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의
거미줄》이후로 내가 원서를 완독한 건 이번이 두번째다. 그러나 샬롯의 거미줄은 분량도 적고 성인 소설은 아니었으니, 성인 소설로
완독한 건 이게 처음인것이다. 크- 이런 날이 내게 오다니. 감개무량. 내가 원서를 완독하다니.. 물론 이건 내가 기존에
번역본을 읽었었고, 드라마도 보았었고, 또 이번에 읽으면서도 번역본 나란히 놓고 읽어서 해낼 수 있었으며, 친구들과 함께 읽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 원서 읽겠다고 건드려본 적은 수차례이나 항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었다. 알지 못하는 영어를 읽고 이해할라
치면 갑자기 스트레스가 와서 다시 번역본으로 돌아가곤 했지. 그러나 친구들과 분량과 기한을 정해두고 여기까지 읽자, 하면서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계속 읽었고, 그런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오오 할 수 있겠는데? 라는 기쁨이 슬며시 차올랐더랬다. 어쩌면 원서
완독이 되겠어, 하는 긍정적인 기운이 샤라라랑~
지난주 일요일까지는 이 책의 15장까지 읽는 거였는데, 같이 읽기로 한 친구 두 명을 토요일에 만났더니, 아니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이 친구들이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는 게 아닌가. 아니, 뭐야? 나는 14장 읽고 있었는데?
그렇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영어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데다가 원서 읽어본 경험도 없었고 게다가 요즘 회사 너무 바빠서 퇴근해 집에가면 떡실신 해버려서 도저히 진도를 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여성주의 책도 못읽고 있었는데..
그러나
친구 둘이 다 읽었다고 하자 발등에 불떨어져버려서, 어제 하루종일 밥 먹고 앉아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소고기 구워 와인
마신 다음에 또 읽고 그렇게 밤 열두시까지 다 읽어버렸다. 으하하하. 읽다가 중간에 웃기도 하고, 야한 부분 나오면 아이참 어떡해
어떡해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다가 나의 어떤 밤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사이먼이 나 같은 자식을 낳을까봐 두렵다고 했을 때는 눈물도 핑 돌았다.
사이먼은
분노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자기 자신을 버텨오고 스물두살에 영국을 떠나서 6년을 여행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게 28살이었고, 거기서 다프네를 만났고, 자기 아버지의 대를 끊기 위해 결혼하지 않으려했고 사랑에 빠지지도 않으려 했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것. 다프네라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여태
만난 사람들(모든 여남들!) 중에서 그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언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동안의 삶을 지탱해온게 분노라는 것을 깨닫게 된건데, 다프네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프네가 지적해주지 않았다면, 사이먼은 아마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삶의 방식은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하고 또 앞으로 남은 삶도 오로지 자기만의
몫이겠지만, 우리는 살면서 순간순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다정하게 지내기도 하고
돌아서기도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받는다.
