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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껴안았는데, 왜? - 202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어린이인권도서 목록 추천, 2021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 ㅣ 바람그림책 40
이현혜 지음, 이효실 그림 / 천개의바람 / 2015년 11월
평점 :
페미니즘 서적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성적 대상화'란 말이 쉽게 와닿질 않았다. 일상적으로 늘 겪고 있는, 경험하고 듣고 보는 일이면서도 그 용어 자체는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 더 쉽게 쓰여진, 더 잘 읽히는 페미니즘 서적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성적 대상화, 가시화 등의 용어들을 처음 접했을 때,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아 페미니즘은 어려운 거구나' 라고 자칫 관심을 닫아 버릴까봐 조금 더 쉽게 쓰여진 책을 원했던 거다. 훅- 다가설 수 있도록.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는지 이제는 쉽게 쓰여진 페미니즘 책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전에, 그러니까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의 설명도 어려울 때, 그때는 어떤 책이 좋을까?
어릴 적에 누구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견뎌야했던 적이 많을 거다. 수시로 치마를 들추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끌어안고 뽀뽀하고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고... 내 경우엔 지금 언급한 모든 일들을 수차례 당했는데, 사실 나는 가만있는 성향의 사람이기 보다는 해결해보고자 하는 타입이었다. 선생님께 일러바친 적도 있었는데(선생님, 쟤가 저 껴안아요!), 그때 선생님은 내게 '너 좋아해서 그러는건데 그런걸로 이르지마라' 고 했더랬다. 여자 선생님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그 뒤로는 선생님이 안계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 숨었던 적도 있더랬다. 종치면 나가야지, 하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치마를 들출 때도 마찬가지. 선생님한테 일러봤자 해결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소문만 무성해진다. 쟤가 쟤를 좋아한대요~ 하고. 다른 반 남자아이가 쉬는 시간에 찾아와 공개적으로 날 좋아한다고 말하고 가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얼마나 얼굴이 시뻘개졌는지는 어휴- 말해 다 무엇해. 한 번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하는 틈을 타 내 앞자리 남자아이가 내 다리를 만지면서 니 속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마 개새끼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랬다. 휴- 이런 일화야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선생님에게 일러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게 폭력이었다. 크- 나는 나를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을 때렸다. 나를 안을라 치면 주먹으로 때리고 또 안으려고 다가오면 필통을 들고 때렸다. 그냥 막 때렸다. 내 옆에 오지 못하게 저리가! 이러면서 맨 손을 때로는 무기를 휘둘렀다. 체육 시간에 한 번은 몸이 아파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는데, 혼자서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가 뭔가를 가지러 교실에 들어왔다가 내게 다가왔다. 아무도 없을 때 안아보자며 내게 다가오길래, 나는 거침없이 녀석의 뺨을 때렸다. 꺼져, 라고 하면서. 언제였더라, 수학여행 때는 내가 자고 있는 여학생들 방에 다른 반 남자아이들이 떼로 몰려왔다. 밤이었고 우리는 불을 켰는데, 찾아온 남자아이들 중에 대장은 일전에 우리 반에 와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놈이었다. 여자아이들이 꺅 소리를 지르며 애들에게 나가라고 하는데도 애들은 히죽거리면서 방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자다 깨서는 그 애들을 향해 말했다.
야,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
그러자 남자 아이들은 '나가자' 이러면서 다같이 나갔다. 나는 하도 폭력을 휘둘러서, 당시에 깡패로 소문이 나있었다. 깡패로 소문나기 전까지의 나는, 전교부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갔었고(떨어졌지만), 신문과 티비에 나온 적도 있었으며, 공부잘하고 예쁘기로(응?) 소문이 났었더랬다. 그런데 깡패...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6학년이 되어서는 남자아이들 때리는 걸 멈출 수 있었는데, 그때는 남자아이들이 안는다는 식으로 내게 접근하지 않았었다.
내게 다가오는 남자아이들을 때리면서 나는 진짜 피곤했다. 어린 나이에 피곤했어 ㅠㅠ 아이들과 맞서 싸우면서 피곤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황 자체가 피곤했던 것 같다. 나는 싸워서 피곤했지만, 나처럼 남자아이들을 때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대로 피곤했을 것 같다. 싫은데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이게 좋아해서, 예뻐서라고 하니까 다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자신만의 소극적 저항을 하면서 얼마나 피곤했을까.
일전에 조카가 아래 위로 까만 색을 입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예쁘다, 귀엽다 했더니 조카는 그렇게 입기 싫다고 했다. 아빠가 자꾸 놀린다는 거였다. 나는 조카의 그 말을 듣고 '아빠가 타미 귀여워서 그러는거야' 라고 했는데, 그때 조카가 그랬다.
이모, 귀여우면 귀엽다고 해야지 놀리면 어떡해!
아!! 내가 지금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무심결에 내가 어른들로부터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말을 해버렸어! 문제 해결엔 아무것도 도움이 안되는 말을 내가 했어! 그 때 진짜 내가 무서웠다. 나는 얼른 아이에게 사과했다. 아 미안해 타미야. 타미 말이 맞아. 귀여우면 귀엽다고 해야지 놀리면 안되는거야, 타미 아빠가 잘못한거네, 라고. 이 일이 내게 오래 남았다.
