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로딕이라서.....

 

 

 

앤디 로딕과 로저 페더러,

이 둘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한명은 세계 1위고 다른 한명은 9위에 턱걸이하고 있다는 걸 제외한다 해도

지난 호주오픈 때 로딕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3대 0으로 진 뒤부터는

누구도 로딕이 페더러를 꺾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테니스계는 '페더러와 아이들' 혹은

나달을 좀 잘 봐줘서 '페더러와 나달과 아이들'이다.

샘프라스 시절엔 아가시나 베커 같은 라이벌이 있었던 반면

페더러에겐 별반 적수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일년에 90승 이상을 거두면서 패배는 서너번밖에

안하는 선수라니 좀 너무하지 않는가?

샘프라스와 비교해 누가 잘했다는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겠지만

최소한 페더러가 가장 dominant(지배적?)한 선수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로딕과 페더러를 비교하고자 하는 건

테니스 대회 중 유일하게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대한 둘의 태도 때문이다.

KBS 스카이스포츠에서 중계를 해준 덕분에

난 2006년 로딕이 미국 팀의 일원으로 뛰는 걸 볼 수 있었다.

로딕이 사핀에게 패하면서 팀은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러시아가 작년 대회의 우승컵을 안지만

그 자리에 세계 1위 선수를 보유하고 있던 스위스는 보이지 않았다

(난 작년에 페더러가 참가했는지 여부는 모른다)


지난 2월 올해의 데이비스컵이 막을 열었다.

로딕과 블레이크가 활약한 미국 팀은

베르디크라는, 세계 15위 선수가 버틴 체코를 4대 1로 꺾었다.

2대 1로 미국이 리드를 한 상태에서 로딕과 베르디크가 맞붙었는데

이 경기가 5판 3선승제의 데이비스컵 1라운드를 좌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로딕은 3대 1로 이기며 미국팀을 2라운드에 올려놓았다.


스위스는 스페인과 붙었다.

스페인은 강팀이었다.

라파엘 나달이 뛰지는 않았지만(그는 벤치에 앉아 열심히 응원을 했다)

나달을 제외해도 세계 14위의 데이빗 페러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메이져타이틀만 3개를 획득하며 전성기를 누린 페더러는 스위스 팀에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는 랭킹 100위 안에도 못드는, 즉 이형택보다도 못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야 했다.

스위스는 선전했지만, 스테판 볼리가 베르다스코(33위)에게 지면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페더러가 참가해 두 단식을 모두 잡아줬다면 스위스가 올라갔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난 페더러가 왜 참가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뛰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진 않는다

(참고로 난 박지성이 별반 의미없는 경기를 위해 영국서 날아오는 게 이해가 안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더러가 스위스 팀에서 뛰었다면,

좀 더 멋있는 선수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오랜 기간 국가주의의 망령에 지배된 내 한계일 테지만 말이다.

난 로딕 선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었다.

서브 하나 빼곤 건질 게 없는 선수이며

위에서 말했듯 아무리 코너즈를 코치로 쓰고 난리를 피워도

페더러에겐 상대가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로딕이 데이비스컵에 참가해 맹활약을 펼치는 걸 보면서

그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된다.


안드레 아가시라는 선수가 있었다.

샘프라스가 못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그는

호주오픈과 윔블던에는 오랜 기간 참가하지 않은 적이 있지만

데이비스컵에는 꼬박꼬박 참가해 미국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코트 밖에서 더 뉴스거리가 되는 아가시지만,

내가 그를 위대한 선수로 기억하는 건 그가 95년 데이비스컵에서

미국을 우승시킨 선수이기 때문이다.

 

* 원문: http://www.nytimes.com/2007/03/23/opinion/03kris.html?n=Top%2fOpinion%2fEditorials%20and%20Op%2dEd%2fOp%2dEd%2fColum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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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7-03-25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이라며 붙여놓은 사이트를 클릭하신 분들, 제게 낚인 겁니다. 제가 쓴 글인데 원문이 어디 있어요 호호호.

마늘빵 2007-03-2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 있는데요?

