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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 31편의 명작 소설이 말하는 사랑과 연애의 모든 것
잭 머니건.모라 켈리 지음, 최민우 옮김 / 오브제 / 2013년 9월
평점 :
연애지침서를 읽는 것은 매우 따분한 일이고, 그것이 뭐 내게 별로 쓸모도 없지만, '연애에 관한 수다'라면 얘기가 다르다. 여자사람을 만나든 남자사람을 만나든, 연애에 관해 수다를 떠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는 일! 원제는 『MUCH ADO ABOUT LOVING』인데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이라는 다소 부끄러운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연애지침서인가?? 했다가, 연애에 관한 수다로구나, 싶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발랄한 '모라 켈리'라는 여자사람과 굉장히 감성적인 '잭 머니건'이란 남자사람이 이 책의 저자들인데, 아아,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잭 머니건'한테 홀랑 반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잘생긴 남자보다는 똑똑한 남자한테 끌리는데, 여기서 똑똑이란 아이큐 198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생각할 줄 아는 걸 의미한다. 잭 머니건은, 그런 남자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하는 사람! 그는 연애에 관련된 이 글을 쓰면서, 그러나 자신이 아직 싱글임을 밝히고 있는데, 아아, 내가 달려가서 연애하자고 물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또, 좋아하면 또, 대시를 어마무시하게 하는 스타일이거든. 적극적 애정공세로 결국 연애에 이르게 만드노니, 잭 머니건이라면 나의 적극적 구애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그간 나의 적극적 구애를 받았던 애인을 돌이켜보면, 정말 잘생김과는 관계가 1도 없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 매력이 푱푱 터졌었는데, 잭 머니건은 그런 남자인 것 같다. 게다가 스윗트하고 따뜻할 것 같아.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톨스토이를 읽으면서도 그 안의 인물들이 되고 상황을 이해하려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게다가!! 내가 진짜 가장 반했던 건, 그의 '바람' 혹은 '불륜'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는데, 얼마전에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에서 '바람기는 남자의 본능 같은 것'이라는 구절을 읽고 대단히 빡이 쳤던 나로서는, 미야모토 테루에게 잭 머니건하고 얘기 좀 해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자, 보자.
남자들은 바람을 피우게 마련이야.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안 그래? 우리는 여전히 직립원인과 더 비슷한지라, 치마만 두르고 있으면 다 쫓아가라는 생물학적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전형적인 논리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책임 회피다. (p.221)
얼쑤~ 말 잘한다. 잭 머니건은 남자사람이다. 그는, 바람을 피우는 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도 안되는 책임회피라 일갈한다. 크-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이 바람을 다룬 꼭지에서 그의 모든 말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죄다 밑줄 긋고 싶어졌달까.
설사 사회생물학자들이 주장하듯, 남자들이 여전히 몸에 생가죽을 걸치고 있던 시절에는 연애관계 같은 것도 없었고 종의 생존이 가능한 한 많은 여성 호미니드 들을 임신시키는 데 달려 있던 게 사실이라 쳐도, 그게 뭐 어쨌다고. 똑같은 얘기로, 내가 오늘 버팔로 버거를 생으로 먹는 대신 석쇠에 구워 먹는 쪽을 택하는 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더 즐겁게 식사를 한다는 건, 교양 있는 남자라면 선사 시대적 충동에 그냥 굴복할 수는 없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우리는 섹스가 그저 유전 물질을 전달하기 위한 행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하는 지점까지 진화해 온 것이 아니었나?
오해 마시라. 나는 일부일처제로 살아가는 게 목탄 그릴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 훨신 더 어렵다는 사실쯤 잘 알고 있다. 고백건대 나 또한 전형적인 남자에다 얄팍한 욕망의 소유자다. 나도 눈이 있고, 가끔은 뱃속이 부르르 떨리며, 내 자아의 일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여자나 저 여자랑 자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어쩔 수 없이 품는다. 우린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우리중 문명화된 인간들은 가능한 한 자기 자신에게 이런 점에 대한 면역을 걸어둔다. (p.221-222)
그러니까 설사 바람을 피우는 게 본능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진화해왔잖아?
물론, 잭이, 단순히 진화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말해 뭐해. 그는, 그 이면을 보고, 알고 있다.
