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로보텀'이 쓴 '조 올로클린' 시리즈는 나오는대로 다 족족 읽고 있다. 조 올로클린은 나랑 접점이 하나도 없다. 그는 남자이고, 심리학자이며, 딸이 둘 있고, 아내와 별거중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사람의 이야기에 굉장히 마음이 끌린다. 시리즈마다 각자의 굵직한 사건과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 축이지만, 사실 나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가 별거한 아내와 갈등하는 그 상황, 새로운 여자와 잠깐 설레이는 마음을 갖는 그 순간, 중요한 순간에 가족에게 있어주지 못하는 그 죄책감.. 같은 것들에 심하게 이입이 되곤 하는데, 어제는 이 책을 다 읽은 후 책장을 덮은 후에 생각했다. 대체 왜일까. 왜 이 남자,심리학자,별거중,딸 둘인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는 왜이렇게 아프고 신경이 쓰일까. 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그 병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그는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경찰들에게 불려나가 사건에 도움을 준다.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하고 또 찾아내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중요한 터라, 그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있을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당연히 그와 그의 가족들을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기도 하고. 전(前) 시리즈에서는 자신의 딸이 납치되는 상황까지 겪었던 터다.


그런 남편을 아내가 좋아할 리 없다. 아니 그러니까 그를 사랑한다. 그를 남편으로 또 남자로 사랑하고 그래서 그동안 함께 해왔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몰아넣고 또 중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은 너무 서운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데야 함께할 수 없다. 아내는 그에게 같이사는 걸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고, 그렇게 그들은 아직 이혼 서류에 도장은 찍지 않은 채로 별거중이다. 그러면서 중요한 가족 일에는 함께 하고.



조 올로클린은 아내를 사랑한다. 아이들도 사랑한다. 가끔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집 앞에 가서 그들을 가만 보기도 한다. 아내랑 다시 잘 되고 싶다. 다시 가족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렇지만 또 어김없이 사건에 불려나가고, 이번 시리즈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과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지키지 못하는 대신, 그는, 죽을지도 모르는 한 소녀를 살려냈다. 



나는 조 올로클린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누군가를 구해내는 일은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니까. 그가 해줬기 때문에 누군가가 살 수도 있는 거니까. 그로서도 그런 자신의 성격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이번 일을 또 하면 아내는 나에게 실망할 것이다' 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지만 또다시 사건 현장으로 가버리는 일. 무엇보다 다시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고, 아내와 함께 하고 싶은데, 그런데도 아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다시 하게 되어버리는 그 어쩔 수 없음. 조 올로클린은 결코 '나는 이걸 포기할 수 없어'라고 다짐한 게 아니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꾸 사건 현장에 간다. 사람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 올로클린에게는 아마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다시 또 사건이 자기 앞에 떨어질 때, 안하겠다고, 싫다고 말해보지만 결국 그 상황 속에 들어가고야 만다. '너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을까. 조 올로클린은 다시 아내랑 함께 살고 싶은데, 그런데 자꾸 이렇게 된다.



아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하고 기다려 보지만 그는 또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고, 시간을 지킬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남편은 힘들고 지쳐있다. 이걸 보는 일이, 가족에게 필요할 때는 곁에 없고, 그 시간이 지나 돌아와서는 힘들고 지쳐있는 남편을 보는 일이, 아내에게라고 쉬웠을까. 조 올로클린이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런 사람이 있어주어 고맙지만, 그러나 내가 아내라도 나는 그런 '남편'과 함께 하고 싶진 않을 것 같다. 나는 그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랑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눈 떴으면 좋겠다. 내가 기쁜 순간에 그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그가 힘든 시간에도 내가 그의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조차도 이런 걸 바라면서, 그렇지만 조 올로클린에게는 '그 일을 그만둬요' 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 아, 인생 뭐지. 사람 뭐지. 인간 뭐지. 이렇게나 이기적인 게 인간이란 말인가..... 내 애인이었어도 '그 일을 그만둬요' 라고 할 순 없었을 거야.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하아- 인생 뭐고 사랑 뭐냐... 




