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 전면개정판
좌구명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생생하게 다가오는 춘추시대 , 중드 보는 줄~[국어]

 

 

 

춘추시대 말기의 노나라 역사가인 좌구명의 [국어]는 [춘추좌전], [전국책]과 함께 '춘추전국시대의 3대 사서'로 불린다.

 

[춘추좌전]이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대별 서술, 편년체 형식이고 나머지는 각 사건을 이야기체 형식으로 국가별 주요 사건을 다루는 국별체 형식이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천하가 여러 나라로 분열돼 있을 때는 편년체나 기전체보다 국별체가 훨씬 유용하다.

 

 

 

춘추시대 주나라, 노나라, 제나라, 진나라,  정나라,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건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나라별로 구분해 읽기 쉽게 되어 있다.

 

[국어]는 2005년 국내 최초로 완역본을 펴내기 전에는 발췌 번역본조차 없었다고 한다.

[춘추좌전]과 쌍벽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사료임에도 불구하고 사학자들조차 [국어]에 관심을 두지 않아 중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어마어마한 양을 전면개정하기까지 저자의 노고를 짐작조차 할 수 없겠다. [춘추좌전] 개정판 출간에 앞서 나온 [국어]를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며, 저자에게 무한한 리스펙트~~

 

[국어]를 읽기 전에, 날도 더운데 좀 말랑말랑한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마음 먹은 내 앞에 <삼생삼세 십리도화>라는 말랑말랑한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동한 김에 제목을 곱씹고 있었더니 중국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8회 드라마의 43회에서 시작하려니 영~ 앞뒤가 궁금해 미치겠는 거였다.

그리하여 장장 열흘간을 TV와 유튜브를 동원하여 한글자막, 영어자막, 한자자막을 가리지 않고 섭렵해서 마침내 정복!

천계와 인간계를 넘나들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삼생삼세에 이어지는 단 하나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었다. 특히나 도교적 이상세계와 유교적 현실세계의 조화가 눈에 띄었는데 특이한 것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이라도 신선-상선- 상신이라는 단계를 밟기까지는 '겁운'이라는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세계나 이상세계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

특히나 세계적으로 홍수, 가뭄, 이상기온 등의 자연재해가 밀어닥치는 데다 국내, 국제 할 것없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니 드라마 속으로 피신하려 했던 것 자체가 부질없다, 생각이 들었다.

분홍분홍 도화가 십리길에 이어져 있는 도화림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천계의 태자이자 새까만 옷만 입는 남자 야화와 여우족의 후계자 백천의 러브스토리에 푹 빠져 있었던 시간에서 현실로 넘어오려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컸다~드라마를 너무 봐서 한동안은 간단한 말은 '중국어'로 내뱉고 싶어질 정도였다니까. 드라마 속에서 여기도 상신, 저기도 상신 ..온통 신선들 천지인 세계를 거닐다 보니 '상신'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그러다 [국어]를 읽으니 이상하게도 춘추시대의 사람들 생활상이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옷차림도 아마 드라마 속 인간계 사람들이 입었던 옷을 입었음이 틀림없어.

군주, 제후, 일반인 등 드라마 속에서 나왔단 사람들을 떠올리며 춘추시대 열국들의 생활상을 읽어나가자 평소였다면 절대 많이 넘어가지 않았을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이다.

오오~

내가 아직 드라마의 여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때에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읽으니 이렇게 잘 이해가 되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국어]를 읽었다.

 

노나라 편에 공자, 즉 공구에 관한 이야기가 있기에 그 곳을 먼저 펼쳐 읽었는데,

공구가 대골(大骨)을 논하다, 라는 부분에서 '상신'이란 단어를 보게 되었다.

오왕 부차가 월나라 회계성을 대파하면서 뼈 한 마디가 수레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큰 해골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을 공자에게 문의케 했다 한다.

 

"감히 어느 뼈가 가장 큰지 묻고자 합니다."

"내가 듣건대 '대우 회계산에서 천하의 모든 신들을 소집했을 때 방풍씨가 늦게 오자 그를 참하여 전시했다고 하오. 그의 뼈는 매우 커 뼈 한 마디가 수레에 가득 찰 정도가 되었다고 하오."

