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나는 스위스 재벌의 비서였다. 그는 금발이었고 성격이 까칠했으며 나보다 젊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어쩌면 그 날이 처음인 것도 같았는데, 어쨌든 그는 스키를 타러 가야하니 준비하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스키 타러 가는 사람의 준비물을 챙겨줘본 적이 없어서 생각나는대로 이것 챙기셨어요, 저것 챙기셨어요, 물었는데 그는 그때마다 맞다 그것도 있어야지, 이것도 있어야지, 하면서 챙겨주는대로 다 받는 거다. 그랬더니 손에 무언가 잡다한 것들이 한아름 담기게 됐고, 그래서 결국 손이 없게 된 그를 보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커다란 검은 비닐 봉지를 찾아냈다. 여기에 한꺼번에 다 넣을테니 주세요, 하고. 그리고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에 잡다한 물건들을 다 넣고 그에게 건넸다. 그는 아, 한결 낫군,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을 데리러 올 차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스위스의 아주 높은 빌딩이었고, 맨 꼭대기 층이었는데, 문을 열면 바로 옥상이었고 그 옥상은 아주 넓었다. 게다가 높은 빌딩이어서 주변 전망이 다 보이는데, 높다란 산들이 보여서 진짜 끝내주는거다. 그런데 여기에 차가 어떻게 온다는 걸까...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갸웃거리며, 여기 차가 어떻게 와요? 물었더니, 기다려봐 다 와, 하는 거다. 헬기가 차를 싣고 오나...라는 생각을 하며 진짜 사방팔방 둘러보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한 쪽팔로 나를 감싸서 자신의 옆으로 데려오면서, 저기 차 나오는데 거기 서있으면 어떡해, 하는 거다. 그래서 어디요? 하고 둘러보는데 어떤 동굴 같은 입구에서 스포츠카가 나온다. 여기에 왜 동굴이...그리고 그 동굴에서 왜 차가....아무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내 옆에서 궁시렁거린다. 하여간 이여자는 신경쓰인다니까, 차 오는 것 잘 보고 다니지도 않고 말이야, 하면서. 젊은 새끼가 사장이라고 반말하는구나...라고 잠깐 생각했는데, 사실 그 뉘앙스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엄정화'와 '다니엘 헤니' 주연의 『미스터 로빈 꼬시기』라는 영화의, 그 뉘앙스였으니까. 그 영화속에서 엄정화와 다니엘 헤니가 남산을 오르는 길이었나...여튼 그런 데를 함께 걷다가 뒤에서 차가 오니까 다니엘 헤니가 엄정화를 데리고 피하면서 화를 버럭 냈던 거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하고. 뭐, 정확한 워딩은 저런 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후에 엄정화는 집에 가서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자신의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해도 다 사랑한다는 말로 들려...라고.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스위스 대기업사장이 나를 대하는 말투가 꼭 엄정화를 대하는 다니엘 헤니 말투 같았다. 그는 내게 잔소리를 하더니만 곧이어 으스댔다. 스키장을 가려면 스포츠카정도는 타줘야지, 하고. 후훗. 귀여운 녀석, 스포츠카 타는 걸로 으스대다니,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잘 다녀오세요,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차에 올라타면서 다녀올게, 하고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네, 다녀오세요, 다시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음..비서가..사장한테...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다니...나는 그를 태운 차가 떠나자 어쩐지 웃겨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렇게 사랑에 빠지겠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꿈에서 깼는데, 아, 왜 벌써 깼을까, 스키장 갔다온 그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
어쨌든 아침에 출근하면서 내내 이 꿈 생각을 했다. 이런 꿈을 꾼 이유가 뭘까, 이 꿈의 의미는 무얼까, 하고.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고, 그 꿈에 대체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실제로 예지몽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몇 편 있었고, 꿈에서 일어난 일이 그대로 일어난 적도 있었던 터라, 내 꿈을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꿈도 해석해보려고 했지만.......잘 안되더라. 도무지 풀이할 수가 없어. 음......... 이렇게 풀이할 수 없는 꿈이라면... 결국... 아무 의미없는 개꿈인가... 혹시 내가 스위스가서 재벌과 사랑에 빠지게 될 꿈....일리가 없지........꿈에서는 한국어로 대화했지만 스위스가면 한국어로 대화할 수 없을테니......
좋은 꿈이었다. 내가 바라는 꿈은 아니었지만.
