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사람들에겐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상대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여야 한다는 것. 그가 아무리 매너가 좋고 예의가 바르다한들, 나였다면, 내가 영화속 여자주인공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내가 영화속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까? 답은 '아니'다. 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시간여행을 하겠다는 남자를 결코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정부의 장비를 훔쳐서 FBI 의 추적을 당하고 있고, 이미 죽었다고 말했던 그의 여자친구가 살아있다면? 그래서 그에게 '니가 말한 그 여자가 살아있지 않느냐!' 라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그렇다면 내가 시간여행에 성공하는 거에요, 내가 그걸 바꾼거죠.' 라고 말하는 남자라면, 나는 '아 이 남자가 그랬겠구나' 하고 그를 믿을 수 있을까?




그녀라서 가능했다. 그녀라서 그를 사랑할 수 있었고 그라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때, 왜 그런말을 하는지도 이해하고 있을 때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그가 원하는게 그녀가 원하는 것과 닮았고 서로가 한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들은 함께 할 수 있다. 영화는 나에게는 꽤 놀라운(!) 결말로 끝을 맺는데, 이 영화를 보는 전체적인 감상이 어쨌든 그 결말 때문에 점수가 올라간다. 신선한 결말이다.


이 영화속의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은 나에게 모두 낯선 인물들. 처음 본다. 게다가 둘 다 어딘가모르게 독특하다.



배우들의 다른 출연작들을 보니 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영화들이다. 하핫.























아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하다. 주인공 재시라는 열세살이다. 13. 그녀는 자신의 몸에 나는 털을 밀어버리고 싶고 이제 막 생리를 시작했다. 옆집 아저씨의 포르노잡지를 보다가 놀라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때는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 두 다리를 비벼댄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엄마는 털을 밀지 말라고 하고 아빠는 탐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왜 안되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털 밀지 말라면 밀지 말고 탐폰 쓰지 말라면 쓰지마' 가 전부이다. 흑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안되는 일이고 포르노잡지를 보는 것은 허벅지를 맞을 일이다. 그런 그녀에게 옆집 아저씨는 예쁘다며 다가온다. 그녀는 안되는 것 같으면서도 아저씨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녀의 호기심과 아저씨에 대한 연민은 그녀에게 가져선 안 될 비밀을 갖게 한다. 이건 재시라보다 이십년이나 나이가 많은 내가 보면서도 혼란스럽다. 판단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부모님에게 말해야할까. 그렇다면 부모님이 노여워하지 않을까. 이걸 비밀로 간직하는 건 내게 죄책감이 되지 않을까. 후아- 너무 어렵다. 나 역시 재시라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를 둘러싼 가까운 어른들이 그녀를 자꾸만 구석으로 구석으로 몰아부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또다른 이웃의 아줌마가 나타난다.


그녀는 재시라가 옆집 아저씨의 차에서 내리는 걸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옆집 아저씨의 집에 재시라가 아저씨와 둘이 있는 상황으로부터 재시라를 불러낸다.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채로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재시라를 보호하고자 한다. 영화를 볼 때는 한 없이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는데, 자꾸 생각할수록 펑- 하고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다. 왜 내게 어릴적에 그런 이웃이 없었을까.


그녀는 재시라에게 말한다. 이런 포르노잡지는 남자들의 환상을 부추기고 여자들에게는 비참함을 안겨준다고. 그 사진들은 거칠고 모공이 넓은 여자들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포토샵으로 처리된 가공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그 사진을 보고 흥분한다는 재시라에게는 섹시한 사진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는거라고 한다. 어떤 사진을 보고 무엇을 느끼든 그건 네 느낌이고 주관적인것이니 아무도 너에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느낌은 너 개인의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 잡지를 네가 가지고 있는건 잘못일 수 있다, 이 잡지를 너는 어디로부터 얻었느냐, 그걸 준 사람이 혹시 어른이냐고 묻는다. 재시라는 이에 대답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알게 됐을때도 그녀는 재시라에게 말한다. 너는 열세살이다. 열여섯살 미만과 성관계를 하는 것은 설사 니가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강간이다, 라고 말해준다.


