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그녀는 그들을 갈라놓고 있는 물리적 거리가 터무니없이 멀게 느껴졌다. 몇 해 전 몇 번인가 편지를 보낸 그 주소에 그가 아직도 살 거라고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이사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됐을 것이다. 그녀와 마티아는 무의미한 것들 아래 묻혀서 보이지 않는 탄성을 가진 실, 서로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알아본 그들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실로 이어져 있으므로. (p.370-371)
알리체는 알리체대로 고독했고 마티아는 마티아대로 상처를 간직한 채 살고 있었다. 알리체와 마티아 모두, 문제를 바깥으로 드러내서 부모님과 울고 불며 대화를 했다면 지금보다 덜 고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아직 부모와 대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그들이 고독한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두 사람 사이에만 보이는 실로 연결되어 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 그들이 그 실을 꼭 쥐고 있기를, 그 실 덕분에 그들의 서로의 고독에서 혹은 상처로부터 조금은 헤어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 절실한 상대임을 알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함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는 이토록이나 강하게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도 막상 만나고 나면 흐지부지 뒤돌아서고 만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 실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부러웠다. 만약 상대가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어떻게든 반드시 알게 될 거라는 확신. 그들은 그걸 어떻게 확신할까.
나는 사랑하는 애인사이에도 이별이 존재하듯, 친구 사이에도 헤어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친구할 것이다, 라는 나의 확신이 무너진 적이 더러 있었으므로. 이제는 어떤 친구 사이도 깨어질 수 있다는 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든 혹은 특별한 경험을 함께 했든, 그건 그것대로 존재하되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영화 《비긴 어게인》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든다. 기분이 구렸다가도, 피곤했다가도 이 영화를 보노라면 기분이 좋은 쪽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심지어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좋았다.
여자는 음악하는 남자인 애인을 따라 미국에 왔다. 애인의 음악에 많은 도움을 준 그녀이지만, 미국에서 그녀는 '그의 여자친구'로만 불릴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애인은 음반작업하다 만나게 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게되고, 이에 여자는 그와 거주하던 공간에서 짐을 싸고 나와 자신의 친구에게로 간다. 친구 역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 앞에 선 여자를 보고는 달려가 안아준다.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게 아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에게 포옹이, 위로의 차 한잔이 절실하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에.
자신에게 낯선 지역에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그녀의 작곡과 노래실력을 알고 몰락한 음반 제작자가 나타난다. 그는 딸에게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도 남편이 되기를 포기한 채, 게다가 동업하는 음반사에서 쫓겨난 채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 여자를 만나 여자의 실력을 알아보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자와 친해지게 된다. 친해지는 과정에서 서로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알게되고, 어느 순간에는 끼어들지 말아야 할 부분에 끼어들어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그들이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할 때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핸드폰안에 든 음악이 어떤 것이냐 묻고, 여자는 남자에게 그것을 말하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것이 되므로 밝힐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각자가 좋아하는 곡들을 이어폰을 나눠끼고 듣게 되는데, 이 음악은 정말 최고야, 이 음악은 정말 좋지, 하면서 그들은 늦은 밤 거리를 함께 걷는다. 앉아서, 걸으면서 음악을 공유하는 그 장면이,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서로에게 들려주고, 상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귀 기울여 듣는 그 장면이 정말이지 너무나 완벽하게 느껴져서, 그 장면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장면이 되었는데, 아, 역시 친구란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 싶어지는 거다.
음악에 대한 취향은 다른 사람과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 나에게 좋은 음악이 너에게도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또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그렇게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감상을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하다. 아마도 일치할 수 없는 취향의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음악을 나누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곡을 보내주고 그가 나에게 곡을 보내주었던, 그리고 서로 그 음악을 들으면서 메신저의 작은 창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던 그 순간을. 그 순간은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했던가. 언젠가 한 번은 그 친구에게 '우리가 서로의 연락처를 잃어버린다면 우리 사이도 이걸로 끝' 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는 끝나긴 왜 끝나냐며, 나는 네가 어디 사는지도 알고,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도 알고, 네가 어딜 산책하는 지도 알고 있으므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아, 나도 그때는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탄탄한 실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속 남자와 여자는 깊은 밤까지 음악을 함께 들으며 다정해진다. 만약 거기에서 그들이 한 발 더 나아갔다면, 그들은 여느 남녀가 함께 보내는 평범한 밤을 보내게 됐을 것이다. 그들이 늦은 밤까지 함께 걸으며 같은 음악을 들었던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지만, 그 경험이 다음날 아침에 함께 눈뜨는 걸로 이어졌다면, 그것은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하는 것보다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감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함께하는 것만이 늘 답은 아님은 확실하다.
그들은 음악을 사랑했고, 그들 각자의 연인과도 음악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아니어도 이미 함께 음악을 듣고 나누었던 연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인들과 어떻게 됐던가.
정말 필요한 건 늘 옆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순간, 그 특별함이 아닌가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우리가 함께 들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거기가 어디든 내가 읽은 책과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감상을 교환할 수 있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간혹 찾아온다면, 집에 돌아가 불을 켜고 밥을 차리는 것이 온전히 나 혼자만의 몫이라고 해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들어가 욕실의 불을 켜고 샤워를 하면서 콧노래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특별한 누군가와 음악을 공유하고, 책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 순간 순간들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들이 내 행복한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저장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생각하다가 아 좋았어, 하고 돌이켜 볼 수도 있을테니.
문제는,
내가 음악을 잘 모른다는 거....구나. 그러니 뭐 상대에게 들려줄 만하다거나 할 게 없네. 상대가 들려줘도 딱히 할 말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준 것 같다. 아마 특별한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혹여 그녀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면, 영국에서의 삶을 살아낸다면 그들은 아마 앞으로 만나지 않게 될런지도 모른다. 남자가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아내와 음악을 공유하는 삶을 다시 찾는다면, 그들은 아마 연락도 뜸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잊지 못할 사람으로 남겨질 것이다. 서로 먼 곳에 살고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어도, 사 년이나 오 년뒤에 연락해도 활짝 이를 드러내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너무나 좋다. 어쩌면 그런 친구가 '이성'이어서 더 특별한 것 같다. '다르게 갈 수도 있지만 다르게 가지 않는' 데서 오는 그 특별함.
내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던, 어떤 것들을 공유했던 친구는 있지만, 그 친구와 내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이 된건지는 잘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어느 한쪽만의 것이라면, 그것은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연결된 게 아니라고 해야할까.
당신은 내 표정만 보고 내게 다가와 안아줄 수 있을까?
배고프다. 12월말까지 몸 만들어서 비키니 사진 찍어 친구에게 주기로 약속 했는데, 이렇게 허구헌날, 매시간 배가 고파서야 어디 몸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다이어트는 자신과의 싸움인데, 빌어먹을, 나는 세상에서 자신과 싸우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니...이거야 원.... 말이 나와서 말인데, 공부 잘하는 것도 자신과의 싸움 아닌가. 나는 자신과의 싸움은 절대 피하는 사람이다. 여튼 4개월 남았는데....나 자신과 사이좋게 보내면서 그 날이 오면, 클라라 사진에 내 얼굴 합성해서 보낼까...혼자 조용히 생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