어제는 아파서 한의원에 갔다가 '생각을 그만하라'는 말을 들었다. 3주쯤 치료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라는 말을 하면서 닥터는 '명상의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앉아서 눈을 감고 어깨에 힘을 빼고 생각을 비우라고, 머릿속을 텅 비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생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한다고 문제가 해결 안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맞네. 내가 아무리 생각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해결될 문제라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해결될 것이고, 해결 안될 문제라면 내가 생각한다고 해도 안될텐데, 그러면 이 생각들은 다 부질없는 게 아닌가... 아...명의다...명의야...명의.....우리동네 명의닷!!
고맙다고 인사하며 병원을 나오는데, 닥터는 내게 말했다.
아, 책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재미있었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겁나 부끄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끄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한의원을 나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다른 얘긴데, 선거전날밤 꿈에는 김을동이 나왔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빨간 잠바를 입고 내가 가려는 길 양옆으로 서있었는데, 자신을 뽑아 달라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고, 그때 김을동이 내 손을 꼭 부여잡는 거다. 나는 황급히 손을 빼내며 흥, 하고 가던 길을 갔는데, 가다보니 진선미 의원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악, 진선미 의원님, 반가워요! 하고 그 분의 손을 내가 먼저 꽉 잡았다. 김을동은 떨어졌고 진선미 의원은 당선됐다. 예지몽...
하아, 내 꿈에 은수미 의원님이 나왔어야 했는데....내가 그 손을 꼭 잡았어야 했는데....가슴이 시리다 진짜.
그건그렇고,
생각을 그만하라는 충고를 들으니, '사라 쿠트너'의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당연한듯 생각하게 됐다. 한 때 그 책은 내 바이블이었는데, 지금 이 책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하도 이 책 저 책 팔아가지고 .. 이 책을 안팔았다면 좋겠는데...집에 가면 찾아봐야겠네. 어제는 책장을 볼 생각도 안하고 계속 생각만 했다.
"바로 그게 제 문제에요! 전 보통 슬프지 않을 때 발작이 일어나요..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게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요. 그럴 때면 전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기 위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죠. 하지만 제 머리는 마치 품질이 안 좋은 퍼즐 같아요. 조각들을 잘못 자르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아귀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퍼즐 말이에요! 항상 한 가지 원인을 찾으려다 보면 전 미칠 것만 같아요. 머릿속에서 마치 제대로 줄도 서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러대며 반항하는 유치원생들처럼 온갖 가능성들이 마구 뒤엉켜버리거든요!"
"그럼 그걸 중단하십시오."
"뭘요?"
"생각 말입니다." (pp.344-345)
나는 일전에 '너는 네 기분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이입을 하는 경향이 있다' 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인지, 당시에 이 책이 바이블이었다고, 오래전의 내 페이퍼에서 내가 말하고 있었다. 오래전의 페이퍼를 읽다가, 아, 나는 정말 그런가, 하고 갸웃했다. 진짜 그랬나. 내가 나를 이렇게나 잘 몰랐나. 나... 그런거였나? 나, 나를 잘 돌보고 있지 않았나? 나를 잘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나?????
"헤르만 양! 모르겠어요? 당신은 매우 지적인 사람이에요. 감성지수도 아주 높고요. 열정이 넘치는데다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직감까지 뛰어나죠. 그런데 그런 능력이 자신에게는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어요. 자신의 감정 문제에 맞닥뜨리기만 하면 당신은 마치 머리에 널빤지라도 두른 사람처럼 우둔하게 헤매고 있어요.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건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당신은 다른 건 전부 느낄 수 있는데, 자기 자신만은 느낄 수 없다는거요!" (p.342)
맙소사. 지금 검색해보니 이 책 절판인데, 으아아아, 제발 팔지 았았기를, 집에 있기를 ㅠㅠ
나 섣불리 팔아버리는 버릇 고쳐야 해. 고쳐!!
오늘은 아침을 안먹고 와서 사무실에서 두유에 씨리얼을 말아먹고, 사무실 동료가 준 홍콩 쿠키에 커피를 마셨는데, 아아, 너무 이렇게 먹어서 그런지 속이 니글니글하다. 편의점에 뛰어나가서 사발면이라도 먹고 와야할까보다. 니글니글해...
어제는 비타민을 몸에서 원한 날이었던 것 같다. 오천원에 열다섯개 하는 오렌지를 시장에서 사와서는 앉은 자리에서 네 개나 까먹었다. 그리고는 평소에 먹지도 않던 오렌지 쥬스를 사서 한 컵 가득 따라 마셨다. 이렇게 먹다가 어? 나 몸에 비타민 부족한가? 싶어서 아직 다 먹지 않았던 비타민제도 꿀꺽 삼켰다. 그랬더니 오늘은 오렌지를 가지고 왔는데도 먹을 생각이 없다. 다 충족됐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