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씽맨
캐서린 라이언 하워드 지음, 안현주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두살에 자신의 집에 침입한 연쇄살인범에게 부모님과 여동생을 모두 잃은 '이브 블랙'은 그 후 할머니와 둘이 살아오면서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혹시나 '그 여자애'라고 알아볼까 두려워 길게 대화를 지속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그 사건 후 이십년이 지난 뒤, 그를 잡고자 한다. '이십년 전의 생존자였던 '그 여자애'가 지금은 그 범인을 잡을 '그 여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은 이 소설을 시작하기에 가장 근사하고 또 유일한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던 짐 도일은 쇼핑센터의 경비로 근무하면서 '낫씽맨'이란 제목의 책이 새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도대체 그 때 그 어린 생존자가 어떤 글을 써낸걸까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점 더 과거의 그 때로 돌아가고 게다가 그간 잠잠했던 자신안의 폭력성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낀다. 나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죽여야 한다!



문장이 매끄럽게 잘 읽히기도 하고 내용도 재미있어서 잘 읽히는데, 무엇보다도 시종일관 하나의 주제를 반복해 얘기해주는 점이 좋았다. 간혹 연쇄살인범들에게 매혹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은 루저이며 실패자라고.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연쇄살인범이 연쇄살인범의 이름을 갖기 전,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낫씽맨이라는 생존자의 수기를 써낸 이브 블랙이 하는 말이고, 이브 블랙이 찾아간 범죄학 교수가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그 말을 이렇게 매끄러운 문장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읽노라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며칠전에도 어김없이 이십대의 남자가 몇개월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 살해했다는 기사(‘여친’ 엄마 있는 원룸에서 여친 화장실로 데려가 살해한 20대 (naver.com))를 읽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폭력과 살인은 정말이지 매일매일 기사로 쏟아져 나오는데, 그 남자들은 이 책 속의 이브 블랙이 언급한것처럼 그렇게 여자친구를 죽여서 살인자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는 직업이 없었고 여자친구에게 다시 사귀자고 했지만 거절의 말을 들었다. 화장실 바깥에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있었는데도, 그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 숱한 일들 중에서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여자친구를 죽이는 데 썼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범죄자가 되었고 살인자가 되었다. 그가 몇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후에는 전과자가 된다. 그 자신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이브 블랙의 말처럼, 캐서린 라이언 하워드의 말처럼,  내 앞의 여성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여성을 죽여야 하는,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인으로서도 실패했고 남자친구로서도 실패했으며 이브 블랙의 말처럼 좋은 아들이 되는 것도 실패했다. 모든 실패를 다 뒤집어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였고 그일 것이다. 


더불어, 열두살의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해야 했던 이브 블랙에게 친구가 했던 조언을 모든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네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그 때의 너의 나이가 된다면, 그 아이가 얼마나 어린지 그제야 알 수 있을 거라고. 그 어린아이가 뭘 할 수 있었을 것 같냐고. 이 세상의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가혹해서는 안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주 오랜 시간 가혹했던 바, 이런 조언들을 소설 속에서 만날 때면 어쩔 수 없이 위로를 받는다.



당연한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해주는데 그게 전혀 지겹지 않고 또 재미있는 소설이다.



짐 도일의 삶을 짧게 축약하자면, 그는 전반적으로 별 볼 일 없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시도한 모든 일에 실패했다. 군대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경찰에서 진급에도 실패했고 경비로 일했던 슈퍼마켓에서조차 해고당했다. 내가 아는 한, 그가 죽은 날 아내의 얼굴에 난 상처들은 또한 그가 남편으로서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의 딸이 남은 생을 그가 진정 누구였는지 알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또한 아버지로서의 실패도 보장한다.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그를 싫어했고, 육체적으로도 그는 전성기를 한참 지났다.

반대되는 정보가 부재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범죄 동기는 전형적연쇄살인범 동기 1번, 여성 혐오인 듯하다. 그가 여자들을 싫어한 이유는 그들이 그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조차도 평범하다. 닥터 위어가 지적했던 대로, 낫씽맨은 연쇄살인범에게 특히 잘 맞는 이름이다. "그를 찾아내면, 아마 그가 사실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에 대해 충격받게 될 거예요."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녀가 옳았다. -p.352





"사실, 한번은 그가 실제로 물리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동안, 그 개가 그저 가만히 앉아 보기만 한 적도 있어요. 마치 그에게 어떤 초능력이, 어떤 흑마술적인 것이 있어서 우리와는 별개의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는 그 개들을 조종할 수 있었어요. 어쨌든, 그렇다고들 생각했죠. 하지만 그가 잡혔을 때, 그는 절도 혐의로 잡혔고 그가 훔쳤다는 물건들 중에는 개를 쫓는 기피제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거였던 거죠. 그게 다였어요. 그에겐 특별한 힘은 전혀 없었어요. 그 남자들 중 누구도요." - P163