게다가 그녀의 남자친구는 재시라에게 앞으로는 섹스를 하지 말자고 말한다. 너는 그것에 대해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아직 채 자라지 않아서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한 남자아이, 소년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너는 상처를 가지고 있으니 하지 않는게 낫겠다' 라고 생각한다는 게 나로서는 놀라웠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도리이지만 어른들조차 그런 도리를 지키지 않기가 일쑤인데. 심지어 재시라를 안았던 옆집 아저씨조차 보석으로 풀려난 뒤에 재시라에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호기심이 생기고 그래서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 벌이는 일들은 부모의 억압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물론 도와줄 수는 있다. 만약 재시라의 엄마가 털을 밀면 왜 안되는지 말해줬다면, 아빠가 탐폰을 쓰면 왜 안되는지 말해줬다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지 말라면 하지마!' 라고 말하는 것은 재시라의 호기심을 충족하기에 결코 만족스런 답이 아니다. 사춘기를 보내는 것이 힘들고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다. 살아가는 일이 쉬운게 하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일인지 묻지 않을테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우리집으로 와' 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가. 눈물나는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건 주인공인 여자아이의 나이였다. 열세살로 나오는 그녀가 정말 열세살이라면, 아무리 연기라지만, 저런 연기를 하면 안되는건 아닌가, 해서. 보호자가 지켜보고 있으면 괜찮은가, 하고 자꾸만 불편했다. 그래서 그녀를 검색해 보았다.





1988년생인 그녀는 이 영화를 2007년도에 찍었다. 계산해보니 19라는 숫자가 나왔다. 아, 미성년자가 아닌 때 촬영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드니 어쩐지 안심이 되고 ㅠㅠ

여하튼 조마조마한 영화다. ㅠㅠ






2012년의 내맘대로 영화베스트 10 같은걸 나도 해보려고 했는데, 아우, 완전 귀찮은거다. 내가 뭘 봤는지 여기저기 다 뒤져봐야 나올텐데. 그래서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만 골라본다.






















2012년은 내게 미쉘 윌리암스의 해였다. 위의 세 영화 모두 미쉘 윌리암스 주연이다. 나로서는 이 배우가 마치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처럼 느껴진다. 위의 세 영화가 모두 좋다. 특히 『우리도 사랑일까』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좋아서(2012 베스트 오브 베스트임) 나는 이 영화가 DVD 와 OST 를 모두 구매할 예정이다. 그런데 OST 는 나올 생각이 없어보이고 ㅠㅠ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도 엄청 좋다. 얼마전에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 '마리우스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게 대체 어디지' 하다가 며칠전에서야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남자주인공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사랑일까』의 한장면 그리고 Feist 의 노래.




그토록 갖고 싶어해서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를 얻었는데, 젠장, 받아온 그 순간부터 방치되어 있다. 역시 난 부지런한 기록자는 못되는 것 같아.. 그나저나 오늘 점심이 후딱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며칠전부터 최대의 스트레스가 오늘 점심 약속..orz




아, 진짜 마지막으로 어제 내가 트윗에 올린, 연말이면 어쩔 수 없이 당연히 생각나는 책 속의 한 구절.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에미 로트너가 빌어 드립니다.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from Emmi Roth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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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0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해부터 다락방님께 아주 조심스럽게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540000


다락방 2013-01-02 15:32   좋아요 0 | URL
어머. 이런 책이 있는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3-01-02 19:26   좋아요 0 | URL
이미 제가 주문을 넣었기에......으흠..

다락방 2013-01-03 09:54   좋아요 0 | URL
오! 진짜 주문 넣으셨어요? 리뷰 부탁드릴게요. ㅎㅎ

달사르 2013-01-0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리는 받기 전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이 좋구요. 받을 땐 받는 기분이 좋구요. 받고나면 도대체 쓸려고 할 때마다 어디 갔는지 찾아야 한다는..ㅠ.ㅠ

'우리도 사랑일까', '마릴린먼로...' 는 아직 dvd로 안 나왔나봐요. 검색하니 없네요. 빨랑 나와라 나와라!
대신에 '블루 발렌타인' 담아놨어요. 히.

다락방 2013-01-03 09:36   좋아요 0 | URL
네, 새 해가 시작되고 다이어리를 새로 받고 하는 것들은 정말 설레이고 기대되는데요 막상 받으면 또 내팽개치게 되는것 같아요. 그 날이 그 날이고....

