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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페르 닐손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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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언제나 어른인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내 사랑이 언제나 더 현명해지는 건 아니었던거다.
여기, '그'가 있다. 미국에 있는 한 달 동안 스웨덴에 있는 그녀에게 열두 통의 편지를 보낸 그. 그녀가 그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던 그.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자신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그녀의 집에서 바지의 단추를 잠그며 나타나는 다른 남자를 보고, 그리고 그녀가 그의 침대에서 함께 누웠던 일을 '실수'라고 말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는 이제 파란 알약 한 통을 준비해놓는다. 그는 자신의 비극적인 사랑을 견뎌낼 수 없었으니까.
단순히 첫사랑이어서 이 사랑이 비극이었을까? 첫사랑이어서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쪽은 사랑이라 말하고 한쪽은 영원히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친구이길 원한다면 이건 어떤 식으로 결론지어져야 할까. 그는 알약통을 눈 앞에 두고, 그녀와의 추억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그리고 전화기를 바라본다.
분명 나도 사랑의 비극에 있어서 가해자가 된 적이 있다. 내가 아팠던 만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 그 모든 비극들속에 내가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만큼 누군가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비극들이 있기 전, 거기에는 햇살 찬란한 기억들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나. 우리는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상대를 용서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비극 역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말것이다. 사랑을 잊고 상대조차도 잊혀지는 순간들. 그건 십 대여도 삼십대여도 마찬가지. '햇빛 가득한 어떤 기억'(p.188) 이 그를 녹여준다. 그는 알약통을 눈 앞에서 치운다. 사노라면 다시 눈 앞에 알약통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통을 다시 치우게 되는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다. 햇빛 가득한 일들은 다시 찾아와서 켜켜이 기억으로 쌓일테니까.
그의 몸속에 있는 커다랗고 무거운 덩어리는 콘크리트로 된 것이 아니었다.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그의 햇빛 찬란한 기억이 덩어리를 녹이기 시작하는 지금, 그는 그 사실을 깨닫는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