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악의 탄생은 언제부터? [죽어야 하는 남자들 데스미션]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철학은 머리 아프다.

그래도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로 닥친다.

사람은 원래 악한가? 아니면 선한가?

악한 사람은 끝까지 악한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가?

 

추리소설을 읽으면 현실의 내 문제점은 아주 작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다.

말하자면 소설과 내 현실을 대비해가며 '음, 그래도 나는 아직 살 만한 세상에서 살고 있군.'하는 작은 위안을 얻게 된다고나 할까.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지만 뉴스를 보면 아주 가까이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여자의 이야기로 오늘도 세상은 떠들썩하다.

 

좀 더 어렸을 적에는 소설은 소설, 현실은 현실.

이렇게 확실히 가를 수 있는 단순함이 존재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건 내 오판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현실은 어쩌면 더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사람이란 멀쩡한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추체험하게 해 주는 것은 소설의 힘일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의 힘일까.

 

[데스미션]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은 형사와 악인의 대결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것도 둘 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인, 죽어야 하는 남자들이다.

심지어 같은 병원을 다니며 병원에서 한 번 마주친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았다면 소오름 돋았을 한 장면이 똭 펼쳐진다. 아, (내 마음대로 선정한) 두 주인공의 얼굴이 떠오를 듯 말 듯...

 

범인인 사카키는 주식으로 성공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학창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거기서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스미노를 만나 사그라들지 않은 애정을 확인한다. 사카키는 사실 '사람'이 아닌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어두운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 충동을 잘 가두어놓고 성공한 사람의 삶을 살았지만 위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속에 잠재되어 있던 악이 깨어났다. 사카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비쩍 마르고 힘 없는 한 남자가 불쌍해 보이지만 연쇄 살인을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또 그 짠함이 싹 사라진다. 악의 충동은 언제, 어느 시점에서 싹트게 된 것일까? 어린 시절의 어떤 일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암시가 여러 군데서 나오며 그 때와 연계해서 첫사랑 스미노도 같이 떠오른다. 계속해서 그 때의 일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신의 한 수.

한편, 연쇄살인을 쫓는 형사 아오이 또한 위암 말기로 판정을 받는다. 일 때문에 가족을 뒤로 한 벌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이들과도 소원한 상태다. 보통의 형사 같았으면 이번 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란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할까? 즉각 사표를 내고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가족과의 관계 회복에 힘을 쓸 터이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레 맡은 사건에 매달린다. 지독한 이기주의자란 욕을 속으로 하고 또 하고, 이러다 이야기가 끝날 것 같아 할 즈음에 그와 아내만의 이야기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두 명의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나오지만, 그 둘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한 명은 마지막 순간 악을 세상에 풀어놓고, 다른 한 명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불사르며 살인범 체포에 뛰어든다. 죽음도,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이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재미있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을 이룬 자신과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형사라. 이토록 재미있는 만남이 또 있을까. 사카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이 눈으로 범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싶어. 언젠가 사형대에 매달릴 그 녀석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그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261

 

죽음의 순간에 내 곁에 누군가 남아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이겠지?

가족의 의미가 날로 퇴색해가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요즘,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을 다시 한 번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 악의 탄생은 그저 악마 메피스토바르트에게 영혼을 판다고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든지 어떤 계기가 있어야만 시작되는 것인데, 그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야쿠마루 가쿠가 꺼내든 악의 탄생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에 짠, 하고 나타나는데 그게 또 사람을 억, 하게 만들고 스읍, 숨을 들이마시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지는 형사의 멋진 마지막 한 방!

[데스 미션]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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