"감히 무엇을 관장하는 자가 상신(上神)이라 불릴 만한지 묻고자 합니다."

"산천의 정령은 능히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림으로써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소. 정령의 수호자는 가히 신으로 불릴 만하오. 사직을 수호하는 자는 가히 공후로 불릴 만하오. 그들은 모두 제왕에 소속되어 있소."-208

 

공자 시절에도 '상신'에 대한 이해가 논의될 정도였나...

춘추 시대와 드라마 속 허구의 세계가 단어 하나로 통하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춘추의 역사책이라 재미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는 커다란 해골 이야기에서부터 상신에 대한 얘기까지 들어 있으니 이거 흥미가 당기는 걸? 하며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를 뒤적거려 읽기 시작했다.

 

조귀가 중심도민(中心圖民)을 논하다

만일 늘 마음속으로 백성들의 일을 생각하는 중심도민을 할 줄 알면 비록 재지가 미치지 못할지라도 틀림없이 승전코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151

 

이혁이 단고광군(斷罟匡君)하다

나에게 과실이 있었소. 이혁이 그물을 끊어 주군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단구광군을 행했소.  이 그물은 좋은 어망이기는 하나 나로 하여금 고인의 교훈을 깨닫게 해주었소. 해당 관원이 이를 잘 보관하여 나로 하여금 영원히 충고를 잊는 망심을 하지 않게 해주오.

-찢어진 그물을 보관하는 것은 이혁을 군주의 신변에 두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면 그의 권고를 결코 쉽게 잊지 못할 것입니다.-174

 

제환공이 패제후하다

제환공은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자신에게 귀복한 사실을 알고는 이내 그들에게 방문할 때 바치는 예물을 줄이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빈객을 맞을 때는 오히려 두터운 예물을 많이 내려주었다.

제환공은 천하 제후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알고는 대대적으로 충신한 일을 행했다. 제후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즉시 행할 수 있는 것은 지체 없이 행동에 옮겼고, 그들을 대신해 계책을 낼 수 있으면 곧바로 계책을 내 실천에 옮겼다. 담국과 수국을 멸망시킨 뒤 스스로 취하지 않고 다른 제후국들에게 이를 나눠주었다.-241

 

저자는 '춘추 5패'를 제환공과 진문공, 초장왕, 오왕 부차'합려, 월왕 구천으로 정리하고 있다.

[국어]를 읽을 때 '춘추 5패'에 중심을 두고 읽어도 좋을 것이고, 나처럼 시대극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몰입돼 있던 상태에서 여운을 이어가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결국,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 즉 난세를 이겨나가는 힘은 고전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뜨거운 불볕더위 속에서 뉴스를 들으며 짜증내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으라.

[국어]로 말할 것 같으면 춘추 시대의 상황이 생생하게 녹아들어 있어 드라마 보는 것 못지 않은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춘추좌전]과 비교해가며 그 시대의 실상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연구해야 하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을 내려놓고 드라마 보듯이 재미있게 읽었다.

춘추 5패와 이들을 뒷받침한 군신들의 활약, 소소하게 녹아들어 있는 춘추 시대 생활상~

[국어]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 - 용자의 365 다이어트
이승희.TLX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용자와 셀프트레이닝~[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

 

 

 

아이들 방학이 성큼 다가왔네요.

운동을 너무 싫어하는 초등학생 두 명을 데리고 이 여름을 어찌 보내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저는 지난 7개월간 다이어트를 진행해왔고, 7Kg 감량했답니다.

식이조절과 요가 덕분이었지요.

건강에 이상을 느낀 정도는 아니었지만 고지혈증이 나이에 비해 심하다고 해서

꾸준히 약도 먹고 있어요.

잔소리쟁이 의사 선생님을 만나 다이어트를 해야만!! 한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는 저절로 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박에 없게 되었어요.

요가라는 것을 대충~ 그까이꺼, 심심풀이로 앉아서 명상이나 하고 몸을 비트는 것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심한 유산소 운동이더라구요.

적당한 시기에 좋은 의사 선생님과 좋은 요가 선생님을 만나

인생 몸무게를 찍고 있는 중입니다!

