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그저 그런 인생'이 가장 나쁜 것이란 어른들의 기대와 편견 속에서 특별한 나로 살기 위해,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버둥쳤던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청춘들.

시시한 인생이면 어때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낼수록 나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텐데, 라는 말을 한 열 번씩은 따라해봤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이상 청춘이라기엔 열없어져버린 나이가 되었고,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기에 청춘들에게 던지는 자기계발서의 교훈은 쉽사리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키우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겠다, 는 정도의 느낌으로 읽어가게 된다.

 

 

봄이라 예쁜 옷을 입은 친구에게 "옷 예쁘게 잘 입었다."며 말꼬를 트기 시작해 이어지던 말이 아줌마들의 수다로 이어졌다. 어디서 사느냐, 취향이 뭐냐...

그런데 옷에 대한 내 취향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내 취향이 뭐였더라를 생각하는 시간 때문에 수다의 흐름이 끊겼다.

그냥 가지고 있던 옷들에 어울리는 것들만 계속 사게 되고, 빠듯한 형편에 맞는 옷들로만 옷장을 채우다 보니 취향이랄 것까지는 없는 무채색의 옷장.

밝고 환하고 독특한 옷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금은 슬픈 아줌마의 옷장.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고집으로 몸에 맞는 제 옷을 사고 누가 건드릴라 치면 불같이 화를 내던 내 동생과는 180도 다른 우유부단한 내 모습이 대비되어 떠오른다.

다양한 옷을 사고 금장 싫증내고 또 새로운 옷을 찾아 입어보고 도전하던 동생은 지금도 멋쟁이지만

옷 사는 일에도 소극적이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스스로를 꾸미는 일에 관심 없던 나는 지금 그냥, 소박하고 꾸밀 줄 모르는 아줌마다.

 

졸업 후 구한 계약직 일자리 월급 130만원도 별다르지 않았다.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딱 굶어 죽지만 않을 만큼이었다.

자연스레 내 모든 소비의 최대 목표는 '실패하지 않기'가 됐다. 옷을 살 때면 눈에 띄는 색이나 디자인의 상품을 찾기보다 지금 가진 옷과 최대한 비슷한, 돌려 입기 용이한 옷을 찾았다. 싸고 평범한 옷은 편안하고 막 입기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을 사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184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쩜 나랑 이렇게 똑같지. 라고 생각했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 따위는 없었던 시절 때문에 지금까지도 취향이란 걸 만들지 못한 걸까.

과감하지 못한 성격 탓이 가장 클 테지만 그래도 여유 없던 청춘 시절에 무조건 아끼려던 그 습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다.

괜시리 서글퍼지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참, 시시한 인생 살았구나.

그래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따뜻한 기운이 번져간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나와 같다면~

번잡스럽지 않은, 담담한 이 위로에 슬며시 미소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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