이 책의 끝에는 마이클 로보텀이 쓴 <감사의 말>이 실려있는데, 아주 여러명에게 감사하면서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끝까지 인내해준 아내, ㅂㅂㅇ 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보내준 사랑과 지지는 메달을 받아 마땅할 정도다. 아내는 최고의 팬인 동시에 지명 독자이며, 또 시금석이기도 하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도 늘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그녀를 위해서다. -<감사의 말> 中



아, 아내에게 하는 감사인사 너무 좋다. 이거 보면서 좋으네, 했다. 그런데 아내 이름은 왜 하필 ㅂㅂㅇ 이냐... 책에는 당연히 이니셜로 되어있지 않은데 이 이름 보니까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고 쓰기가 싫어서 ... 그냥 이니셜로 쓴다. 내 페이퍼에 언급하기도 싫은 이름...싫어...미안합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거라서요. 아, 갑자기 빡이 쳐오르네.. 아침 소불고기의 힘을 받아 빡이 친다...... 휴..... 진정하고,



그리고 그 뒤에 이런 글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그 외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내 책을 구매하고, 빌려 보고, 또 다운로드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다.

다른 누군가와 글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매우 친밀한 일이다. 그것은 계약이고, 조약이며, 약속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 침대로 데려가는지 알아?" 나는 아내에게 묻는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대답한다. "꿈 깨, 이 사람아."  -<감사의 말> 中





하하, 마이클 로버텀, 유머 감각 있으시네. 자기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고 그걸로 깨알 유머감각 보이시는데, 저렇게 쿨싴하게 대꾸해주는 아내도 좋다. 하하하하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홀로 박정현 콘서트에 다녀왔다. 예전부터 박정현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다른 티켓 보러 들어갔다가 박정현 콘서트 소식을 알게된 것. 별다른 이벤트 계획도 없었던 터라 나는 냉큼 예매해놓고, 아, 가서 완전 울겠지...같은 생각을 했다. 이 즈음의 나는 매우 컨디션이 저조한 상황이었으므로 신나는 무언가를 즐길 의욕도 기운도 전혀 없었고, 그냥 슬픈 데 가서 처량하게 쳐울어야지... 생각했던 거다. 때가 때이니만큼 다들 밝고 행복해보이는데 나만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박정현의 콘서트에서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가방에 준비한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 누가 본다면 저 여잔 뭐냐.. 했을 거야. 세상 커플 다 자리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콘서트에서, 꾀죄죄한 얼굴로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려... 


아니, 그런데, 절반 가량 지났을까, 게스트.... 가 나오는거다? 근데 이 게스트가 ㅋㅋㅋㅋㅋㅋㅋ 졸 활기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신현희와 김루트라고 요즘 되게 핫한 인디듀오라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너무 활기차서, 막 사람들한테 율동시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씨양 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럴라고 온 게 아닌데 ㅋㅋㅋ 나 계속 울어야 되는데 어디 율동을 시켜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그렇지만 저들이 들어가고 나면 박정현이 나오니까, 박정현이 또 날 울려주겠지....하고 있는데, 그들이 들어가고 박정현이 나오더니,



이 좋은 에너지를 그대로 가져가자면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거다.



네??????????????????????????????????????????




나는 진짜 세상 가수가 다 자리에서 일어나게 시켜도, 박정현은 그걸 안 시킬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콘서트 예매하면서도, 나 일어날 기운 없는데 박정현이라면 절대 일어나게 시키지 않겠지, 후훗, 하고 간건데, 아니 일어나라니. 네?? 



