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성의 산업화>은 매춘 시장을 다룬다. 매춘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나라. 한국에 대한 꼭지가 따로 나올 만큼, 매춘 시장에 있어서라면 한국이 빠질 수 없지. 여성학 책을 읽다보면 매춘에 대해 언급할 때 언제나 한국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납치된 여성들에 대해 다루다가 결국 매춘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얘기를, 이 책에서도 역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군, 나중에는 미 점령군을 위해 조성된 한국의 매춘은 후에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위한 군대 매춘으로 변했고, 그 다음에는 일본인 사업가들을 위한 섹스 관광으로 발전했다. (p.169)


성매매가 합법화가 된다는 것, 성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것도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성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이 다른 상품들을 판매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그것이 가격 경쟁에도 뛰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년이었나, 동네에 꽈배기를 파는 작은 매장이 생겼는데 꽈배기가 단가도 낮은데 저 매장의 임대료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남걱정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꽈배기 가게가 또 새로 생겼다. 요즘 대세는 꽈배기인가 보다, 하는데 먼저 생긴 가게에서 꽈배기 세 개에 아메리카노를 끼워 셋트로 이벤트를 시작했다. 단 돈 3천원이면 꽈배기 세 개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거다.



성매매가 합법화가 되면 가격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성을 사도 되고 그래서 구매하는 것도 감추지 않는 일이 된다면, 더 많은 공급이 생기고 더 많은 공급은 더 낮은 가격을 필연적으로 부르게 된다. 이 책의 3장에서 캐슬린 배리는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p.159



물었었다. 그러나 살 수 있다고 되어버리니까, 상품에 따라 다른 가격이 매겨지는 일이 일어난다. 다른 것도 아닌 여성의 몸에, 여성의 성에.




타이 북쪽에 있는 인구 25만의 도시 치앙마이에는 1991년에 약 3천 명의 매춘 여성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매춘업소에서 여성들은 새장 속에 한 줄로 앉아서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색깔별로 정해진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노란색은 4달러, 파란색 8달러, 붉은 색은 12달러, 투명한 것은 20달러." -p.186




매춘과 성 산업이 타이의 경제 기반을 크게 확장시켜 온 반면, 매매되어 온 외국 여성들로 인해 지역 매매춘은 위협받았는데, 이 외국 여성들은 낮은 가격을 부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존 성 산업의 가격 하락을 초래하였다. 이 현상은 상당히 확산되고 있고, 여성 몸의 시장 판매에서 경쟁을 위해 전통적인 노동 시장에서 여성을 사온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p.188-189



성매매의 화살을 여자에게 집중하면 그것은 여자의 자유의지냐 강제이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거 니가 선택한거잖아, 너는 납치당한 거니까 좀 안됐네? 라는 제삼자의 쓸데없는 가치판단이 적용된다. 성매매 여성에 대해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판단하게 된다. 여자에게 도덕적 굴레를 씌우는 것은 이 사회의 전통이고 매우 익숙하니까.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캐슬린 배리가 했듯 화살을 남자에게 집중하면 우리는 한가지 답밖에 할 수가 없다.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그 누가, 당연히 '있다'고 답을 하겠는가. 애초에 있지 않은 권리를 줘버렸기 때문에 화살이 여자에게 향한다. 남자에게 화살을 향하는 순간 너무나 명백한 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왜 매매춘을 가능하게 해서 대한민국은, 타이는, 필리핀은, 미국과 유럽은 여자의 성을 경쟁하듯 후려쳐 싼 가격에 내놓는가.

왜 여성의 성이 군인들에 의해 착취 당해야 하고 외화 벌이용으로 착취 당해야 하는걸까.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상품으로 후려쳐질 때, 거기에는 후려치는 남성 개인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뒷받침하는 정부가 있다.



한국의 경우를 좀 더 보자.


















