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충이 있는 게를 사러 서산에 가는데, 여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게 그렇듯 그 문자는 날 열받게 했다.
난 차를 옆으로 댔고
여동생과 문자로 설전을 벌였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싶어
“너같은 애랑 말해서 뭐하겠냐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라고 문자를 보냈고
이런 답변을 받았다.
“니랑은 안보는 게 수지 이젠 마달피(매제 이름)도 불러내지마.
니랑 말하는 것조차도 싫고 구역질나”
원래 그녀가 악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난 분을 삭이기 위해 십분간 더 정차를 해야 했다.
분을 삭이기에 십분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오후에 짬이 났을 때,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일을 하면서 여동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알게 모르게 난 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난 삶이 너무 행복하기만 했을 것이고
늘 행복하기만 한 삶은 추락의 위험이 높다.
그리고 난 행복은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떠들고 다니며
주위의 소외된 사람들을 백안시했을지도 모른다.
문학을 하는 미녀가 말했다.
글쓰기는 자기 상처에서 비롯된다고.
잘쓰지는 못하지만, 그 미녀의 말대로라면 내가 쓰는 잡스러운 글들은
어쩌면 여동생이 내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상당량의 글 소재를 내게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 결과 알라딘에는 여동생의 팬클럽도 생겨서
여동생의 만행을 올리고 나면 “이번 건 좀 약한데요”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러실지 모른다.
앞으로 그녀와 연락도 안할 건데
글은 어떻게 쓸 거냐고.
93년 말, 그녀가 내 인생에 깊숙이 개입되기 시작한 그때부터
난 그녀와 거의 말을 안하고 지냈고
밖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모른 체하고 지나간다.
그녀는 존재 자체가 내 상처니
말을 하고 안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내가 어찌 그녀의 존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