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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세계 -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삶과 시대 ㅣ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전환의 시대와 젠더 번역총서 1
마리아 미즈 지음, 안숙영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5월
평점 :
마리아 미즈가 젊은 시절 인도에 가서 공부하고 그래서 제3세계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알고 보고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마리아 미즈 개인에게도 그리고 마리아 미즈의 책을 읽을 전 세계의 독자들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과 학생들과 만나 연대하며 자본주의에 맞서려 했던 것도, 또 필연적으로 반다나 시바와 이어지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그녀에게 찾아온 숱한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그녀가 사랑으로 인해 시야가 확장됐다고 생각하고 그 확장된 시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니, 그건 마리아 미즈 고유의 능력이다. 그 사랑 이후에 딱히 연애 이야기나 남자 이야기도 없어서 평생 싱글로 살았는가, 라고 생각할 무렵 지나가듯 '남편'의 존재가 언급되는데, 어? 결혼했었어? 그런데 왜 그 이야기가 없지? 하며 신기했다. 어떻게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쓰면서 이렇게 지나가듯 남편을 언급할 수 있을까. 내가 놓친걸까 설마,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연애와 결혼 혹은 사랑 자체가 그녀라는 사람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외로움은 찾아오고, 그래서 나중에 함께 살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남편과 아내이면서도 계속 다른 나라에 살면서 방학 때 만나고 그랬던거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만나온 다른 세계의 독립적인 여자들 때문에 가능했던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덜란드 여성들이 왜 항상 남자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싱글이든 기혼이든 이혼했든 그들은 늘 남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구 여성보다 훨씬 독립적이다. (한 아프리카 여성의 보고 중) -p.219
매 꼭지 마리아 미즈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이 놀랍고 감탄스러웠는데, 생명공학에 대해서는 좀 더 듣고 싶었다.
인공 수정은 불임 부부가 임신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업적으로 찬사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술이 인간 생명의 산업적 상업적 생산에 수문을 열 것임을 인식했다. 생명공학 산업에서 여성은 원재료, 즉 난세포와 자궁의 단순한 공급자('대리모')로 격하했다.
흐로닝언에서 미국 기자이자 작가인 지너 코리아는 '재생산 매춘'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여성들은 매춘을 통해 자신의 질을 남성들에게 팔거나 임대했다. 그들은 이제 '대리모'로서 자궁을 임대 또는 판매한다(Corea, 1984). 또한 그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처음으로 실험한 대상은 소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수의사가 불임인 소의 임신을 돕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송아지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가와 관련한 것이었다. 이 기술로 자연의 순환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지너 코리아가 "처음에는 소, 다음에는 당신"이라고 지적했듯이 말이다. -p.229
나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존재한 문제-비자발적 무자녀-를 기술 혁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기를 지금도 거부한다. 몇 가지 선택만 예로 들더라도 인간은 좋은 이웃 관계를 통해 친족이나 혈연으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은 아동의 입양과 같이, 불임에 창의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친자녀르르 갖고자 하는 욕구는 자본주의 핵가족에 존재하는 일종의 재산(財產)사고를 반영한다. 새로운 생명공학 및 제약 산업이 이득 증가를 기대하며 아이를 '갖고자'하는 욕구를 강하게 뒷받침했다. -p.230
그러므로 마리아 미즈는 파이어스톤에 반대한다. 반자본주의, 반가부장제를 주장하는 그녀의 책들도 너무 좋았지만, 인공 수정과 비자발적 무자녀에 대한 이야기, 파이어스톤에 반대하는 이야기도 좀 길게 그리고 더 자세히 써준 책이 있다면 좋겠다. 그거 너무 읽고 싶은데!
남편인 사랄에 대한 이야기중 벵골에서는 남자들을 교육시켰지만 여자들은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언급한다.
사랄은 교육, 특히 아들에 대한 교육에 큰 가치를 두는 콜카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보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점검했다. 당시 벵골에서 딸은 결혼할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p.202
위 이야기에서 영화 [굿모닝 맨하탄] 생각이 났다. 영화 속에서 남편도 그리고 아이들도 다 영어를 할 줄 아는데, 주인공인 여자만 영어를 하지 못한다. 자기들만 교육 받아 영어를 할 수 있었으면서, 그러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내를 비웃는 남편이라니. 딥빡이 오는데, 그런 그녀가 조카 결혼식 때문에 뉴욕에 가게 되고, 거기에 머무르면서 영어를 못해 참담한 기분을 느끼게 되자, 짧게나마 영어 연수를 받으러 다니는거다. 결국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조카의 결혼식에서 당당하게 영어로 축사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모로부터 축사를 듣고 싶다는 조카에게 여자의 남편은 '그녀는 영어를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데, 그러나 여자는 공개적으로 영어로 축하를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사실 배우게 한 것도 아니면서 배우지 못한다고 무시하는 남편하고 계속 남편과 아내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의문인데, 영화에서 여자는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진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자신의 가정을 유지하며 잘 살기를 보여준달까.