일국의 정신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볼 수 있는 문교부 장관이 감히 매매춘을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건 당시 대한민국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영 국가‘ 체제였다는 걸 웅변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매매춘 여성들에게 안보 교육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국가 경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교양 교육을 시행하여 외국인에게 최대한 서비스를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 교육 내용은 "일제강점기 정신대를 독려하였던 독려사와 너무 흡사하여 ‘신판 정신대 결단식‘ 같았다." (민경자, 한국매춘여성운동사)
물론 박 정권의 그러한 매매춘 장려 정책은 ‘수출 정책‘의 일환이었다. 방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부는 외채의 압박을 줄이고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의 개발이었으며, 이를 핑계로 외화 획득의 원천은 이제 기생 관광의 루트를 통해 부분 해소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관광산업의 정책적 육성은 짧은 시일에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통용될 수 있었고, 많은 관광산업 유형 가운데에서도 기생 관광은 자금의 회전과 비축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파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 아닌 기생 문화의 복원. ……1970년대 한국 관광산업의 본질은 바로 이렇게 사라진 전통문화 가운데 성을 수단으로 하는 ‘원색의 소재‘를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신종 매춘으로 관광 기생업이란 명칭이 보편화된 것이다.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p.87-88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핸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해서, 그게 여성의 섹스여서, 많이 기쁘셨어요? 쉽게 돈 벌어서 부자 되셨어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으면 이왕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를 시도한 김에 그들이 큰 돈이라도 벌 수 있게끔 보호 장치까지 만들어줬어야 했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남성을 상대로 갖은 수모와 모욕을 당해가며 번 수입임에도 관광 기생에게 돌아오는 ‘화대‘는 여행사 커미션, 호텔 통과세, 밴드 악사비, 요정 종업원 팁, 버스 운전사 급료, 요정 지배인 몫, 접대 화대, 마담에 대한 사례, 호텔 객실 담당 팁, 교통비 등의 무수한 중간 착취자에 의해 거의 착취당하고 손에 쥐는 것은 생계비도 될까 말까 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총수입의 80퍼센트를 중간 착취당했으며, 정부는 화대 착취 구조를 묵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박종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70년대 국가가 이렇게까지 해서 정책의 전환을 의도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외국인들이 많은 돈을 쓰고 가게 하자는 기묘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진정으로 기존의 매춘 여성들이나 빈곤 여성들을 끌어안아 범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조성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기생 관광 문화를 즐긴 주 고객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해방 공간 속에서마저 단절되지 않고 존속된 과거 일제 공창 문화의 잔재와 이를 ㅅ스스로 척결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사회 의식적,실천적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전도된 성 문화를 강화시키고 기생의 사회적 수요를 팽창시킨 한국의 관광정책은 결국 기생 관광을 일본에 역수출하는 새로운 현상까지 야기시킨다." -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p.89-90)



분명하고 확실한 건, 매춘을 하는 여성이 결코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매춘이 여성 스스로의 자존감이나 자존심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부를 축적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레이첼 모랜'이 자신의 책에서 말했듯이, 여성의 몸을 이용해서 남성의 돈이 또다른 남성에게로 흘러간다.

한국이 여성을 이용해 벌어들인 외화는 과연 누구에게 축적되었는가. 그 돈은 성매매 여성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쓰였는가.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 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대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국민의 도덕적 타락, 비인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못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까지 해서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까.…… 이 통에 10여 년을 지켜 내려오던 ‘4·19의 4월‘이었던 달이 금년에는 갑자기 ‘관광의 4월‘로 탈바꿈했다. 어제도 오늘도 신문에는 일본의 무슨 재벌, 무슨 사장이 서울과 지방의 어디 어디에 몇 층의 호텔 건설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p.94



강간은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게 한다. 이 책에서도 몇 번 언급되지만 피해자의 영혼을 갈갈이 찢어버리고 나라는 인간 하나를 철저하게 분해시켜버리고 만다. 그런 나 자신을 추스르는 것만해도 없는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하는데, 전쟁 중의 베트남에서 십대 소녀가 가족의 명예를 생각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데도 결혼할 가망이 없어서 매춘 여성으로 발을 들이고 만다. 세상은 여성들에게 대체 어떤 삶을 살라 말하고 있는 것인가.

