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금지된 소설들에 대한 회고
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테헤란에서 문학 모임을 결성하고 함께 롤리타를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 책의 존재를 알고나서 나는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사려고 했지만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고 동네 도서관에는 이 책이 없었다. 다행히 책바다 서비스를 통해 이 책을 대여했는데, 대여한 후에는 2주간 이 책을 최선을 다해 읽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다시 읽게된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기 위해서라면 롤리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채로 읽는것 보다는 생생할 때 읽는게 더 도움이 될것 같아서였다. 테헤란에서 여자들이 롤리타를 읽는데 과연 어떤 말을 할까, 나는 그들의 감상을 먼저 읽기보다는 내 느낌을 더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그런 후에 테헤란에서의 롤리타를 읽는다면,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나의 감상과 견주어볼 수 있을 터였다. 저자인 '아자르 나피시'는 문학교수이니만큼, 내가 놓친게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아자르 나피시는 아버지가 테헤란 시장을 지내기까지 했지만 반정부적 행태로 쫓겨나자 스위스, 영국, 미국에서 공부하다 이란으로 돌아온다. 테헤란에 돌아와 테헤란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맡게되는데 그 해가 1979년, 이란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이란의 국왕을 몰아내고 이슬람의 종교지도자가 나라를 통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겐 강제로 베일이 씌워진다. 여자들은 가장 먼저 직장에서 베일을 써야했고 그 다음엔 상점에서 베일을 쓴 여자만이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를 어기는 사람에겐 벌금과 채찍질형이 내려졌다. 여성들의 결혼 연령은 열여덟살에서 아홉살로 낮춰졌다. 대체 아홉살에 결혼을 허락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홉살에 결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건, 누가,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이게 대체 왜 필요한 법인가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부는 공공장소에서의 여성들의 의상을 제한하고 여성들에게 차도르나 긴 겉옷과 스카프를 강제로 착용하게 하는 새로운 규정을 통과시켰다.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이 규정이 준수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로 시행하는 것뿐이었다. 이 법에 대한 여성들의 엄청난 반대 때문에 정부는 우선 직장에서 새 법을 강제로 시행하였고 후에는 상점으로 확대했다. 상점에서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과의 상거래를 금지시켰다. 이 법을 어기면 벌금이 부과되었고 최고 일흔다섯 대의 채찍질과 구치소생활을 해야 했다. 후에 정부는 악명 높은 도덕분대를 창설했다. 네 명의 무장한 남녀가 흰색 도요타 순찰차를 타고서 이 법이 시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거리를 순찰하였다.- P326



혁명으로 인해 수업이 종종 휴강되곤 하는데, 그 때 아자르 나피시는 학생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불만을 잔뜩 품은 학생으로부터 항의를 받는다. 이토록이나 나쁜 소설을 우리가 왜 배워야 하느냐는 거다. 그렇게 아자르 나피시의 문학 수업시간에, 개츠비에 대한 재판이 일어난다. 검사는 이 책을 고발한 남학생이고 변호사 역시 이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이다. 미국에 대한 증오, 서구문화에 대한 증오는 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컸는데, 거기에는 이란이 미국에 석유 수출은 급증했지만 그로 인해 부자가 된건 정부관리들 몇몇 뿐이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혁명의 배경에는 이렇게 미국에 대한 증오가 있었고 정부 관리들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의 학생은 개츠비가 영 못마땅한 거다.



그는 논고를 계속하면서 점점 더 생기를 얻었지만 논고 내내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개츠비는 정직하지 못합니다.˝ 그는 크게 외쳤고 목소리는 이제 쉰 소리를 냈다. ˝그는 불법적인 수단으로 돈을 벌었고 유부녀의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노력합니다. 이 소설은 미국인의 꿈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어떤 종류의 꿈입니까?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간음자가 되고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입니까? 미국인들은 퇴폐적이고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꿈 때문입니다. 그들은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문화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P252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라서 개츠비를 읽고 그 줄거리를 아는 사람이 많을텐데, 게다가 나는 개츠비를 두 번인가 세 번 읽었던 것 같은데, 개츠비를 읽고 작가가 '우리 모두가 간음자가 되고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맞닥뜨리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불륜 소설이라면 작가는 '불륜을 저지르자'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에 대한 증오가 너무 커서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하고, 그 안에 일어난 이야기를 보지 못하고, 개츠비는 미국소설이고 불법으로 돈 번 자들의 불륜 이야기는 나쁘다, 라는 것으로만 생각하다니. 아아,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왜 읽는 것인가. 