결혼할 여자에게 영어는 필요없고, 그러나 남자에게는 옥스퍼드도 케임브리지도 허락되는 세상이라니. 징그럽다. 이게 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때문이다.
마리아 미즈 진짜 엄청 열심히 살았다.
공부하러 인도로 가고 가르치러 네덜란드 가고 연대하러 미국 가고. 머릿속에 어떤 답이 떠오르면 그걸 말로만 내뱉는게 아니라, 실제 자신의 행동으로 그 말을 바로 증명해버리는 사람. 진짜 너무나 대단하고, 심지어 아파서 집에서 쉬게 되었을 때에도 이웃 아이들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정말이지 살아생전 자기 자신을 불살랐던 것 같다. 연대하고 조직하고 행동했던 마리아 미즈의 모든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도 비슷한 공포의 경험을 했다. 패전한 독일군은 동쪽으로 후퇴하면서 ‘적‘이 손댈 수 없도록 모든 것을 파괴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군마를 죽여 가죽을 벗겼고(가죽은 여전히 유용했다) 그 사체를 마을로 끌고 가 V-1 로켓이 들판에 남긴 구덩이에 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놀랍도록 따뜻하던 1945년 봄 동물 사체가 썩는 지독한 냄새가 피어나는 풍경 전체를 오염시켰다. 이것은 내가 전쟁 중에 경험한 최악의 잔학 행위였다. - P65
그런데 이런 일이 저절로 일어났을까?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 "삶은 어떻게든 계속될 거야"라고 혼잣말만 하지 않았다. 또한 기독교인 농부의 아내지만 "주님께서 베풀어주시겠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살기 위해 자연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소망, 열정, 철학이었고 그녀에게 용기와 활력을 주었다. - P69
나는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 방법론과 인도의 농민 반란에 관한) 첫 글과 책을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썼고 영어권 출판사에서 이를 출간했다. 인도 농촌 여성의 자급 생산에 관한 내 연구 결과의 경우 영어로는 나왔지만 현재까지도 독일어로는 출판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찍부터 영어권에 이름을 알렸고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그리고 물론 인도로 초청을 받았으며, 인도에서는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정기적으로 방학을 보냈다. - P192
비가시 경제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숨기고 무시하는 다양한 층위의 노동으로 구성된다. 혹은 자연에서 비롯한 새산과 같은 자유재로 정의한다. 이런 층위는 ‘수면‘ 위의 경제, 즉 공식 부문의 화폐나 자본 경제와 근접성에 따라 아래서 위로 정렬한다. - P193
사실 나는 결혼을 원치 않았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결혼을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랄도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혼인 신고 없이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이는 우리의 관계까 장거리로 제한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아내로서 인도로 영구 이주하거나 인도에서 의존적 아내로 살기 위해 독일의 유급 일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정치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나라로 이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친구들이 제국주의 국가에서 왔다고 나를 비난했을 것이다. 나는 서구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그들의 억눌린 증오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고 이를 매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결혼 후에도 독일에 머물며 1년에 한두 번 사랄만 방문하기로 한 이유였다. 사랄 또한 인도를 떠나 독일로 이주하기를 원치 않았다. - P202
사랄은 교육, 특히 아들에 대한 교육에 큰 가치를 두는 콜카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보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점검했다. 당시 벵골에서 딸은 결혼할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나중에 사랄은 "내 아들 한 명은 케임브리지에 보내고 다른 한 명은 옥스퍼드에 보낼 거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인용하곤 했다. - P202
그는 흥미로운 지적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럽 언어를 배우자는 생각을 떠올렸고, 우연히 독일문화원 콜카타 분원에서 열리는 6개월짜리 독일어 강좌 광고를 접했다. 사랄은 이 강좌에 등록해 퇴근 후 저녁에 3년간 독일어를 배웠다. 그 뒤 독일 연방정부 장학금을 받아 독일어 교사가 되기 위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수혜 조건 중 푸네 독일무화원의 강좌 3개월 수강이 있었다. 1963년 그는 내가 맡은 첫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받은 장학금에는 독일문화원 뮌헨 본원의 독일어 교사들을 위한 심화 과정도 포함되었다. 1966년 여름 그곳에서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하이데라바드 독일문화원의 독일어 교사직에 부임했다. - P203
나는 네덜란드 여성들이 왜 항상 남자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싱글이든 기혼이든 이혼했든 그들은 늘 남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구 여성보다 훨씬 독립적이다. (한 아프리카 여성의 보고 중) - P219