강간은 매춘과 다른가?  나는 강간과 매춘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매매춘은 전쟁중에 벌어졌던 베트남 여성에 대한 성 착취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전쟁중에 남성들은 대규모 강간을 통해서 그들의 적을 모욕했다. 아시아의 전통 사회에서는 여성이 강간을 당하면, 대개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거나 결혼을 할 수 없게 된다. 리 라이 헤이슬립은 전쟁중에 베트남 중부의 한 농촌 마을에 살고 있던 십대 소녀였다. 처음에는 베트공이, 그 다음에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공화국 군이 매일 마을에서 밀고 밀리는 가운데 그녀는 양편 군인들 모두에게서 강간을 당했다. 베트남전중에는 강간당한 여성들이 특히 불명예스럽게 여겨졌다. 그들이 강간당한 것은 가문과 마을, 지역 전체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 매춘은 헤이슬립과 같이 '결혼할 가망이 없는' 여성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었다. 전시의 성 산업은 성폭력과 강간이라는 군사 전략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강간당한 여성은 군사 전략의 피해자였지만 매매춘의 유일한 공급원이기도 했다. 미국이 많은 군인을 베트남에 쏟아 붓자 매매춘 시장의 수요가 급증하였던 것이다.

남성이 돈을 주고 매춘 여성을 살 때, 자신의 부인에게는 비밀이라는 점, 종교가 이를 금지한다는 점, 그리고 불법이라는 점이 남성들을 유혹한다. 군대 매춘의 또 다른 재미는 의심할 바 없이 마을과 가족을 강탈당한 다른 인종의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시키는 데 있다. -p.170



이제 절반 읽었다. 캐슬린 배리는 남은 절반에서 어떤 얘기를 할까. 무엇보다 끝맺는 말은 어떻게 할까. 그것은 희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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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8-20 0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과거 인신매매식으로 행해졌던 성매매는 현재 한국의 경우 거대 금융기업으로 변했다 봅니다. 즉 현재의 경우 대다수 매춘은 과거 납치나 강제로 되는 형태가 아닌거죠. 성매매 논쟁 중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이 과연 노동이냐 아니냐입니다.(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노동(연령이나 몸매 그리고 특수한 조건에 따라 제한되기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논쟁을 떠나 성매매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있으며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는 것이죠.

전 성매매 자체를 강간으로 규정하는건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쌍방의 합의인데, 모든 성매매가 구매자의 일방적인 폭력과 압력에 의했다고 할 순 없기 때문이죠. 성매매 자체를 강간과 동일선상에서 보는건 지나치게 성보수주의적 입장이라 봅니다.

확실한건 없애려는 노력에도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 있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그 억압적인 이슬람에서도 대대적인 탄압을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뭐 성매매 자체를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고를 떠나 소위 페미언냐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넘 못봅니다. 예를 들면 오피스텔의 경우 손놈들의 휘두르는 폭력과 행패가 심한데, 단순히 부도덕을 내세우며 성매매 그 자체를 없애려고만 합니다. 오히려 성매매 그 자체보단 성매매를 하기 위한 과정에서 구매자가 종자자에게 물리적으로 인격적으로 행하는 폭력을 처벌하는게 더 중요하다 봅니다. 단순히 성매매 자체를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또한 노르딕 모델도 공개적 성매매를 때려잡은 것이지 소위 오피스텔류의 성매매 산업은 더 증가했습니다. 즉 기존의 탄압 방식으로는 성매매를 절대 없앨 수 없다는 것이죠. 이제는 성매매가 왜 사라질 수 없는지를 보고, 그 종사자들의 기본적인 생활권과 생명권을 보장해줘야 할 때입니다.

다락방 2020-08-20 10:06   좋아요 5 | URL
페미언냐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못본다고 생각한다니, 김남기님은 페미언냐들을 제대로 모르네요. 어떤 페미언냐들을 만나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페미니스트 들이야말로 성매매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장이 갈리긴 하지만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 논쟁도 나온거고요. 저는 성매매가 노동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사서는 안되는 것을 사겠다고 덤벼든 거니까요.
또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세상으로 꺼내놓는 것도 다 페미니스트들이 한 일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고요.