 

애들 방학 때는 방과후 수업을 맡기고 요가를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생각했는데

띠로리~~

아이들 학교에 석면 철거 공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방학 내내 이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야 하는 일이~

요가를 다니면서 몇 동작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동작들만으로 한 달을 채울 수는 없었기에~

'용자'의 도움을 얻어보자 생각했답니다.

[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

오프라인으로 요가를 다니고 있었기에 온라인상의 셀프 트레이닝 문화에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는데요,

용자는 네이버 포스트 16만 팔로워, 122만 명이 열광하는 운동 친구라고 하네요.

딱 내 모습을 닮은~

둥글둥글한 몸매에서부터 동작 할 때마다 찌푸리는 표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용자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내 분신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목차를 살펴 보니 준비운동과 1월부터 12월까지의 운동으로 채워져 있네요.

이걸로 일 년은 거뜬?

 

 

요가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하는 트레이닝도 운동 전후 기본운동이 꼭 필요하죠.

준비운동이라고 할까~

운동 전 스트레칭, 운동 후 스트레칭이 그림과 함께 간단하게 나와 있어 따라하기도 쉽네요.

준비운동부터 이렇게 절망적인 표정이면 어찌 한답니까~^^

 

그래도 용자를 믿고 으쌰으쌰 해 보니 따라할 만합니다.

요가할 때 했던 기본 동작과 겹치는 것도 있네요.

역시 뭐든 운동은 준비운동이 필수~

 

 

다달이 일기를 쓰는 용자는 1월 결심을 크게 세우네요.

 

'오늘부터 다이어트 시작이야~'

매년 1월이면 '그깟 살! 내가 빼고 만다"라고 크게 외치고 곧 날씬해질 나를 상상하며 방실방실 미소 짓는다.-30 

 

바로 나의 모습, 나의 결심과 닮아 있어서 용자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어지네요.

소파를 앉아 쉬는 가구라고 여겼던 지난날은 잊어줄래?

소파 위 편안함은 이제 스치듯 안녕~ 이라며 소파를 운동 기구 삼아 열심히 운동하는 용자.

게다가 소파 앞에 TV가 있다면 TV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운동까지 연이어 할 수 있으니 최적의 트레이닝 조건이라 할 수 있겠네요~

드라마를 보며, 운동을 병행.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요런 대사쯤은 필수죠.

 

 

 

달마다 용자의 옷 색깔이 바뀌네요.

그렇지만 대체로 공통점은 몸매가 확~ 드러나는 쫄쫄이 의상이라는 거.

왜냐하면, 운동할 때 몸의 모양을 보고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죠?

셀프 트레이닝 할 때도 운동복 챙기는 건 기본입니다~~

 

용자는  설 연휴가 있는 2월에 어떤 운동을 할까요?

설거지 중 할 수 있는 운동, 청소 중 할 수 있는 운동, 벽을 이용한 운동, 스트레스 풀어주는 운동 등이 나오네요.

 

 

 

요런 포즈는 보자마다 따라 하고 싶어지지 않나요?

잘못했다간 다리가 나도 모르게 찢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ㅠㅠ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 용자는 여름 대비 오금 저리는 복근 운동을 하려 하네요.

보기만 해도 배에 힘이 뽝~

뱃살을 우주로 보내버리기 위한 효과 좋은 복근 운동,

역시 보기엔 좋아도 따라하기엔 힘이 어마어마하게 들더라는~

누워서 다리를 직각으로 들어올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는 말입니다요.

각 동작들을 몇 회, 몇 세트 해야하는지 그림 옆에 나와 있으니

집중해서 세어 가며 운동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복근 운동할 때는 나도 모르게

으흡~ 이라든지 아이고~ 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듯.

 

 

딱 지금 시즌인 7월에 용자는 노출의 계절을 대비, 긴급 처방으로 단기간에 각선미 살리는 운동에 돌입했네요.

원피스 수영복 같은 운동복의 민망함을 무릅쓰고 헛둘헛둘~

다리 라인을 만들고 애틋한 허벅지 안쪽, 바깥쪽 살을 빼는 운동을 합니다.  보는 것과 따라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어찌나 큰지...

이러다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안되는데 말이죠.

