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 소설을 사랑한다. 그런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그렇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야기는 웅장할 필요도 없고 넓은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막 재미있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를 작품속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 사람이라면 .. '이것만 가능하면 된다는 거다. '줌파 라히리'는 그저 집 안에 있는 여자를 그려내지만 나는 줌파 라히리가 그려내는 그 여자가 되어볼 수 있다. 함께 <지옥 천국>의 등장인물이 되어 프라납 삼촌에 대한 연정으로 속을 끓이는 거다. '에미'가 되어서 레오를 사랑했었고, '안나'가 되어서 세상의 혹독함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런 소설이 좋다. 그런 소설을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흥미롭게 훅훅 넘어가고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긴 했지만, 소설속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되어볼 수 없다면, 그 소설을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게 내가 이승우를 좋아하는 이유고, 천명관과 장강명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미없는 소설들도 아주 많은데 그와중에 재미있게 쓴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나는 그 작품이 '고발성'과 '재미'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이유로 좋아할 순 없다. 나는 더한 무엇이 필요하다. 아니면 다른 무엇이 필요하거나.
요 네스뵈는 아주 재미있게 쓰는 작가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더 재미있게 느낄지를 알고있는 작가다. 곳곳에 복선을 배치하는 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흥미로운 장치이지만, 그렇지만, 요 네스뵈의 소설을 읽고나면 좀..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범인을 잡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거다. 물론 세상은 잔인하고, 실제로 경찰들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엄한 사람을 잡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좀... 그래..... 여하튼 너무 재미있어서 어제도 늦게까지 《데빌스 스타》를 마저 다 읽고 잤지만, 요 네스뵈의 소설 특징은 내가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 였다. 나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야. 다른 거좀 줘봐, 더한 것좀 줘봐! 나는 요구가 많은 독자인 것이다.
《데빌스 스타》는 '오슬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었다. 나는 이제 한템포 쉬어가기로 했다. 정신없이 오슬로 시리즈 세 권을 내리 읽었더니 독서에 대한 열정은 활활 타올랐지만 이제 좀 차분해지고 싶달까. 다음 책은 뭐로 할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오슬로 시리즈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좀 해본다. 엘렌이 꼭 죽었어야 했을까, 톰 볼레르의 결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네, 올레그는 그 어린나이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데 괜찮았다고? 베아테는 왜 자신의 생리혈이 아닌 걸 자신의 것인줄 알고 닦았을까..같은 것들. 톰의 집에 가서 소파에 앉았는데 일어나보니 생리혈이 소파에 묻어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나는 아직 날짜가 아닌데.. 하며 그걸 지우는 베아테를 보니 좀 짜증이 났던게, 보통 그런 경우-소파에 묻을 정도-라면, 일단 자신의 겉옷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어? 나 생리해? 하고. 그러면 자기가 한 게 아니라는 걸 알텐데, 소파만 보고 그걸 닦고 앉았다는 게 .... 그리고 며칠전에 얼룩진 피와 지금 나온 피가 같냐... 실제로 톰은 그게 베아테의 것이 아닌 줄 알고 있고, 그 전에 찾아왔던 다른 여자의 것인 줄도 알고 있다. 그래서 베아테의 행동을 보고 웃는다. 아 빡침이..
신참형사 '베아테 뢴'을 보면서 나는 유명한 팝송 <stupid cupid>를 여러차례 떠올렸다. 이게 《프린세스 다이어리》였나, 그 영화에 삽입되어서 맨디 무어가 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영화속에서 등장인물이 나쁜 남자를 사랑했다가 아 이게 아니구나, 하고는 나중에 제대로된 남자를 사랑한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 나오는거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 처음 연애라는 걸 할때, 처음 사랑이라는 걸 할 때, 우리는 그 감정에 취해 상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크다. 그저 학교에서 인기 많은 남자애라는 것, 잘생긴 남자애라는 것 만으로도 '으아앗 이런 남자랑 사귀다니!'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것.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남자가 아주 형편없는 나쁜 새끼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아, 내가 이런 놈을 사랑했었구나, 하게 되는 순간이. 그 다음 연애는 그보다 낫고 또 그다음 연애는 그보다 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사귀게 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나쁜 사랑을 했었고, 이건 내게 떼어낼 수 없는 혹처럼 따라다니면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왜그랬을까, 왜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를 아직도 생각한다. 그 후에도 딱히 좋은 사랑을 했던 건 아니다. 좋은 사랑이란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차차 나아졌'지, 바로 확 좋은 연애인이 되지는 않았었다.
