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붕 뚫고 하이킥』은 내게 최고의 재미를 주고 있다. 이거 볼라고 집에 일찍 가고 싶을 정도다. TV보고 싶어서 집에 일찍가다니! 마지막으로 푹 빠졌던 프로그램은 『아메리칸아이돌 5』였으니, 아주 오랜만이다. 하이킥의 모든 캐릭터가 좋고 모든 스토리가 좋지만 요즘은 특히 세경이의 사랑이 싹트려는 시점이라 미칠듯 좋다.
세경이는 닥터(최다니엘-이름 너무 길어서 나 혼자 걍 닥터라 호칭함)네 집의 도우미인데, 이 닥터가 동정인지 연민인지 관심인지 모를 것들을 세경에게 보이며 아주 잘해준다. 그러니 의지할 사람이라곤 동생밖에 없는 세경으로서는-설사 의지할 사람이 많았어도 그랬겠지만-자꾸만 닥터에게 연정이 싹트는걸 어찌 막을수 있을까. 자꾸 자꾸 자라는 마음. 그런데 닥터는 세경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닥터를 마음에서 떠나보내고자 한다. 이 모든 장면장면들이 아, 정말 가슴 시리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러브라인이지만, 그래서 세경이의 아픈 마음이 아주 완전 잘 이해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경이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다.
그러다보니 사랑,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제럴딘 브룩스'의 『피플 오브 더 북』인데, 오오, 무릇 사랑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것이고 순간에 의한 것이렸다. 그러니까 짧고 뭉툭할 줄 알았던 그의 손이 길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에 시작되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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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얼룩덜룩한 카페 테이블 위에 쫙 펴놓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에게 무례하게 굴면서 내 소중한 양피지에 함부로 뭉툭한 손을 갖다 대지나 않을까 염려하던 순간에는 그의 손가락이 그렇게 섬세한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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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의 손이 섬세한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 다음의 식사나 그 다음의 대화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까? 모를일이다. 만약 그들이 사랑할 운명이었다면, 그러니까 사랑이 운명이라면, 그의 손이 어떠했던들 그녀는 처음의 이미지를 내다 버리고 그와 웃으며 식사를 나눴을지도 모를일이다. 어쨌든 그녀는 그의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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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가 손을 뻗더니 내 뺨에 묻은 기름 자국을 닦아줬다. 나는 웃음을 멈췄다. 그가 손을 치우기 전에 냉큼 잡아 그의 손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깔끔하고 가지런한 손톱에, 학자다운 손이 분명했다. 하지만 굳은살도 있었다. 포위 기간에는 땔감을 구할 수만 있다면 학자라도 장작을 패야 했을 것이다. 그의 손톱 끝은 내 뺨에 묻었던 양고기 기름으로 반짝였다. 나는 그것을 내 입술로 가져가 천천히, 하나씩 핥았다. 그의 녹색 눈은 나를 향해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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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이 섬세함을 알고, 그와 웃으며 식사를 하고, 그의 눈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 때, 얼마나 설레였을까. 그러나 사랑이 순간에 시작된다면 절망 역시 순간에 오는것인가 보다. 그녀는 그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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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흔들림을 멈추자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구상화가 보였다. 어느 여자와 아기의 초상화로, 물감을 두껍고 거칠게 칠한 그림이었다. 여자 몸의 굴곡에 아기가 조금 가려져 있었고, 그래서 아기는 안전하게 감싸인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몸은 아기를 향하고 있었지만, 침착하고 찬찬한 시선은 아름답고 진지하게 화가를,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멋진 그림이네요." 내가 말했다.
"네, 아까 말했던 친구 다닐로가 그려준 겁니다."
"저 여잔 누군가요?"
그는 이맛살을 찡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마치 건배하듯 잔을 들어 올렸다.
"내 아내예요." (p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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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그순간 그녀는 그의 아파트를 뛰쳐 나가야 했을까? 그 둘이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패쓰하고.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건데, 유부남에게는 유부남임을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표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 머리를 삭발한다든지, 온몸이 푸른색으로 변한다든지 하는. 결코 다른 여자들을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속일 수 없도록. 그러다가 그가 다시 혼자가 되면 머리도 확 자라고 푸른색이었던 몸이 다시 돌아오는거다. 그래야 세상의 불륜이 없어지지 않을까. 뭐, 이건 갑자기 딴말을 한거네. 여튼,
세경이의 사랑이 무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