˝우리의 존경하는 검사님은 놀이 공원에 너무나 가까이 다가가는 오류를 범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검사님은 허구와 현실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의자의 덫에 걸려 있는 ˝우리의 검사님˝을 향해 유연하게 돌아섰다. ˝검사님은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떠한 공간도, 숨쉴 여지조차도 전혀 남겨두지 않습니다. 검사님은 자신의 약점-소설을 그 자체로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검사님이 아는 것이라고는 기고만장하게 옳고 그름만을 조야하고 단순하게 가치 판단하는 것입니다.˝ 니야지 씨는 이 말을 듣고 안색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주인공이 고결해야지 소설작품이 훌륭합니까? 니야지 씨가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에 부과하기를 고집하는 그 도덕심에서 어떤 소설의 등장인물이 벗어나게 되면 그 소설은 나쁜 것입니까?˝- P.254


소설을 그 자체로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력함, 이라고 개츠비의 변호사가 말했는데, 나는 무능력함 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자르 나피시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상상력'과 '공감능력'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상상력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만이 상상력이 아니다. 상상력이란, 내가 있지 않은 곳에 나를 둘 수있고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을 마치 내가 경험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 상상력이 있어야 비로소 공감이 가능해진다. 책을 읽고 그 안에 일어나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내것인것처럼 받아들이면 거기서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거다. 상상력은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고, 상상력 있는 사람이 소설을 읽어야 소설로부터 뻗어나오는 여러가지 감정을몸소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을 무시하고 별 거 아닌걸로 취급하는 사람들, 소설 읽으면 남는게 뭐가 있어 거짓부렁 이야기지, 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이란 그 어떤 인문학이나 자기게발서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주고 일깨워준다. 소설은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 차별받는 사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도, 역사적인 중요 사건들 앞에서 정면으로 맞섰던 사람과 그런것들로부터 멀어져 혼자 조용히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까지, 소설 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있는 거다. 무엇보다 소설은 지금 여기, 현재의 나를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일전에 읽었던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로 모텔에 들어가 섹스를 나누는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혁명이 일어나 어지러운 시국에서 아자르 나피시는 위대한 개츠비를 두고 토론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힘든 시간들에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그 시간들은 우울함이 채우지 않았을까.



나는 그 날 수업이 끝나고 기분이 괜찮았다. 끝나는 종이 울렸지만 많은 학생들이 종소리마저 듣지 못했다. 공식적인 평결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보여주었던 흥분은 나로서는 최상의 평결이었다. 내가 강의실 밖으로 나온 후에도 학생들은 논쟁을 계속했다. 그들은 인질들이나 최근의 시위집회들 또는 라자비와 호메이니 옹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츠비와 그의 빛 바랜 꿈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P270




혁명이 끝나고 전쟁이 찾아왔다. 이라크와 이란은 장장 8년간 전쟁을 시작한다. 테헤란은 수시로 폭발음이 들리고 사람들은 폭발음이 멈춘 뒤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너희들은 다 괜찮니, 나는 괜찮아.


이 소란한 시간들에게 아자르 나피시에겐 헨리 제임스가 있었다. 폭발음이 들리고 전기가 나가고 두려움과 우울함으로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때에, 아자르 나피시는 데이지 밀러를 읽고 또 읽는다.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을 때 세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내 딸이 내 방에서 나를 불렀고, 전화벨이 울렸으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촛불을 집어들고 딸 네가르에게 곧 가겠다고 말하고는 전화기로 다가갔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촛불을 들고 들어오면서 물었다. 너희들은 괜찮니? 두려워 말아라! 거의 매일 밤 폭발이 난 후에 어머니는 촛불을 들고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행동은 제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딸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였다. 그녀도 또한 우리들이 모두다 괜찮은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치 폭발소리가 테헤란 시의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울린 것 같았다.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일은 또한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은 어떤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P364


놀랍게도 어머니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전 아자르 나피시가 읽었던 데이지 밀러에서는, 데이지 밀러가 윈터본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두렵지 않아요, 라고 말한 부분을 읽고난 후였다. 적색 사이렌과 백색 사이렌이 교차되는 밤에 아자르 나피시는 끝도 없이 책을 읽는다. 그 후에 있을 강의들에 이 시간이 준비 과정이 되었다고 아자르 나피시는 말한다. 소설을 읽는 것, 좋아하는 소설들이 늘 곁에 있었던 것, 이미 읽었던 것인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두려운 시간에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은신처이자 피난처가 되어주는 소설. 혁명에는 개츠비가 있었다면 전쟁에는 헨리 제임스가 있었던 거다.