진주 2007-03-2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 로딕 로저 패러더 앤디 로딕 로저 패러더.....
혀를 굴리며 두어 번 발음해 봅니다.
부리님이 아니고선 저는 절대 모를 이름들이죠^^

Mephistopheles 2007-03-2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 테니스게임도 페더러의 그래프가 제일 높아요...스테미너 스킬 파워...
다높아요~

마법천자문 2007-03-25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의 뉴욕 타임스 닉네임이 'Page Not Found'였군요. 웹서핑하면서 이 닉네임을 굉장히 많이 봐서 도대체 어떤 분인가 궁금했는데, 부리님이었다니 정말 놀랍군요. 이렇게 훌륭한 친구를 둔 마태우스님이 부럽습니다.

2007-03-25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7-03-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낚였어요. ;;;; 어쨌든 추천입니당. ;;

해적오리 2007-03-2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저도 낚였는데... 달의 눈물님 댓글, 정말 사랑스럽네요.^^

부리 2007-04-0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그렇게 하겠습니다. 참고로 오늘 아침 무리하게 테니스 치러 갔다 도졌다고 하네요...
해적님/뭐, 이 정도 낚인 거야 ^^
달밤님/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기생충이 있는 게를 사러 서산에 가는데, 여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게 그렇듯 그 문자는 날 열받게 했다.

난 차를 옆으로 댔고

여동생과 문자로 설전을 벌였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싶어

“너같은 애랑 말해서 뭐하겠냐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라고 문자를 보냈고

이런 답변을 받았다.

“니랑은 안보는 게 수지 이젠 마달피(매제 이름)도 불러내지마.

니랑 말하는 것조차도 싫고 구역질나”

원래 그녀가 악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난 분을 삭이기 위해 십분간 더 정차를 해야 했다.


분을 삭이기에 십분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오후에 짬이 났을 때,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일을 하면서 여동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알게 모르게 난 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난 삶이 너무 행복하기만 했을 것이고

늘 행복하기만 한 삶은 추락의 위험이 높다.

그리고 난 행복은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떠들고 다니며

주위의 소외된 사람들을 백안시했을지도 모른다.

문학을 하는 미녀가 말했다.

글쓰기는 자기 상처에서 비롯된다고.

잘쓰지는 못하지만, 그 미녀의 말대로라면 내가 쓰는 잡스러운 글들은

어쩌면 여동생이 내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상당량의 글 소재를 내게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 결과 알라딘에는 여동생의 팬클럽도 생겨서

여동생의 만행을 올리고 나면 “이번 건 좀 약한데요”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러실지 모른다.

앞으로 그녀와 연락도 안할 건데

글은 어떻게 쓸 거냐고.

93년 말, 그녀가 내 인생에 깊숙이 개입되기 시작한 그때부터

난 그녀와 거의 말을 안하고 지냈고

밖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모른 체하고 지나간다.

그녀는 존재 자체가 내 상처니

말을 하고 안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내가 어찌 그녀의 존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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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2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르긴 해도 크산티페를 아내로 둔 소크라테스 같아요.
뭔 일이 있었나 보군요. 그래도 여동생, 고맙죠? ^^ (불난 데 부채질해서 죄송해요)

stella.K 2007-03-24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해요. 분명 아파서 쓰셨을텐데도 왠지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요?
정말 동생 분이랑 무슨 일이 있으셨나 보군요.
형제가 많으면 분명 나랑 친한 형제가 있고,
웬수같은 형제가 있나 봐요.
저 같은 경우는 동생이랑은 쬐금 친한데
오빠랑은 정말 안 친하죠. 완전히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쌍하다고 봐 주고 싶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사이.
같진 않겠지만 부리님 동생분과 제가 혹시 같은 입장...?
아, 이건 말도 않되요! >.<;;

마법천자문 2007-03-2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여동생이 제 이상형이에요. 소개시켜주세요.

다락방 2007-03-2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는 제 가슴을 찢어놓네요.

ㅜㅜ

Mephistopheles 2007-03-25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상의 반어법...이라고밖에는....

부리 2007-03-25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반어법...인가요^^
다락방님/앗 다락방님의 가슴을 찢어놓다니, 여동생 나빠요!
달의눈물님/아앗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추진해 보죠!
스텔라님/사실 제가 가족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랍니다....가족이 아니었으면 안봤을 사람을 가족이기 때문에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게 너무 싫거든요...누구나 그런 건 느낄 거예요. 하지만 제 경우엔 고마움보단 지겨움이 훠얼씬 더 많으니 더 힘들게 느껴져요
배혜경님/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제가 처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2007-03-2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7-03-25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앞으로 연락 안 할 거라 생각하니 이런 제목과 글이 나온 겁니까? 이어서 '고마운 누나'라는 글이 올라오는 거 아닌가요?

moonnight 2007-03-2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또.. -_-;;;; 부리님 같은 분을 긁어놓을 수 있다니 여동생이나 누님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
 

 

 

 

 

일시: 3월 19일(월)

마신 양: 겁나게...