사이먼은 다프네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본인이 바라던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다프네로 인해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다프네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싸우고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상대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자신을 가슴 아프게 했을지언정, 서로를 그리워한다. 어쨌든 이것은 로맨스 소설이니만큼, 서로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앞으로의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닐지언정, 일정 부분에서는 진실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변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내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지금의 이 삶을 살아오게 된 것은 그동안 만난 다른 사람들 덕분이며 또 때문이다. 내 인생의 그 순간순간들에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 과정들이 당연히 사랑으로 혹은 우정이나 다정함만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실망과 절망이 있었고 슬픔도 있었으며 아픔도 있었다. 많이 울기도 했고 분노로 주먹을 꼭 쥔 적도 있었다. 그 모든게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답답한 적도 있었고 미움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들은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이라고 해서 내게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아니다. 슬픔과 아픔 혹은 분노와 미움을 겪으면서 나는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고, 내가 너무 고지식하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러나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누군가
사라졌던 것처럼 누군가 생기기도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해도 변화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뉴스를 읽는 일들로도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 이것은 내가 가진 큰 자산이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없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침체될 뿐더러,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거기에
끌려가게 된다. 나는 나의 어떤 지점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러나 어떤 지점들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다정하게 지낸 사람들이 또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울과 절망과 슬픔과 미움이 찾아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 이겨내자는 의지에 더해 그런 내 옆에 있어주고
나를 보아주고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내 편이라는 것을 안다. 대화를 하다가
'이 사람은 그냥 무조건 내 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때가 더러 있고, 그런 느낌은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나는 사랑도 느낀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네, 이 사람은 내게 애정을 갖고 있네, 하는 것을 깨달을 때면 온 몸에 힘이 솟는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지만 사랑 받을 줄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다정한 관계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더 많은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도 안다. 나는 혼자이고 싶은 사람이고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누군가 다가올라치면 일단 신경부터 곤두세우고 보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다정함이 흐를
때면 그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에는 나 스스로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도 필요하다는 거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내 의지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면 더 잘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며 내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나로 있어도, 그저 내가 나로 살아가도, 충분하다. 내가 나인것 만으로도 나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고,
내가 내 신념대로 사는 것,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그것 만으로도 누군가는 내게 다정한 마음을 품고 다정하게
다가오며 계속 다정하길 원한다. 다정함을 받고 또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함께 나아가는 것,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것은 행복하지 아니한가.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의 얘기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 위해서는 굳이 나는 어떤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 그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이
너무 좋다고 얘기했다. 어떤 사람이라고 수차례 말로 얘기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말로는
별도 달도 딸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별도 따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정말 별을 따와야, 그 사람은 별도
따는 사람이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친구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친구들이 보면, 그들이 스스로 판단을 한다. 아 너는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사람이구나, 하고. 나는 말보다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수천개의 말로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일단 던져두는 사람이기 보다는 몇 개의 행동들로 보여주고 싶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애걸하기 보다는, 내가 나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랑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가 나로 충족하며 살아가면
사랑과 우정은 자연스레 찾아오고 곁에 머문다.
친구들과 만나서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어쩌다보니 나의 어떤 연애에 대해, 그 처음과 끝에 대해-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얘기했다. 친구들은 마주 앉아 내 얘기를 들으며 꺅꺅 거렸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나는
어떤 부분들을 후회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들이 너무 좋았는지 얘기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할때마다 훌쩍, 그 시간으로
돌아갔다. 슬펐을 때 슬펐고 벅찼을 때는 벅차서 말을 잇기가 힘들 정도였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얘길 하노라면, 나는 그 순간 그
과거속에 들어가있다. 그 시간을 다시 산다.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가는데, 오늘 이야기 들어서 좋다고 친구들이 말해서,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일어난다면, 얘기해주겠노라 말했다.
그 연애가 진행중일때, 나는 내 연애를 알고 있던, 내
연애를 보고 있던 한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아서 이게 지금 끝나도 버텨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 연애 충분해서 나는 이 연애 끝나고 그 다음에는 연애 안하고 살아도
될것같아." 그 때 내 말을 들은 친구 역시 연애중이었고 내게 답했다. "나도 알아, 나도 그래. 나도 이 연애 끝난다면 다음
연애를 하지 않고 살아도 충분해."
그런 연애를 했었다.
금요일날
늦게까지 빵을 만드는 바람에 토요일 아침 일자산을 못갔다. 가야지, 하고 눈을 떴지만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관두자, 하고는
쉬다가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집에 가서는 또 와인을 꺼내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친구들이 영어책 다
읽었대, 나만 못읽었어, 그런 얘기들 하면서 술을 마셨다. 엄마는 나에게 "네가 딸을 낳으면 그 애가 얼마나 똑똑하고 얼마나 잘날까, 너같은 엄마를 두었는데, 네가 딸을 낳지 않는게 너무 안타까워" 하셨다. 엄마, 그런 얘기는 그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 꼭 일자산 가야지, 하였지만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고싶지만 가기싫다...하는 마음이 되어서 침대에서 꼼지락 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꼼지락대다 거실로 나갔는데, 아아, 비가
오고 있었고..비가 오면 산에 못가지요? 나는 씐나버렸네. 움화화핫. 내 의지가 안가는게 아니라 날씨가 나를 못가게 한거야.