아자르 나피시는 교수직을 사임한뒤에 그동안 자신이 가르치면서 명민했던 학생들 일곱을 모아 문학모임을 제안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집에 모여 같은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이다. 학생들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 모임은 2년동안 계속된다. 모두들 목요일 아침이 되어 교수님의 집에 도착하면, 자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베일과 긴 옷과 검은 장갑을 벗고 비로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빨간 매니큐어도 있고 금발도 있다. 그렇게 홀가분한 자기 본연의 모습이 되어 그들은 책에 대해 말한다. 첫 책이 롤리타 였다. 롤리타에 대해 아자르 나피시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롤리타』를 예로 들어보자. 이 소설은 갈 곳이 한군데도 없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였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자신의 판타지로, 죽어버린 자신의 사랑으로 바꾸고자 노력했고, 그녀를 파멸시켰다. 『롤리타』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최고의 진리는 더러운 늙은이가 열두 살 소녀를 강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몰수하는 것‘이다. 만일 험버트가 그녀를 완전히 삼켜버리지 않았더라면 롤리타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완성된 소설작품은 희망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소설은 단순히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야씨처럼 롤리타도 박탈당한 삶을, 평범한 일상생활을, 모든 정상적인 즐거움을 옹호한다.
흥도 나고 갑자기 신도 나서 나는 나보코프가 사실 우리 자신의 유아론자들한테 복수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P71

롤리타를 읽을 때 내가 분노했던 게 바로 저 지점이었다. 롤리타에게서 유년시절을 빼앗아간것. 롤리타로 하여금 성학대 피해자로 살아가게 해서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한것. 그 일이 앞으로의 롤리타에게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아자르 나피시는 그 후에 롤리타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것이 롤리타가 험버트로부터 도망치고 자유로운 삶, 본인의 건강한 삶을 찾았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것과는 의견이 다르다. 만약 롤리타에게 험버트가 없었다면, 롤리타의 인생에서 험버트를 만나지 않았다면, 롤리타가 결혼하고 임신해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아버지에게 돈을 좀 달라고 편지를 쓰는 일도 역시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롤리타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테니스를 해서 코치가 되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롤리타의 삶을 그 일로 인해 꺽여버린 중간에 부숴져버린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롤리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 여기가 아닌, 지금 이 사람이 아닌 사람을 향해서 어쨌든 방향을 틀고 전력질주 하니까.



롤리타를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나서 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번 생각해야 했다. 롤리타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고 또 나보코프가 이 글솜씨로 왜 하필이면 아동의 육체에 대해 묘사했는가부터 그리고 왜 아동성학대 이야기를 썼는가, 까지 괴로워하면서, 그러면서도 나보코프가 그 안에 담아낸 것들에 놀라워했으니까. 나보코프는 아동대상 범죄가 언제 주로 일어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아동을 보호하기에 나라가 제대로 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범죄자가 이렇게 범죄를 시작한다고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토록 잘 쓴 글에 대해 감탄했고, 그래서 고통스럽고 슬프면서도, 롤리타의 빼앗긴 유년시절 때문에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면서도, 그러나 책을 읽는 시간은 즐거웠던 거다. 아, 이런 책이 있어, 엉엉, 롤리타 어떡해, 하는 복잡한 감정이 독서하는 내내 따라붙었고, 롤리타의 빼앗긴 유년시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런 마음을 주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 아니던가, 생각하게 된거다. 그리고 아자르 나피시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학생들과 문학 모임에서 하게된다. 




