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p.114)
어제도 오늘도 친구들과 얘기를 했다. 각자 다른 친구들이었고, 이야기의 주제는 우리가 나이를 먹고나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는가, 였다.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았을 때, 지금의 나는 변화가 있었는가 하는 것. 친구들 모두 인격적으로 좀 더 나아진 것 같다는 말을 했고, 나 역시 그렇다고 했다. 확실히 나는 과거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거는 2년전일 수도 있고 10년 전일 수도 있다.
과거의 모든 생활, 일상들이 모두 자세히 기억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거기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이라든가, 판단하게 되는 기준 같은 것들이 어땠었는지, 그게 기억나는 거다. 과거의 내가 '좋다'고 생각했다거나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이것이 진리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아, 어쩜 그렇게 생각했을까, 너무 어리석었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과거의 나를 누군가 알아챌까봐 쪽팔리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가 '너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 혹은 '너 그때 이렇게 행동했잖아' 라고 한다면, 크, 나는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일것이다. 응 맞아, 그랬지, 그렇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 라고.
실제로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좀 넓어지게 된 건, 아주 나이들고난 후였다. 그전의 나는 세상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로지 나의 현재에만 충실했을 뿐. 지금도 나의 현재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지만, 그전보다는 시선이 좀 더 먼 곳을 향하기도 하고 좀 더 깊은 곳을 향하기도 한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사소하게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부터 또 연애에 대해서도, 뉴스를 보는 것과 책을 보는 것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과 태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내가 더 '좋은쪽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성장 이라고 생각한다.
아까도 친구와 대화하다 그런 얘길 했다. 만약 지금의 네가 더 어릴때의 나와 대화한다면 정말 짜증났을 거라고, 나는 무지하고 어리석었다고,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주 늦은 나이까지-물론 지금은 그게 젊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아빠가 보는 시선으로, 우리 엄마가 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봤던 것 같다. 지금은 아빠,엄마와 전혀 다른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 옳다고 알아왔던 것들이 잘못된 것일 수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들도 혹여 잘못된 건 아닐까, 이것이 옳은걸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하루키의 저 말처럼, 젊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한걸음 뒤로 가서 볼 여유도 생긴 것 같고.
지금 내게는 좋은 사람들이 옆에 많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즐겁고, 그들과 친구 혹은 연애하는 사이라는 것이 불쑥불쑥 자랑스러워지곤 한다.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지금의 나라서 가능했다. 만약 과거의 나였다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인지 몰라봤을 것이다. 확실히 나는 과거보다 지혜로워 졌으며, 이렇게 과거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자꾸 돌이켜 성찰하다보면 또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나이 먹는건 대체로 서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좋은 면도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시킨 책 두 박스가 어제 내게 배달됐다. 키링 두 개와 함께.
책은 뭘 샀는지 기억도 못하는채로, 박스에서 꺼내면서 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샀어, 내가? 했다. 저렇게 인증샷 찍고나서는 책들을 뭉탱이로 저어어어쪽에 처박아 놓고 세월호 키링을 뜯어서 가방에 달았다. 조낸 힘들었다. 쇠로 된 자와 볼펜으로 억지로 벌려서 가방에 끼웠다. 그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오늘 아침의 인증샷.
내 가방, 내 키링, 내 구두, 내 발, 내가 딛는 땅바닥.
어제 저녁에는 다른 키링 하나를 남동생에게 주었다. 내가 달아줄까? 했더니 아니 내가 보고 달게, 라고 가방을 가지고 와서는 끙끙대며 달더라. 그런 남동생의 가방 인증샷.
이 두 사진을 여동생에게 보내고 너도 이 키링 하나 줄까? 했더니 응, 이란다. 뱃지는 달고 다니고 있는데 키링도 줘, 라고. 여동생은 내가 책을 사서 받는지 모른다...... 알면 아마 됐다고 했을 듯... 됐다고 할까봐 말 안했어..... 어쨌든, 그래서, '하는수없이' 책을 또 사야한다. 여동생 줄 키링 받을라고. 어쩔 수 없이 사야겠다. 책 한 박스 또 받아야겠넹. 어제 가방에 키링 다는 남동생을 보노라니 또 가슴 속에 사랑이 들끓어올랐다. 헤헷.
어제는 문득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참 좋다. 전화를 끊을 때 이모 안녕, 하는데, 하아- 옆에 있었다면 정말이지 꽉 안아주고 싶었다.
나이 들고나서 조카가 생긴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