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시대의 소음]

 

밤이 내려앉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온몸의 힘을 쭉 뺀다.

둥실 떠올라 마음껏 유영하라고 신호를 주었음에도 이 마음은 멈칫거린다.

어디로든 가 봐. 아니면 그대로 바닥에 찰싹 붙은채로 가라앉아 있든지.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쌩하니 날아가버릴 것 같은 마음은 그래도 누군가의 조종을 기다리는 것만 같이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며칠 전 먹을 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채로 받은 엄마의 전화를 떠올리며 좀 더 성실하고 예의바르게 받을 걸 하고 후회하는 것일까.

오늘 낮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가 눈물을 또르르 흘렸던 기억을 되살리며 먹먹해지고 있는 것일까.

가뿐하고 미련없이 훌훌 떠나지 못하고 일상의 작은 사건들에 얽매여 있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이미 전쟁도 없고 독재자도 없고 소란스러운 사이렌 소리조차도 없는데 마음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그는 거기 서서 자기 마음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에 홀로 있으면 그의 마음이 그를 뜻대로 했다. 시인이 단언했듯이, 자신의 운명을 피할 길은 없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피할 길도 없다. -20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탓에 일생을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한 예술가.

이 책은 실존 인물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했던지 밤에 침대에 들지도 못하고 여행 가방을 싼 채로 언제든 훌쩍 떠날 준비를 한 채 밤을 지새운 인물의 이미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뇌리를 가득 채운다.

삶이 명령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따르게 될 뿐인 인생.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 뿐인 '운명'이 이끌었던 그의 인생은 비극일지도, 비극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세 번의 윤년을 낀 시기에 닥친 불행이 그의 삶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1926년 열아홉 살에 오페라를 작곡했던 때만 해도 젊고 자기 재능에 자신이 있었으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혹독한 평이 나돌기 전까지는. <음악이 아니라 혼돈> . 곳곳에서 갈채를 받았던 작품이지만 주인의 기분을 거스른 격이 되어버린 오페라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권력층의 눈밖에 난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예술과 정치.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 두 단어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야 했던 그의 삶은 불우해 보인다.

작곡할 때 시끄럽게 굴고 주의를 산만하게 무너뜨리는 강아지 대신 고양이가 필요하다는 그이기에 소음에 무척 민감할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그에게 다가온 시대의 소음은 예술 이외의 것으로부터 오는 시선, 평가들일 터이다.

평화로운 시대일지라도 내 마음 하나 온전히 잡았다 놓아주기가 힘든데 거기에 시대의 소음까지 더해진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마음을 유지해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

소비에트 연방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는 내게 먼 이방의 낯선 사람에 불과했지만

낯선 사람이었기에 그가 느꼈을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술가로서의 평판도, 격변의 시대도 한쪽에 밀어두고서 오로지 한 인간이 맞닥뜨린 아이러니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저 쉽게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아픈 대립과 비판들을 무시하며 살아온 건 아닌가.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겨 두고 죽음 너머로 사라져 간 인간의 삶을 되짚어 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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