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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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라는 기계에 대한 매뉴얼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결국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뇌라는 기계의 매뉴얼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기계에 대한 매뉴얼을 여러분은 아직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그 뇌 또는 자아에 대한 매뉴얼을 드린 것입니다. -321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폭발하는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답을 얻었는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탈탈 털어도 그 답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뇌과학은 어떤가?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과학, 그것도 뇌과학의 입장에서 "나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마주한다면 어떤 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꽤 유명한 뇌과학자-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명원의 과학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김대식 교수라면 아마 속시원히 그 답을 내놓지 않을까.

과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인류의 미래를 분석하는 뇌과학자.

가끔 TV에서 촌철살인의 말발을 뽐내기도 하고 냉철함과 동시에 대척점에 있는 인간미를 뿜뿜하기도 하는 그의 말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인류를 포기하고 화성으로 도망갈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일론 머스크를 보고 보통의 우리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 이야기를 떠올리며 합리화에 빠져든다.

하지만 일찌감치 넓은 세상을 보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지혜를 얻은 저자는 지구와 인류를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추한 것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도 많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며~

 

1.4킬로그램에 불과한 뇌지만 우리는 뇌를 가짐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저자는 우선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뇌와 인간을 살펴보고, '나'는 합리적인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뇌와 정신의 관계를 조명한다.

기본적인 파블로프의 실험이라든지 동물실험 등으로 뇌의 영역을 시험해보던 과거의 것들을 배우는 것은 의미 없지는 않지만 지금 현재의 과학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가늠해 보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뇌과학자의 생생한 동물 실험-고양이와 원숭이 뇌 실험- 이야기를 통해 뇌과학자가 어떤 과정으로 연구를 수행하는지를 보고 있으면 괜히 가슴이 뛴다.

뇌의 신경세포들을 연구하기 위해 발표한 '브레인보우'법으로 색색깔로 물든 신경세포를 볼 수 있다니...

다양한 신경세포 염색 방법과 자기공명영상 기반으로 한 확장텐서영상을 통해 신경세포들간의 연결 고리들을 매핑해보겠다는 등의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도 시도되고 있고...

신문물을 접한 개화기 사람처럼 눈이 절로 휘둥그레진다.

뇌과학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고흐나 고갱, 램브란트의 자화상도 언급하고 있고 아인슈타인이나 괴델 같은 과학자는 물론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들까지 경계 없는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뇌과학을 다루고 있기에 마냥 기계적이거나 냉철한 이성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앞으로의 미래와도 직결된 것이기에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 또한 빠뜨릴 수 없다.

재미있는 과학 강의를 연이어 수강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심오한 질문과 답이 이어진다.

 

자연과학자나 공학자들처럼 항상 계량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약한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자신의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창의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인류의 고전 또는 경전에도 절대적 진리가 담겨 있지 않다면, 그것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자아는 머릿속 뇌의 정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정보를 잘 유지만 하면 진짜 영생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뇌에 관한 파헤침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질문을 펼치고 답을 내는 과정을 진정 즐기고 있는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없던 수업, 잘 듣고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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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 봄처럼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클레리 아비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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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독특한 울림의 러브 스토리 [나 여기 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그들 사이에 스파크가 일어 사랑이 싹트는 데에는 수만 수천 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하는 경우,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 원수같은 대치관계에 있다가 극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

[나 여기 있어요]에서 그리고 있는 사랑은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와 출발점을 달리한다. 혼수상태인 몸에 갇힌 남자와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남자의 연결고리...

 

일단 누군가의 병문안을 하러 병원에 오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무거울 터이다.

동생이 자동차 사고를 냈는데, 그 결과 두 명의 여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남자, 티보는 그런 동생이 차라리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길을 옮긴다.

동생의 병실을 찾아가야 하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신의 자애로운 이끎 덕분인지 병실을 잘못 찾아 들어가고 말았다.

온갖 튜브와 기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환자를 눈앞에 마주대한다.

아니 그 이전에 주위에 맴도는 재스민 향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비상 계단 표시와 병실 표시를 착각한 탓에 어안이 벙벙하지만 그는 차츰 환자에게 관심을 돌린다.

'엘자 빌리에, 스물 아홉 살, 혼수상태.'

다섯 달째 혼수 상태인 채로 병실에 누워 있는 여자 환자에게 다가간 그는 수첩에 적힌 그녀의 생일 날짜를 본다. 바로 오늘이 그녀의 생일.

처음에는 이성에 대한 설렘이나 관능이 전혀 깃들지 않은 뽀뽀로 시작한다. 왠지 그녀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잠이 잘 온다...

 

혼수상태여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녀, 엘자는 청각만은 살아 있다.

그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부모님과 여동생의 병문안, 친구들의 방문, 그리고 도우미의 간병 외에는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아무 것도 없었는데, 어느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친구들이 찾아왔고 낯선 남자는 그녀 옆에 잠들었다가 뜻밖에 그녀의 친구들 때문에 잠에서 깬다.

산과 하나였던 빙하 전문가 엘자, 환경 생태 전문가 티보.