 

어쨌든 용자의 12달을 따라 하면 조금쯤은 몸의 변화를 겪을 수 있겠죠?

저는 이번 방학 때 아이들과 함께 용자 따라 셀프 트레이닝 해볼 생각입니다.

중간중간 생각 나면 요가 동작도 한 두개씩 넣어서요^^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지방이 태워지고 근육이 쫀쫀 탱탱해지기를 바라며~~

룰루랄라, 용자의 휙 올라간 눈썹 표정을 따라 지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환상적인 '밤' 이야기 [야행]

 

'국경의 긴 터널을 통과하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이다.

무심코 넘겼을지도 모를 이 첫 문장은 [야행] 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어지고 곱씹어지면서

환상적인 '밤'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사물을 다 집어삼킨 깜깜한 밤과 대비되는 하얀 밤의 밑바닥.

스르륵 스쳐 지나가는 밤의 풍경 너머로 보이는 그 밑바닥이란 것이 설국에서는

하얬지만 책 속 주인공의 경험담에 의하면 밤의 밑바닥은 숲의 어둠에 불씨를 흩날리며 멀어져 가는 거대한 화염이기도 했다.

정적일 것만 같고 고요하기만 할 것 같은 밤의 이미지는 날름거리는 화염의 옷을 입고 마구 날뛰기도 한다.

하나로만 가두어두기엔 '밤'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역동적이고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주인공 '나(오하시 군)'는

10년 전 학생 시절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과 '구라마 진화제'에서 축제를 즐겼는데, 거기서 하세가와 씨가 실종되었다.

나는 10년이 지난 후, 그 시절의 동료들을 다시 교토로 불러들인다. 약속 시간까지 좀 남아 거리를 걷던 그는 문득 눈앞을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화랑에서 화가 '기시다 미치오' 개인전을 보게 된다. 검은 배경에 하얀 농담으로 그린 풍경 동판화 '야행'연작들이 걸려 있었다.

작품들에는 한 여자가 그려져 있다. 눈도 입도 없이 매끄러운 하얀 마네킹 같은 얼굴을 기울이고 있는 여자들. <오노미치>, <오쿠히다>, <쓰가루>, <덴류쿄>, <구라마>...작품 속에 펼쳐진 밤은 신비한 느낌을 전달한다.

 

"왜 야행일까."

"야행 열차의 야행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백귀야행의 야행일지도 모르죠."-15

 

이 대화 덕분에 앞으로 펼쳐지는 다섯 명의 경험담 혹은 고백은 묘하게 으스스한 분위기의 띠를 두르게 된다.

각각 다른 곳에서 따로따로 들었다면 하나로 모아지지 않을 이야기들은 '야행'이라는 제목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하나로 모아지게 되어 있는 것처럼 연결성을 가진다.

숙소에 모인 옛 동료들이 실종된 하세가와를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기이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데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모두 기시다 미치오의 동판화 '야행'과 관련된 여행이엇다.

나카이 씨의 경우 가출한 아내를 쫓아간 것이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하지만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어."-225

 

화랑 주인 야나기 씨는 화가 기시다에게 수수께끼의 유작이 있었다고 말한다.

<야행> 연작으로 모두 48개의 작품을 제작한 기시다에게 미발표 연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야행>과는 대칭을 이루는 일련의 동판화로, 제목은 <서광>이라고 했다. 야행이 영원한 밤을 그린 작품이라면 서광은 단 한 번뿐인 아침을 그린 것이라고...

 

때론 섬뜩하고 때론 으스스한 각자의 여행담이 동판화 <야행>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끝에 가서 나타난 <서광>의 존재는 또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서광>의 비밀이 밝혀질 즈음에는 온통 혼란스럽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결말을 가리킨다.

밤의 세계가 품고 있는 마력은 우리의 오감을 뒤흔들어 동공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심박수가 빨라지게도 한다. 숨을 죽이고 그 세계에 안겨 있는 동안은 밤이 뿜어내는 어두움에 완전히 빨려들어가게 된다.

 

묘하고 신비스럽고 충격적이며 불안한...

다 읽고 나면 납량특집도 아닌 것이 이상하게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느낌을 던져준다.

