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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후반까지의 시간은 내게 없었던 거나 다름없다고,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내 인생에 그 시간을 송두리째 들어내도 지금의 나와는 별로 달라질 게 없었을 거라고. 그 시간들은 내게 기억나지도 않고 또 추억되지도 않는 시간들이다. 무채색 혹은 단순히 '무(無)'라고 표현되어도 딱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내가 잊어야할 만큼 나쁜 기억들이 존재했던 시간들은 아니다. 그 시간들 동안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공부를 '조금'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고, 열심히 먹었고 또 연애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송두리째 들어내도 아무 상관없었을 거라는 내 생각은 사실 틀렸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되기에 그 시간들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내게는 그 시절이,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살아있는 나, 나 같은 나, 지금의 나는, 그 이후부터 만들어진 것 같다.
'정세랑'의 소설 [이만큼 가까이]는, 그런 나와는 정 반대의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내가 '없었다'고 생각한 그 시간이, '없을 수는 없는',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강한 시간들이며 존재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여섯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렇게 어울리며 친해진다. 친구들과 일상속에 작은 일들을 공유하면서 또한 첫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들을 쌓아나가다가, 치명적인 아픔을 겪게도 되고. 그 아픔과 상처 때문에 온전히 건강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에 함께했던 친구들은 따로 또 같이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누군가는 사라져야 했고 또 누군가는 무너져가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시간들이 또 그 친구들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그 시간은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들이 존재했기에 그들도 존재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조용히 생각해본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부분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사소한 장면에 따뜻함을 넣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버스에서 주완이는 겹겹이 일어난 버스 벽에 옆머리를 대고 졸았는데, 졸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으므로 섭섭하지 않았다. (p.163)
졸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여전히 세상은 존재하고 여전히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러면서 하루하루 더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외롭다고 느끼고 공허하다고 느끼다가도, 이렇게 졸면서도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 때문에 우리는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뜰 용기를 낼 수 있는게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여섯명의 친구들은 작은 일상을 함께 보내면서 또 큰 사건을 겪으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한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친구인채로 여전히 나이들고서도 만나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분노로 혹은 다정함으로 공유한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또 한 조직의 조직원으로서는 누군가에게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 친구들과의 모임, 내 자리에 앉았을 때의 나는 '그 이상한 게 매력일 수도'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어릴적부터 함께한 친구란 그런 것일 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그대로 봐주고 알아온 사람.
서로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민웅이의 무기력에 대해, 찬겸이의 엘리뜨주의에 대해, 주연이의 쓰디쓴 부분에 대해, 송이의 방랑벽에 대해 …… 아마 친구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아주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애도장애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그 시기를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 변화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화를 요구하지도 직언을 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얕은 수와 비굴한 계산까지도 웃음으로 넘겼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껏 떨어졌다가 다시 가깝게 되고 나서, 우리는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p.193)
나는 오래된 친구가 반드시 좋은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릴때부터 내 모습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더 잘안다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거쳐 내 결점까지 받아들이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이라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어차피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텐데, 나의 어떤 결점을 보고, 알고, 그것을 알지만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지내도 좋을 사이가 아닐까.
내게는 '없었던' 시기라고 느꼈던 그때였기 때문인지, 내게는 그 시절의 친구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왕성히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웃고 또 어떤 결점들을 참아주고 함께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내게 어린시절부터의 친구는 없지만, 지금의 친구들이 결국은 나중에 오래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왕성히 나였던 그때, 너는 내게 있어주었지, 라며 함께 지금을 추억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속의 여섯명들이 반짝이던 그때가 내게는 흐릿한 때였지만, 나는 지금이 나의 반짝이는 때라고 확신한다. 게다가 나는 앞으로도 반짝일 예정이다. 그러니 나는 졸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사람과 함께 지금을 보내고 싶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모두 착하거나 선하거나 한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또한 폭력과 학대와 방치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따뜻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그런것처럼 당연히 등장하지만,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려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려는, 그런 사람들 역시 단단하게 각자의 위치에 서있다.
정세랑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이번 작품은 전에 읽었던 [지구에서 한아뿐]보다 더 좋았다. 아, 전작보다 더 좋은데? 하고 생각한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도 작가에 대한 기대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삶이란 좋은 사람들과 손을 잡으며 견딜 수 있는 것일텐데, 좋은 책이 있다면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 같은 소설이란 게 다소 아쉽지만, 정세랑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관찰하고 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일-그러니까 나쁜 일을 포함해서-에 관심을 가져서 더, 더, 좋은 소설을 써줄 수 있기를 바란다.
멋이라고는 하나 없이 빡빡 깎은 머리에, 통통한 체격이라 교복 바지가 위태로웠다. 키도 덩치도 크지 않으면서 통통하기만 해서, 게다가 유난히 피부가 분홍빛을 띠어서 아이들은 언제나 새깨되지라고 찬겸이를 놀렸다. 일부러 숨을 들이켜며 꿀꿀 소리를 냈는데,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놀리는 정도를 지차녀 사태가 점점 더 폭력적이고 악의적으로 변해가자 당사자가 아닌 내가 성질이 나서 결국 그애들 책상을 걷어찼다. 책상에 명치를 부딪힌 애가 신음 소리를 냈고, 나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욕설을 퍼부었다. 중학교때까지만도 남자애들과 그렇게 완력 차이가 크지 않았겠지만 돌아보면 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이후 찬겸이는 불안해지면 내 주변에 와서 얼쩡거렸고 내 친구들하고 친해지려 애썼다. 송이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이 똑똑하고 동그랗고 분홍색인 남자애를 끼워줬다. (p.23)
"언제 또 올 거야? 길게 있으면 안돼? 언제쯤 와서 길게 있을 수 있어?" 여기가 싫어, 하고 분명히 말하고 떠난 송이인데도 출국 게이트 앞에만 서면 나는 끈끈이 주걱처럼 굴었다. "할머니가 되면." 그럼 꼭 돌아와서 살 거라고 했다. 나랑 주연이랑 셋이 함께 같은 요양원에 들어가자고 했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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