미트라가 생과자로 손을 뻗으면서 어떤 문제가 얼마 동안 자신의 망므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괴롭히고 있다고 말한다. 『롤리타』나 『보바리 부인』과 같은 소설, 즉 그토록 슬프고 비극적인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 때문에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런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죄스러운 것은 아닌가? 만일 신문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게 되어도 아니면 혹시 우리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여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느낄 것인가? 만일 우리가 여기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의 우리의 삶에 대하여 글을 쓴다면 독자들이 행복감을 느끼도록 써야 하는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 밤에도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우리 모임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p.95


잠자리에 들지 못한 나자르 아피시가 그러나 그것이 고통과 괴로움 때문은 아니었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다. 흥분이었다. 그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나는 나보코프가 모든 위대한 소설을 동화라고 한다고 말했다. 글쎄, 동의할 수 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할 것은 동화에는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마녀들이나 아름다운 의붓딸들을 독살하는 사악한 계모들, 그리고 숲 속에다 아이들을 두고 나오는 나약한 아버지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력은 선의 힘에서 나오고 그 세력은 나보코프가 지어놓은 이름대로 맥페이트가 우리에게 부과한 제한이나 한계에 굴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동화는 모두 다 현재의 한계점들을 초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므로 어떤 의미에서 동화는 동화는 현실이 부정하는 자유를 제공한다. 모든 위대한 소설작품에는 그들이 묘사하는 냉혹한 현실과 상관없이 그러한 삶의 무상함에 본질적으로 대항하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다. 삶에 대한 이런 확신은 작가가 현실을 자기 식으로 다시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창출함으로써 현실을 지배하게 되는 그런 방식에 들어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찬양이고 그것은 배신, 공포, 삶의 배반행위들에 대항하는 불복종 행위라고 나는 호언장담할 것이다. 형식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은 주제의 추악함과 비열함에 반항한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바리 부인』을 사랑하고 엠마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고, 어리고 천박하며 시적이고 도전적인 고아가 된 주인공 롤리타로 인해서 우리의 가슴이 무너지도록 아플지라도 우리는 욕심스럽게 『롤리타』를 읽는 것이다. -P.100




그리고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의 강의가 있고나서 한 남학생이 그녀를 따라나온다. 그는 제인 오스틴을 비난한다. 제인 오스틴이 반-이슬람적인 작가일 뿐 아니라 식민주의적인 작가라는 것이다. 그는 수업시간 중에는 조용히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계속해서 연구실까지 따라와 오스틴을 비난한다. 그가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를 읽지 않은 것이 확실한데 그는 어떻게 맨스필드 파크가 노예제를 묵과했다고 말하는걸까. 아자르 나피시는 며칠 뒤에야 그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고 무조건 제인 오스틴을 비난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오스틴을 비난하려고 사이드의 책을 인용해야 하다니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였다.(P.560)


어느 날 정말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인 후에 나는 그 학생에게 말했다. 나비 씨, 한가지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는 절대로 학생을 엘리자베스 베네트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학생에게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과 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서로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다아시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몰라요. 끊임없이 다아시의 결점을 찾아다녔고 그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의 반대 심문하다시피 했잖아요? 위캄과의 관계도 생각나죠? 엘리자베스는 동정의 기초를 위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기보다는 다아시에 대한 위캄의 악감정에 두었던 것도 아시죠? 나비 씨가 서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나비 씨는 서구라는 단어에 형용사와 같은 한정사-퇴폐적이다, 타락했다, 오염되었다, 제국주의적이다-를 쓰지 않고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엘리자베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심해서 보세요!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비 씨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P560



집착적일 정도로 오스틴을 비난하는 저 학생도 남자였고, 공교롭게도 개츠비를 비난하던 검사도 남학생이었다. 같은 수업에서 같은 책을 읽는데 왜 유독 남학생들은 이 작품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 서구적인 것, 미국적인 것, 꿈과 자유, 낭만과 사랑,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고자 하는 욕망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어떻게든 이것을 '나쁜것'으로 보아야만 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란에서 사는 여자들은, 이 독서모임의 멤버들도 그렇고, 결국은 이란을 떠나야만 우리가 그나마 삶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를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살기에 이란은 좋은 곳이니까. 남자들은 네 번까지 결혼할 수 있고(그들의 성욕은 존중되어야 한다!) 게다가 아홉살 짜리와도 결혼할 수 있다. 베일을 쓰는 것도 여자고 집이 폭발되었을 때도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니 집에서도 언제나 얌전한 차림을 입고 있어야 하는 것도 여자다. 여자들이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건 당연할것인데, 거기에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막아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나는 남학생들이 이 작품들을 비난하는 그 이유들은 사실 그들이 말하는 것일뿐, 오히려 그렇게 비난에 집착하는 그 태도가 그 책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수많은 정치범을 만들어냈다. 아자르 나피시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도 아주 많은 학생들이 잡혀갔고 감옥에서 고문당하다 죽기도 했다. 어떤 학생들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잡혀가 간수들의 윤간의 대상이 되기도한다. 너무 예쁘다는 이유였다. 이런 여자를 그냥 내보내서는 안된다고 간수들은 돌아가며 그녀를 강간한다. 여자들의 목소리도 머리카락도 성적으로 자극적이라고, 이란의 남자들은 생각한다.



