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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3월 10일(토)
마신 양: 양주, 취할 정도로
올해 여동생의 딸이 H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설 때 우리집에 온 사촌형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사촌형의 딸도 그 학교에 다니고, 올해 3학년에 올라간단다.
여동생은 무척이나 놀랐고
형수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그러고는 단 한번도 통화한 적이 없던 형수와 통화를 하며
어떻게 해야 애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30분간이나 질문공세를 폈다.
뭐, 이런 일을 계기로라도 친척끼리 친해지면 좋겠지만
나 같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거다.
평소 연락이 없다가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니까.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하고,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동생과 나는 참 다르다는 걸 느낀다.
착한 사촌형은 같은 학교 학부형이 된 기념으로 저녁 자리를 마련했고
두 가족만 있으면 재미가 없으니 날 들러리로 불렀다.
분위기로 봐서 자기가 밥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 여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우리 집으로 올래?”
그렇게 세 팀이 모인 저녁 자리,
난 와장창 먹을 요량으로 10시 반쯤 아침을 먹고 그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7시 45분쯤 첫 번째 메뉴가 왔다.
문어볶음밥이란다. 문어와 김치 등 몇가지를 넣고 볶은 것 같았다.
여동생에 대한 내 애정과 무관하게, 그 밥은 그저 그랬다.
좋게 말해도 먹을 만했다.
무엇보다 그런 자리에서 밥이 먼저 나온다는 게 수상했다.
그리고는 닭도리탕이 나왔다.
“압력밥솥에 넣었더니 이렇게 됐어.”
닭은 완전히 잘게 부서져 있었고, 그나마도 싱겁기 그지없었다.
그 너덜너덜한 닭이 메인 요리라는 걸 난 20분 후에,
여동생이 “이따가 해장용 조개국 나올 거야”라고 말했을 때야 비로소 알았다.
이게 다냐고 어이없어했고,
중국집에 뭐 좀 시키라는 말도 했지만
여동생은 “그럴까?”라고 말한 뒤 그냥 넘어갔다.
결국 사촌형과 나, 매제는 너덜너덜한 닭을 안주삼아
양주 두병을 까야 했다.
사촌형은 중국에 갔을 때 사왔다는 마호타이주를 가져 왔지만
너덜너덜한 닭에다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술은 원래 사람을 허기지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그래서 집에 가면 라면을 먹게 된다-
그날은 정말 배가 미치도록 고팠다.
몇 년간 대화 없이 지내던 여동생에게
과거의 굵직한 잘못을 들추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던 것도
필경 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여동생은 강력히 반발했고,
그러다 삐져서 들어가 버렸다.
먹은 게 부족해서인지
“우리집으로 2차 가자!”를 외치는 사촌형의 제의를 뿌리치고 집에 간 건 새벽 두시 반,
라면 생각이 간절했지만 가스불 켜놓고 잘까봐 관뒀다.
이건 내가 동생에게 애정이 없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남을 초대했으면 최소한 소나 돼지, 회, 중국음식 이런 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뭐, 경우에 따라서는 닭도 충분히 메인 요리 구실을 할 수 있지만
그 맛없는, 그나마 너덜너덜한 닭은 그런 자격이 없었다.
요리를 못하면 사람이라도 하나 쓰지, 왜 자기가 한다고 해서 망쳐 놓았을까.
뒤늦게 팔보채라도 시켰으면 모든 걸 잊을텐데
그나마도 하지 않았다는 건 초대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돈을 아껴서일까.
여동생은 올 8월에 부자들의 거주지인 압구정동으로 이사간다.
늘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자매는 이로써 압구정동에서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