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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8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출근 17시간 만의 휴식
눈 좀 붙이려고
신문지로 가린 형광등
"100만 원이라도 일정한 수입이 생기니까‥‥
사실 경비의 '경'자도 몰랐어요."
아파트 경비원 대다수 60대 이상 남성
본래업무인 감시, 단속 외에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관리
환경미화
‥‥
"눈이 오면 밤새 치워야 하죠.
아이들 넘어지면 경비원 탓이 되니까‥‥
아파트 경비원이 슈퍼맨이라니까요."
화장실 변기가 고장났다고
형광등 나갔다고
TV가 안 나온다고
수시로 울리는 인터폰
"한국의 아파트 경비원은
낮은 임금에 고용된 하인에 가깝다."
-데니스 P. 렛(미국 인류학자)
24시간 중
점심,저녁식사 2시간
야간휴식 4시간
무급휴식
월급 120만원 안팎
시간당 임금 4,122원
(2012년 최저임금 4,580원)
2010년 10월
주민의 폭언과 폭력을 견디지 못한
한 경비원의 자살
'아파트 경비원'
늙은 아버지의
생애生涯 마지막 노동
-for the people 21 슈퍼맨의 비애 中 인용
아버지가 경비 일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경비란 직업은 내게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회사에 출퇴근할 때 경비아저씨들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지나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고, 아파트에서는 경비실이 집과 멀리 떨어진 관계로 굳이 인사할 일도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층의 어떤 남자 주민이 새벽에 술을 마시고 자신의 집 문을 발로 차며 시끄럽게 굴었을 때, 나는 경비실에 인터폰을 해서 저 사람 좀 어떻게 해보라고 했다. 내가 그랬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경비가 경찰의 역할까지 한다고 생각했다.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한테 뭘 어떻게 합니까, 라고 경비 아저씨가 되물었을 때, 그 무기력한 답변에 화를 냈었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아버지가 경비 일을 시작하셨고, 다른 아파트의 경비아저씨가 되셨다. 온갖 사람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 번은 아파트 주민회의 무슨 임원 아주머니가,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놀러 오는 걸 막으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당연히 놀이터에 오는 애들을 어떻게 주민인지 알것이며 설사 아니라 해도 어떻게 그걸 막겠냐고, 놀러 오는 아이들을, 이라 대응하셨고,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개똥을 구해다 놀이터에 뿌리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단다. 세상에 온갖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경비 일이 단순히 가만히 서있는 단순 노동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고충이야 이것 말고도 어마어마했다. 잠을 잘 수 없는 것도 그랬고, 새벽에 놀이터에 오는 불량배들, 불량 학생들을 쫓아내라는 인터폰은 수시로 왔다. 그 아이들을 쫓아내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을 뿐더러, 외려 복수한다고 경비실에 돌을 던지고 도망가기 일쑤고, 주차관리나 교통관리를 제대로 못한다고 욕을 들어먹는 적도 많았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식사 하셨냐며 맛있는 반찬을 포장해다 주는 주민도 있었고, 명절 때마다 꼬박꼬박 선물을 챙겨주는 주민들도 있었다. 오며가며 지나치다 살갑게 인사하고 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빵이며 우유 아이스크림을 꺼내 하나 드세요, 내미는 주민들도 있었다. 자주 내려와 경비실의 문을 두드리며 음식과 선물을 건네주는 주민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언제부터 경비에 관심을 갖게 된것일까. 나는 우리 아버지가 경비 일을 하시고 나서, 그 고충들을 다 겪고 나서야 그들이 월급이 내 월급의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4시간 동안 근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됐고, 그 사이사이 아주 많은 고충에 휩싸인다는 걸 알게됐는데. 나는 이제 간혹 경비실에 들러 음료수며 찐빵을 드리기도 하고 우리 식구들 모두 경비란 직업을 인식하게 됐다. 이건,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일이다. 만약 경비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무관심한채로,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해가면서 경비를 대할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경비에 대해 말해줬다. 노동착취를 당하고 무리한 요구에 언제나 힘들어하는 경비를. 이제 식구들 중 누가 경비로 일하는 게 아니어도, 이 책을 읽으면 경비가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책은 경비에 대해서만 말하는 건 아니다. 지식e 의 시리즈가 여태 그래왔듯이, 우리가 어쩌면 내가 알지 못했던 것, 알고 나니 불편했던 것들에 대해 알려준다. 길지 않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깊은 울림을 주면서. 예전에도 지식e 를 읽고 눈물이 글썽인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나는 지식e 를 통해서야 내가 몰랐던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FC 바르셀로나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동안 협동조합으로 유지되어오며 유니폼 협찬을 받는 대신 유니세프 로고를 달고 뛰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로부터 우리는 '언론자유국 free' 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되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친일세력과 미군정을 배후에 둔 이승만이 남한단독정부를 찬성하고, 이에 반대하는 제주도 남로당의 집회에 경찰과 미군정이 그들을 학살한게 제주 4·3 항쟁이란 것도 알게됐다. 스웨덴에서는 총리가 나라를 바꾸기 위해 국민 모두와 목요일마다 만났다는 걸 알게됐고, 자살이 사회적 타살인 것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윤리적 책임을 가장 잘 이행하는 세계 100대 기업중에 우리나라의 기업은 당연하게도 한 곳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됐다. 그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어마어마하게 내면 뭐하나, 데리고 있는 근로자들을 무시하는데. 학생인권조례의 내용도 이 책에서야 알게 됐다. 그 부분을 읽다가 울컥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나는 인권이 무시당했었다는 걸 알게 되서. 머리도, 머리핀도, 머리 색깔도, 종교도 학교는 내게 강요했다. 고등학교시절 윤리 교사는 수업시간 전에 찬송가를 부르게 시키기도 했으며,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와서 주보를 가지고 오면 오천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이런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아 이것들이 다 잘못된 것들이었는데, 하고 분노에 떨었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에 나는 교실에 들어가기전에 운동장에 멈춰 국기를 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들어가야 했다. 매해 6.25에 대한 스크랩을 해야했고 포스터를 그리기도 해야했다. 일요일에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청소를 해야했다. 나는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에 길들여졌던건지, 그 당시의 나는 교단에 나가 상장을 받기도 하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반항할 줄 몰랐고, 당시에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불편한 감정도 들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편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읽고 나면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불편한 감정이, 때로는 아픈 감정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작은 힘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의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앞으로 나가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꾸자, 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그 중에 누군가가 이건 바꿔야 하지 않을까, 라고 내뱉었을 때, 조심스레 그래 나도 도울게, 하고 손을 내밀 수가 있으니까. 이런 손이 모이고 모이면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좀 작을지는 몰라도 지금과는 다른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고있는 이상 무관심하기란 그전만큼 쉽지는 않다.
이 책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관심을 갖자'고 말해주고 있다. 그것이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수용하기에 어렵지도 않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 더 넓어진다. 고마운 책이다. 작지만 울림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