대부분의 혁명 단체들은 개인의 자유 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짐짓 겸손한 체하면서 그것들을 ˝부르주아적˝이고 ˝퇴폐˝한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런 까닭에 새로운 지배계층 엘리트들은 몇몇 개의 아주 보수적인 법률 조항들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 사랑을 포함한 감정의 표현이나 일부 제스처들을 불법화시키기까지 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새 헌법이나 국회를 확립하기 전에 결혼 보호법을 먼저 폐기했다. 새 정권은 발레나 춤을 금지시켰고 발레리나들에게 연기자나 가수 중에서 선택하라고 지시했다. 훗날 여자들은 가수도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머리카락과 마찬자기로 성적으로 자극적이므로 계속 감추어 두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P214



체포되어 감옥에서 다른 학생들과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들은 그 안에서 아자르 나피시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것에 대해 얘기한다. 소설을 읽고 그 소설로 일어난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함께 웃는 일이, 감옥 안에서 가능했다. 


그가 나가자 마하타브는 저는 선생님과 우리 반 학생들을 생각했어요, 라고 말했다. 첫 번째 심문이 끝난 후 그녀는 다른 열다섯 명의 죄수와 함께 한 감방에 배당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내 강의를 들었던 라지에를 만났다. 내가 권한 작은 찻잔을 한 손에 들고서 차도르를 내리지 않은 채 그녀는 말했다. ˝라지에는 알자라 대학에서 수강한 선생님의 헤밍웨이와 제임스 강의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나는 그녀에게 『개츠비』논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지요. 우리는 한참 웃었어요. 선생님도 아시지만 라지에는 처형당했어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P423


감방에 갇혀 시간을 보냈지만 처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말하여지는 삶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문학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문학은 절대 선이 아니고 모른다고 해도 삶에 지장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문학이 있는 삶은 확실히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혁명속에서도 전쟁속에서도 손이 닿을 곳에 문학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세상과 나 사이에 벽을 쌓아두는 시간을 만들어둘 수 있으니까. 책장을 덮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순간, 내가 쌓아둔 벽은 금세 무너지겠지만, 그러나 다시 책장을 열면 그 벽은 얼마든지 금세 또 쌓을 수 있다. 



아자르 나피시가 테헤란에서 겪었던 것들-혁명과 전쟁-은, 살면서 겪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 혹은 내가 언제 무슨 이유로 잡혀갈지 모르고 우리집에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시간들을 견뎌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테니까. 게다가 전쟁은 8년간이나 일어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간들은 과연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일까. 아자르 나피시에게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폭발음이 들리면 아이들이 무사한지 살펴야하는 시간들은 맨정신으로 버텨내기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문학이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이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큰 능력이며 동시에 행운이다.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꺼내두고 메모를 한다고 햇는데(나도 그렇다), 그런 시간들이 그녀를 교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테헤란을 떠난다. 지금은 미국에서 문학교수를 하고 있다는데, 문학 교수라니,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라니, 너무 근사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또 명확하게 어떤 것이다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지 않은가. 이게 너무 좋은데, 그런데 왜이렇게 좋은걸까, 하고 자꾸 생각해본다는 것. 어려움 속에서도 책장을 열고 그 안의 이야기에 빠지고 또 인물들에게 동화된다는 것. 이런 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은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나는 강의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말했다. 소설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육감적인 경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세계로 들어가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그들의 숙명에 연루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소설의 핵심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은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경험을 흡입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숨을 쉬세요. 나는 다만 여러분이 그런 점을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P220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읽는 시간이라 너무 즐거웠다. 책장에 오래 잠자고 있던 데이지 밀러도 꺼내 읽어야 겠다. 맨스필드 파크도 민음사에서 새로 나왔던데 그것도 사야겠고. 나보코프의 서적들은 뭐가 있나 검색해보았다. 나보코프의 번역된 작품들도 하나씩 천천히 다 읽어야겠다. 무엇보다 읽어야할 소설이 아직도 이토록이나 많다는 게 너무 기쁘다.


