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위탁부모에게서 자라는 것과 비슷한 이 그룹 홈에는 또 다른 소녀가 한 명 살았다. 앙네스 클라르스퇴룀은 소녀들의 양육을 삶의 과제인 동시에 수입원으로 삼았다. (p.220)
의료사고로 팔 한 쪽을 잃은 앙네스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춘기 소녀 세 명과 함께 살고 있다. 위탁부모와 비슷한 이 제도를 그룹 홈이라 부르는데, 그녀들은 자신들이 어디서부터 오게 된지도 모르는 난민소녀들이며, 온갖 불행한 일들을 어릴때부터 겪어왔다. 그런 그녀들을 다루기는 쉽지가 않고, 그런 그녀들의 불행을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일도 쉽지 않다. 앙네스는 그런 소녀 세 명과 살고 있다. 십대의 소녀 세 명.
"내가 돌보는 아이들은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무인지대에 있어요. 아무도 그 아이들을 원하지 않아요. 쓸데없다고 내던져진 아이들이에요. 이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주하는 자기비하예요.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길 싫어해요! 일어나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쓴맛은 대여섯 살 때 이미 아이들의 영혼을 파고들었어요." (p.229)
몇해전에 소개팅을 했었다. 우리는 서로 딱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만나는 시간만을 조용히 보내고서는 각자의 갈 길로 갔다. 소개팅남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래 기억남는 그의 말이 있다. 그는 지금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주변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치되어 있는 어려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방과후에도 그 아이들이 밥 먹을 곳, 놀 곳, 쉴 곳을 제공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혹여라도 우리가 계속 알고 지내게 된다면, 당신이 그런 시설을 만들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사실 그 뒤로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가 그런 시설을 종국에 만들게 된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그 당시에 생각한 것, 그리고 지금 생각하고 앞으로도 생각하는 건, 그런 시설에 책을 기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혹 그림책을 사서 보고 아이들 책을 사서 읽기도 하니까, 내가 읽어본 책들을 기증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들의 공간에 책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일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책이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유일한 대안도 아니며 또 최고의 놀잇거리는 아닐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아이에게는 아주 유용한 놀이의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어제 상담을 공부하고 또 일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심규선의 신곡이 도착했다. 상담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듣고 많은 위로를 받은 노래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보았다.
심규선의 <피어나>
그간 심규선이 불렀던 노래와 좀 달라 앨범정보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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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감성의여성싱어송라이터 "Lucia (심규선)"
디어뮤즈먼츠와한국유방건강재단이발매하는월간 [Monthly DearMuse] 의세번째앨범.
유방건강의식향상을위한핑크리본캠페인의일환으로시작된 [Monthly DearMuse] 가세번째앨범을발매하였다. 지난 7월부터시작된 '닥터심슨' X '그_냥' 그리고 '타린(바닐라어쿠스틱)' X '준모(프로젝트슈즈)' 로이어진두개앨범은수준높은퀄러티의음악과의미있는가사로한국인디음악씬에서좋은반향을일으키고있다. 그뿐만아니라수익의일부가저소득층유방암환우들에게기부된다는점에서음악을사랑하는리스너들에게는물론아티스트들사이에서도각광을받는프로젝트가되었다.
어느덧세번째를맞은 [Monthly DearMuse] 는많은사람들에게잔잔한감성의여성싱어-송라이터로알려진 "Lucia (심규선)"의참여로더빛을발하게되었다. 심규선은 '에피톤프로젝트', '캐스커','한희정', '참깨와솜사탕' 등대한민국인디씬을대표하는아티스트들이소속되어있는 '파스텔뮤직' 싱어-송라이터로서 2010년디지털싱글로데뷔하기이전부터 "여수국제락페스티벌국무총리상대상", "제 29회 MBC 대학가요제금상수상", "개인유투브채널동영상수십만조회수기록" 등많은수상과경력으로알려져있던아티스트이다. "부디", "꽃처럼한철만사랑해줄건가요?" "어떤날도, 어떤말도" 등다수의히트곡을남기며전문가, 대중에게고루인정받고있는대한민국여성싱어송라이터 "Lucia (심규선)" 은간절하게부르는감성적인노래를통해잔잔한감동을주는것으로잘알려져있으며가사의깊이또한남다르다.