움화화핫. 그러나 너무 운동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길었다. 자, 그러면 운동을 해볼까. 가볍게 요가 한 판 갈까, 하고는 매트를
깔았다. 그동안 너무 요가 안해서 한시간 빡셀것 같고, 그렇다고 이십분 하자니 너무 적은 것 같아, 40분짜리 영상을 골랐다.
오랜만에
따라하는게 힘들기는 했지만, 아, 너무 좋았다. 움직이고 땀이 나는 모든 순간들이 좋았는데, 게다가 이 영상에서는 은은하게
음악까지 흘러나와서 너무 좋은 거다. 아,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나 좋은데 그동안 왜 안한거야,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어떻게
이렇게 고요한 음악 틀어두었을까. 선곡 센스 진짜 장난 아니야. ㅠㅠ
게다가 선생님 목소리 너무 좋고(일전에 오프에서
수업 받았더랬다), 설명도 천천히 잘 해주셔서, 부장가아사나 에서 등줄기의 힘이 느껴지는 건, 이 선생님 영상을 따라할 때만
가능하다. 이상하게 다른 영상들을 보고 따라하는 부장가아사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용이람?'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라 쌤의
영상에서는 '아아, 등줄기 힘 느껴져 좋아좋아' 막 이렇게 되는 거다. 너무 좋다. 이 영상을 따라하는 지금이, 영상 속 음악이.
그렇게 40분 따라하고 매트에 누워 사바아사나 할 때는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은 움직임이 준것인가 음악이 준것인가 생각했다.
음악은 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음악이 꼭 좀 알았으면 좋겠다.
음악 덕분인지 사라쌤 요가 따라하고 나면 힘이 들면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 그러면서 그 고요한 마음속에 행복이 천천히 스며든다.
덕분에, 사라쌤의 다른 요가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된 음악을 재생해두고 일요일 오후에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고요하게.
엄마도 성경을 읽고 계신다. 일전에 성경을 모티브로 해 쓴 소설이 있고 그걸 재미있게 읽었다 얘기하니 엄마도 읽고 싶다 하셔서 며칠전에 권해드렸다.
나는
이승우를 국내 작가중에서 제일 좋아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섣불리 권하지는
않는다. 엄마께 이 책을 권해 드리면서, 그렇지만 이건 성경에 관한 거니까 엄마도 재미있게 읽으시겠지, 생각했는데, 절반도 안읽고
엄마는 불평을 쏟아내셨다.
야, 이 사람은 책 참 쉽게도 쓴다. 이래도 되냐. 왜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그러면서 종이 다 채우냐?
이러시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악한 짓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롯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롯이 의도한 것은 구별하는 것이었다. 악과
악이 아닌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섬세해지는 것이었다. 잠든 그들의
윤리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윤리적 감각은 무분별,무차별의 함몰 상태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똑바른지 휘어졌는지,
명중했는지 빗나갔는지, 선 안에 있는지 선 밖에 있는지 묻고 따지는 것에서 비롯한다. 롯은 몰려온 소돔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악한 짓인지 아닌지, 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구별해내라.
차이를 찾아내라.- P25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 앞을 볼 수 없게 된 무리는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볼 수 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던 대문이 볼 수 없게
되자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대문은 멀어지고 급기야 사라졌다. 사라졌으므로 그들은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때리며 엉겨붙어 난장판을 벌였다. 누가 때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든 때렸다. 대문이 부서질 때 그들이 대문 안의 나그네들에게
하려고 했던 일을 대문 밖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행했다.- P40
나는 너무 웃겨서 엄마, 나는 그래서 그 작가 좋아해, 했더니 엄마는 "야, 한두번이 아냐!!" 하시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 작가라면 계속 다르게 써야지 같은말만 쓰면 어떡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책을 읽다 그런건지 음악 듣다 그런건지 갑자기 gravity 라는 단어가 훅 떠올랐고, 어? 이거 왜 떠오르지? 하면서, 그렇다면 오랜만에 gravity 들을까, 하고 찾아 들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들었다.
그는 다프네가 돌아오길 바랐다.
다프네는 돌아왔다.
로맨스 소설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