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성인만화중에 이 [나쁜 상사]가 있었다. 일전에 누군가로부터 이 만화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누구한테 들은건지를 모르겠네. 광고회사의 유능한 팀장인 '승규'는 자신의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민'을 증오한다. 오래전에 민으로 인해 사채빚에 쫓기게 되었고 그래서 호스트바에서 일한 경력을 갖게 되었던 것. 자신에게 그런 불행한 시간을 주었던 민이 너무 싫어서 민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민이 그토록 좋아하는 '영조'를 자신이 유혹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의 끝이 그렇듯이, '복수심으로', '수단으로' 영조를 사귀려던 승규는 어느새 영조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민은 영조와 다정하게 지냈고, 영조와 당연히 커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조가 자신이 아닌 승규를 좋아한다는 걸 안 순간부터 돌아버린다. 영조에게 승규가 나쁜 남자임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노력을 바친다. 한편으로는 또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러나 그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강제키스이고 나중엔 강간까지 하려한다. 민의 마음속에는 영조랑 잘되고 싶다는 생각, 영조를 사랑한다는 생각, 승규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니 그의 일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과 시간을 모두 승규를 무너뜨리는데 쓰고자 한다. 그런 그가 점점 더 지옥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건 당연하다.



'너무' 사랑하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너무'가 이제는 긍정의 뜻에도 쓰이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실상 '너무' 사랑하는 건 집착이라고 봐야지 사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한 명에게만 내 모든 신경이 쏠려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불가하다면, 당연히 그 한 명으로부터 나는 보상을 받고 싶어진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지? 거기에서 오는 서운함은 결국 분노로 쌓이게 되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민은 영조를 사랑했다. 물론 그 스스로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조는 민을 사랑하지 않았고, 민과의 약속보다는 승규와 함께 있는 시간을 선택한다. 민으로서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점점 더 미쳐버린 그는 결국 자신이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여자를 강간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일전에 회사 직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상대' 하나만이 나를 지탱하게 두지 말라고. 그것 말고도 친구들과의 수다, 음악감상, 등산, 맛있는 음식, 술, 운동 등등 다른 많은 것들로 내 삶을 유지시키게 만들라고. 그래야 이중에 하나가 빠졌을 때도 나는 계속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거라고. 이 책, [나쁜 상사]의 '민'은 그걸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온통 영조 뿐이었고, 아침부터 밤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영조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를 파멸로 이끌어간다. 결국 나를 파괴하는 건 내가 가장 열중한 대상이다. 자신은 온 마음과 온 시간과 온 노력을 다해 한 여자를 사랑했다고 말하겠지만, 그 상대인 나로서는 지긋지긋하고 무섭고 끔찍할 뿐이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 라는 나의 말이 상대에게 닿지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들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미 영조를 사랑하는 '민'에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영조의 말은 들리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그건 말도 안되는 짓이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하는 게 과연 사랑이랄 수 있을까? 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는 구나,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구나, 아,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아니야, 나를 사랑해야해, 그럴 리 없어' 라며 상대의 부정을 부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포장하려해도 사랑은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자신이 집착한 상대 역시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폭력일 뿐이다. 



나 너 사랑해,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안사랑해? 왜 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해? 그럴 리 없어, 날 사랑해!



사랑한다는 내 말을 상대가 듣지 않는다고 욕하기 이전에, 분노하기 이전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상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 내 말을 상대가 듣길 원한다면, 나 역시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여간 '아니다' 라는 말을 도무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니깐.....