개 다섯 마리와 더불어 여생을 살기로 작정한 나, 그러기 위해서는 마당 있는 집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자면 어서 로또가 되거나, 지금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쓰고 있는 책이 대박 나야 한다. 인세를 한 권당 천원씩 받는다 치면 대략 20만권. 적고 보니 그거보단 차라리 로또가 더 가능성이 높다.


하여간, 우리 학장님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별장을 지으셨다. 2억 들었단다. 작년인가 한번 잡초 뽑으러 간 적이 있는데, 정식으로 초대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곳은 일종의 별장 촌으로,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어서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별장을 분양한다는 공고가 나붙어 있고, 실제로 몇 군데서는 크레인이 왔다갔다 한다. 학장님 맞은편에 짓고 있는 건물은 J 모 선생님 거란다. 둘러보니 아직 남은 땅이 좀 있어서, 나중에 여기 내려와 살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서울 집 팔면 2억 나온다^^)


날씨가 좋았던 덕분에 고기 파티를 멋지게 할 수 있었다. 고기도 좋은 고기 같았지만 같은 고기라고 해도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는 유난히 맛있다. 한점 한점을 음미하면서 먹기에는 너무 젓가락 숫자가 많아, 대략 익은 것 같다고 생각되는 걸 씹지도 않고 삼켜댔다. 옆집에 산다는 개 한 마리가 고기 냄새를 맡고 달려온다. 난 고기를 잘라서 녀석에게 줬다. “너무 큰 거 주면 안된다. 개 죽으면 내가 물어야 해”라고 학장님이 말씀하셨지만, 그건 학장님이 날 모르셔서 하는 말이다. 개와 18년을 같이 산 내가 어찌 그런 걸 모를까. 난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개에게 주기까지 했는데, “개는 물 필요없어”라는 누군가의 말과 달리 그 개는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녀석을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역시 개가 최고다,라고.


고기가 맛있어서라고 말하면 핑계겠지만, 그날 난 너무 술을 많이 먹었다. 6시 반에 첫 번째 고기를 먹었는데, 세상에, 8시에 맛이 간 게 말이나 되나.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지 싶어 다음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숨어 지냈다. 오늘 용기를 내어 예과 조교에게 물어봤더니 “별 일 없었는데요. 재밌었어요”라고 말해준다. 휴, 다행이다. 학장님한테 한번 찍히면 오래 가는데 말이다. 오늘은 아주 조금만 마시고, 최대한 오래 놀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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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2007-03-2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파이팅. ^^

클리오 2007-03-2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모교 교수님들도 다들, 그곳에 별장이 아닌 자신의 집들을 지으시지요. 완전 전원주택.. 멋져요.. 님도 한번 시도해보심이... ^^

해적오리 2007-03-2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장 지으심 한번 파티 벌이시고 초대해주세요.. ^^

다락방 2007-03-2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왕이면 제주도에 별장 지으시면 안될까요? 전 말 타고 싶어요. :)

해적오리 2007-03-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44444

뭐 캡쳐의 시대는 지났다지만... 그래도 이런 숫자보면 잡고 싶어서리...^^


부리 2007-03-2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오와 대단한 캡쳐네요!
다락방님/음, 전 별장 개념이 아니라 제가 살 거처를 짓겠단 뜻이어요!! 제주도는 출퇴근이 불가능..
해적님/별장이 아니라니깐요!! 그래도 한번 할께요^^
클리오님/글쿤요 별장은 좀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어 싫어요 전 그냥 거기 살 거예요!
유쾌한님/네...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개강 후 4주만에 처음으로

미자가 한주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소화한 주였다.

난 미자와 미자 친구에게 점심을 사주며 노고를 치하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밤 9시까지 해부학 실습을 해야 하는 어제,

다섯시쯤 미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서울집에 가고 싶단다.

내 방으로 불렀다.

미자는 그저 무섭다며, 눈물을 쏟았다.

실습실의 시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다른 애들과 경쟁하면서

뭔가를 찾아서 봐야 한다는 게 무서운 모양이다.

같이 코코아를 마시면서 내가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이따가 나랑 같이 들어가요.”


