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나는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사정상 내가 속한 부서는 가장 마지막에 짐을 싸게 되었다. 포장이사에서 갖다 준 박스를 쌓아두고 짐을 싸려는데, 타부서1 과 타부서2 그리고 타부서3 에서 젊은 남자직원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내가 박스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잽싸게 박스를 만들어주었고, 이 박스를 저쪽에 쌓아두라고 하면 냉큼 그렇게 했다. 무거운 짐은 당연히 그들이 포장했고, 내가 박스에 뭐라고 표기를 해달라 하면 역시 그렇게 했다. 눈을 돌리면 그곳이 어디든 젊은 남자 직원들이 있었다. 나보다 키도 훌쩍 크고 힘도 더 센 직원들. 이사를 가야하고 짐을 싸야하고 다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고 그곳에서 짐을 정리해야 하는 일들은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이 젊은 직원들과 함께 웃으며서 짐을 싸다니, 육체 노동을 하다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 나란 인간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 한 명을 만나 연인이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젊고 근사한 남자들이 떼를지어 몰려있는 공간에서 더 행복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정말로, 거짓없이 남자들을 좋아하는 구나. 아, 이런 깨달음이라니! 그러다가 한 직원이 이삿짐센터 직원들로부터 새로운 걸 보고 배워왔다며 박스 두 개를 연결해 붙인다. 깊어진 박스에는 우산도 무리없이 넣을 수가 있다. 여기엔 다 넣을수가 있어요, 그가 말했다. 이것도 들어갈까요? 물으니 다 들어가요, 한다. 이건요? 물으니 안들어가는거 없어요, 한다. 이 말에 조금 웃으려는 찰나, 내 뒤에 있던 다른 직원이 이어 말했다.
과장님도 들어가겠는데요?
아- 나는 이런식의 농담이 너무 좋아. 미치겠어. 씐나!! 역시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워. 그래야 살맛이 나!!
그러나 이렇게 신나는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이삿짐을 싣고 새로운 사무실로 옮겨 짐을 푸는 과정에서 이제 나의 육체는 힘이 들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서질 것 같고 목소리가 잠긴다. 늦은밤까지 일해도 짐을 다 풀지 못한다. 또한, 아직 싣고 오지 못한 짐들도 있다. 다음날도 오전 일찍 예전 사무실로 가서 다른 남자직원과 둘이 짐 나가는 걸 확인한다. 힘들다.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하면서도 어제 늦게까지 짐을 풀고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점심과 저녁은 물론 양껏 맛있는 걸로 잘 먹고, 또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바닥을 쓸고 닦는다. 몸이 부서질 것 같다. 저녁을 삼겹살로 먹으면서 소주와 맥주를 마신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길, 택시를 타고 간다. 집 앞에 내려 편의점에 들렀다. 캔맥주를 몇 개 샀다. 집으로 돌아와 자정을 넘긴 시간, 눈이 마구 감기고 피곤에 쩔었지만 나는 맥주캔을 딴다. 밥과 김치찌개를 그릇에 담는다. 꼭 먹고 자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무렵 일어나 밥을 먹고 또다시 침대에 널브러졌다. 오후에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와서는 시장에 가 떡볶이를 샀다. 막걸리도 샀다.
며칠간 통 신문도 보질 못했다. 그래도 토요일자 신문은 놓칠 수가 없지. 커피를 내려 내 방으로 가져와 토요일자 신문을 펼친다. 거기서 흥미로운 책을 만나게 된다.
신문에 실린 이 책 속의 사진은 두 컷이었다.
첫번째 사진의 제목은 [유쾌한 모녀의 산책] 이고, 두번째 사진의 제목은 [사랑은 어떤 환경도 이긴다] 이다. 이 책을 넘기노라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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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횡단보도, 술집, 도서관, 사무실, 욕실 등 우리 주위의 공간에서 최고 무용수들이 춤추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삶의 진정한 모습들을 담아낸 사진집이다.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들을 엮어 2012년에 출간한 이 사진집은 곧바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고, 반스 앤드 노블에서 선정한 ‘그해 최고의 책’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용수들의 홍보용 사진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곧 열정으로 가득한 세상을 반영하는 예술로 발전했다. 사진작가가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들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언론과 블로그에 소개되었고, 이 사진들을 묶은 사진집은 출간되자마자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에서는 옮긴이 겸 카피라이터가 사진의 원제목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도록 새롭게 붙여 완성도를 높였다. Dreaming, Loving, Playing, Exploring, Grieving, Working, Living 등 일상을 구성하는 7가지 키워드로 분류된 사진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무뎌진 가슴을 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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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힘들고 바빴던 지난 며칠, 심규선의 새앨범도 나왔다.
아,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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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사과꽃
- 1-2. 그런 계절
- 1-3. 실편백나무
- 1-4. 5월의 당신은
- 1-5. 담담하게
- 1-6. 그런 계절 (Inst.)
- 1-7. [Bonus Track] 오스카 (CD Only)
- 1-8. [Bonus Track]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Early Demo Ver.) (C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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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에야, 내 방 한구석에 처박힌 알라딘 택배박스를 풀었다. 거기에는 내가 주문했던 책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간 택배를 열 힘조차 없었다. 지난 며칠, 나는 그간 누군가에게 선물했거나 중고샵에 팔았던 책들중 몇 권을 다시 샀다. 그렇게 내게 배달된 책들중에는 '에이미 벤더'의 『레몬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 있었다. 이건, 그 기념.
오글오글 ㅋㅋㅋㅋㅋ 팟캐스트로 책을 읽어주겠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마이크를 사 두었지만 한 번도 써먹질 못했다. 컴맹에 기계치인 내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youtube 에 동영상을 찍어올리는 일. 하핫. 내가 사 둔 마이크는 썩고있다..
저 위에 춤 추는 책도, 심규선의 앨범도, 짐이 다 정리되는대로 그래서 내가 여유를 찾는대로 주문해야겠다. 아, 지금은 너무 힘들어. 다시 기절할거야.
그리고 지난 며칠, 내가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 나는 내내 라디를 들었다.
나는 이제 지하철을 타면 강남역이 아니라 양재역에서 내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