베아테가 그랬다. 신참 형사로서 고참 형사인 톰 볼레르와 사귀게 되는데, 그 남자가 나쁜 남자임을 해리가 말하지만, 그러나 말하는 해리조차도 베아테의 연애에 자신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톰 볼레르가 아무리 나쁜 남자여도. 베아테는 잘생긴 고참 형사 톰 볼레르의 매력을 거부하지 못한 채 그와 잠깐 사귀었지만, 이제는 그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를 안다. 그런 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헤어지고 나서도 두려움에 떨진 않았겠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저런 놈을 걸러낼 수가 있지....
해리는 동료의 죽음을 수사하며 진실에 가깝게 다가섰고, 이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자신에게 소중한 여자 '라켈'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라켈과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고, 그리고 그렇게 다시 되돌려졌다고 생각한 순간의 해리와 라켈과의 대화가 참 좋다.
"괜찮지 않아……. 당신 없이는."
"그렇지 않아." 해리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당신은 나 없이도 아주 괜찮을 거야. 문제는 나와 함께여도 괜찮냐는 거지."
"그거 질문이야?" 그녀가 속삭였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p.580)
내가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괜찮을 것을 알고, 당신이 없어도 나는 괜찮을 거라는 걸 알고,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고 싶으니 함께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는 게, 너무 좋다. 건강한 사랑, 건강한 관계인 것 같아서 절로 흡족해진다. 우리 각자가 괜찮은 사람이라면, 함께 하면서도 크게 상대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파악하게 될테니까.
《디어 마이 프렌즈》 11화에서 나문희는 남편 신구를 두고 가출한다. 이제 편하게 살고 싶어서 남편을 두고 혼자 나가 집을 구해 거기서 늦게까지 잔다. 남편이 '이럴 거면 이혼해!'라고 하자, 두말없이 이혼서류를 내민다. 신구는 '내가 잘못한 게 도대체 뭐냐'고 나문희를 윽박 지르지만, 신구야말로 대표적인 한남충이다. 며칠에 걸려 제사 음식을 준비시킨 뒤, 여자가 제삿상 근처에 있으면 재수없다고 집 밖으로 내보내는 남자다. 물 떠오라고, 밥 차리라고, 저녁에는 칼국수를 준비하라고 하는 게 신구다. 돈을 벌면 죄다 동생들에게 갖다 바치는데, 자기 입으로 나문희에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1순위가 부모고 2순위가 형제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문희는 말한다.
그러니까 당신 형제들하고 살아.
반평생을 부부로 함께 살아오면서 나문희는 꼬박꼬박 가계부를 써야 했고, 뭔가를 먹을 때마다 구박을 받았다. 아이스크림 하나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가 없었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밥상을 차려야 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꾹 참으며 여태 견뎌왔던 건, 남편이 언젠가 약속한 세계여행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세계여행을 갈 생각이 1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늘상 아내가 챙겨주는 밥만 먹고 아내가 챙겨주는 물만 마셔왔던 신구는, 아내가 없는 집에서 밥도 해먹지 못하고 설거지도 못한다. 친구인 주현의 집에 가서 주현이 밥상이며 술상을 차리는데도 꼼짝도 안한다. 오죽하면 주현이 '밥 떠와요!' 소리를 지를 지경이라니까. 아내가 가출한 후의 신구 집은 엉망이다. 신구는 딸들에게 전화해 자기 밥을 차리라 하고, 아내의 친구이자 자신들의 초등학교 동문인 여자들에게 전화해 자기 밥을 차려내라 소리지른다. 박원숙은 신구에게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형제들 불러서 설거지 시키라'고 말하자 신구는
"걔네들은 남자잖아!"
소리지른다. 이때 박원숙도 맞받아 소리친다.
"나는 여자야! 근데 그게 뭐!!!!!!!!!!!!!!!!!!"