그러한 "루시아(심규선)"의장점은이번싱글의수록곡인 '피어나' 에서도여지없이발휘되고있다. 어떠한고난과역경이우리의삶을누를지라도, 살아있는한아픔을딛고꽃처럼피어나겠다는삶의의지를담고있다. 가사를곱씹으며듣고있으면마치한편의시를귀로읽는느낌이다. 불행과가난, 병듦이구체적으로묘사되면서우리사회의약자들을대변하는노래이기도하며,누구나언젠가겪게되는비극앞에선한생명의강한에너지와같다. 결국이노래는희망을노래하고있으며깊은위로를전해주고자하는메세지가담겨있다.이는 저소득층 유방암 환우들의투병기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음원이며한국유방건강재단과함께하는 핑크리본캠페인 속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고자 하는 "루시아(심규선)" 의 소망이 담겨있는 곡이다.
이번 [#DearMuse #201510A #PinkRibbon] 또한앨범의판매금액중일부는한국유방건강재단에기부되어저소득층유방암환우들의수술치료비로쓰여지며아모레퍼시픽핑크리본캠페인의일반인홍보대사핑크제너레이션이앨범아트웍디렉팅에직접참여하였다. 한국유방건강재단은국내최초유방건강비영리공익재단으로지난 2000년아모레퍼시픽이설립기금전액을출자하여설립한이후연중으로핑크리본캠페인을전개해오고있다. (네이버 앨범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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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한 조각 햇빛도 들지 않는 그런 캄캄한 궁지에
바람을 타고서 날아왔나 작고 외로운 꽃씨
어둡고 후미진 골목에서 넌 뿌리를 내렸지
눈길조차도 머물지 않는 그런 꼭 버려진 아이같이
구둣발에 채이고 머리 위 태양은 타는 듯 뜨겁네
아침이 더디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달빛에 위로해
여린 줄기 사이로 잎맥을 따라서 밀어올리는 건
외로움도 아니요, 원망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피어나
메마른 바람이 허공에로 자장가를 부르면
의미조차도 알지 못해도 슬퍼 꼭 엄마의 노래같이
헛된 꿈은 쌓이고 거리 위 세상은 차갑게 식었네
안개비라도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별빛에 기도해
어린 가지 사이로 잎새 끝끝마다 뻗어올리는 건
그리움도 아니요, 핑계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사람들은 그 꽃의 이름을 몰라 영원히 그럴지 몰라
누가 봐주지 않아도 너의 꽃 피워올려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어떤 불행에 가난에 아무리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너의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트려 멍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가 멀리 퍼지도록 고개를 들어 자, 피어나
내가 듣기에 가사는 좀 뻔했고 그래서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본디 <포기하지마>, <나는 문제없어>, <우리들만의 추억> 같은 류의 뻔한 가사를 가진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이 노래가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 노래는 만들어진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고 생각했다. 책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세상 모두의 심금을 울릴 수도 없고 세상 모두를 웃게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딘가의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웃거나 울거나 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제 역할을 톡톡히 다 한 셈이 아닌가. 마음이 묵직해졌다.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노래를 만들어 준 심규선에게도 고맙고, 그런 소녀들을 돌보고자 한 앙네스도 고맙고, 이런 이야기를 써준 헤닝 만켈에게도 고마웠다.
헤닝 만켈은 자신의 소설을 빌어 이런 얘기도 했다.
"예순여섯, 많군요. 서른셋은 상당히 어린 나이지요. 그래도 우리나라에 오늘날만큼 심각한 위기는 일찍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충분한 나이예요. 그런데 그걸 아무도 못 보는 모양이에요. 어쟀든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못 보고 있어요. 이 장벽은 사람들을 갈라놓고, 불화가 깊어지게 하지요.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톡홀름 지하철을 타고 교외로 조금만 나가보세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해요. 서로 다른 세계라고 주장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같은 세계인데도 중심지에서 멀어질수록 다음 역은 곧 다음 장벽을 의미해요. 변두리로 완전히 나가면 진실을 볼 건지 말 건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요."
"진실이 뭔데요?"