그나저나, 하아- 성인만화의 특징이랄까, 내가 봐왔던 성인만화 세 편은 왜 모두 가슴 큰 여자들이 판을 칠까. 일상속에서 고개를 돌려보면 실질적으로 주변에 가슴이 큰 여자는 많지 않다. 물론 성인만화니 일종의 판타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바는 있겠지만, 아니, 이 만화속의 영조는 순진하고 청순한 매력의 가슴 큰 여자... 인 것이다. -0- 물론 청순한 여자가 가슴이 클 수 있다. 왜 아니겠는가. 나도 청순하고 가슴이 큰데. 그렇지만 뭐랄까, 만화속 주인공들은 너무 판타지의 실현이야... 만화속에서라도 이상형을 만나게 하려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그래도 ...... 그래, 내가 너무 까칠했다. 만화에서라도 허리 쏙 들어가고 엉덩이 크고 가슴 왕따시 만해야지, 만화속에서 조차 리얼한 몸매를 드러내면 현실이 슬픈거겠지..아니 그래도 뭔가 좀 짜증나. 성인 만화지만 가슴 작은 여자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쩐지 좀 불만이야... -_-


판타지의 실현, 이라는 워딩을 쓰고나니 박범신의 [은교] 생각이 난다. 나는 이 작품을 싫어한다. 작품의 제목은 은교이지만, 이 책속에서 은교는 은교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과 섹스하는 삼십대 남성이 있고, 그걸 엿보는 칠십대 노인만이 이 책속에 있었다. 게다가 그 노인은 모든 남자들의 판타지 실현인듯 운동해서 근육질이란다. 이 책속에서 늙음과 젊음을 얘기하고 또 문학에 대해서도 얘기한다는 걸 알지만, 은교 안에 은교는 없어서, 삼십대의 남성과 칠십대의 남성에게 보여지는 여고생 은교가 있어서 나는 도무지 이 작품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더라.



예술은 판타지를 그려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실제 현실에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마음껏 책이나 영화로 그려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어떤 판타지의 실현에 대해서는 좀 불만스러워지는 것이다. 뭐 이쯤하고.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언제나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그러했는데, 오, 마침 중고알림등록 메세지가 오더라. 오호라! 그래서 장바구니에 넣고는 갈등했다. 정가보다 저렴한 중고이니 마음에 들지만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아 어쩌지. 하루만 더 생각해볼까... 하던 차에 판매완료. 아하하하하하하하..



차라리 잘됐어... (깊은 체념. 씁쓸하게 웃는다.)









이 책이야말로 정말 도전!! 해보고 싶은 책인데 아무래도 페이지수의 압박..이 너무 심해서 감히 엄두가 안난다. 그래도 자기전에 조금씩 읽으면 결국 미션컴플릿! 하지 않을까, 하고 계속 보관함에만 들어있다. 도전!! 했다가 아니야.. 하고 뒤로 물러난다.


나는 다가서다가도 물러나요.........♪







어쨌든 저 두 책을 빼고 장바구니에 8만원 이상의 책을 넣어두고, 오늘 아침에 결제해야지, 하고 신간을 잠깐 둘러보다가, 오오오오, 이것은 뭐야...





'캐런 조이 파울러'의 신간이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작가. 아아, 궁금하다. 우어어. 장바구니 결제하기 전에 이 책을 보다니, 이거슨 이 책과 내가 만날 운명..같은 것인가...

그러나 이 책까지 포함해서 지르자니 십만원돈이 다 되어간다..안돼..뭐 한 권 빼자..


[페스트]랑 가격이 똑같은데, 페스트 ... 널 뺄까 해.... 미안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건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나 역시 여러차례 혼자 사랑을 했었더랬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거절을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같은 일에 다름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며 마음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상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이 기적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나를 사랑해주는 건,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축복이다.


어제 기사식당에서 돼지불백에 소주를 마시고 술냄새 고기냄새 풍기고 들어갔는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조카 둘다 내게 와서 안겼다. 이모~ 소리치며 보고싶었다고 안기더라. 나에게서는 나쁜 냄새가 나는데도. 내가 사랑하는 이 두 조카가 나를 만나 반갑고 좋다며 내게 안겨들다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소중한 순간이며, 그러므로 나는 이 순간을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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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1-1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찌릿한 감동을 주시는군요. 이번에도 감전 당합니다 ^^

다락방 2016-01-15 10:04   좋아요 0 | URL
헤헷. 금요일이어서 무척 신나요!!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또 우리 신나게 지내봅시다! >.<

비연 2016-01-1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에서 괜히 눈물이 찔끔하네요...
아이들은 모두 천사고, 특히 나의 피붙이가 안길 때는 정말 더 필요한 게 없는 소중한 순간임을 느끼죠.
우리 조카가 제게 와락.. 할 때 늘 느끼는...