이 책은 이 책 자체로 문학의 쓸모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고 또 읽고 싶은데 절판이라 유감이다. 하루빨리 어느 출판사에서든 새로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당시 사나즈에게는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아주 중요한 두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남동생이었다. 그는 열아홉 살 이었고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며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들이었다. 두 딸(딸 하나는 세 살 때 잃었다)을 낳은 후 마침내 얻게 된 아들인지라 부모님한테는 아주 끔찍한 아들이었다. 그는 버릇이 없었고 오로지 집착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누나인 사나즈였다.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누나를 감시했고 누나의 전화 통화내용을 엿들었으며 누나의 자동차를 몰고 돌아다녔고 누나의 행동을 일일이 참견했다. 부모님은 사나즈를 달래면서도 누나로서 인내하고 이해하며 동생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모성 본능을 발휘해줄 것을 간청했다. - P38

사나즈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자기처럼 젊었을 때 어머니의 상황과 비교하고 있을까? 사나즈는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거나 남성들과 즐겁게 교제할 수도 있었으며 경찰대에 들어가거나 비행기 조종사도 될 수 있었고 여자에 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률 하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을까? 사나즈는 혁명 이후의 새로운 법률에 의해 결혼 가능 나이가 열여덟 살에서 아홉 살로 낮추어졌고 또 다시 간통이나 매춘에 대해 돌로 쳐죽이는 형벌이 허용되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굴욕감을 느끼고 있을까? - P60

『천일야화』의 기본적인 틀이 되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왕의 불합리한 규칙의 희생자가 되는 세 종류의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셰에라자드가 등장하기 전에 이야기 속의 여인들은 배신하고 살해되는 사람(왕비)과 배신할 기회도 갖기 전에 살해되는 사람(처녀들)으로 구분된다. 셰에라자드와 달리 처녀들은 이야기 속에서 목소리가 전혀 없어서 대체로 비평가들이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저항도 항거도 없이 그들의 처녀성과 목숨을 내어준다. 그들은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죽음을 당하다시피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왕비의 부정은 왕의 절대적인 권위를 앗아가지 못하고 단지 그의 균형을 깨뜨려 놓았을 뿐이었다. 두 타입의 여성-왕비와 처녀들-모두가 왕의 세력 범주 안에서 행동하고 자의적인 법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왕의 공적인 권위를 암묵적으로 수용한다. - P45

셰에라자드는 다른 약속조건을 포용하기로 선택함으로써 폭력의 순환을 깨뜨린다. 그녀는 왕과는 달리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상상력과 사유를 통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 P45

야씨는 또한 녹색 정문을 통하여 대학을 들어설 때 느끼는 희열감도 묘사했다. 이 시와 그녀가 제출한 다른 글에서 이 (대학의)정문은 그녀의 삶에서 거부되고 있는 모든 평범한 일들이 가능한 금지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입구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녹색 정문은 야씨에게는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다른 아가씨들에게는 닫혀 있었다. 정문 바로 옆에 커튼이 달려 있는 조그만 통로가 있었다. 그것은 정도에서 어긋난 통로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만한 침입자의 권위로 뻐끔히 벌어져 있었다. 이 통로를 통하여 내가 가르치는 아가씨들을 포함한 모든 여학생들이 점검을 받기 위해 조그맣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첫 번째 회합이 끝나고 세월이 흐른 후에 야씨는 이 방에서 행해진 일들을 묘사하곤 했다. - P64

"우선 나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는지 검사를 받곤 했다. 코트 색깔, 유니폼의 길이, 스카프의 두께, 신발 형태,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 심지어는 눈에 띄는 아주 옅은 화장의 흔적, 반지 크기나 반지가 시선을 끄는 수준 등 내가 대학 캠퍼스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것이 점검되어야 했다. 바로 이 대학에서 남자들도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대학의 표상과 깃발이 달려 있는 으리으리한 정문이 아무 편견 없이 활짝 열려 있었다." - P65