성매매를 강간으로 보는건 지나치게 성보수주의 입장이라 하시면 김남기님은 성자유주의자신가요? 성자유주의가 과연 누구에게 어떤 자유를 주는지도 봐야할 것이고요, 성매매에 놓인 여성이 그것이 쌍방 합의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과연 누구와의 어떤 합의인가요? 네 몸 사고 내 돈 줄게, 내 몸 주고 네 돈 다오, 라고 했으면 그것은 쌍방 합의이며 아름다운 거래일까요? 애초에 그 여성은 왜 성매매를 하게 됐을까요? 그것이 그녀의 순수한 선택이었을까요? 만약 그녀가 유복한 집에 태어나 먹을것 걱정없이 살았다면 그 선택지를 받아들게 됐을까요? 그걸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돈을 받아들고 성을 팔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가해진 또다른 억압이 아닌가요?


제가 위의 글에서 인용한 베트남 십대 소녀의 경우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면 성매매 여성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길밖에 남지 않았고, 성매매 여성이 된 후에는 구매자와 돈으로 거래를 하였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합의와 선택입니까?

김남기님,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가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성매매를 없애려는 게 아닙니다. 성매매 안에서 성착취가 빈번히 일어나고 또 생명까지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없애려고 하는겁니다. 성매매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어찌 모른다 하십니까. 여성주의 책 읽으면 그런 사례가 무수히 나와요. 성매매 여성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신고도 못하고 신고를 해도 가해자가 처벌 받지 않는 상황이 무수히 일어나고요,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든 성매매를 인생에서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길에 대해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 책은 과거에 왜 쓰여졌을까요?

누군가 현실을 모른다고 비난하려고 할 때는 본인이 뭘 모르는지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syo 2020-08-20 10:34   좋아요 6 | URL
남기님의 말씀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과거에도 있었고 뿌리가 뽑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논리가 아닙니다. 노예제가 사라지기 전까지 노예제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있으며 뿌리가 뽑히지 않는‘ 제도였겠지요.

현재 있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그것이 계속 있을 거라 전제하고, 그 전제에 근거해 극복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존재하고 심지어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대안을 꿈꾸는 남기님의 평소 급진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해보려 했던 역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로 ‘현존‘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적 어젠다를 자본주의의 영역 안에 포섭시켜 결국 자본의 영속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자고 하면, 남기님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실 수 있으세요?

성매재 자체를 강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고, 가장 중요한 건 쌍방의 합의라는 것은 남기님의 견해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비난도 비판도 할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가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이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남기님의 말씀 속에 성 착취의 대상이 되는 개인은 없군요. 사용하신 ‘탄압‘이라는 비중립적 용어는 남기님이 이 주제에 대해 가지신 생각의 어떤 경사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라는 말씀을 하실만큼 이 주제가 남기님께 ‘현실‘인지도 한번 되묻고 싶습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섹슈얼리티를 매춘화하는 과정이 여성 개인의 자기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좀 더 잘 아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비전공자 치고는 맑시즘 관련해서 적지 않게 읽었지만, 소외와 물화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해도 저자의 주장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NamGiKim 2020-08-20 11:56   좋아요 4 | URL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한 사라질 수 없다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구조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 보았기에 왜 사라질 수 없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평소에 보이는 모습들과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성매매에 대한 입장은 논외로 치더라도 현재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있다 보지 않습니다. 단순히 구매자와 종사자를 처벌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즉 그건 대안이 될 수 없다 봤고요. 따라서 단순히 행위자에 대한 비인간화 보단 그런 구조를 만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겠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성매매 비범죄화 요구는 차별과 천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면 지지해야 마땅하다. “성노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소외된 집단이다. 많은 나라에서 성노동자는 강간, 구타, 인신매매, 갈취, 각종 건강보험에서 배제되는 등의 차별, 강제퇴거 등 수많은 인권침해 위협을 받고 있다. …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성노동을 선택한 이들을 처벌하고 형법을 적용하거나 경찰을 동원해서 이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불가능이고, 현재의 불법화 방식으로도 못한다는 것.

(책은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