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책이다. 사색과 서정으로만 가득한 게 아니라 의외로 유머도 있다.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과 방법이 이렇게나 다채롭고 많다니...

밑줄 그은 부분은 근래에 가지게 된 내 삶의 자세와 일치하는 문장이다. 지금 나는 대벌레나 비버처럼 살고 있는지도...


내가 대벌레와 비버에 매료된 이유도 이들이 두 가지 욕망을 쉽게 충족해내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생물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주변과 공존하면서 어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조용히 순응하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인간성의 척도는 세상에 우리를 얼마나 드러내느냐가 아니라 우아하고 조화롭게 우리 자리를 찾는 것에서 비롯될지 모른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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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야심만만한 미래의 정치인들이 경호팀장(일반인이자 미래의 일반인)의 호감과 지지를 어떻게 잃어버리는지 읽다가 웃음이 터졌다.

트럼프도 결국은 정치의 변함없는 원칙 중 하나를 잘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그 원칙은 지적 역량과 정치 지능이 사실상 무관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똑똑하기 그지없지만 정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이쪽 분야 전문가, 정치학자, 실무 담당들조차 그럴 수 있다. 반면 트럼프처럼 글과 담쌓고 살아도 시대정신에 쿵짝을 맞추는 능력은 가히천재적인 사람들이 있다. - P98

이러한 환경에서 수재들은 대체로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이 똑똑이들이 절대로 자기 손으로 미늘창을 쥐고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게임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가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인데 말이다. - P101

빌 클린턴과 오바마의 오른팔이었던 존 포데스타‘가 젊은 피렌체 시장과 그의 서기관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포데스타는 활발하고 기민하며 조깅을 많이 해서인지 마른 몸집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전국 차원의 선거 운동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했다. "출마하기에 좋은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그냥 좋은 때이기를 바라면서 뛰어드는 거죠." 그 말이우리에게 한동안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 P101

만찬이 끝나고 로카 대위는 기운을 차리기 위해 호텔바에서 위스키를 한잔하면서 자신이 겪은 고초를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러한 진행에 당황했지만 초기의 얼떨떨함을 극복하고서는 그럭저럭 잘 넘어갈 것 같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나 자신"이라고 대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대답했더니 다른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비난조로 한마디씩 하고 ‘진행자‘조차도 그에게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 아니냐고 했다나.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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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인지 비평인지, 에세이인지 칼럼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장르의 책이다. 픽션은 아니라 하니 논픽션임에는 분명하다.

기다리든가 달리든가 둘 중 하나, 중간은 없다. 그것이유엔 총회의 리듬이다. 게다가 정치의 일상 리듬도 마찬가지다. 지루해 죽을 것 같다. 우디 앨런의 말마따나 성공의90퍼센트는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차지한다. 그곳에 현존하기, 그러다 가끔 한 번씩 들입다 뛰어야 한다. - P28

더욱이 사실상 남성의 몸밖에 없다. 유엔 총회 발언자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담화에서 이러한 현실을다시 한번 개탄했지만 단기적으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않다. 유엔 자체가 여성을 사무총장 자리에 앉힌 역사가 없다. 게다가 이 자리에 와 있는 남성들이 어디 보통 남성들인가. 정치가 수단만 달리하는 전쟁의 지속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싸움에서만 생의 의미를 찾는 가장 폭력적인 성격의소유자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당연하다. - P29

혼돈이 어느 단계를 넘어가면 질서를 재정립하는 유일한 수단은 희생양을 확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두머리는,
그가 누구이건 간에 늘 대기 중인 희생양이다. 톨스토이는그를 ‘도살장에 보내기 위해 살을 잘 찌운 숫양‘에 비유했다. 승리, 국민들의 복종, 권력, 행운에 힘입어 토실토실 살이올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를 추대했던 바로 그 힘에 의해도살당한다. 나는 젤렌스키가 그러한 운명을 피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치의 법칙을 벗어나는 예외는 극히 드물다. - P38

여론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포퓰리스트들이 뭐라고 떠들든 간에 정치도 엄연히 직업이다. 심지어 가장 힘든 직업 축에 든다. 정치는 끊임없이 조롱당하고 바보취급을 당할 위험에 특히 바보가 아닐 때는 더욱더노출되는 활동이다. - P41