어쩌면 멀쩡한 상태였을 때는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남자와 여자가 특별한 상황, 특별한 순간을 맞아 병실에서 만났다.

그렇지만 그들은 첫 만남에서 어떤 교류도 나누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혼수상태에 남자는 동생 일로 온 세상이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상태였으니.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빙벽에 피어나는 꽃처럼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기는 상황에서조차 싹터나온다.

 

도무지 회복의 기미가 없다며 가족들조차 두 손 들고 엘자의 생명유지장치를 떼려고 하기에 이르지만 꽤 자주 엘자를 찾아왔던 티보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감각 중 적어도 하나는, 청각은 살아 있다는 것을.

동생이랑 연을 끊고 싶어하는, 심장도 없을 것 같은 티보의 피폐해진 마음에 슬그머니 들어오고야 만 엘자.

 

당장은 내가 있다. 소리를 듣는 내가 있다. 오늘 나는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기를 원한다!

-156

 

티보의 애틋한 마음이 엘자에게 전달되고, 청각만 살아 있던 엘자가 온몸의 힘을 다해 뭔가에 닿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는 과정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기적과도 같은 장면이 연출되면 어쩌지....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티보는 엘자에게 키스를 하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제발, 엘자...반응을 보여!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해!

작게 주먹을 쥐고 엘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여주질 응원한다.

 

내 영혼이 완전히 스러지기 직전,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나는 고개를 돌리고 두 눈을 뜨고 싶다.-240

 

엘자와 티보를 연결시켜 주는 그 무엇인가가 환하게 그들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면 좋겠다.

작가는 바로 그 무엇인가를 '무지개'로 표현한다.

제발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나 여기 있어요.

 

그들의 무언의 대화는 앞으로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빛깔로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잔잔한 떨림으로 시작해서 큰 소리를 내며 온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환희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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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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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한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발]

 

'반디'라는 필명의 작가가 목숨을 걸고 반출시킨 원고를 마주대하게 되었다.

1950년생이라니 반세기 넘도록 북한의 실상을 생생하게 겪었을 터이다.

[고발] 안에는 7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문학성이 드러나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접하자, 문학적 수사에 대한 감동 이전에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 상황들이 넘실대며 밀려들어온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미사일로 도발하는 김정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대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회억들은 확실히 드러나 있다.

거의 신적으로 우상화 되어 있는 그들 때문에 고통받고 억눌려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생활고와  감정적인 혼란들이 여과없이 적혀 있다.

분단 이후 다른 길을 걸어온 남과 북의 현실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계급 때문에 여태껏 큰소리 한 번 못내고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하는 인민들-'그들'만의 계급논리에 희생된 사람들이 그저 안쓰럽다.

 

제일 처음 실린 단편 <탈출기>는 계급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까지 희생될까 두려워 임산부임에도 마냥 행복해하지 못하는 여인의 처절한 고뇌를 담고 있다.

나레이터는 북한을 탈출하면서 친구에게 편지를 남기는 남편이다. 편지에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 피우는 게 아닌가 의심했던 남편이 아내의 속사정을 알게 되면서 북한을 탈출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뜨거웠다 차가워지곤 하는 남편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려 온몸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가도 어깨를 축 늘어뜨리게 되기도 하면서 짧은 이야기 하나에 온전하게 공감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그 생명이 복되기를 바라서이지 한뉘를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40

 

그 어떤 성실과 근면으로써도 삶을 뿌리내릴 수 없는 기만과 허위와 학정과 굴욕의 이 땅에서의 탈출을 말이네. -46

 

<지척만리>는 조롱 속 새처럼 인간에게 길들여진 자신의 모습을 자조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여행증을 발급받아 가려했지만 그 지방에 '일 호 행사'가 예견되어 있다는 이유로 여행이 제한되었다고 했다. 불법을 무릅쓰고 기차에 몸을 실어 어찌어찌 고향에 가닿았지만 바로 코앞에서 초소 보안에 걸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자신을, 지척도 천리 밖으로 살아야 하는 조롱 속의 짐승이라 말하며 슬픔을 삭여내는 남자의 깊은 슬픔에 가슴이 찌르르한다.

 

'모친 사망'

곡성은 울리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흐르는, 눈물보다 몇 곱절 더 진하고 독한 그 무엇에 전보장을 맞쥔 두 사람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145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라는 처절한 외침이 [고발] 속 단편들에 속속들이 배어 있다.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김일성에 대한 조의를 표하기 위해 꽃을 꺾으려고 해마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곳.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백성들이 죽지 못해 흘리는 눈물을 두고 충성이요 일심단결이요 하고 외쳐대는 사람들은요? 그들은 어리석지 않은가요? 연극무대란 막이 꼭 내려지기 마련이라는 걸 아버지는 아셔야 합니다.-209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의 기록을 읽었다.

그저 지금 저 음습한 무대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뭔가?

정도로밖에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정말, 무대 위의 일이었으면, 하고 애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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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닷컴
소네 케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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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쓰레기장같은 세상에서 쓰레기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암살자닷컴]

 

'성공률 100퍼센트, 마감 기한 보장, 맞춤형 살인 제공'

'암살자닷컴'의 캐치프레이즈다.

