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필립 클로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래서 위의 책 『아이들 없는 세상』을 읽고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필립 클로델의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그동안 읽어온 모든 소설들을 포함해서 재미없는 책을 꼽으라면 이 책도 반드시 순위권 내에 들어갈 것이다. 뭐, 그건그렇고. 이 책의 단편중 이런 부분이 있다.



프흐흐흡‥‥‥.

마치 큰 숨을 들이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뤼까는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어요. 끝없는 썰매길을 타고 어디론가 떨어지는 느낌이었죠. 세상에, 세상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평생 기억될 오묘한 느낌이었어요. 뤼까를 괴롭히던 주위의 모든 아이들도 학교 운동장도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마로니에 나무도, 앉아 있던 벤치도, 위로해 주던 선생님 까지도 다 사라져 버렸어요. 뤼까가 존재하는 곳은 이제 다름아닌 책 속이었으니까요. (p.48)



아악. 책 속으로 들어간다니, 좋잖아! 나는 대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책 속 세계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세계, 그 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기도 하지 않은가. 그래, 책 속에 들어간 뤼까가 어떤지 한 번 보자.



이곳에서는 아무도 뤼까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어요. 뤼까를 비난하거나 놀리는 이도 없었고요. 그날 저녁 기사의 귀환을 환영하는 축하연에서 뤼까는 기사와 기사 부인과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었답니다. 온갖 음식이 다 있었죠. 속을 꽉 채운 왜가리 요리에서 얼린 백조 요리까지. (p.48)




그래, 뤼까에게 신세계가 열렸다.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학교의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던 뤼까인데, 책 속 세계에서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없다. 자신이 흥미있게 읽던 그 책속이라니! 그래서 뤼까는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 일이 단 한번 뿐일까봐 걱정된다. 


뤼까가 책으로 들어가려고 작정만 하면 그때마다 아무 상관없이 시도하는 족족 곧장 책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저 방문을 열 듯 책장의 표지를 넘기기만 하면 그대로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어요. 복잡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그냥 책장만 넘기면 됐어요. 때론 부리나케 빠져나와야 할 때도 있었죠. (p.49)




오오, 그러니까 뤼까는 이제 자신이 원할때 원하는 책을 펼쳐서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만약 내가 책 속으로 들어간다면 어느 책을 펼쳐 들어갈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몹시 즐거운 상상이 될 것 같았다. 제일 처음 떠오늘 책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클럽』이었다. 그런데 이 두 권 말고 딱히 생각이 나질 않는거다. 그래서 최근에 읽은 책부터 시작해서 어느 책속으로 들어가는게 좋을까, 하고 리스트를 훑었는데, 맙소사, 들어가고 싶은 책보다 들어가기 싫은 책이 더 많다. 끔찍하게 느껴지는 책들. 이를테면 이런 책들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악의 교전』은 정말 끔찍하다. 저 책속으로 들어간다면 나는 99프로의 확률로 죽는다. 내가 설사 그 속에서 살아남는다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린 후의 삶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 끔찍하다.

『어두운 기억 속으로』역시 끔찍하긴 마찬가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문이 잠겼는지를 점검해보게 하는 남자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좍 돋는다. 그 남자가 감옥에 가있어도 출소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면 하루하루를 대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내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있지만, 그런 남자 안다가와도 되니 강박증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공간 그 모두를 무서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일곱번째 내가 죽던 날』로 들어간다면 어떨까. 나는 '내가 죽거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죽거나' 하는 일들속에 놓여있게 된다. 싫다. 『19분』도 견딜 수 없다. 내가 총기난사의 피해자가 되어 죽거나 다치고 싶지도 않고 가해자가 되는건 더더욱이 싫으니까. 그 트라우마로 상처 받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이웃으로 사는것 역시 힘들것 같다. 그 아픈 사람들을, 상실의 아픔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바라볼 수 있단말인가. 아..힘들어 힘들어 힘들어 ㅠㅠ





이런 끔찍한 상황 말고 대체 어떤 책들이 좋을까, 하고 빨려들어가고 싶은 책을 찾아보았다. 나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책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일까. 좀처럼 빨려들어가고 싶은 책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속으로 쑥- 들어가고 싶기는 하다. 빌도 에릭도 만나서 뱀파이어랑 파티를 벌이고 싶고 퀸을 만나서 남자친구 삼고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내 리스트에서 맞닥뜨렸을때의 짜릿함이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기로 갈거야, 여기로. 이 책속으로 쑥 빨려들어갈거야. 벌목꾼들하고 신나게 놀거야. 매일매일 놀거야. 벌목꾼 1,2,3,4 와 루머를 만들어야지. 벌목꾼 5.6.7.8 과 물의를 일으킬거야. 움화하핫. 낮에는 수십개의 달걀 껍질을 까고 마늘을 다져가면서 땀을 뚝뚝 흘리고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벌목꾼들이 머무는 숙소로 가서 노크해야지. 똑똑- 나 왔어요, 다락방 왔다~ 푸훗. 상상만해도 너무 신나서, 나는 당장이라도 뤼까처럼 책 속으로 들어가는 능력을 갖고 싶다. 나무 사이로 숨어들어야지, 나 찾아봐요~ 라고 크게 소리도 질러야지. 저녁때는 벌목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들과 함께 질리도록 술을 마셔야지. 취해야지. 미친여자처럼 발광해야지. 아 너무 좋아.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러야지. 마구 뛰어다니면서 깔깔깔 웃어야지.





그런데 정말 꼭 책속으로 들어가서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은 책이 있다. 그 책의 재미유무를 떠나서. 꼭 한번 여자주인공이 되보고 싶다. 바로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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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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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2013-02-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펼치지 않아도 알수 있었어요.
'나라면..'이라고 생각했으니까..푸흡.

다락방 2013-02-04 12:1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단 며칠만이라면 괜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ㅋㅋㅋㅋㅋ

굿바이 2013-02-0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 책 여자주인공이 어찌 사는지 갑자기 심하게 궁금하네요. 뭘까요? 음...19세 미만 구입불가라..^^

다락방 2013-02-04 12:15   좋아요 0 | URL
남자주인공을 보고 수시로 얼굴만 빨개져주면 남자주인공이 블랙베리와 노트북 최신형 자동차까지 다 사다바쳐요. 갖고싶은거만 말하면 다 갖다 바친달까요. 책 속으로 들어가서 남주인공한테 제 보관함에 있는 책들 다 결제해달라고 하고 싶네요. 그러면 그 남자는 멋대가리 없이 어쩐지 서점 하나를 사줄것 같긴 하지만요. 하핫.

물론 19금적인 이유도 있긴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좀 취향이 빗나가기도 하고. 흠흠. 쿨럭.

2013-02-02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3-02-0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트왈라잇 속으로 ^^ (저 성인버전은 너무 무서워요. ㅠ_ㅠ)
어두운 기억 속으로. 저도 아주 재미있게(무섭게) 읽었는데요. 윗층에 사는 스튜어트. 멋있어서 죽을 뻔 했어요. 흑흑. ㅠ_ㅠ

다락방 2013-02-04 12:18   좋아요 0 | URL
우앗, 트왈랏! 한때는 에드워드를 매일 꿈꿨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흐려졌네요. 그러고보니 트왈랏 속으로 들어가도 좋겠어요. 특히 신혼여행의 에드워드를 생각하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윗층에 사는 스튜어트는 참 좋고 멋있죠. 그렇지만 그녀의 삶이 쉽게 평온해지지 않을것 같아요. 멋진 애인이 있다한들 과거의 그 무서운 남자가 감옥에서 나왔으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서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