인체 도감도를 수시로 확인하고

희미하기 짝이 없는 20년 전 기억을 되살리며

그리고 내가 들어온 걸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학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나와 미자는 다리에 있는 근육과 신경, 그리고 혈관을 공부했다.

“제 지도학생입니다. 잘 부탁해요.”라며

그들보다 두 살 많은 미자를 인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가르쳐 주는 건 자기 공부가 돼서인지

학생들은, 우리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해 주었다.

그 결과 나마저도 다리에 있는 대부분의 근육을 알게 되었고

다다음주 있을 실습 시험을 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그만 정리해 주세요.”라는 과대표의 말이 들렸을 땐

벌써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월요일에 있을 생화학시험에 대비해 도서관에 갔지만

미자에게 그것까지 바라는 건 무리였다.

미자는 이번주 충분히 수고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미자도 밥을 안먹었다.

미자가 학교 앞 원룸에 가고 나서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에 햇반을 사서 연구실에 와 끓여먹었다.

내 일은 하나도 못했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하루긴 했다.


내가 어제 스케줄이 있어서 서울에 가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평소 안하던 연구를 시작해 정신이 없는데

내가 언제까지 미자를 도와 줄 수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 죽겠다”는 미자,

그와 함께 걸어가야 할 4년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봐야지.

라꾸라꾸에 누워 책을 보다가, 몇 줄 못읽고 잠이 들었다.

시체에서 옮긴 포르말린 냄새 탓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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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3-17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44207

흐흐흐... 아침밥 먹는 중인데.. 저런 제가 1착으로 댓글 다는 거네요. 사죄의 의미로다가 앞으로 잘 할께요...^^;;;

개강해서 간만에 강의 들을려니 과목마다 뇌그림에 신경구조에.... 그것만 봐도 머리에 쥐나고 있는데 의대생들 힘들겠단 생각이 들어요.

미자도 미자지만 마태님 몸도 잘 챙기삼.. 즐건 하루~


마노아 2007-03-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자 학생은 정말 든든한 스승이자 후원자, 벗을 만난 거네요. 넘 대단해요. 화이팅입니다!

무스탕 2007-03-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완전 내편을 만난다는게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된다는걸 미자 학생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부리님. 멋진 스승님이세요!

마법천자문 2007-03-1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알바 자리 구하는데요. 해부학 실습에 실습 재료 역할 해주면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나요? 그리고 실습 끝나면 확실하게 다시 꼬매 주시는 거죠? 그 부분이 좀 불안한데...

비로그인 2007-03-1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리뷰 됐다고 잘난 척 하러왔다가...
이건 뭐- 마이 리뷰 당선보다 더한 감동을 받고 돌아갑니다.

먼 훗날 미자-가 미녀 의사샘이 되어서
- 부리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제가 없었겠죠 ^^
라고 어딘가에 자랑스럽게 인터뷰를 할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비타민이나 박카스 필요하심 보내드릴게요 :)

깐따삐야 2007-03-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 죽겠다"는 미자의 말을 들으니, "앞으로도 부리님이 계속 저렇게 미자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 죽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어쨌든 힘내시기 바래요...

moonnight 2007-03-1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이 스스로 일어서야 할텐데, 걱정스럽네요. 언제까지나 부리님이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인데. 저라면 그렇게 개인적인 희생까지 감내하며 도와주진 못할 거에요. 미자학생은 정말 행운아로군요.

마늘빵 2007-03-1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미자님이 부럽군요.

수퍼겜보이 2007-03-1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미자님은 의사가 되고 싶은 게 맞을까요? 언제가 되어야 부리님 없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좀 걱정이네요.

BRINY 2007-03-1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다른 사정이 있다는 건 이해하겠는데...정말 언제까지나 저렇게 지낸다는 것도 참...

부리 2007-03-2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강적입니다... 어제밤에도 서울로 도망쳐서 오늘 안왔다는...
수퍼겜보이님/한두달에 해결되리라 생각한 건 아니어요 이번학기만 넘기면 좀 되지 않을까요...
아프락사스님/미자도...... 마음고생이 많을 거예요..
달밤님/교육자로서 제 자질을 알아볼 수 있는 계기일 수도 있죠...언제 만나주실 건가요?
깐따삐야님/감사합니다 힘 낼께요 오늘도 미자가 도망쳐서 서울서 있어요..ㅠㅠ
고양이님/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한 보람이 있어야 할텐데.....ㅠㅠ
달의눈물님/해부학 재료는 살아있는 사람 쓰면 안되는데요...ㅠㅠ 마음만 받겠어요
무스탕님/미자가 잘 졸업해야 멋진 스승이란 말을 할 수 있을 듯...지금은 아직 멀었3
마노아님/근데 워낙 강적이라서 말입니다... 제가 더 노력해야죠...
해적님/일등 감사드립니다. 저도 님한테 좀 잘해야 할텐데요...그렇게 많이 받고 드리는 게 없네요.
 

