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게 사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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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 1집 기다림
커피소년 노래 / 오이일이뮤직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그의 음악에 이러한 감성이 묻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커피소년이 된 이유로 설명된다.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년전 그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좋아한 커피를 따라 마시다 보니 그도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커피를 사랑하는, 자신을 '커피소년'이라 부른다. 그리고 일년동안 외사랑의 아픔을 겪으며, 또 희망하며 로스팅을 과정을 거친 원두 처럼 그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한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 알라딘의 커피소년 앨범소개中 에서
굳이 저 소개글을 읽지 않더라고 커피소년의 그간 음악들을 착실하게 들어왔다면, 그가 짝사랑을-외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 맞다- 앓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아픈 노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절반 이상이 차지하는 '헤어진 후의 슬픔에 대한 노래'가 그중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노래'가 또다른 하나겠다. 그리고 커피소년은 후자이다. 그는 아직 자신이 혼자 사랑하는 여인과 이를테면 봄을 맞게된 것도 아니고, 그녀와 손잡고 거리를 걷는 과정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는 혼자 바라보고 혼자 사랑하고 혼자 속끓이고 혼자 애태우고 그렇게 혼자 자신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이 그의 앨범들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 1-1. Intro
- 1-2. 하루만 더
- 1-3. 혼자
- 1-4. 커피나무
- 1-5. 생일 축하합니다
- 1-6. 엔틱한 게 좋아(feat.타루)
- 1-7. 아껴둘게
- 1-8. 커피잔
- 1-9. 피베리
- 1-10. 니가 그리워
- 1-11. 블렌딩
물론 나는 짝사랑은 하지 않는것보다 하는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사랑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이 되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매우 많이 아프다고 해도, 그 감정은 그 감정 자체로 소중하니까. 게다가 커피소년처럼 음악을 하는 예술인이라면, 그 감정은 그 예술에 더할나위 없이 도움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도 마찬가지. 슬픔이 극에 달할 때 쓰는 글들이 감정이 찐득찐득 들어박혀 더 아름답게 느껴지곤 하지 않나. 커피소년의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는 아마도 이 1집앨범 『기다림』을 만들때즈음이 아니라, 그 전이었던 것 같다. 이번 앨범의 노래는 기존의 노래들만큼 좋거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중에 「사랑이 찾아오면」과 「그대를 내안에」는 정말이지 얼마나 좋았었는가! 정신줄놓고 들어가면서 내노래야 내노래야 했단 말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딱히 와닿는게 없다. 물론, 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 노래들을 듣던 당시에 내 감정이 극에 달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 노래들이 가슴을 후벼팠는지도 모른다고.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음악을 만드는 이와 듣는 이가 같은 크기의 감정으로 음악을 만들고 듣는건 아니니까. 그때의 나는 최강으로 그의 음악을 흡수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를 못하다.
이번 커피소년의 앨범을 들으면서 이십년전의 공일오비가 떠올랐고 에피톤 프로젝트도 떠올랐다. 그들의 감성이 묘하게 닮아있는듯해서. 나는 이번 앨범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앞으로 불러낼 노래들이 궁금해서 계속 그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다. 사실은, 그의 사랑이 궁금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커피소년에 대한 애정으로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그는 자신에게 글을 남기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남겨진 글들 모두 커피소년을 '오빠'라고 부르더라. 아....뭔가.....씁쓸한데? 나는 그의 나이를 모르지만, 모두가 오빠라고 부르는 그곳에 대고 '나는 누나란다' 라고 달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내게도 이성은 조금 있어, 참았다.
그의 이번 앨범 노래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너의 쓴 아픔은 내가 감싸줄게
너의 시린 눈물은 내가 닦아줄게
너의 그 웃음은 내가 지켜줄게
혼자이고 싶을 땐 먼발치에서 기다릴게
니가 쉬고플 땐 너의 집이 될게
니가 지쳤을 땐 너의 힘이 될게
맘이 식었을 땐 너의 낭만이 될게
혹시 니가 아플 땐 내가 대신 아파 줄게 -「블렌딩」中
일단 한숨한번 쉬고. 하아-. 앨범에 대한 태클을 걸려는 건 아니고, 이 노래를 듣다가 그냥 한숨이 났다. 이렇게 노래하는 커피소년의 마음을, 아니 세상의 모든 짝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물론 나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가 뭐가 되고 뭘 해주고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게 나의 짝사랑이라면, 상대로서는 전혀 기쁘지 않을수도 있다는 거다. 니가 왜 나를 감싸줘, 니가 왜 내 눈물을 닦아줘, 니가 내 집이 될 필요가 없어, 할 수 있단 말이다. 그냥 이건..뭐, 답답한 마음에 적어보는건데, 그러니까 상대의 집이, 힘이, 낭만이 되려고까지 굳이 노력하고 다짐하는 일들이 부질없다는거다. 그것조차 짝사랑하는 '내가' 원하는게 아닌가. 당연히, 그러다 지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뭐, 나로서도 루나가 노래했던것처럼 누군가의 '슬픔의 강'이 되려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던터라 이해안되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