우리는 남자로서 자기 자신이 되길 원하지만, 그 일에 타인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깨닫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파트너와 함께,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만 쌓을 수 있는 편안함, 친밀함, 신뢰, 그리고 역사를 누리며 인생을 보내길 꿈꾼다. 하지만 그 목록에는 '자기self'라는 이득이 빠져 있다. 그리고 그게 모든 일의 열쇠다.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유혹하고 행위하고 만들어가고 얻어가면서 자아를 획득한다고 믿는데, 많은 남자들은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온갖 시련과 승리를 겪는 와중에 나누고 소통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더욱 깊고 의미 있는 자아를 결코 경험하지 못한다. (p.223)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게 우선이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이 꽤 매력적이고, 그 사람에게 홱 잡아 채인 느낌이 드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품은 환상이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멋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새로 만나는 그 사람을 안 지 오래되었나? 좋다. 그건 좀 힘든 케이스다. 하지만 왜 이제 와서? 어쩌면 그건 당신이 현재 맺고 있는 관계에서 섹스가 침체돼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그게 당신 잘못일까, 아니면 파트너의 잘못일까? 게으름 때문일까, 아니면 더 깊은 문제가 있는 걸까? 이런 점들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당신은 아마도 그저 육체적 쾌락이 그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당신의 현재 파트너와 함께 성생활을 되살려보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파트너와의 성생활은 괜찮은데도 유혹이 주는 스릴이 그리울 수도 있다. 그건 당신이 여전히 유혹이라는 것을 당신의 자아를 떠받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고, 따라서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당신 생각이 필요한 만큼 믿음직스럽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도 당신은 자신이 뭔가 필요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 건지, 혹은 파트너가 당신이 필요한 걸 해주지 않고 있는 건지 물어야 한다. 아니면 둘 다 물어야 하거나. 누군가를 유혹할 필요를 느낀다는 건, 당신의 삶이 다른 영역에서 자아에 관한 필요한 만큼의 만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신호가 돼야 한다. 그러니 당신이 사랑하는 파트너를 속이기 전에,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p.225-226)
자, 잭 머니건의 가치 있는 말은 바로 이제 나온다.
부정은 증상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바람을 피우고자 하는 충동이 결국 당신을 나쁜 관계에서 빼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는 건 그 관계가 애초에 고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점이다. 한 번에 한 사람만 만나는 원칙은, 현재 직면한 어려움에 맞섬으로써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사실 그것만이 제대로 된 방법이다. (p.226-227)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남은 평생 오직 한 사람하고만 섹스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벅찬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은 과연 섹스가 뭘 뜻하는 건지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장기간의 성적 행복을 누리는 열쇠는 섹스를 유혹, 에고, 힘이라는 상징적 감각보다는 쾌락, 느낌, 친밀함의 표현에 더 많이 연관짓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최고의 섹스는 당신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이고, 또 그것은 점점 더 좋아지게 돼 있다. 나는 섹스를 하는 데는 정말 많은 방법이 있고, 당신이 가끔은 지금의 섹스가 판에 박힌 것 가다고 생각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파트너와 함께 그동안의 습관들에서 벗어나고, 편안함을 느끼던 지점에서 떠나고,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도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번 더욱 충만한 성생활에 도전함으로써 당신은 더 나은 사람, 더 창조적이고, 더욱 자신을 잘 표현하고, 잘 인식하는 사람이 된다. 오직 한 사람과 섹스하는 건 힘든 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가장 알찬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p.227-228)
와- 외국으로 성매매 원정을 떠나기도 하고, 접대로 성매매하는 것을 당연한 문화인듯 얘기하고, 배우자가 있음에도 회사및 거래처 여직원들을 성희롱하고 폭행하는 게 너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한 사람과 지속된 관계 및 섹스에 관한 가치를 알고 있고 이렇듯 말하는 남자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당연한건데, 이건 너무 당연한 건데, 이런 남자가 너무 드물지 않나. 물론 나는 많은 남자들이 이렇게 제대로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발언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카톡에서 성희롱 대화가 벌어지고 있을 때,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신의 생각이 달라도 말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고, 그걸 또 자신의 변명이나 핑계로 삼는데, 이렇게 어딘가에서 어떤 남자들은 '제대로 된 건 한 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야' 라고 힘차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한 생각을 가진 남자의 글을 본다는 것은 오랜만이다. 반갑고 좋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거침없이 발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단톡방에서도 '니네 그렇게 말하는 거 잘못된거야'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안되는 건 아닐까' 라고, 멍청한 발언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여자들이 만나야 하는 남자, 여자들이 만날 가치를 느끼는 남자는, 여자들의 가치를 후려치고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 충실하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그런 남자인 것이다.