 

 

 

 

일시: 3월 10일(토)

마신 양: 양주, 취할 정도로


올해 여동생의 딸이 H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설 때 우리집에 온 사촌형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사촌형의 딸도 그 학교에 다니고, 올해 3학년에 올라간단다.

여동생은 무척이나 놀랐고

형수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그러고는 단 한번도 통화한 적이 없던 형수와 통화를 하며

어떻게 해야 애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30분간이나 질문공세를 폈다.

뭐, 이런 일을 계기로라도 친척끼리 친해지면 좋겠지만

나 같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거다.

평소 연락이 없다가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니까.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하고,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동생과 나는 참 다르다는 걸 느낀다.


착한 사촌형은 같은 학교 학부형이 된 기념으로 저녁 자리를 마련했고

두 가족만 있으면 재미가 없으니 날 들러리로 불렀다.

분위기로 봐서 자기가 밥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 여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우리 집으로 올래?”

그렇게 세 팀이 모인 저녁 자리,

난 와장창 먹을 요량으로 10시 반쯤 아침을 먹고 그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7시 45분쯤 첫 번째 메뉴가 왔다.

문어볶음밥이란다. 문어와 김치 등 몇가지를 넣고 볶은 것 같았다.

여동생에 대한 내 애정과 무관하게, 그 밥은 그저 그랬다.

좋게 말해도 먹을 만했다.

무엇보다 그런 자리에서 밥이 먼저 나온다는 게 수상했다.

그리고는 닭도리탕이 나왔다.

“압력밥솥에 넣었더니 이렇게 됐어.”

닭은 완전히 잘게 부서져 있었고, 그나마도 싱겁기 그지없었다.

그 너덜너덜한 닭이 메인 요리라는 걸 난 20분 후에,
여동생이 “이따가 해장용 조개국 나올 거야”라고 말했을 때야 비로소 알았다.

이게 다냐고 어이없어했고,

중국집에 뭐 좀 시키라는 말도 했지만

여동생은 “그럴까?”라고 말한 뒤 그냥 넘어갔다.


결국 사촌형과 나, 매제는 너덜너덜한 닭을 안주삼아

양주 두병을 까야 했다.

사촌형은 중국에 갔을 때 사왔다는 마호타이주를 가져 왔지만

너덜너덜한 닭에다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술은 원래 사람을 허기지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그래서 집에 가면 라면을 먹게 된다-

그날은 정말 배가 미치도록 고팠다.

몇 년간 대화 없이 지내던 여동생에게

과거의 굵직한 잘못을 들추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던 것도

필경 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여동생은 강력히 반발했고,

그러다 삐져서 들어가 버렸다.

먹은 게 부족해서인지 

“우리집으로 2차 가자!”를 외치는 사촌형의 제의를 뿌리치고 집에 간 건 새벽 두시 반,

라면 생각이 간절했지만 가스불 켜놓고 잘까봐 관뒀다.


이건 내가 동생에게 애정이 없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남을 초대했으면 최소한 소나 돼지, 회, 중국음식 이런 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뭐, 경우에 따라서는 닭도 충분히 메인 요리 구실을 할 수 있지만

그 맛없는, 그나마 너덜너덜한 닭은 그런 자격이 없었다.

요리를 못하면 사람이라도 하나 쓰지, 왜 자기가 한다고 해서 망쳐 놓았을까.

뒤늦게 팔보채라도 시켰으면 모든 걸 잊을텐데

그나마도 하지 않았다는 건 초대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돈을 아껴서일까.

여동생은 올 8월에 부자들의 거주지인 압구정동으로 이사간다.

늘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자매는 이로써 압구정동에서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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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3-1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색함이 전염되는 것일까요? 에고에고...

울보 2007-03-1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님은 누구를 닮으신건가요,
어머님도 님과 같은 분이신것 같던데,,

moonnight 2007-03-1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늘 생각하는 거지만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부리님 혼자 어머님 닮으셨나봐요.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