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블로그에서 다 만난 글인데도 종이책으로 읽는 거 너무 좋다. 이 책 안의 내용들이 다 너무 좋아서 전국민이 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읽을 책 말고도 두 권을 더 사서 여동생과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책 제목처럼 어린이라는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인데 그렇다고 그 세계가 어른인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전형적인 허세에 있어서 특히 그런데, 자 보자.




새로 배운 어려운 말을 꼭 써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전형적인 허세 중 하나다. 아홉 살 다은이는 할머니 생신 잔치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성수신찬이었어요"라고 해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진수성찬이라고 하고 하고 싶었겠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에 푹 빠졌을 때는 삐삐가 "말랼광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은이에게는 말괄량이 삐삐가 '미치광이'같은 느낌이었을까?

어려운 말 쓰기 좋아하는 건 예지도 마찬가지다. 예지가 피규어를 사느라 "용돈을 탈진했어요"라고 햇을 때는 말투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바로잡아 주지 못했다. 다만 그 말이 어딘가 강렬했던 탓에 자꾸 생각났을 뿐이다. (p.25-26)



그러니까 때는 바야하로 2016년 1월. 내가 삼십대 후반이었을 때다. 다시 얘기한다. 삼십대 후반이다. 어린이가 아니었다고.

어린이가 아니었던 나는, 성숙한(?) 어른이었던 나는 수전 손택의 책을 읽는 중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언제나 그랬듯이 당시의 애인과 전화통화를 하던 중에 수화기 너머 애인은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카푸치노의 모양과 맛과 향이 내 앞에 확 펼쳐지면서 나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 나도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네, 충분히 사유한 뒤에 마실지 말지 결정해야겠다"



그러자 애인은 커피 마시는데 무슨 사유씩이나 필요하냐고 껄껄 웃다가 이내 덧붙였다.


"너 최근에 읽은 책에 사유란 말 나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당시 나는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 이 책의 키워드는 사유와 은유라고 리뷰에도 써놓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하도 사유사유 읽어가지고 나도 사유사유 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는데 사유씩이나(!!) 해야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삼십대 후반에 내가 그랬다. 김소영 작가님이 언급하신대로 어려운 말을 써보고자 하는 허세를! 내가! 이, 내가! 가지고 있었던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허세 풀장착했어... 허세 샤라랑- ♡




나의 허세는 이쯤하고.

어제 내가 이승환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노래 들으면서 집에 가 울거라고 했었는데, 어제 집에 가서 혼술 하면서 아아, 지금 너무 행복한데 슬픈 노래 듣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나 한 편 보자! 하고는 영화를 플레이했다.

'에밀리아 클라크' 주연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였다.




영화 제목만큼이나 영화 속에서 캐롤인 라스트 크리스마스 여러 버젼으로 반복되어 나오는데, 시작부터 나오기 때문에 나는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내 생일보다 더 좋아하고, 라스트 크리스마스 노래도 또 너무 좋아해서, 진짜 완전 나한테 너무나 맞춤한 영화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기억할만한 일이라거나 한 적 별로 없었는데, 그런데도 나는 봄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진짜 너무 좋아해. 아무일 없었는데도 매해 기다려. 항상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된단 말이야? 그런데도 늘 아무 일도 없는 걸 보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아무 일도 없을까? 푸코나 읽어야 하는걸까?



여하튼 그래서 좋다고 보는데,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나에게는 비호감인거다. 지각하고 문단속 잘 안하는 이런 캐릭터를 나는 딱히 좋아하질 않아서, 흐음, 캐릭터는 내 타입 아니네? 하면서 봤단 말이다.


여주인공 케이트(에밀리 클라크)는 파트타임으로 크리스마스 기념품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가수가 되고 싶었다. 오디션을 보면 번번이 떨어지고 친구들과 룸메이트로 살고 싶어도 자꾸 민폐를 끼치는 탓에 환영받지 못한다. 엄마와 언니와도 딱히 사이가 좋은게 아니라 집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런 그녀에게 같이 산책하자고 말을 걸어오는 남자가 있다. '당신은 내 타입이 아니에요' 라고 거절했지만 어쩌다보니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됐고 위로도 받게 됐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로맨스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다가 나는 폭풍 오열을 하는데... 하아-

이게 로맨스의 탈을 썼지만 로맨스가 아니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소리 내서 엉엉 울어버렸다. 이승환의 노래를 듣지 않았는데도 울어버렸어. 한 밤에 흐느끼면서 울었다. 로맨스라며 엉엉 로맨스라고 해서 봤는데 왜이래 이러면서 엉엉 운것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아침에 생각해보니 그게 그렇게 울 영화였나.. 싶은데 어제 왜그렇게 울었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처음에는 줄줄 눈물만 흘리다가 나중에는 양손으로 얼굴 가리고 엉엉 울어버렸다. 어휴... 동생한테 이 영화 보면서 울었다고 어제 말했는데, 오늘 아침 여동생이 어제 울어서 얼굴 붓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냐, 괜찮아.. 휴......아오 울겠다고 말하고 진짜로 쳐울었네 ㅠㅠ



아무튼 술상은 완벽하게 보았다. 최근에 산 오븐이 오븐, 전자렌지, 에어프라이어, 그릴 용으로 다 되는거라 스테이크 한 번 구워보았다. 양쪽 7분씩 구웠는데 너무 웰던되어서 다음엔 좀 시간을 줄여야겠다.





좋은 안주, 좋은 술 먹으면서 엉엉 운 밤이었다.

빨리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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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1-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마이클 열렬 팬이었는데... 이제는 없는 조지. ㅠㅠㅠㅠ
저도 이번 주말엔 와인과 안주 장착해보려고 해요. 으하하.

다락방 2020-11-30 07:58   좋아요 0 | URL
저는 토요일에 와인 일요일에 소주까지 힘차게 달렸네요.. 이제 주중에는 금주.. 하는 삶을 살고 토요일에만 술을 마시도록 해야겠어요. 히융 ㅠㅠ

scott 2020-11-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겨자 양파 피클까지 완벽한 디쉬인데 ,,,,
다락방님, 소세지 안 구워진것 같아요 ㅋㅋㅋ

이제는 세상에 없는 조지, 죽기 몇년전 파리 빨라스 가르니에 ‘심포니카‘ 콘서트 최고였는데 ㅜ.ㅜ

다락방 2020-11-30 07:58   좋아요 0 | URL
저 소세지는 여동생이 추천해준건데 굽는게 아니라 칼자국도 내면 안되고 끓는물에 데치는 소세지래요. 그래서 끓는 물에 데쳐가지고 저렇게 안구운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으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