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드의 뒷부분을 조금 남겨둔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들떴다. 일전에 ㅂ 님 서재에서 '순대와 와인이 잘어울린다'는 글을 보고 바로 그 날 순대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었는데, 바로 어제! 그것을 먹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마침 집에 혼자 있게 되었고, 아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혼술의 시간, 게다가 재미있는 요 네스븨 소설과 함께라니. 너무 씐났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스콘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휴지시킨 뒤에(왜?) 냉장고에서 순대를 꺼내 시키는대로 끓는물에 15분을 끓여냈다. 그리고 책을 펼치고 와인을 따라서 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씐난다!
나는 그렇게 따뜻한 순대와 와인을 먹으면서 히융히융 좋구먼, 행복하다, 했다. 사실 내가 와인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땜시롱, 순대가 와인하고 막 잘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깍두기 보다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여튼 그렇게 요 네스뵈 책장을 넘기는데, 요 네스뵈 소설은 이래서 재미있어, 하는 부분들은 유머에 있었다. 해리 홀레의 유머 감각. 그러니까 시종일관 웃기지는 않는데 가끔씩 툭, 웃겨줘서 내가 책을 읽다가 피식 웃는거다.
어제 내가 읽은 부분 중에는 해리 홀레가 상사인 군나르 하겐에게 콩고로 출장을 다녀오겠노라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왜 자네가 허락해달라면서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군. 전에는 내가 허락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잖나."
"경정님께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보스"
하겐은 경고하는 시선으로 해리를 쏘아보았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허락해주십시오, 보스. 나중에 명령을 어긴 죄로 절 쫓아내시면 됩니다. 모든 비난은 제게 돌리십시오. 전 괜찮으니까요."
"괜찮아?"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그만둘 거라서요."
하겐은 해리를 바라보았다. "알았네. 다녀오게." 하겐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해리는 그를 따라잡았다. "가도 되는 겁니까?"
"그래. 어차피 처음부터 허락할 생각이었네."
"네? 그럼 왜 안 된다고 하신 겁니까?"
"내가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p.68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요 네스뵈가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몇몇 부분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나 해리 홀레 왜이렇게 고생시켜. 스노우맨에서는 해리 홀레 손가락을 잘라버려서 그 뒤로부터 해리 홀레는 세번째 손가락이 없는 강력반 형사인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하아.... 입이 찢어져서 ... 평생 흉터 갖고 살게 되었다.
내가 요 네스뵈의 소설을 몇 개 읽긴 했지만 '라켈'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었나 갸웃갸웃, 이 편에서도 사랑한다고 따라 다니는 젊은 여형사(!)에게 나랑 다니면 너도 위험해, 하면서 라켈을 그리워하는게 나오는데, 이 다음 시리즈에서는 라켈과 재회하는걸까? 아무튼 재미있게 읽다 보니 오, 요 네스뵈 또 읽어볼까 하게 되었다. 집에 남아 있는 요 네스뵈는 이것뿐이어서 새로 사야했는데, 자, 뭐가 뭐가 있나, 하고 요 네스뵈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오, 해리 홀레 시리즈도 엄청 많네. 이거 순서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내가 요 네스뵈 소설을 스노우맨 말고도 뭔가 더 읽었을 것 같긴한데, 그렇다면 나는 뭐 사야 되지? 하게 되어서 내가 사용중인 독서앱에 '뵈'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내가 읽은 요 네스뵈의 책이 모두 검색되도록.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요 네스뵈를 이렇게 많이 읽었어?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인데? 넘나 놀라버린 것. 게다가 아들, 블러드 온 스노우, 미드나잇 선, 스노우맨은 읽은 기억이 나지만 레드 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 스타????????? 내가 이런걸 읽었다고? 나는 크게 당황한 것이다. 안그래도 요네스뵈 이름 넣고 검색해 책이 너무 많이 나오길래 뭐 읽을까? 데빌스 스타? 네메시스는 뭐지? 레드브레스트 읽을까? 막 이러고 잇었는데???????????
당황스럽다.. 내가 정말 읽었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 놀라서, 제목 조차 기억안나는데 내가 읽었다니, 나의 서재에 들어와 저 책들을 검색해 보았다.
스노우맨 2014년, 아들 2015년, 레드브레스트 2016년, 네메시스 2016년, 데빌스 스타 2016년, 미드나잇 선 2017년...에 각각 읽고 페이퍼를 썼더라.
네??????????????????????????????????????????
기억이 1도 안나... 1도...... 1도............................
독서란 무엇이며 글쓰기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제 순대에 와인을 먹고 내가 구운 스콘도 좀 먹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고프질 않았다. 그럼 그냥 출근하고 출근하다 배고프면 밥 사먹고 들어가자! 하다가 회사 근처에 도착해서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다. 윽 맛있다. 먹으면서 전자책으로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를 읽었다.
엄마의 독서는 예전에도 읽다가 불편해서 읽기를 멈춘 책이었는데, 오늘 읽으면서 역시나 또 불편했다. 며칠전에 읽었던 아리의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도 읽다가 어느 지점인지 잘 모르겠지만 좋지 않다고 했던 것과 비슷하게 불편했는데, 나는 오늘 엄마의 독서를 읽다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가 불편해하는 지점을. 엄마의 독서에서 정아은은 남편과 지인 얘기를 한다. 그들과 나눴던 대화, 그들로부터 받았던 감정을 써놓는거다. 지인에 대해서라면 영희다 철수다 본명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당사자들이 책을 봤다면 그것이 자신의 얘기임을 알았을 것이다.