다락방 2016-01-15 10:47   좋아요 0 | URL
조카들이 태어나고 조카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 저는 또 그전보다 성장하게 된 것 같아요. 아, 세상에 이런 사랑이 있구나, 무조건 주고만 싶은 그런 사랑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 어린 아이들이 달려와 안기는 어른이라니, 스스로 뿌듯한 느낌도 들고요. 비연님, 지금처럼 계속 사랑하면서 살기로 해요. :)

뽈따구 2016-01-1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력이 점점 떨어지나봐요.. ㅡ.ㅡ ˝나쁜상자˝라 읽고 ˝상자가 나쁘면 어떤거지?? 갸웃??˝ 했네요.
정말 성인만화에 폭 빠지셨나봐요. 그래도 다른 책도 사시고 ㅎㅎㅎㅎ (저는 한 번 무협지에 빠지면 한 6개월 무협지만 보거든요. ㅋㅋㅋㅋㅋ)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에 동감 한 표.
또한 저는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적으로 생각이 되어지더라구요.
이렇게 다르고 다른데, 나를 사랑하고 챙기기에도 벅찬데, 너 역시 너를 사랑하기 바쁠텐데, 그 와중에 나를 사랑해주다니!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건 가슴 벅찬 일이에요, 나쁜상사에서처럼 폭력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다락방 2016-01-18 09:2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요즘 그런 거 느껴요. 늘 글자를 잘못 읽더라고요. ㅎㅎㅎㅎㅎ 그래서 저 역시 시력이 떨어졌나, 이런 생각도 했다가 이렇게 늙어가나.. 싶기도 했다가.. -0-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확실히 기적이죠.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씀하신대로 굉장히 기쁘고 감사한 일이죠. 이 나를 사랑해주다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사랑일 때는 고맙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폭력은 사랑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집착에서 오는 거니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집착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며 강요하는 것 같아요. 그게 너무나 무섭고 슬프죠...

건조기후 2016-01-1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무슨 얘기를 해도 참 사랑스러우신 거 같아요 ㅎㅎㅎ

다락방 2016-01-18 09:20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님이 저에 대한 애정이 폭발하셔서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꿈꾸는섬 2016-01-1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 저도 없을 줄 알았는데 어딘가에 있다가 나타나더라구요. 다락방님께도 기적이 일어날거에요.^^
조카들은 이모를 좋아하죠.ㅎ
남자들에겐 성적판타지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자기들만의 기준인데 대부분의 남성들이 비슷한 환상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락방 2016-01-18 09:07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기적을 만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기적같다고 생각해요. 힛.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몇 있고, 그들 모두가 또 저를 사랑해요. 그리고 그 수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조카만해도 두 명인 걸요!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또 다른 성에게도 나름의 성적 판타지는 있는 것 같아요. 가슴 큰 여자가 대부분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저는 가슴 큰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들도 좀 만나봤거든요. 저는 성적인 판타지.. 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지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부분 같은 것은 있는 것 같아요. 남자들의 예쁘고 큰 손을 보는 게 너무 좋고요 심장이 벌렁거려요. 그리고 팔목에서 팔꿈치까지의 그 부분에 근육 있는 거랑요. 가슴 근육이라든가 복근 같은 것에서는 벌렁거리는 느낌이 없는데 손하고 팔을 보면 되게 벌렁거려요. 그 부분을 특히 좋아해요. 히힛.

보빠 2016-01-1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책 전문적으로 소개해주는 분 같네요..
대단하십니다.

다락방 2016-01-18 09:01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말씀을.. 하하하하하. 고맙습니다!
어쩐지 으쓱하네요.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