또 한 명의 저자 '모라'는 잭의 이 글을 읽고 이렇게 자신의 글을 덧붙였다.
얼마 전, 나는 잭이 여기서 계속 던지는 질문을 내가 데이트하던 남자에게 해봤다. 인간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바람을 피우도록 프로그램 돼 있나요? 그의 대답은 이랬다. "우연히 마주치는 여자 중 5~10% 정도와는 진짜로 자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진화한 인간으로서 저는 그 욕망을 통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쪽을 택한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나와 하는 섹스보다 더 원하는 건 당신과의 관계이고, 당신과 맺는 신뢰거든요. 내가 만약 다른 사람과 자면 당신은 상처받고 즉시 날 차버리겠죠. 그러니 충실한 남자가 되는 편이 훨씬 쉬워요." (p.229)
아, 건강한 남자다. 모라는, 건강한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구나.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건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생기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건강한 게 아닌가.
잭 머니건은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해서 톨스토이, 프루스트, 플로베르, 버지니아 울프, 주노 디아스 등 많은 소설 책들을 읽었다. 그가 지금처럼 건강한 사고방식을 갖고 건강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된 것은, 그가 그동안 읽어온 소설들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설을 읽는 남자라니, 게다가 거기에서 이렇게 연애에 관해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남자라니. 잭 머니건 은 정말 멋지다.
너무 길어서 인용문은 그만 넣고 싶은데, 이 멋진 잭 머니건은, 완벽한 관계에 대해서도 보란듯이 글을 쓴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읽고 완벽한 결혼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가 그 책에서 인용한 문장이 글쎄, 이런 문장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훌륭한 여자야. 그런 고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같은 사람이지. 살아갈수록 점점 더 좋아져. 할멈만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p.288, 황폐한 집, 재인용)
아, 이런 문장을 좋다고 인용하는 사람이라니. 진짜 온몸이 짜릿짜릿해지지 않나. 책의 본문에서는 싱글임을 밝히던데, 책날개를 보면 '여자친구가 있다'고 되어있다. 그런 그가 사귀는 여자라면 또 얼마나 건강한 여자일까. 크- 건강한 상대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 아닌가. 그러나 건강한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부터 건강해야 한다. 살아갈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는 문장을 인용하는 남자라니, 참 기쁘기 짝이 없다. 이런 남자를 보는 것은 너무 즐겁다!!
관계란, 좋은 부분이 얼마나 좋은가를 근거로 판단하면 안 돼. 긴 안목으로 볼 때 나쁜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계를 오래 지속하게 하는 거야. (p.41, 잭)
길고 풍요로운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카리스마 넘치는 난봉꾼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늘 부정해 왔다. 하지만 그런 전통이 존재한다 해서 우리가 현실을 부정하려는 본능에 항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불만족스럽거나 비참한 대접을 받은 경우라면, 그 푸대접 자체보다는 우리 자신의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남자들이 우릴 좌절시킨 이유를 이리저리 꼬아 가며 억지로 만들어내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놈이 당신을 바람맞혔다면, 그의 행동이 어째서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경솔하고, 실망스럽고, 부적절하며 노골적으로 무례한게 아닌지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내느라 그에게 호의를 베풀지 마라. 호의는 당신 자신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에게 예의 바르고 조용히 물어라. 왜 전화한다고 해놓고선 전화하지 않았는지, 답메일을 보내는 데 어째서 거의 일주일이나 걸렸는지, 저번 휴일 파티 때 당신이 옆에 서 있는데도 왜 다른 여자애 번호를 땄는지. 마찬가지로 남자들을 그저 성gender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짜 로 답이 없다고 여기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p.63-64, 모라)
물론 남성다움이라는 것은 데이트 능력이라는 컵케이크 위에 뿌리는 설탕장식 같은 것이다. 데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따뜻한 마음, 소통하려는 욕망과 능력, 신중함과 공감 능력,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진실한 욕구다. 이런 자질들은 마초들에게서는 드문 것이고-까놓고 말하자면 남자 전체에서 드물다-, 아마도 마초들은 대개 그들이 그런 자질들을 소유하거나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그럴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내유외강의 미덕을 갖춘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 꽉 잡아라. (p.121-122,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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