내 자리는 3층이었고 끝자리였으므로 사실 큰 영향을 받지 않아 나를 비롯한 내 주변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1층 사람들은 대부분 일어났다. 아 기운없어...이러지마...... 박정현 발라드 가수 아닌가요 ㅠㅠ 나 울라고 왔는데 왜 소리지르라 그러고 왜 춤추자 그러고 왜 일어나라 그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르지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러는 거 아니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당연히 아는 곡들이 많았지만 모르는 곡들도 많았다. 그중에 <하비샴의 왈츠>라는 곡이 있길래, 그 곡의 제목을 콘서트에서 듣고는, '으응? 위대한 유산의 그 해비셤 부인.. 말하는건가?' 했는데, 집에 와 검색해보니 맞다, 정말 그 해비셤 부인이었다. 여러분, 《위대한 유산》읽으면 정말 좋다고 제가 오만번쯤 말한 것 같은데요. 네, 이렇습니다. 번역 문학 읽다보면 해비셤과 핍이 나와요. 아주 자주 나와요. 그런데 이제는 박정현의 노래에서도 해비셤이 나옵니다. 위대한 유산 읽으면 다른 책들을 읽는 감상이 더 풍부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비셤과 핍을 아니까요. 










앵콜곡으로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좋은 나라>를 불러줬다.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첫 가사 듣자마자, 진짜 너무 좋아가지고...박정현은 이 노래를 처음에 듣고 완전 펑펑 울었다고 하는데, 왜 울었는지 너무나 잘 알겠더라. 여러분, 좋은 나라 같이 듣자.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아침 반찬은 소불고기와 미역국 그리고 달랑무 지짐이었다. 세상 맛있어서 아 맛있다고 엄청 잘 먹고 있노라니, 엄마가 앞에서 내 먹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웃고 계시더라. 왜웃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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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2-27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이클 로보텀 책은 족족 읽고 있어요 ㅎㅎ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는 생각에...
그나저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홀로‘ 콘서트라니... 락방님...철푸닥.

다락방 2017-12-27 10:54   좋아요 1 | URL
크리스마스에 홀로 콘서트를 갈만큼, 제가 이렇게나 강하고 모진 여자입니다, 비연님 ㅎㅎ
와, 세상 커플들 콘서트장에 다 모여 있어서 잠깐 흔들렸네요. ㅋㅋㅋㅋㅋ

존 조 올로클린과 그 가족들간의 이야기가 참 좋더라고요. 애틋해요.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싶고요. 어제는 읽고나서 ‘섹스는 뭘까?‘ 생각했어요.
비연님, 섹스가 뭘까요?
아내에게 가고 싶은데, 다른 여자랑 섹스하고.... 섹스 뭐죠?
아 갑자기 기분 나뻐 ㅠ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스윗듀 2017-12-27 12:49   좋아요 0 | URL
파하ㅏ하하하하하하핳 아 다락방님!!! 비연님 뭐라고 대답해옄ㅋㅋㅋㅋㅋ!!!!

비연 2017-12-27 13:37   좋아요 0 | URL
...ㅜ 락방님. 뭐라고 해야 할 지... 으헝... 저도 잘 몰라서... (휘릭)

다락방 2017-12-27 13:37   좋아요 0 | URL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는 쓰다보니 그냥 섹스는 뭘까.... 궁금해져서 그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nine 2017-12-2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에 홀로 콘서트를 갈 만큼 독립적이고 할 것 하는 여자입니다! 라고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
저는 심지어 12월 31일에서 1월 1일, 신문 광고 보고 산악회에서 모집하는 태백산 무박산행도 해봤는걸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서른 몇 살 쯤... ㅋㅋㅋ
<좋은 나라>는 꽤 알려진 노래인데요. 시인과 촌장 노래인줄은 몰랐네요. 시인과 촌장 분위기와 금방 연결이 안되어서요.

다락방 2017-12-27 17:0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네요. 독립적이고 할 것 하는 여자인거네요. 헤헷.
혼자 가서도 울 것 다 울고 짜증낼 것 다 내고 왔어요. 하핫.

아니, 그런데, 태백산 무박산행... 이라니..그건 진짜 대단한데요? 엄청 힘들고 고단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하고나면 어쩐지 막 성취감도 있었을 것 같고요!!

좋은 나라는 저는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참 좋더라고요. 콘서트 다녀온 후부터 계속 흥얼거리고 있어요. 사실 콘서트 다녀온 후 흥얼거리는 게 이 곡 한 곡뿐만은 아니지만요. 오랜만에, 그다음해 도 계속 흥얼거려요. 좋은 나라랑 같이.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