"최극단이라고 생각했던 게 중심지라는 것, 그리고 그게 이제 막 스웨덴을 개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지요. 축이 서서히 방향을 돌리고 있어요. 안쪽과 바깥쪽, 가까운 곳과 먼 곳, 중심지와 변두리가 위치를 바꾸는 거예요." (p.228-229)
남자는 우체부가 사흘에 한 번 찾아오는 외딴 섬에 홀로 산다. 그의 나이는 66세이며, 과거에는 의사였다. 그러나 의료사고를 낸 후 그는 오래전 자신의 조부모가 살았던 집으로 돌아와 이제 조용히 혼자 살고 있다. 겨울이면 얼음이 꽁꽁 어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아침에 일어나 그 얼음을 깨고 얼음 샤워를 하는게 일과의 시작이다. 사흘에 한 번 보는 우체부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하고 결코 그를 집 안에 들이지 않으며, 방 하나는 개미집으로 잠식당하고 있지만 그냥 둔 채, 늙은 고양이와 개를 각각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 그야말로 고요하고 적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날 69세의 여자가 보조보행기를 끌고 찾아온다. 그녀는 사십년전 그가 사랑했던 여자. 그녀를 이토록 오랜만에 다시 집안에 맞아들이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그였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과거에 약속했던대로 연못에 데려가고, 그간 존재를 알지 못했던 자신의 딸과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시절 가족을 이루고 시간이 흐른 후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면, 남자의 경우, 혼자 외롭게 지내다가 가족을 갖게 되었다. 고집스럽고 퉁명스러우며 피하기만 했던 그가, 이제는 저마다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옆에 두는 것이 소중하다고 여겨지며,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행복해한다. 이 외딴 섬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펼치는 축제는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그는 이제 누구와도 헤어지고 싶지않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이렇게 혼자 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노년에 대해 아주 여러번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과 많이 다른 식으로 진행될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되어 갑부가 된다거나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십살 연하의 남자와 갑자기 불같은 사랑을 진행하며 살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예외적인 삶의 형태이고, 내 삶이 그렇게 예외적으로 흘러갈 것 같진 않다. 아마도 나는 혼자 조용히 늙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남자는 집에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쟁여두고는 있다. 어쩌면 내 삶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늘 냉장고에 술을 넣어두고는 필요할 때마다 마시면서 조용히 앉아있는 것이 노년의 낙이 되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얼음을 깨고 그 밑으로 들어가는 일은 결코 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도넛츠를 먹는 걸로 일과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내려마실 수도 있고, 또 모르지, 모닝 맥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지도. 하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속의 남자처럼 깊고 고독한 곳에 혼자 거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고양이와 개를 키우게 될지는 모르겠다. 별 거 없고 또 요란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축제처럼, 나도 어느날에는 몇몇 사람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고 맛있는 걸 먹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다가, 사람에겐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좌르륵 줄 서 있어 나란히 기다리기보다는, 서로의 치부까지 다 알고 있는 속 깊은 몇명만이 필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그대로 알아주는 사람들. 그들과 어느 하루는 별 거 아닌 일들로 깔깔대며 웃으며 파티를 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예전에는 언제나 뉴스에 매달렸다. 뉴스를 읽고, 듣고, 보았다. 세상은 나의 참여를 원했다. 어떤 날은 예타 운하에서 어린 소녀 둘이 익사했고, 또 어떤 날은 대통력이 저격당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섬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 사는 동안 이 습관은 서서히 사라졌다. 신문도 읽지 않았고, 텔레비전 뉴스도 이틀에 한 번 정도만 보았다. (p.75)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사실 아주 많지는 않을 것 같다.
iReaditNow 앱에 이 책을 다 읽고 '쓸쓸하고 고독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라고 썼다. 정말 그렇다. 처음, 이 소설은 고독하고 쓸쓸하고 고집스러웠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온기가 퍼진다. 누군가의 옆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었다. 가진 게 넉넉한 이들이 아니었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이 아닌데도 그랬다. 개에 대해서도 그랬다.