요즘은 공격이 방어보다 싸게 먹힌다. 그쪽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심지어 이 비용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미래에는 일부의 주장대로 개인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망까지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병원체를 만들어 내는 DNA 합성기가 약 2만 달러, 중고차 한 대 값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전망이 그리 먼 미래 같지도 않다.
챗지피티 제작사 오픈에이아이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4년 가을에 발표한 최신 모델은 인공 지능이 화학적·생물학적 무기, 방사선 무기, 핵무기 등의 제작에 악용될 위험을 상당히 높였다. 오픈에이아이는 기업 자체 내 등급표에서 그러한 위험을 가장 높은 단계로 분류하고도 제품을 그대로 시장에 출시했다. 하지만 어떤 규제 당국자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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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 깃든 숨은 의미들.
식물과 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질서와 분류와 기준 따위는 개의치 않는 씩씩한 식물들.
그리고 시민에 준하는 분류기준을 부여받은 식물들.
자연과학에 깃들어 있는 의인화와 인간중심주의적 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 관련 책 가운데 한 권의 첫페이지에서 리처드 메이비Richard Mabey는 잡초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계획에, 혹은 우리가 세상을 그려놓은 단정한 지도들에 훼방을 놓는 식물." 이 표현에는 여러 가지의미가 담겨 있다. 두 구절에 모두 들어가 있는 "우리"라는표현에, 혹은 우리가 이런 식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는 "훼방을 놓는"이라는 표현에 주의를기울여보자. "세상을 그려놓은 단정한 지도들"은 언제나 내눈에 띄는 구절이었다. 우리는 지도 위에 경계를 긋지만, 식물 대부분은 그 경계를 기꺼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멧돼지풀은 근처 황폐한 땅에서 경계를 넘어 점점 더 사람들로 붐비는 보도 가장자리로 몰려들고 있었다. 몇몇 개체는 해크니 습지까지 건너갔는데, 그곳은 여름이면 지역 주 - P149

민들이 리강 강둑을 따라 발을 담그는 곳이었다. 씨앗들은바람과 강물에 의해 퍼졌고, 그러면서 방치되고 사용되지않는 부지로부터 최근에야 올림픽 유치로 인한 투자 붐 때문에 부동산 투자자들이 차지하기 시작한 영토로 나아간것이다. - P150

훗날 《잡초Weeds》의 서문에서 메이비는 또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잡초는 그저 "엉뚱한 곳에 있는 식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흔히 쓰이는 표현이면서,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먼지‘에 대해 내린 간명한 정의‘ㅡ"제자리에서 벗어난 물질"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더글러스는1966년 《순수와 위험》에서 위생과 관련된 의식을 갖춘 - P151

사회는 -즉 무언가가 더럽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회는 -환경을 체계화하는 작업에참여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 속에 통일성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작업이다. 더글러스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원시‘와 ‘토착‘ 같은 민족지학적 용어들을 통해 유럽 사회의 규범과 다른 사회의 규범을 대조한다. 하지만 이내 분명해지는 건 ‘순수‘와 ‘위험‘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사회적 신념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152

•제자리를 벗어난 식물을 이해하기 위한 질서의 요구는19세기 들어 특히 강렬해졌다. 식물 수집은 그 세기에 정점에 이르렀고, 새로운 종의 도입으로 전 세계의 풍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847년 식물학자 휴잇 코트럴 왓슨Hewett Cottrell Watson은 《영국의 키벨레 Cybele Britannica》를 출간했다. 이 식물지는 그가 식물 분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범주를 명시한 책이다. 왓슨은 케임브리지의 식물학자 존 헨슬로의 연구에 기반해 영국의 식물을 자생종,
귀화증, 정착증, 외래종 혹은 미상층(식물의 상태가 알려져있지 않다는 뜻)으로 설명했다. 골상학, 즉 두개골 형태에따라 인간의 능력을 예측하는 인종차별적 유사과학의 실천자로도 알려진 왓슨은 과학을 하기로 마음먹기 전에는 법률을 배우는 견습생이었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용어 가운 - P156

데 세 가지 - 자생종, 외래종, 그리고 이 둘의 중간 상태를뜻하는 귀화종-는 시민권법의 언어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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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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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최종 문장까지 읽으면 10장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기술과 진보. 그리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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