백귀야행의 야행인 것은 아닌지, 어깨를 털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털어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밝은 대낮에도 괜시리 눈을 들어 환하게 빛나는 태양을 한 번 더 쳐다보고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온전한 '나'가 살아가는 세상인지,

어둠 속으로 뚫린 구멍 속으로 한 발짝만 내디디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환상적인 밤의 작가가 펼쳐내는 이야기 속에서 잠시 몽롱하게 내 자신을 놓고 있다

허우적거리며 손 발을 더듬어 본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의 눈코입 손발을 신경 써서 확인하듯이

이제는 내 몸을 쓰다듬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해보게 되는 것이다.

'다행이다.'

나는 아직 여기에 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주먹 꼭 쥐고 부들부들, 격한 공감~[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남편'으로 '검색'

일본에서는 한때 인터넷 사이트에서 '남편'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 1위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한 칼럼니스트의 글 속에 나오는 내용인데 칼럼은 '우리 집은 상관없다' 식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버리고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신도 살의를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 될 수 잇다고 경고하며 글을 맺었다.

 

아내는 집에서 육아와 가사 때문에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다니는데 정작 남편은 밖에서 돈 벌어 왔다는 핑계로 황제처럼 늘어져 있으면 그 때처럼 아내의 복장이 터질 때가 없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내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요즘 젊은 20대 30대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까?

맞벌이가 기본 중의 기본이 된 세대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나, 그것도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보고 자란 남성이 아니라면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가부장적 질서에 길들여진 '남자' 들은 여성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다.

게다가 시어머니들이 한술 더 떠 귀한 내 아들 편을 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여성 즉 며느리들은 속으로 중얼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두 손 꼭 쥐고 부들부들 해 본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하리라.

직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 상사에게 커피를 타주며 침을 뱉는 여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칫솔로 변기를 닦은 후 제자리에 꽂아놓는 '깜찍'과 '끔찍'을 넘나드는 행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육아와 가사 일을 분담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극단적으로 여성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끄집어내어 인터뷰해 실어놓았는데

그 표현이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다.

남편이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

 

아내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은 과연 남편의 어떤 행동들일까?

그렇게 답답하고 참을 수 없다면 이혼하면 되지 않나?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할 수 없는 사정이 있고, 그 중 태반은 실제로 '남편이 죽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마음만의 문제라면 그렇다 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실제로 살해로까지 이어지면 이것은 사회문제가 된다.

일본에서는 고도 경제 성장기의 고용 환경과 사회보장제도가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그에 대한 부작용이 부부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내 입장에서 설명한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아내는 육아휴직을 내고 남편은 계속 일을 한다. 그러는 동안 '젠더 롤'이 생겨 아내는 전업주부로 생활 패턴이 바뀌고 남편은 그 생활에 익숙해진다. 현미밥을 천천히 씹어먹고 싶고 30분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보고 싶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고 여유 있게 천천히 머리도 하고 싶은데...남편은 이 모든 일을 아주 쉽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생겨난 남편과 아내의 온도 차는 일상 생활 속에서 쌓이고 쌓인다. 아내는 진심으로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지만 승진이 어려운 상황, 즉 마미 트랙의 덫에 걸린 여성이라면 더더욱 남편의 이해가 동반되지 않을 경우 배신감을 느낀다. 남편이  친구들 앞에서 "저보다 연봉도 훨씬 높아서 얼마나 뽐내는지 몰라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할 때는  살의를 느끼기도 한다.

 

"난 당신에게 삼시 세끼 굶지 않고 낮잠까지 잘 수 있는 생활을 보장해 줬어. 행복하지?"라며 생색내는 남편 앞에서 전업주부는 항상 작아질 수밖에 없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열등감 때문에 어떤 일이든 쉽게 참는다. 숨막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내들은 남편과 살 닿기조차 꺼려한다.

섹스리스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아휴직? 그럼 당신이 먹여 살릴 거야?"

"아이랑 놀기만 하고 좋겠네."

"나만큼만 벌어 오면 집안일 할게."

 

워킹맘, 전업주부, 중년 여성 가리지 않고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여성들은 어쨌든 불행하다.

