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1년에 발행되었으며 현재 품절도서다. 나는 이 책을 오래전부터 중고알림 신청해두었었는데, 며칠전에 알림문자가 오더라. 그래서 오오, 하고는 주문하려다가 책 소개를 봤는데, 100개의 프로포즈 이야기를 담은 책이란 거다. 어? 그렇다면 프로포즈만 계속 나오는건데, 내가 왜 이런 책을 알림신청해놨지? ....알 수가 없네? 왜 이게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있었던거지? 다른 사람들 프로포즈 얘기를 내가 알아서 뭐한담? 하고는 구매하지 않고 있었는데, 다른 중고책과 달리 이 책은 알림메세지가 오고 사흘이 지나도 안팔리고 있더라. 흐음. 그래, 한 번 보자, 싶어서 주문했다. 그리고 읽었다.
일단 오타가 많고 문장이 어색한 것도 많아 좀 서투른 책으로 보인다. 백 개의 청혼 이야기를 읽는 건 지겹고 유치할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유치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라. 아마도 자신의 프로포즈 이야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그 프로포즈는 대부분 단 한 번뿐인 소중한 경험이며, 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연애중인 대부분의 여자들이 너무나 간절히 다들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대부분 남자가 프로포즈한 이야기가 실려있지만 여자가 프로포즈 한 이야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억하기로는 한 개였나... 도대체 언제 청혼할거냐, 라고 남자에게 묻고 압박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아니, 기다리지말고 그럼 자기가 하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같이 살자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도 또 너무나 잘 알겠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프로포즈 받는 걸 좋아하는 걸 보고 좀 놀랐다. 공개석상에서는 거절이 더 불편할 것 같아 나는 싫은데, 음, 어쩌면 상대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어서 공개석상에서 했을 수도 있겠다는, 그러니까 잠재적 합의 같은게 있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대체적으로 남자들이 프로포즈를 했는데, 하아-, 프로포즈에 대한 남자들의 그 어마어마한 노력에 일단 응원의 박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수고들이 많다. 어떻게 특별하게 할까 고민하느라 진짜 힘들었겠다. 여자친구에게 감동은 줘야겠고,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야겠고... 레스토랑에 가서 직원들의 협조를 바라는 것은 기본이고, 여행가서 하겠다고 파리며 미국의 비행기 티켓을 끊는 사람도 있고, 아름다운 절벽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가 좋을까 계속 고민하다 처음 만났던 데를 고르는 사람들도 있다. 저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그런 이벤트를 했을 걸 생각하면, 어휴, 진짜 힘들겠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고민했을 게 눈에 보여서 아마도 프로포즈를 받았던 여자들을 그렇게나 감동에 젖어 울었던 것일 거다. 내 앞에 내밀어진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그 반지를 준비해서 여기까지 왔을 그 남자의 마음, 그것이 아마도 울렸겠지.
백 개의 케이스가 실렸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변호사인 여자친구에게 법정에 죄수복을 입고 나타나 프로포즈한 남자친구였다. 이거 좀 웃긴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랄까, 좀 별로인데 특이함. 잊혀지지 않을 것 같긴 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장 프로포즈 장소로 부러웠던 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뉴욕 시티 캔 비 쏘 프리티~ 프럼 어 벌스 아이 뷰~ 비코즈 업 데어 예 댓스 웨어~ 아이 퍼스트 키스트 유~ ♪ 내가 이 노래 너무 좋아서 스물아홉에 뉴욕에 갔고, 그렇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갔건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아직도 키스를 못해봤네.. 비자는 만기됐고.....
익스트림 의 <when I first kissed you>
공개석상의 프로포즈도 별론데, 더 별로인 건 음식에 반지 넣는 프로포즈다. 아 제발 음식에 반지 좀 넣지마!!
18. 샌드위치 속의 약혼 반지
남자 친구와 나는 점심거리를 사러 우리가 즐겨 가는 레스토랑에 들렀다. 나는 평소대로 구운 쇠고기와 치즈, 마요네즈를 끼얹은 양상추와 토마토로 속을 채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우리는 음식을 가지고 근처에 있는 올케네 집으로 갔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외투를 벗을 겨를도 없이 샌드위치를 덥석 베어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씹는 걸 멈추고 말았다. 뭔가 아주 딱딱한 게 씹혔기 때문이다. 빵을 들어올려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양상추 위에 약혼 반지가 올려져 있었다.
그제야 남자 친구는 활짝 웃으며 나보고 자기 아내가 돼 주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지" 라고 말하고 나서 엉엉 울었다.
행복해서이기도 했지만 이빨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우린 4년 전에 결혼했고, 지금도 점심 때는 그 레스토랑에서 파는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다.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셜리 모랄레스 (p.56)
이거 보니, 일전에 얼음 속에 반지를 넣어 마음을 고백했던 여자가 나오는 뮤직 비디오가 생각났다. 지금은 '린'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세진'의 <굿바이 마이 프렌드>란 노래다. 이 노래, 내가 참 좋아했더랬다.
이세진의 <굿바이 마이 프렌드>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프로포즈 이야기를 내내 읽노라니, 뭔가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작가들(기획하고 이 책을 낸 이는 세 명이다)은 뭔가 독자들이 큰 감동을 받기를 바란 것 같고 또 예상한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큰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읽다가 울컥 하기도 했다. 역시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서로를 원하고 또 함께 다정한 걸 보는 건 좀 좋은 것 같다.
어제 친구랑 대화중에 우연찮게 영화 [어바웃 타임] 얘기가 나왔고, 우리는 결혼식 장면에 대해 얘기했었다. 여자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자를 위해 신부 입장곡을 남자가 좋아하는 노래로 선택했던 장면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여자가 입장하기 전, 손과 입모양으로 이 노래를 너 때문에 골랐다고 말하던 장면, 그 장면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얘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오늘 아침 그 장면을 링크해 보내주었다.
<어바웃 타임> 결혼장면
아, 다시 보고 다시 듣는데 너무 좋다. 어제 프로포즈 백 개를 읽었겠다, 이런 결혼식 장면까지 보고나니 아우 그냥, 마음이 막 부농부농해지는구나...핑크핑크해.......
나도 프로포즈했다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 어디에서 봤는데 그 마을 전통은 결혼하면 신랑이 신부를 업고 엄청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더라. 그래서 그거 링크해주면서, 이거 하자 그랬다가 거절당했다.
뭐,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