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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애쉬톤 커쳐' 주연의 『나비 효과』에서 남자는 지금 일어난 나쁜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가서 그는 이 나쁜일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바꾸고자 한다. 그러면 시간이 흘러도 그런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그 원인을 바꿔도 반드시 다른 나쁜 일이 일어나고 그래서 그는 다시 조금 더 과거로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이 영화는 그간 애쉬톤 커쳐의 코믹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이미지를 보여줘서도 인상깊지만, 영화의 내용 자체도 꽤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지인에게 말을 했더니 자신이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그가 불행을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갔던게 단 한순간도 자기 자신을 위한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란다. 맞다, 그랬다. 그는 휠체어를 타게 될지언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 자꾸만 과거로 돌아갔다.
이 책,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은 내내 그 영화, 『나비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책 속에서 여자는 같은 날을 일곱 번 반복해 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처음에 일어났던 나쁜 일을 막기 위해 그 원인이라 생각했던 일을 고쳐나가려고 하는데, 다음날은 다른 나쁜일이 생기고 또다른 걸 바꾸면 다른 일이 벌어진다. 반복되는 마지막 날들을 보내면서 그녀는 감추어져 있던 가장 친한친구의 비밀을 알게되고, 좋아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그녀는 이제 자신과 또 죽음을 앞에 둔 다른 친구의 인생 자체를 구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단 하루만 반복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뽑을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쌓여 이루어진 지금이 어떻게 단 하루만에 뒤집힐 수 있겠는가.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겠다. 이 책의 결말은 중간 이상까지 이 책을 재미없게 읽었으면서도 꽤 여운을 준다. 잘했다고 해야할지 잘못했다고 해야할지 모를 그 결말. 잘했다고 할 수도 없고 잘못했다고도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곱씹어본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잘한것도 잘못한것도 아닌것 같지만, 나였어도 별 수 없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고 책 속의 여주인공 샘 보다 더 나은 결말을 낼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그보다 못한 결말을 진행시켰을것 같다.
매일매일 가야하는 학교와 직장이, 그 안에서의 생활이 지독하게 괴롭다면 죽음 말고는 다른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을까? 그게 유일한 방법일까? 그 괴로운 시간이 과연 언젠가는 끝이 날까? 인기를 끌기 위해 자신을 억지로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피해자도 고통스럽지만 가해자도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그들은,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혀야만 깨달을 수 있게 될까?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의욕이 너무 앞섰던 것 같다. 주인공들만 하이틴인게 아니라 작가도 하이틴인듯 느껴진다. 유머(혹은 발랄함)와 로맨스는 과장되어있다-처음엔 몇장 읽다가 그만둘까 싶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 바꿔 말하자면,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한 아이의 삶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 그 계기가 어떤 사소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 나이또래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때 가장 현실감있고 가장 설득력있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이 이야기는 말하여질 필요가 있었고 쓰여질 필요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의미가 있다.
죽음만이 끝낼 수 있는 고통이라면, 그것은 그 일에 연관된 모두에게 지독하게 끔찍하고 잔인하다. 그것을 큰 일로 받아들인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것을 사소하고 우습게 받아들인 사람에게도. 그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안다. 그게 문제다,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