일전에 [요가매트만큼의 세계]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었다. 저자는 나가서 상처받고 온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요가를 하는데, 거기에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이거 내 얘기네' 하게될 것이었다. 정아은은 그걸 아는 만큼 조심스레 접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장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는걸 보면, 일단 무조건적인 비난을 피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에 나오는만큼, 당사자는 자신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아도 매우 불쾌했을 것 같은 거다. 설령 장점만 썼다고 해도 그게 마냥 좋기만 할까?
글에 그렇게 제멋대로 다른 사람을 끌고 들어오는 일이 영 불편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여기서 자유로운가?
나는 아무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는 글을 썼는가?
글을 쓰다 보면 나 역시 책이나 영화를 보고난 후의 감상을 적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의 대화나 사건에서 종종 가져와 그 때의 느낌을 적기도 한다. 나는 몇년전부터 타인을 글에 들여오는 일이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몇몇 일들로 깨달았고, 그래서 나름 신경쓰고 조심하려고 하지만,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완벽한 글이 나올 수는 없다. 아주 많은 사건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느낌들은, 여전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해서 글을 쓰는데, 나야말로 가장 조심해야 하지 않는가.
몇해전에 친구와 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글을 쓸 때 조심하자, 라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었고, 그 뒤로 정말 바싹 신경쓰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 아침 뜨거운 콩나물 국밥을 먹으면서, 와, 진짜 조심하자, 더 조심하자, 하게 되었다.
세상에 이미 발표된 영화나 책에 대해서라면 내 감상을 말하는 일이, 설사 그것이 나쁜 평이라 해도 내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써낸 글을 누군가 후졌다거나 빻았다고 비난하는 일 역시, 그런 평이 달갑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상대의 감상에 대해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 개인에 대한 거라면 내가 일방적으로 써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에서만 쓰여진 글이 다수에게 읽히고, 그 책에 갑자기 등장해버린 사람은 방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식으로 책에 등장할거란 사실조차 몰랐다면 아마 당사자에겐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오늘은 아침에 콩나물국밥을 먹으면서 조심하자고 앞으로 글을 쓸 때 지금보다 더 조심하자고 계속 생각했다.
이렇게 조심하자고 생각하고 나니 그간 발표한 글들과 책들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ㅠㅠ 다시 읽었다가 그 안에서 무수한 빻음과 빻음과 빻음과 빻음을 만나게 될까봐 너무 두렵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다가 망고같았던 내 친구 생각이 났다. 우리가 다정했던 시절, 그 친구는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수차례 권했었는데, 내가 '나도 너와의 일로 써보고 싶어, 그런데 너라는 당사자가 특정되면 안되니까 몇 가지를 바꿔서 써볼까 해' 했더니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야, 너 장소 하나만 바꿔도 다른 것도 다 같이 바꿔야 돼서 머리 아플걸? 나 괜찮으니까 그냥 나 그대로 써."
했었더랬다. 아, 보고싶네, 친구... 내가 만약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리고 거기에 네가 그대로 나온다면, 그때는 네게 연락해서 책을 한 권 보내줘야겠지. 베프였고 찐친이었고 절친이었던 망고... 밥은 먹고 다니니? 누나는 이제 스콘을 잘 굽는 사람이 되었단다? 너는 가끔 뢰스티를 굽니? 내 스콘 장난아냐...
심규선의 <5월의 당신은> 을 요즘 듣고 있다. 진짜 너무 좋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남자사람이 있는데, 왜 이 노래에 그 남자 사람 생각이 날까, 를 오늘 이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 남자 사람의 생일을 모르기 때문에 5월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게다가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5월이 아니었다. 몇 월인지 기억이 안나네? 여튼 이 노래를 듣다가 웃음소리, 그래 웃음 소리 때문에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그가 자동연상이 되는거였어, 했다.
내가 처음 남자사람의 웃음 소리를 들으면서 나직한 웃음소리, 하고 그 웃음소리 자체에 가슴 가득 차올랐던 행복감과 설레임을 느낀건 그 사람 때문이었다. 옆에서 걸을 때면 그가 느껴지는게 좋았다. 그의 존재감이. 오랜시간 통화를 할 때 간혹 그가 낮게 웃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면 그게 그렇게 자지러지게 좋았더랬다. 뭔가 함께 먹을 때면 입 안에 음식이 있을 때는 말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대가 웃는 웃음소리
걸음걸이와 너의 모든 것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아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부터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색깔들이
바람에 묻어와
기다리는 것은, 기다려야만 하는 건
마냥 봄 뿐만은 아니겠지요
그대가 웃는 웃음소리
걸음걸이와 너의 모든 것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아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와, 어떻게 이런 사람이! 했었더랬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대가 웃는 웃음소리, 걸음걸이와 너의 모든 것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아,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나도 꼭 그랬다. 같이 걷는게 얼마나 좋던지. 함께 걸을 때면 이 사람과 걷는 나를 누군가 봐주길 간절히 바랐더랬다. 벤치에 앉아 얘기할 때도 좋았고. 그가 내게 보내주었던 그의 사진들도 좋았다. 물론 너무 정신 사납게 만드는 사진이라 바로 지워버렸지만... 그거 보고 또 볼 내가 싫어서 지워버렸다. 나란 여자.. 대단한 여자야. 고지식이 하늘을 찌른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면 나는 진짜 운동하는 남자사람한테 좀 반하는 것 같아..........
아무튼 4월에 5월의 당신은 들으면서 몇월에 태어났는지 모르는 그 사람을 생각했다. 아마 말해줬을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앗?! 설마... 혹시 갑자기 머릿속에 어떤 날짜가 똭- 떠오르는데, 그때인가??????????
하아- 봄이다.
이거 읽기 시작했다. 무조건 살빠지는 다이어트. 식단 없이 운동 없이 어떻게 가능한지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책 리뷰로 내가 돌아오겠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