"개 때문에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사라 라르손의 스패니얼을 우리가 데리고 왔는데, 아무도 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안락사를 시켜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개를 돌보았지요. 무척 아름다운 암놈입니다. 그런데 제가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이 사람이 개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렇다고 안락사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성함과 주소를 적어둔 게 있었어요. 혹시 이 개를 돌보실 마음이 있는지 여쭤보려고요. 거리에서 그 개를 보았을 때 차를 세우신 걸로 보아 분명히 개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내 개가 얼마전에 죽었습니다. 그 개를 돌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으로 오지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라 라르손이 개를 루빈이라고 불렀다는 걸 알아냈어요. 개 이름 치고는 무척 독특하지요? 그래도 이름을 바꿔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다섯 살이에요." (p.351-352)
지난 주는 내게 매우 혹독했다. 직장생활이란 것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이만오천번쯤 생각했다. 왜이렇게 더러운걸까. 너무 오래다녀서 못볼 꼴을 다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 대안에 대해서 생각하자, 하고는 계속계속 대안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 어제 외출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걸으면서는 생각이 무척 많아진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몇해전에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엄마아빠 다 돌아가시고 나면, 동생들은 다 저마다의 가족이 있을테고, 나는 혼자일테니, 그때는 미국에 가 살아볼래, 라고. 거기가서 밥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써가면서, 그러면서 살아볼래, 라고. 어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미국에 갈까. 다 정리하고 미국에 갈까. 그렇지만 지금은 밥벌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박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지금 다 정리하고나면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가지고 훅 날아가서 북까페를 차리는 건 어떨까. 그러니까 한국어로 쓰여진 한국어 북까페. 간판도 아예 한글로 달고. 그래야 내가 영어공부 안해도 되니까...내가 가진 거라곤 책밖에 없으니, 낯선 외국 땅에 한국어 책을 잔뜩 구비해둔 까페를 차리는 거다. 나는 계속 책을 읽어왔고 그래서 그 책들을 가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책을 읽을테고, 그 책들은 쌓여갈테니, 그걸 그냥 구비해두고 까페를 차리는 거다. 요리솜씨는 없으니 뭐 대단한 거 팔지말고, 만화방처럼 라면을 끓여주거나 하지도 말자. 라면 끓이다 세월 다 가... 커피랑 녹차, 홍차 티백만 준비해두고 그냥 조용히 앉았다 가라고.. 이걸로 대단한 밥벌이가 되지는 않겠지만, 단골들은 몇 생길것이고, 그날그날 소박하게 먹고살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조용하고 소박한 밥벌이를 목표로 한다면, 굳이 미국에 가진 않아도 되잖아? 라는 게 이어진 생각이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도 된다. 집값이 싼 지방에다 작은 집 하나 얻고, 작은 공간도 하나 얻어서,내가 가진 책을 다 가지고 내려가는 거다. 그리고 책장에 내가 원하는대로 꽂아놓고는, 하루종일 조용히 앉아 책을 읽다가 책을 읽으러 온 손님도 받고...
아, 그렇지만 이 수입은 어쩌면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알라딘 중고샵에 취직할까? 그렇다면 정기적인 수입이 매달 들어오긴 할텐데. 그냥 책들에 둘러싸여 사는 건 어떨까? 중고샵에서 일하면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적으면 적어졌지 많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까페에 취직하는 건 어떨까? 아르바이트로 취직하는 건...
어떻게도 결론을 못내리고 시간은 흘렀고, 날은 밝았고, 변함없이 나는 같은 자리에 출근해 앉아있다. 별 수 없는걸까? 별 수 없어야만 하는걸까?
이 책의 마지막은 이런 근사한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p.409)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이십년간을 쉼없이 일해왔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장하고, 더 갈 수 있다면 또 더 풍족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온 걸로 이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의미로 여기까지 온 걸로 나는 잘했다고 다독이고 싶다. 더 가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더 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든다. 나는 너무 오래 일해왔다.
"나는 늘 얼음이 무서웠어."
그녀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얼음장을 건너 내가 사는 섬까지 왔어?"
"무서워한다는 게 그걸 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 (p.121-122)
<피어나> 가 실려있는 앨범은 디지털로만 나온건가보다. 알라딘에선 찾을 수 없고, 대신, 정규앨범이 새로 나왔다는 걸 알게됐다. 아! 책만 안산다고 돈이 쌓일 줄 알았냐! 음반은 어쩔거냐!! 크- 음반을 생각하질 못했네..어쩔...3개월간 순수구매금액 줄일랬더만, 책을 안산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쩝...
시마는 아득히 사라지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도 가믄하지 못했다. 지혈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함을 쳐서 아이를 깨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는 시마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고, 그냥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여기 내 부엌에서, 이런 봄날에,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된 아침에 죽는 건 옳지 않다고……. 내 말을 들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계속 시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p.275)
"나를 맞아줘서 고마워. 바깥 얼음장 위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몰라. 당신이 나를 못 본 척 할 수도 있었잖아." "내가 당신을 한 번 떠났다는 게 또 그런다는 뜻은 아니지." (p.329)
죽음과 더불어 존재하던 모든 것은 소멸된다. 죽음은 내가 늘 겪던 어려움의 흔적만 남길 뿐이야. 사랑과 감정……. 하리에트가 너무 가깝게 다가와,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나를 떠나겠지.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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