'좋아해서' 여자아이를 끌어 안던 남자아이들은 자라서 '좋아하니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어른이 된다. 여자들이 싫다고 해도 그것을 '에이 좋으면서 뭘그래' 라고 받아들인다던가, '이렇게 좋아하는 데 내 마음 왜 몰라줘' 라고 하면서 강제적으로 스킨십을 시도한다. 진짜 씨발스러운 경운데, 이건 헤어지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하나씩은 갖고 있는 찌질한 전남친들의 경우, '연락하지마' 라고 하는데도 계속 연락하고 찾아오고를 반복하지 않나. 새벽 두 시에 '자니?' 라는 것도 싫고,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차단을 걸어도 계속 다른 식의 접근을 시도하는 그 행위는 폭력이다. '너를 잊지 못해서' 라고 상대에게 그 이유를 덮어 씌우지만, 그건 실제로 자기 자신을 위한 거다. 너를 잊지 못해서 '나는' 너를 다시 가져야겠어, 다시 내 옆에 두어야겠어, 라는 이유. 그래놓고 '너를' 잊지 못한다고,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징징댄다면, 그건 상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안돼' 라고 하면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서를 떠나,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안돼 라는 말은 안된다는 거다.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도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그렇게 주장해왔다. 물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야 매번 든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밀착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상대의 마음이 아니다. 그렇기에 매번, 좋아하면 할수록,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면 그럴수록, 더 조심하게 된다. '조심하지좀 마' 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아마도 내 스스로가 내 경계선 안으로 침범하려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허락한 적 없는데 밀고 들어오는 거 진짜 너무 싫고 소름 돋는다. 나한테 밀착하려는 것도 싫고,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밀고 들어오려는 거 싫고, 나를 열 번 찍는 것도 싫어한다. 그럴수록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 사람들(대체적으로 남자사람들)은, 왜 내가 싫다는데도 이렇게 밀고 들어오지? 싫다고 하면 '너는 왜이렇게 자신을 압박하냐' 등의 개소리를 하기도 하더라. 좀 더 마음을 열어야 되지 않겠냐 등등.... 내 마음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열겠다는데 지들이 뭔상관? 나는 이 남자들이 다들 경계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쳐둔 경계선을 멋대로 무시하려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글 썼던 것처럼, 상대의 허락받지 않고 상대 얼굴 사진을 전시하는 일 따위, 그런 건 상대가 쳐둔 경계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이며 상대의 몸을 상대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들에게 '경계'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부터 교육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들 모두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하고 싶다.
'준수'는 '지아'가 너무 좋아서 껴안았는데 지아가 싫어한다. 준수로서는 좋아서 끌어안았는데 왜 지아가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선생님은 경계선에 대해 설명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나라를 구분해주는 선이 있고, 인도와 차도처럼 차와 사람 사이에도 선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락없이 넘어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다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친구의 장난감을 내 마음대로 갖고 놀지 않아야 하고 친구의 과자를 내멋대로 먹어서도 안된다. 친구의 공간에 들어갈 때, 친구의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을 때, 우리는 반드시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다. 몸도 마찬가지. 지아의 몸은 지아의 것이다. 그런데 지아의 몸을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끌어안아서는 안된다. 지아에게 묻지 않고서는 지아에게 무엇도 해서는 안된다. 친구를 놀리는 것도 마찬가지. 상대가 '싫어, 하지마' 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게 아니다.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나쁜 짓은 나쁜 짓이다. 이 경계선에 대해 이해하게 된 준수는 지아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다. 네 몸은 네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 라고.
우리에게 어릴 적이 필요했던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의 모든 찌질한 전남친들, 잘 헤어지지 못하는 옛 연인들과 또 세상에 모든 '성적대상화에 익숙해진' 성인남성들에게 부족했던 게 바로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내 몸은 내 것이듯이, 다른 사람의 몸 역시 다른 사람의 것이다. 그것을 상대의 허락도 없이 품평하고 대상화 시켜서는 안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우리는 어릴 적에 교육받지 못했던 것같다. '좋아해서 그래'라니, 이 말은 얼마나 많은 성희롱과 성폭력을 잠재하고 있는가. 더이상 '아이스케키~' 가, 끌어안는 일이, '좋아서 그래'로 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기 몸의 주인은 자기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자랐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쥐뿔도 모르고 마음대로 경계를 넘으려 하는 성인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싫다고 했으면 싫은 거다.
안된다고 했으면 안되는 거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내 의사에 반해 네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되는 거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니까. 나의 주인은 나니까. 당신은 내 경계선을 내 허락없이 넘어서도, 지워서도 안되는 거다.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살자.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래서 이 책은 조카에게 선물할 것이다.
조카야, 누가 네 경계선을 넘으려 하면 안된다고 말해주고, 너 역시 다른 사람의 경계선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노크를 하도록 해.
이 말을 내 대신 이 책이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