그녀는 이제 점점 더 크게 말하고 있었다. 더 강해 보였고, 자신의 요점을 명확히 하려고 팔을 휘둘렀다. "우리는 그들이 잡혔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아는 겁니다. 이 남자들은, 그들은 살면서 다른 어떤분야에서도 무엇을 성취하거나 특별히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그들은 따분하고 별 볼 일 없는 실패자들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 점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낫씽맨 역시 그렇다는 걸요. 경찰은 그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그렇게 부르지만, 저는 그것이 그의 실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낫씽. 별 볼 일 없는 사람, 실패자. 그리고 저는 그의 정체를 밝혀서 그 점을 증명하고 싶어요." - P163

"연쇄살인범에 매혹되는 건 괜찮아요." 그녀는 수업이 끝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내게 말했다. "나도 그러니까요, 분명히. 그들은 매혹적이죠. 우리와 똑같이 평범해 보이는데 우리는 결코, 절대 하지못할 짓을 저지르니까. 하지만 그들은 특별히 지적이지 않아요. 경찰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죠. 데이비드 버코위츠 알아요? 샘의 아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한 범죄 현장에서 주차 딱지를 떼는 바람에 잡혔죠. 그들은 지루하고, 평범한 실패자들이에요. 우리 모두가 10대쯤이면 그럭저럭 익숙해지는 세계에서 제대로 생활하지도, 사랑하지도, 자기들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하는 남자들 항상 남자들이지는 않지만 주로 남자들 - 이고요. 이들은 흑마술사가 아니에에요. 특별한 기술이 있지도 않죠. 사람들은 그들이 잡혔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이름들을 안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아요. 사실, 그들에게서주목할 유일한 부분은 그들이 세상에서 앗아간 것들이죠. 그 희생자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그들의 이름이에요." - P293

나는 닥터 위어에게, 그녀가 아는 사실을 바탕으로 낫씽맨은 어떨 것 같은지 물었다.
"맙소사." 그녀는 말했다. "나한테 소위 ‘프로파일링‘을 시작하게하지 마요. 하지만 이 말은 할게요. 그는 지루할 거예요. 지루하고평범하고 별 볼 일 없고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죠. 결혼생활도 대단치 않을 거예요.
정말로 잘하는 것도 없을 테고, 너무나 지루하고 성취감 없는 직업을가졌을 테고요. 그런 직업으로는 암 치료도 못 하겠죠. 근본적으로,
그는 사람들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다지 보잘것없을 거예요. 낫씽맨은 연쇄살인범에게 특별히 잘 들어맞는 이름이에요, 이브, 그를 찾아내면, 아마 그가 사실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에 대해 충격받게 될 거예요." - P297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1-17 09: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도 넘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번엔 좀 제대로 처벌했음 좋겠어요. 우발적이니 초범이니 어쩌고 하면서 감형하지말고. ㅜㅜ

다락방 2022-01-17 09:45   좋아요 6 | URL
오, 영화 생각은 안해봤는데 정말 영화로 만들어져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도 있을테고요.
아 정말 매일 쏟아지는 여성살해 기사가 지긋지긋해요 ㅠㅠ

독서괭 2022-01-17 10: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연쇄살인범에 대한 우상화? 같은 게 좀 있죠. 그걸 정면으로 넌 낫씽맨이야 하며 반박하니 속 시원할 것 같아요!
저 여친살해 사건 넘 충격적이었어요. 그 엄마는 어떡하나요 ㅠㅠ

다락방 2022-01-17 15:00   좋아요 0 | URL
독서괭 님, 저도 그 기사 보고 살해당한 여자도 원통하지만 이 엄마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집에 가서 엄마랑 그 기사 얘기하면서 ‘엄마, 그 엄마는 이제 어떻게 살아‘ 하고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요. 나쁜놈도, 죽인놈도 남자친구인데 자책하고 괴로워하는게 엄마의 몫일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요. 어떡해요 ㅠㅠ

공쟝쟝 2022-01-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증명하기 위해서 실패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녀들을 죽이는 것인가. 그녀들은 고작 실패자들에게 도망치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가.

다락방 2022-01-17 14:59   좋아요 0 | URL
그들은 그것을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모지리들인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낫씽맨은 ‘너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존자의 메세지에 분노로 떨어요. 아 나는요 쟝님, 열등감 있는 남자들이 너무 싫어요... 너무 찌질해. 내가 뭘 못한다, 열등하다, 못났다 생각하면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더 잘해서 더 나은 내가 될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잘난 너를 안잘났다고 가스라이팅 하자, 혹은 잘난 너를 없애버리자! 이래버려요. 세상 븅신들이야 진짜...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