나는 1976년 결혼한 이후 남편을 여름방학 때나 그가 나를 보기 위해 인도에서 네덜란드로 왔을 때만 만났다. 때때로 혼자 모래 언덕을 따라 돌아다니거나 해변을 산책하면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자묺ㅆ다. 어느 시점엔가 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매우 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사회과학연구소는 내가 독일에서 누리던 종신 교수직을 주는 것을 고려조차 않고 있었다. 1981년 계약기 끝나자마자 독일로 돌아가 쾰른응용과학대학교에 복직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사회과학연구소에 세계 최고의 여성학 프로그램을 구축해놓고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말이다. 1982년에는 남편이 하이데라바드 독일문화원의 보수가 좋은 교사직을 그만두고 독일로 와 나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쾰른에서 같이 살고 있다. - P226
인공 수정은 불임 부부가 임신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업적으로 찬사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술이 인간 생명의 산업적 상업적 생산에 수문을 열 것임을 인식했다. 생명공학 산업에서 여성은 원재료, 즉 난세포와 자궁의 단순한 공급자(‘대리모‘)로 격하했다. 흐로닝언에서 미국 기자이자 작가인 지너 코리아는 ‘재생산 매춘‘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여성들은 매춘을 통해 자신의 질을 남성들에게 팔거나 임대했다. 그들은 이제 ‘대리모‘로서 자궁을 임대 또는 판매한다(Corea, 1984). 또한 그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처음으로 실험한 대상은 소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수의사가 불임인 소의 임신을 돕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송아지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가와 관련한 것이었다. 이 기술로 자연의 순환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지너 코리아가 "처음에는 소, 다음에는 당신"이라고 지적했듯이 말이다. - P229
나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존재한 문제-비자발적 무자녀-를 기술 혁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기를 지금도 거부한다. 몇 가지 선택만 예로 들더라도 인간은 좋은 이웃 관계를 통해 친족이나 혈연으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은 아동의 입양과 같이, 불임에 창의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친자녀르르 갖고자 하는 욕구는 자본주의 핵가족에 존재하는 일종의 재산(財產)사고를 반영한다. 새로운 생명공학 및 제약 산업이 이득 증가를 기대하며 아이를 ‘갖고자‘하는 욕구를 강하게 뒷받침했다. - P230
어떤 동성애자 여성들은 재생산 기술을 통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녀를 갖고 싶은 소망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면 가부장적 기술에 의존핟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파리다 아크테르, 인도의 요츠나 굽타(Jyotsna Gupta), 나는 소위 제3세계의 인구 통제 방법과 재생산 기술에 사용하는 방법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인종 차별과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에서는 여성이 가능한 한 적은 수의 자녀를 가져야 하는 반면 서구 국가의 백인 여성은 이 기술을 이용해 더 많은 자녀를 낳아야 한다. 제약 회사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막대한 이익을 기대했다. - P230
이 대회(유전자 및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목적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 여성으로 서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유전자 기술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경로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 P231
나를 비롯해 많은 여성이 여전히 자신에게 묻는다. 만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면 왜 착취, 억압, 차별, 구타 학대, 강간을 당하는가? - P258
개인이 그 혹은 그녀 고유의, 삶에 대한 주권을 되찾을 어떤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은 채 소수의 최상위 엘리트에게 세계인의 일상생활을 직접, 깊이 좌우하는 권력을 주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가 된다. - P293
우리가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유일한 대안은 폭력과 전쟁에 굴복하고 제한 없는 상품 생산과 자본 축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종교의 신은 자본 정확히 말하면 가부장적 자본이다. 이 신은 보이지 않고(그렇다고들 말한다) 불멸하고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며 영원히 성장해야 한다. 그는 삶의 근원이며 이 기업 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만큼 분명했던 적은 없다(Mies, 2005a 참고). 이 신은 교회-은행과 기업 본사-는 물론이고 신학자와 성직자도 거느린다. 바로 경제학자, 과학자, 기술 관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은행가이다. 그들은 이윤을 남기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 이 종교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조에 기초하는데,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하는, 돈과 이윤의 무제한 증가라는 신조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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