그녀(야씨)는 이슬람의 도덕체계와 번역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필즈베리 도우보이(빵 굽는 사람의 모자를 쓴 밀가루로 만든 사람으로 필즈베리 회사 광고에 나옴-역주)처럼 생겼어요 하고 야씨는 말했다. 아내가 죽고 삼 개월 후에 그는 처제와 결혼을 했다. 왜냐하면-이 부분에서 야씨는 목소리를 낮추었다-‘남자들한테는 특별한 생리적 요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 P65

궁극적으로 아버지는 불복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 불복종을 나는 항상 기억한다. 그후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한참 후에 나보코프의 ‘호기심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불복종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아버지한테 내려진 판결이 떠올랐다. - P97

나스린은 침착하게 종이들을 푸른 홀더에 집어넣고 각 파일마다 날짜와 주제를 적어 넣으면서 자기 막내 삼촌이 상당히 믿음이 좋고 신실한 사람인데 자기 나우 겨우 열한 살이었을 때에 조카인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삼촌은 미래의 아내를 위하여 몸을 정결하고 순수하게 지키고 싶기 때문에 여자들과의 교제를 거부했다고 말하곤 했던 사람이라고 나스린은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정결하고 순수하게,‘ 나스린은 조롱하듯이 그 말을 되뇌었다. 다루기 힘든 성격인 데다 가만히 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는 나스린을 삼촌이 일주일에 세번씩 일 년동안 개인교습을 했다. 그는 조카에게 아랍어를 가르쳤고 또 어떤 때는 수학도 가르쳐주었다.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공부하던 시간에 삼촌은 아랍어의 시제를 반복해서 가르치면서 두 손으로 나스린의 다리와 온 몸을 더듬었던 것이다.

- P103

결혼승낙을 한 날 나는 내가 이혼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자기 파괴적인 충동이나 내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는 모험은 전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 P167

이름: 오미드 가립
성별: 남자
체포날짜: 1980년 6월 9일
체포장소: 테헤란
감금된 곳: 테헤란의 카스르 감옥
죄목: 서구화된 가정에서 야육되어 서구화됨, 연구를 빌미로 한 유럽에서의 장기체류, 윈스턴 미제 담배를 피움, 좌파적인 경향을 나타냄.
선고 내용: 3년 징역, 사형 - P192

대부분의 혁명 단체들은 개인의 자유 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짐짓 겸손한 체하면서 그것들을 "부르주아적"이고 "퇴폐"한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런 까닭에 새로운 지배계층 엘리트들은 몇몇 개의 아주 보수적인 법률 조항들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 사랑을 포함한 감정의 표현이나 일부 제스처들을 불법화시키기까지 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새 헌법이나 국회를 확립하기 전에 결혼 보호법을 먼저 폐기했다. 새 정권은 발레나 춤을 금지시켰고 발레리나들에게 연기자나 가수 중에서 선택하라고 지시했다. 훗날 여자들은 가수도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머리카락과 마찬자기로 성적으로 자극적이므로 계속 감추어 두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 P214

전쟁에 대한 우리들의 양면적인 태도는 주로 이 정권에 대한 우리들의 양면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테헤란에 대한 첫 공긊에서 부유층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한 가옥이 공격을 받았다. 그 가옥 지하에 반정부 게릴라들이 숨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하세미 라프산자니는 겁먹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금요기도회에서 아직까지 폭격으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폭격 희생자들은 조만간에 처형될 예정이었던 "거만한 부자들과 파괴 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여성들에게 잠을 잘 때 옷을 점잖게 입으라고 충고했다. 그렇게 되면 집이 공습을 당하더라도 그들은 "이방인들의 눈에 점잖지 못하게 노출되지"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P312

정부 내 몇몇 인사들과 과거의 일부 혁명가들은 이슬람 정권이 우리 지식인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결국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를 강제로 지하로 끌어 내렸지만 정부는 또한 우리를 더 매력적이고 더 위험하고 이상하지만 더 강력하게 만들어버렸다. 정부는 지식인의 숫자를 줄여놓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지식인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다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그들이 지식인들을 좀더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것도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그들은 한때 퇴폐적이고 서구화되었다고 낙인을 찍었던 나 같은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 P344