그러면서도 두 발 쭉 뻗고 잠자리에 드는 남편, 그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4장에서는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가 바라는 대로 집안일이나 육아를 할 수 없는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5장에서는 아내의 살의를 사그라뜨리는 방법을 소개한다.

 

남편을 간호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원한이 깊이 사무친 한 여성은 쓰러져도 절대 돌보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참아온 것을 전부 다 되갚아주겠다며...

남편이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전철 안 선반에 올려놓고 올 거라는 여성도 있다.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계단 위에서 물이 든 양동이를 발로 찬 폭군같은 남편에게는 남편이 먹을 된장국에 걸레 짠 물을 넣으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

 

실질적으로 남편이 육아에 참여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직장에서의 환경이 그렇고 육아 휴직을 눈치 가며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렇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살뜰한 말 한 마디, 이해하고 있다는 몸짓 하나가 그리 어려우랴.

아내의 마음 속에 살기가 하나 둘 쌓여가서 폭발하기 전에 남편들이여, 아내를 배려하라.

 

 

#북폴리오,남편이죽어버렸으면좋겠다,남편,독박육아,독박가사,맘고리즘, 마미트랙,젠더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시대의 소음]

 

밤이 내려앉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온몸의 힘을 쭉 뺀다.

둥실 떠올라 마음껏 유영하라고 신호를 주었음에도 이 마음은 멈칫거린다.

어디로든 가 봐. 아니면 그대로 바닥에 찰싹 붙은채로 가라앉아 있든지.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쌩하니 날아가버릴 것 같은 마음은 그래도 누군가의 조종을 기다리는 것만 같이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며칠 전 먹을 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채로 받은 엄마의 전화를 떠올리며 좀 더 성실하고 예의바르게 받을 걸 하고 후회하는 것일까.

오늘 낮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가 눈물을 또르르 흘렸던 기억을 되살리며 먹먹해지고 있는 것일까.

가뿐하고 미련없이 훌훌 떠나지 못하고 일상의 작은 사건들에 얽매여 있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이미 전쟁도 없고 독재자도 없고 소란스러운 사이렌 소리조차도 없는데 마음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그는 거기 서서 자기 마음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에 홀로 있으면 그의 마음이 그를 뜻대로 했다. 시인이 단언했듯이, 자신의 운명을 피할 길은 없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피할 길도 없다. -20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탓에 일생을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한 예술가.

이 책은 실존 인물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했던지 밤에 침대에 들지도 못하고 여행 가방을 싼 채로 언제든 훌쩍 떠날 준비를 한 채 밤을 지새운 인물의 이미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뇌리를 가득 채운다.

삶이 명령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따르게 될 뿐인 인생.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 뿐인 '운명'이 이끌었던 그의 인생은 비극일지도, 비극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세 번의 윤년을 낀 시기에 닥친 불행이 그의 삶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1926년 열아홉 살에 오페라를 작곡했던 때만 해도 젊고 자기 재능에 자신이 있었으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혹독한 평이 나돌기 전까지는. <음악이 아니라 혼돈> . 곳곳에서 갈채를 받았던 작품이지만 주인의 기분을 거스른 격이 되어버린 오페라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권력층의 눈밖에 난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예술과 정치.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 두 단어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야 했던 그의 삶은 불우해 보인다.

작곡할 때 시끄럽게 굴고 주의를 산만하게 무너뜨리는 강아지 대신 고양이가 필요하다는 그이기에 소음에 무척 민감할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그에게 다가온 시대의 소음은 예술 이외의 것으로부터 오는 시선, 평가들일 터이다.

평화로운 시대일지라도 내 마음 하나 온전히 잡았다 놓아주기가 힘든데 거기에 시대의 소음까지 더해진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마음을 유지해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

소비에트 연방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는 내게 먼 이방의 낯선 사람에 불과했지만

낯선 사람이었기에 그가 느꼈을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술가로서의 평판도, 격변의 시대도 한쪽에 밀어두고서 오로지 한 인간이 맞닥뜨린 아이러니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저 쉽게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아픈 대립과 비판들을 무시하며 살아온 건 아닌가.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겨 두고 죽음 너머로 사라져 간 인간의 삶을 되짚어 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