아, 박원숙 언니 멋져!! ♡ 눈물이 날 정도로 멋져. 흑흑 ㅠㅠ
신구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몰랐다.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를 종부리듯 했다. 나는 옛날의 남자들이 신구 같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남자들은 종종 밥상을 뒤엎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주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기억이 희미한데, 우리 아버지도 한 번 밥상을 엎었던 것 같다. 이게 맞는 기억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우리 아버지는 이제 설거지도 하시고 밥도 하시고 빨래도 돌리시고 청소도 하신다. 이렇게 한지 꽤 오래 되었다. 그리고 아빠랑 함께 사는 나는, 아빠든 남동생이든 그냥 두는 법이 없다. 꼭 같이 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내가 세탁기를 돌리고서는 빨래를 널 때, 내가 빨래 널테니까 아빠가 빨래 걷어서 개, 라고 한다든가, '내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올 테니까 니가 설거지 해' 라고 한다든가. 난 곧죽어도 혼자 안한다. 트레이닝 시켜야해, 트레이닝. 남동생도 내게 말한다. 내가 걸레질 할테니까 누나가 청소기 돌려, 라고. 함께 사는 곳에서는 함께 하는 게 옳다. 그렇지만..아빠가 찌개는 좀 안끓였으면 좋겠어....... 너무 조미료만 듬뿍듬뿍 넣어 ㅠㅠ
11화에서 연하가 완에게 슬로베니아 성당의 사진을 화상전화 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잘생긴 얼굴 양쪽으로 사진을 들어올리고, 자신을 보고싶어하는 완에게 미소를 짓는데, 으윽, 너무 좋아서, 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이쁘구먼...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뿌다. 하트 뿅뿅 ♡
나도 많이 늙었구나. 그런 조인성을 보면서 '조인성 같은 남자 사귀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이구 이쁘구먼..'하는 걸 보니.... 늙었구먼..............
그리고 이건 쉬어가는 페이지.
지금 치즈퀸(http://cheesequeen.co.kr/) 에서는 '램브란트 고다치즈'가 1+1 이벤트 중.
작년 여름에 이 치즈를 처음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사먹어야지 사먹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며칠 전에 치즈퀸 사이트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는데, 아 글쎄, 1+1인게 아닌가! 나이쓰! 으윽, 설레인다. 1년만인데 여전히 맛있을까.. 하고 먹어보니, 진짜 맛있다 ㅠㅠ 내 추천으로 친구가 사 먹고는 자신은 '짜다'고 말했다. 오늘은 회사에 가져와서 동료 두 명에게 맛보게 했는데 둘다 처음에 '짜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그냥 이렇게 먹기는 뭣하고 와인하고 먹어야겠다고. 그래, 이건 와인이 꼭 생각나는 맛이다. 와인하고 먹으면 진짜 기똥차다!
그러면서 나는 좀 의아했던 게, 내게 이 치즈는 '짜다' 보다 '맛있다'가 먼저 였는데, 그건 왜그런걸까.. 였다. 그래서 동료1도 '차장님 짠 거 싫어하는데 이거 괜찮으세요?' 하더라. 나는 설렁탕 집에 가면 설렁탕에 소금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싱거움이 너무 좋아서. 곤드레밥집에 가면 양념간장으로 비벼 먹지도 않는다. 그 심심한 맛으로 먹으려고. 찌개나 짜장면을 먹고 짜다고 생각되면 좀 불쾌해지곤 하는데, 어째서 이 짠 치즈를 '짜다'고 인식하기 보다 '맛있다'로 먼저 인식하는 걸까? 이건 무슨 차이인걸까? 모르겠네...
아무튼 한 쪽씩 먹고나서 잠시 후. 나는 계속 이게 너무 생각나. '나 하나 더 먹어야겠네, 너무 생각나' 했더니, 동료2가 '저도요, 저도 더 주세요'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집에 가서 와인 따라가지고 이 치즈랑 먹고 싶다. 나는 이 치즈 먹을 생각만 해도 침나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즘에 나의 노화를 실감하며 아, 이제 나도 비타민 같은 거 챙겨먹어야겠구나, 하고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먹을 비타민을 내 돈 주고 샀다. 그리고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어제 오전, 내가 아침에 비타민을 먹었던가? 하고 갸웃하게 되는거다.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먹었던가 아니던가......그냥 하나 또 먹을까......아니야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하고 또 생각해도 긴가민가 한거다..음. 그러나 내가 누군가.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여자사람이 아닌가! 그래, 화장실에 가보면 알 수 있지! 움화화하핫.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 색깔을 확인하고는 '후훗 비타민 먹었군' 하고 알 수 있었다. 아..........너무 똑똑해. 너무나 지혜로워. 지성미가 철철 넘치는 여자사람이야 ㅠ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내는 이 놀라운 능력! 차장 자리엔 그냥 올라간 게 아니야!! 깨알 지혜로 가득차있는 여자사람이야, 나는!!!!! 훌륭해, 멋져!!!!!
그나저나 어제 앞머리를 내 스스로 잘랐더니 찐따가 되었네.. 얼른 자라라, 얼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