우리도 사랑일까는 2012년에 개봉한 작품이라 아직 안나온것 같은데요, 이게 굿 다운로더(예를들면 한메일)로는 나왔더라구요.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므흣.

맥거핀 2013-01-0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fety not guaranteed..제목을 보는 순간 이런, 했어요. 나중에 혹시라도 영화를 만들게 되면 제목으로 쓰려던 명단에서 하나 지워야겠군, 싶어서요. 근데 저 영화는 정말 처음 보네요. 써주신 내용으로만 보면 왠지 중구난방으로 상당히 재밌을 것 같은데요.

'우리도 사랑일까' 저도 작년에 봐야지, 하고 있다가 놓친 영화인데, 작년에 보았어야 할 영화 명단에 넣어야겠어요.^^

다락방 2013-01-03 09:45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영화 괜찮았어요. 맥거핀님은 아마 좋아하실 것 같아요! ㅎㅎ

[우리도 사랑일까]는 위에도 썼지만 굿 다운로더로 나왔더라구요. 놓치지 마세요! 놓치기엔 정말 아까운 영화에요. ㅎㅎㅎㅎ 보시고나면 맥거핀님도 미쉘 윌리암스와 사랑에 빠지실지도 몰라요! 므흣 :)

dreamout 2013-01-02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미제라블. 소설은 못 읽겠고.. 그래서, 주말에 영화로 대신하려구요. ㅎㅎ
저는 미드나잇 인 파리.(2012년 영화관에 가서 본 세 편의 영화중에서... ^^;)

다락방 2013-01-03 09:47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 저는 아직 미드나잇 인 파리를 못봤어요. 이 영화 굿 다운로더에서 찾아봐야겠네요. 좋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 말예요. 레 미제라블 영화 보고 어땠는지 말씀해주세요. 드림아웃님도 눈물을 흘리실지 궁금해요. 희희.

댈러웨이 2013-01-0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윌리엄스의 영화를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로는 본 게 없지만, 그 이후 그녀의 추이를 계속 지켜보기는 했네요. 물론 히스 레저 때문이긴 했지만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세밑에 답글로 얼렁뚱땅 해피뉴이어 인사드리긴 했지만 부족했습니다. 다락방님, 지난 해 다락방님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올해 그 인연의 끈이 더 단단해지기를 바람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3-01-03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하다가 그가 히스 레저의 연인이었으며 브로크백 마운틴에 나왔다는 걸 알게됐어요. 아, 그 여자구나! 했는데 그녀가 이렇게 좋은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더라구요. 전 그때는 전혀 매력적이란 생각을 못했었어요. 이제서야 아, 멋지구나, 하고 있답니다.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의 미셸처럼 머리를 짧게 잘라볼까, 하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자른다고 그렇게 되는건 아니니까 어쩌나...시무룩..

댈러웨이님, 새해에는 좀 더 자주 글 써주세요. 댈러웨이님의 페이퍼는 저처럼 날림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읽으려면 정신을 빡- 집중해야 하는데, 저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정신 빡- 집중하고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좀 뭐라고 해야하나, 음, 진중하고 깊은 글을 쓰고 싶은데 말이죠. 그런데 제게는 그런 능력은 없는것 같아요. 앗, 새해 인사 하려다가 한탄이 되어버렸네. ㅎㅎ
댈러웨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그 댓글에도 썼는데 우리 언젠가는 호주에서 만나요!

프레이야 2013-01-0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금은 까칠하지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에미 로트너!!
저는 요새 아직도 '일곱번째 파도'로 에미와 레오를 만나고 있어요. 히히~
원서 표지가 훨씬 멋지네요.

다락방 2013-01-03 11:01   좋아요 0 | URL
어우, 프레이야님. 전 에미가 무척 좋아요. 물론 레오는 훨씬 더 좋지만요. 희희.
저 문장을 옮겨적기 위해 새벽 세시를 펼쳤는데 아, 또 너무 좋은거 있죠! 아, 그래 처음엔 이 둘이 이랬었지, 하면서요. 역시 좋은 책은 책장에 꽂혀있어야만해요. 그게 진리에요.
일곱번째 파도에서의 에미가 기억나요. 레오에게 그러죠. 이메일로는 절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는 안된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에미가 정말 좋아요, 프레이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