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 <1922> 는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이야기다. 심지어 아들에게 엄마를 죽이는 걸 도와달라고까지 말한다. 아내의 죽음을 수사하러 온 보안관은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네도 이미 알겠지만, 나는 직감만 믿고 찾아온 게 아니야. 부부 사이의 문제야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 당연한 거 아닌가? 성서에도 나와 있잖아,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니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남편에게 배워야 한다고. 고린도전서 말씀이지. 성서가 내 보스라면 난 성서 말씀대로만 행할 거야. 그러면 인생도 참 단순해질 테니까." (p.85)
"자네도 알겠지만, 여자들하고는 가끔 입이 아니라 손으로 대화를 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 정신을 차리거든. 세상에는 흠씬 얻어터져야 고분고분해지는 여자들이 있어. 그러니 잘 생각해 봐." (p.95)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연히 이 부분에서 화가 났고, 여성혐오는 세계 공통이구나, 생각했지, 이것이 미국의 특수한 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아내폭력을 저지르는 것,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폭행하는 것, 심지어 살인하는 것이 어디 미국의 문화라고만 볼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도 매일 기사 나잖아? 미국이라고 별 다를 바 있나. 게다가 세계 곳곳의 소설과 비소설을 읽어도 우리가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이야기 아니던가.
그런데 내가 이걸 미국의 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여성에 대한 살해나 폭력을 때로 터키의 문화(혹은 인도) 로 생각했다는 것을, 이번달 여성주의 같이읽기 책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58페이지의 인용문 덕분이었다.
우마 나라얀(Uma Narayan)은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미국에서 미국인에 의해 발생하는 가정 폭력은 미국의 특수한 문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인도인의 결혼 지참금(dowry) 관련 살인은 '문화에 의한 살인'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했다(Narayan, 1997: 85ff). -p.58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같이 태워 죽이는 사티 같은 제도가 인도에만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가정 폭력과 크게 다른가? 이 책에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독한 가부장제 문화와 여성혐오 문화가 만든 것이잖아? 특별히 어느 나라가 더 후졌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여자가 남자 손에 죽어나가는데?
책은 내가 기대한 것처럼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잘 다뤄주고 있어서 감탄하며 읽고 있다.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이 어긋나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해야 할지 어렵고 이 주장에도 고개 끄덕여지고 저 주장에도 그렇지 하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아, 이렇게 해도 반박이 있고 저렇게 해도 반박이 있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면서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그리고 페미니즘- 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반갑고 다행이라 생각되고.
읽기에 어렵지 않은 책이니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제8장은 유럽의 가장 큰 소수민족 집단으로서 동유럽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로마 공동체인 이른바 집시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문화주의와페미니즘의 갈등을 살펴본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가부장적 구조와젠더화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문화가 심각하다. 따라서 로마의 전통문화를 인정하는 동유럽 국가들의 다문화주의 정책 속에서 로마여성은 오히려 인종, 젠더, 빈곤 등 여러 차원의 중층적 차별 또는 킴벌리크렌쇼(Kimberle Crenshaw)가 말하는 교차적 차별에 놓여 있음이 연구를통해 제시된다. 문화적 자율성의 보호라는 다문화주의의 미명 아래 로마공동체에서 자행되는 로마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 관행이 묵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근거 삼아 로마 문화를 모두 야만적인 것으로치부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간에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적절한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로마 공동체의 경우에는 특히 긴요한 과제로 나타난다. - P12
캘리포니아에서 라오스 출신의 한 미국 여성이 그녀의 직장인 프레즈노 국립대학에서 납치된 후 원치 않는 성교를 강요당했다. 범인은 몽족 이민자(베트남전쟁 말기에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탈출한 보트피플 중 한 부류) 였는데, 그는 자신이 속한 부족사회에서 이러한 행위는 신부를 선택하기 위해 흔히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고 진술했다. 그는 120일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희생자는 900달러의 배상금을 받았다(Benhabib, 2002: 87). 자세한 내용은 제3장 참조. - P27
이 사건(하툰 살해-명예 살인- 사건)에서 가장 기본적인 갈등은 터키 이민자 가족 내부의 갈등이다. 가부장적 질서를 체화한 남성 가족 구성원과, 가부장적 질서에 기초해 부여된 가족 공동체 내의 역할과 규칙을 거부하고 공동체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가려하는 젊은 여성 사이의 갈등이다. 여기에는 명확한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가부장적 권력은 한 여성을 살해함으로써, 즉 자기 집단 내부의 규범에 복종하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한 인간을 없애버림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려 했다.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은 가부장적 사회의 지배적 규범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누나 혹은 여동생에게 사형을 집행한 것이다. - P29
터키에는 명예살인을 금지하는 법이 있으며, 이 법은 2004년에 강화되었다. 연극을 통해 명예살인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예술가가 있으며, 명예살인에 관한 실태조사를 벌여 이슬람 여성운동의 자료로 활용하는 카메르(Ka-Mer) 같은 여성 단체가 존재한다. 즉, 터키에는 명예살인과 같은 가부장적 지배 문화가 존재하는 한편, 이에 대한 저항 문화가 있다. 또한 여성들 나름의 문화가 있다. 저항 문화는 터키 문화가 아닌가? 왜 명예살인은 터키 문화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저항 문화 혹은 여성의 문화는 터키 문화에서 배제되는가? 왜 이러한 문화는 터키 문화를 생각할 때 떠오르지 않는가? - P33
스웨덴의 이민정책은 평등, 선택의 자유, 파트너십이라는 세 가지 주요목표로 압축된다(Westin, 2006). 첫 번째 목표인 평등은 스웨덴의 장기 체류 이민자들이 복지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포함해 스웨덴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인 선택의 자유는 이민자가 사적인 삶의 공간에서 스웨덴 주류의 삶의 방식에 동화될지, 모국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따를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파트너십은 이민자가 어떠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건 스웨덴의 핵심적인 가치·규범과는 대립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 P49
우마 나라얀(Uma Narayan)은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미국에서 미국인에 의해 발생하는 가정 폭력은 미국의 특수한 문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인도인의 결혼 지참금(dowry) 관련 살인은 ‘문화에 의한 살인‘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했다(Narayan, 1997: 85ff). - P58
이처럼 이민자의 모국 문화에 낙인을 찍고 그것을 명예살인의 주요 요인으로 간주하는 문화 이원론자의 관점에 대한 대안적 관점으로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특정 공동체의 문화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 가부장제 때문이라는 입장이 제기되었다(Meetoo and Mirza, 2007: 188). 보편주의자의 시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서구 국가든 비서구국가든 어디에서나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에 오로지 비서구 국가 여성이 폭력의 희생자이며, 비서구 국가의 남성만이 폭력 가해자라는 편견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므로 보편주의자들은 이민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동일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정책의 보편적 적용을 강조한다. 이러한 보편주의자의 시각은 앞서 언급한 스웨덴의 보편적 평등 원칙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스웨덴의 명예살인 논의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 결과 스웨덴 정부는보편주의적 입장을 토대로 명예살인 대응 정책을 수립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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