무슨 상품을 파는 광고 같은 문구에 눈길을 주지만 이내 '살인'이라는 단어에서 멈칫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에이, 아무리~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 그래도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모양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유해진 주연의 코믹물로도 영화화 되었던 적이 있을 만큼 청부암살은 흔한 소재가 되고 말았다.

암살을 청탁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도 섬뜩한 일인데 실제로 그 일을 받아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 이해 불가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청부살인업자의 위치에 서 보면 세상은 한결 달리 보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입찰에 성공하면 살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 '암살자닷컴'

이런 사이트가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이 책을 읽는 순간, 이 세상에는 양심의 거리낌 없이 죽음을 사고파는 일이 횡행한다는 것을 시인하며 또 다른 사실을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이 쓰레기장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의 세계일 뿐이라며 다소 안심하고 이 책을 읽으면 안된다 .

열 살 짜리 어린애에게도 얄팍한 어른들의 위장은 곧 들통나고 말며, 히키코모리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언제든 살인청부업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 열려 있다.

 

모두 네 개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마지막 에필로그에선 네 개의 단편이 하나로 모아지며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한다.

아들의 사립학교 등록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업으로 '암살자닷컴'에 발을 들인 형사, 더럽고 별볼일 없는 노숙자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해하는 연쇄살인마, 남편이 실직한 후 그저 행복한 한 끼 외식, 단란한 가정의 웃음을 지켜보려고 청부살인업계의 틈새를 노려 아르바이트하는 주부, 킬러계의 레전드였지만 한 여인 때문에 처음으로 흔들리는 한 남자 등등.

살인자와 희생자의 경계가 모호하게 이들의 관계가 물고 물리는 가운데 소네 게이스케식 화법은 빛을 발한다.

 

아주 얌전해진 남자는 야구방망이를 지팡이 삼아 돌아갔다. 그게 그가 말하던 방망이를 쓰는 또 다른 방법이라면 굳이 배워야 할 만한 사용법은 아니다. -246

 

자칼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위패가 가메키치의 가슴에 꼭 안겨 있는 걸 확인한 뒤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별이 가득한 밤이었다. 길가에 보이는 연못으로 개울이 졸졸 흘러들어갔고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195

 

쓰레기장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인하고도 거친 일들이 한 두 마디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게다가 쓸쓸함을 배가시키는 정경묘사까지 이어지면 그걸 읽는 동안의 마음은 한없이 싱숭생숭해진다.

 

그저 재미삼아 읽기 시작하지만 원하는 죽음을 즉시 배송해준다는,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반인륜적이라 잠시 아득해지기조차 하는 이 이야기가 또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쓰레기장같은 세상에서 쓰레기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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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철학자들
레이먼드 D. 보이스버트 & 리사 헬트 지음, 마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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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바라본 '먹는다는 것' [식탁 위의 철학자들]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식'의 중요성만큼은 모두 똑같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에 도전 중이므로 '식'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이 그다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식'을 좀 더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뜻깊었다.

먹고 배출하는 것만으로 '식'을 정의하는 단순한 인식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가 매일 삼시 세끼 마주대하는 식탁이 재미없다.

식탁 위에서 우리는 먹는다는 행위를 하며 배고플 때 배를 채우는 것 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한 비평을 하기도 하고 음식이 주는 추억에 젖기도 하며 행복한 기분이나 우울한 기분을 동시에 투영시키기도 한다.

 

길고도 단조로운 서술의 대명사로 읽기를 기피해왔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예의 그 유명한 '마들렌'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때때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잊을 만 하면 불쑥 책 속에서 튀어나와 이젠 읽을 때가 되었지, 하는 통에 언젠가는 그 두꺼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주인공은 옛날에 즐겨 먹었던 조개 모양의 마들렌 과자의 맛과 냄새를 경험하는 순간 과거 일들이 생각나고, 그 기억은 잊고 살았던 또 다른 추억들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에서 마들렌은 주인공의 과거,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169

 

음식과 예술을 구분해야 한다는 한 철학자는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예술이지만, 마들렌 자체는 예술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 책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 라는 문제에 대한 탐구가 진지한 철학적 관심을 쏟을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철학'의 의미와 '음식'의 의미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프로젝트의 틀을 제시하고 음식을 둘러싼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데 철학자들을 초대한다.

 

철학은 오래 전부터 합리성의 투사라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 책은 '도대체 누가 합리성이 제일이라고 했는가?"라고 묻는다. 양자택일식 이분법을 지양하는 것이다.

적어도 식탁에 앉아 있는 철학자들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으면서 인위적이고, 강요받은 합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하는 참가자들이며, 그들의 상호작용에는 당연히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음식, 먹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어려우리라 생각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현실과 결합되어 있는 경험들이 소개되고 마켓에서, 식탁을 차리면서 우리가 하는 고민들이 툭툭 튀어나오기에 보다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먹는다는 것에 대한 사유를 한 번쯤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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