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 여배우가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얘기한적이 있었다. 여배우는 남가수와 결혼했었는데 남가수의 인기는 결혼할 무렵 어마어마하게 하늘을 찔렀던 것. 가수도 하면서 영화도 찍는등 다양한 활동을 하던 남가수와 결혼 전 연애할 때 힘들었던 얘기를 했다. 하루는 무슨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내에서 남가수가 여배우한테는 별로 신경을 안쓰고 내내 다른 여배우나 여가수들을 챙겼다는 거다. 그걸 보면서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는데, 그 모임이 파한 후에 남가수가 다가와 그 때 많이 서운했지, 나 때문에 힘들었지, 했다는 것. 어쨌든 그들은 결국 결혼을 했고 이것은 오래전의 일이며 현재는 이혼을 했던가 잘 살고 있는가 모르겠다.
갑자기 이 오래전의 일이 생각난 건 오늘 나의 꿈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내게도 저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오늘 나의 꿈에는, 음, 뭐라고 쓸까... 그래, '남자1'이 나왔다. 나는 남자1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러나 꿈에서 남자1과 나는 오래전 연인일 뿐 현재는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남자1은 다른 여자에게 사귀자고 접근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남자 1과 그 다른 여자가 함께 우리집 혹은 우리 외할머니 집.. 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셋이 나란히 앉아 티비를 보는 동안 남자1이 다른 여자에게 몹시 다정한 거다. 팔짱을 끼고 보자고 하고 왜 자기가 하는만큼 자기한테 잘 해주지 않냐고 하는등, 남자1은 다른 여자에게 몹시 신경쓰는데, 다른 여자는 내 마음을 알고 있던 터라 남자1이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를 쳐다봤다. 그 다른 여자에겐 나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해서 도무지 나를 무시하고 그 관계를 시작할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그 남자에게 딱히 끌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면서 그 자리를 좀 힘겨워하는 여자에게 나는 입모양으로 내 눈치 보지마, 나 자꾸 쳐다보지마,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옆에서 그런 모션을 취하는 것들을 남자1은 다 알고 있을 터였다.
남자1은 자기 전에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고, 여자와 나는 잠깐 둘이 있는 틈을 타, 그가 부러 그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보라고 저러네, 하고. 여자도 응, 너무 티나.. 했더랬다. 그리고 다음날이 여자가 무슨 시험을 치르는 날이라 일찍 잔다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으윽, 이것도 보기 힘든데 만약 내 앞에서 둘이 키스라도 하면 어떡하지, 방을 나가버려야 되나, 자리를 피해야 하나, 아 빡쳐... 이러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들은 키스하지 않았고, 또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한 방을 쓸 생각도 없었다. 아마 집 안에 다른 어른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자는 나와 한 방에서 자기로 했고 남자는 혼자 자기로 한 터였다. 남자는 욕실에 그리고 여자는 다른 방에 자러 간 사이, 나는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베란다를 통해 바깥을 보다 들어왔고 또 소리가 들려 도대체 무슨 소리지 하고 마당에 나가 바깥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나왔는데, 샤워를 마친 남자1이 나와서 욕실 앞에 주저 앉아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 그에게 다가가니, 그는 자신의 한 신체 부위가 찢어져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보여주며, '나 너무 아프면 이따 너 부를게 잠깐 와줘' 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마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고,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사고를 당해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그게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신 고통스러워 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냥 그가 잠들 때부터 내가 옆에 있는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지만, 나는 그와 지금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그 말을 하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입 밖으로 내는 걸 참았다. 그런 한편, 아직 다른 여자에게는 이런 상황에 도움을 처할 만한 관계가 되지 못했구나, 어차피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는 나를 찾네, 했다. 내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더 찾기 편한걸까, 아니면 나는 이미 과거에 그의 몸을 다 보았기 때문에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걸까. 그는 재차 '이따 내가 고통스러워서 부르면 와줘야 돼' 라고 나로부터 대답을 듣길 원했고 나는 그에게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다가 알람이 울려서 잠에서 깼다.
이 꿈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고 아침 출근길을 내내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건 꿈인데, 꿈이란 걸 알면서도, 그의 고통이 마음에 남아 우울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이것이 만약 실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지, 라고 나는 계속 생각해야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하지.
만약 실제였다면, 그런데 그가 고통스러울 때 옆에 있어달라 했다면 나는 기꺼이 그럴 터였다. 그러나 그의 생살이 찢어진 고통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내가 그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옆에 있어준다 한들, 나의 큰 애정은, 그것 만으로는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없을 터였다. 사랑은 때때로 힘이 없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사랑은 그 모든 것의 답도, 방법도 아니었다. 다른 게 필요하다. 내가 옆에 있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내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 그걸로 그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었다. 그의 살은 찢어졌고 그는 그 찢어진 살로 아파했다. 만약 찢어지고 꿰맨 자리가 아프다면 내가 연고를 발라주거나 반창고를 갈아줄 순 있겠지만, 이건 찢어져있는 고통이었다. 생살이 찢어진 고통을 내 사랑으로 막아준다는 건 말도 안되는 짓이다. 이럴 때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옆에 있어달라 한거야, 내가 옆에 있다고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는데, 그 고통을 없애야 할 거 아냐, 생각하다가, 나는 오늘, 양재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그리고 버스에서 하차해 사무실을 향해 걸으면서, 그래, 병원에 가자, 생각했다.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된다. 고통스러워 하는 그를 부축해 택시를 잡자, 택시에 태워 응급실로 가자, 응급실로 가서 지금 그의 어느 부위 생살이 찢어졌고, 여기 오기 전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잘못된 것 같다, 치료를 해달라, 하자. 수술이 필요할 것이었고 수술 전에는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수술을 하고 나면 찢어진 상처는 봉해질 것이었고, 수술 후에는 약을 먹으며 회복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으로부터 그는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육체에 깊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사랑이 무슨 필요야, 병원이 답이다, 병원에 데려가자! 내 사랑으로 하지 못할 것을 수술과 치료가 해줄 것이었다. 수술비가 제법 나오겠지, 그렇지만 그 수술비 정도는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그것은 가능하다. 내 사랑이 아니라 병원이 해줄 것이다. 만세!
내 속을 참 엄청 썩인 남자지만 그러나 그가 고통의 순간에 나를 찿았으므로 나는 그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천사야..앤젤.......... 아임 유어 앤젤... 샤라라랑-
꽃다발
뒤돌아보면 아름답고
너는 광장에 있었다 눈이 부셨다
꺾인 발목으로도 너는 너의 치정을
붙잡지 못하고
초라해질 적마다 나를 흔들고
밤마다 나를 불러 세웠다
아무 일도 없다고 너는 웃고만 있다
빈사(瀕死)의 섬에서
빈사의 너와 만난다
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
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
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
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
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
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프면 병원에 가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 생살이 찢어진 고통 앞에 사랑은 힘이 없다. 병원이 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