나는 처형당한 내 학생에 대해서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이 감방에서 어떻게 지냈으며 그들이 함께 있을 때 어떤 다른 추억들을 서로 나눴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만일 마하타브가 이야기해 준다면 내가 꼭 어리석은 짓을 할 것만 같았고 그러면 오후 강의를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꼈다. 나는 아기의 나이를 물어보았으나 그녀의 남편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녀에게 내가 좋아하는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어요? 나는 많은 여학생들이 감옥에서 풀려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여하튼 결혼이 정치활동에 대한 해독제라고 생각하는 교도관들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한 부모에게는 이제 그들이 "착한"딸들이라는 것도 증명할 수 있었으며 또 그저 결혼 이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했다. - P424

"임시 결혼은 어때요?" 나스린이 오렌지 껍질을 퍼즐 조각처럼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우리 대통령이 내놓은 개화된 대안을 잊고 있는 것 같군요." 나스린은 이란에만 있는 이슬람교의 규칙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규칙에 의하면 남자들은 네 명의 공식적인 아내를 얻을 수 있고 원한다면 임시 아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러한 규칙을 만든 논리는 아내들이 남자들을 충족시킬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없어서 충족시킬 수 없다면 남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어떻게든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십 분 정도로 짧은 기간이나 아니면 길게는 구십구 년 동안 그러한 계약관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개혁주이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가지고 있던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임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498

남자들은 그저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때때로 든다고 말하는 미트라는 초조해 보였다. 남자들한테는 더 쉽지요 하고 야씨가 말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곳은 남자들의 천국일 수 있잖아요. 하미드가 말하는데 만일 우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해외로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거래요 하고 미트라가 말했다.
분명 남자들한테는 상황이 훨씬 낫지요. 하고 아진이 말했다. 결혼이나 이혼과 관련된 법을 보세요. 종교와 관련이 없는 소위 보통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아내를 데리고 사는지 보시면 알잖아요. 만나가 말했다. 특히 일부 지식인들 말예요, 자유나 그런 모든 것에 대한 주장을 펼쳐서 유명해진 사람들도 그래요. - P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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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8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0-06-0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려고 롤리타를 다시 읽으셨군요.
이 소개글 정말 좋네요.
절판이 아니라면 바로 사서 읽고 싶어요.
저도 도서관을 한 번 뒤져봐야겠어요.

다락방 2020-06-08 15:17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없어서 저는 광진구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게 됐어요. 회원판매 중고가는 너무 비싸고요 ㅠㅠ 감은빛님 제인 오스틴 책 재미있게 읽으셨잖아요. 이 책도 아주 재밌게 읽으실 것 같아요!

감은빛 2020-06-11 15:24   좋아요 0 | URL
우리 지역구 관내 공공도서관 전체를 검색해봐도 이 책은 없네요.
다른 자치구까지 찾아보는 건 현재 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요.
일단은 중고 알림을 등록했어요.
알라딘에 등록된 중고책들은 모두 정가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등록되어 있네요. ㅠㅠ

책식동물 2023-06-1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갑작스러우셨겠지만 북플 친구 신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리뷰를 읽는데 다락방님이 많이 보이셔서 친숙하기도 했고, 아자르 나피시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리뷰 쓰신 것을 무엇보다 인상 깊게 읽어서 신청 드렸습니다. ㅎㅎ 중학생 때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고 ‘hmm...노잼‘ 이랬는데(학생아...) 이 리뷰를 읽고 책을 샀습니다...! ㅋㅋㅋ 저도 잘 읽고 리뷰 보태서 다른 독자를 이 책으로 이끌고 싶네요. 앞으로도 올리시는 리뷰 재밌게 잘 읽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다락방 2023-06-15 07:3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기묘한고라니 님. 2020년에 쓴 글인데 2023년에 이렇게 누군가에게 댓글이 달리네요. 글은 그대로 다 기록이 되고 흔적이 되어 남는 것 같습니다. 현재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절판인데 중고로 구매하셨나요? 저는 도서관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여 빌려 읽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뵙겠습니다, 기묘한고라니 님!

책식동물 2023-06-15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고로 구매했습니다. 정가랑 비슷한 가격이어서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ㅎ 롤리타 말고도 오만과 편견도 있잖아요. 저의 최애소설 top3 중 두 권이 있어서 그냥 샀습니다ㅎㅅㅎ 다락방 님 리뷰도 있어서 책이 맞지 않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