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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브렌트 이야기 -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ㅣ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2
해리엇 제이콥스 지음, 이재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1800년대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노예를 부리고 살았다면,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비롯하여 이웃들로부터 '흑인이 노예가 되는것, 그들을 사고팔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면 나는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노예들을 대했을까. 사소한 잘못으로 발가벗겨진 채 채찍으로 맞는 그들을 보면서 '잘못했으니 이정도 벌을 받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드물지만, '이건 옳지 않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남들보다 빨리 깨우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니, 내가 그들중 유별난 사람, 그러니까 '노예도 사람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을 결코 해내지 못한채로 늙어 죽어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까봐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위치에 놓여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그 위치에 놓여있다면 나는 그것이 마치 내 권리인 듯 그렇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을 때리고 구박하면서 또 굶기고 학대하면서.
여기,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이란 부제를 단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노예였던 소녀가 자유로운 입장이 되어 자신의 생활을 비롯 다른 노예들의 실상까지 낱낱이 고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노예생활은 묵묵하고 담담하게 읽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런 삶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몇 번이나 되묻고 싶어진다. 가족들과의 생이별, 숱한 채찍질, 소녀가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성적 희롱, 인간이라 취급받기 보다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져 팔려가는 생활. 당시의 노예주들은 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노예가 낳은 아이까지 자신이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 남부에선 이런 노예제가 있었지만 북부는 그렇지 않았다. 노예들은 북부로 도망가기를 그렇게 자유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망노예법'이란 무시무시한 법이 만들어진다.
이 땅 위에 완벽한 지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한 가지가 아직 남겨진 상태였는데, 1850년 마침내 그 일이 완성됐다. 바로 도망노예법의 시행이었다. 이제 어떤 주, 어떤 도시, 어떤 마을에도 추격자에 쫓기는 도망노예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제 내가 용맹한 사람들의 고향이며, 자유의 땅인 미국을 돌아다니면, 나라를 지키는 관료는 단 한 명도 없고, 나를 사냥하려는 추격자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한 진리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부여받았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때는 흑인들에게 부여된 권리가 있었다. 그렇다. 투쟁의 시절, 그들으느 나라를 위해 피 흘리고 죽어갈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위업은 잊혔고 그들이 썼던 총검은 그 자손들의 사지를 묶는 쇠사슬과 족쇄로 변했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독립전쟁에서 맨 처음 쓰러진 자는 흑인이었다. 나는 바로 그의 형제인 한 흑인 노예가 채찍질과 족쇄를 피해 달아다나가 붙잡혀, 자유를 기리는 기념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다시 노예제로 질질 끌려가는 걸 지켜봤다. 그것도 그곳에 그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남부 노예주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부인들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p.341)
그 비참한 생활을 책장으로 넘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눈물이 고인다. 그 힘든 생활들 때문에, 그 힘든 생활을 버텨나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그런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어 버리는 어린아이들 때문에.
새벽이 되기 전에 가족들이 다시 나를 은신처로 데려다주려고 왔다.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자세히 보려고 커튼을 옆으로 밀었다. 달빛이 아이의 얼굴에 비쳤다. 나는 몇 년 전 도망가던 날 밤 그랬던것처럼 아이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방망이질 치는 가슴에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흘리기엔 너무나 서글픈 눈물이 엘렌의 뺨으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마지막 입맞춤을 하더니 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엄마, 난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엘렌은 실제로 그랬다. (p.215)
아들이 대답했다. "엘렌이 떠나기 전 어느 날 처마 밑에 서 있었던 적이 있어요. 근데 헛간 위에서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도 왜 그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엘렌이 떠나기 전날 밤 엘렌이 방에 없었어요. 근데 할머니가 그날 밤에 엘렌을 방으로 다시 데리고 왔어요. 나는 아마도 엘렌이 가기 전에 엄마를 만났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냐면 할머니가 엘렌한테 '이제 자거라.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ㄴ된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나는 엘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침 소리를 듣고부터 집 쪽에서 엘렌이 다른 아이들이랑 놀고 있으면 아이들도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듣게 될까봐 다른 쪽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플린트 씨가 오는지 항상 망을 보았다고도 했다. 만일 플린트 씨가 보안관이나 순찰대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보이면 항상 할머니에게 이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집 쪽에 있으면 왜 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게 됐다. 그때는 아들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짐작이 안 가 걱정스러웠었다. 그런 사려 깊음은 열두 살 소년에게는 지나친 것이었다. (p.237)
문학(文學) [명사]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고통스러운 긴 시간후에-그녀는 7년간 다락방에 숨어지낸후 뉴욕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유를 찾고, 노예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그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책으로 적어낸다. 그래서 나는 1840~1860년대 미국 남부의 노예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었고 그래서 알 수있게 되었다.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여 기록하는 것, 그 기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열 명이 됐든 백만 명이 됐든,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 글을 쓴 사람이 혼자만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이 책이 당시에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켰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분명 '우리는 노예제를 하고있지 않지' 라며 나름 자부심을 느꼈을 북부인들도 남부의 제도를 묵인했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주인이 있는 앞에서 '너는 이 집의 노예 생활에 만족하느냐' 고 묻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목사들도 자신의 짧은 생각에 후회할것이다. 노예제에 전혀 관심이 없던 누군가였다면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곳에서 이런 비참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땅을 치며 우리가 이런 것을 어떻게든 고쳐야 되지 않겠냐며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그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책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기록은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 그 한사람은 또다시 다른 한사람에게 그 사람은 또 다른 한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 가려두고자 했던 악법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이제 사람들은 그 법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러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드러냈기에 사회는 그것을 고칠 가능성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변인에게 또 후세에 전했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는 데에. 당신들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그걸 내가 이제는 알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음은 당신들의 역할 덕분이란 걸 알 수 있게 됐어요, 고마워요. 우리는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고마워할 수 있다. 그걸 문학이 해준다.
많은 것들이 고마워지는 그런 책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 준 작가에게, 그녀에게 책을 쓰라고 권한 그녀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녀의 원고를 편집해준 편집자에게. 무엇보다 이런 사실을 나(를 포함 다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알려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문학에게 고마워진다. 책장을 덮으며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나보다 오래전에 탄생했고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 남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문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