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은 정말이지 나에게 너무나 큰 기쁨이다.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지하철 안에서 내가 가장 집중을 잘하기도 하고 그 집중이 잘되는 동안 책 내용이 확 빨려들어와서이기도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처음의 내 모드가 노동자 모드가 아닌, 그저 내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매우 크다.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밥을 먹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하는 걸로 하루를 연다면, 나는 내 여러가지 정체성 중에 노동자 모드의 스위치를 가장 먼저 켜는 셈이다. 그렇지만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면, 나는 노동자 모드의 스위치를 올리기 전에 '책 읽는 나', '글 쓰는 나'의 모드를 먼저 시작하는 거다. '노동하는 나'도 나임에는 틀림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드는 이 '책읽고 글쓰는 나'이다. 이 모드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진짜 짜릿하고 좋다. 이 모드로 시작을 하게 되면 사무실로 향하는 길, 그 중에 책을 읽지 못하고 걷거나 버스 타는 길은 그 나름의 나에게 쏟는 시간을 준다. 지하철 안에서 읽었던 책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거기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게 되며, 그런 생각의 끝에는 으앗, 쓰고 싶은 글까지 다다다닥 머릿속에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고 가면서 양재역에서 내리면, 그 뒤부터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는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계획들이 자리잡히는 것. 이때는 내가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 같아서 만족감이 너무 크다!


이렇게 출근길에 노동자의 모드를 켜기 전의 나에 만족할 수 있는 이유, 특히나 오늘 그걸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었던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 왜이렇게 재미있냐. 2020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다섯번째 도서인데, 그중에 이 책이 나는 가장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음 진짜.


오늘 아침 읽은 부분에서는 흑인어머니에 대해 흑인남성들이 찬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흑인어머니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자기 아이의 어머니인 아내에 대해서는 얼마나 소홀한지를 지적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담론이 아니라 미국 흑인의 현실을 살펴보자면, 어머니를 찬양하는 흑인남성 중 너무 많은 이가 자기 자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남성들은 점점 더 빈곤에 시달리는 흑인아이들의 양육을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떠넘긴다(Nightingale 1993, 16-22). 미국에서 흑인어머니를 위한 경제적 사회적 지원이 약화되고 있는데, 많은 흑인 청년은 흑인남성의 과잉섹슈얼리티 신화를 신봉하고, 미혼의 십대 여자 친구에게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부추긴다9Ladner 1972; Ladner and Gourdine 1984). 이들 역시 자신들이 관계를 맺어 온 여성들이 직면한 빈곤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가모장과 강인한 흑인 어머니라는 통제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셸 월리스Michelle Wallace 가 지적한 대로, 많은 흑인남성은 흑인여성이 어머니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p.301


















오늘 양재역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읽던 책을 가방에 넣으려는데 가방이 너무 뚱뚱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러니까 가방 안에 든 게 너무 많아가지고, 이 두꺼운 책이 잘 안들어가는 거다. 아무튼 내리기 전에 어떻게 간신히 책을 다시 넣는데는 성공했는데, 형광펜 까지 넣지는 못했다. 양재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출구로 향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손에는 계속 형광펜이 들려 있었고, 별 생각 없이 마을버스 기다리다가 으응? 하고 내 손의 형광펜을 보고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겨서 마을버스 타서 사진 찍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동자 모드는 내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모드다. 노동자이기 때문에 나는 책을 살 수 있으니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가능해지는 건, 내가 노동자로 살면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내가 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설사 내가 이 직장에서 나가더라도 어떻게든 다른 직업을 갖고 노동자 모드로 재장착 해야 한다는 것 역시도 잘 알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이 직장에서는 물러나야 할텐데, 그렇다해도 내가 노동에서 완전히 멀어질 순 없다. 지금보다 돈을 적게 벌지언정, 돈을 벌어야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밥도 사먹고 술도 사마실 테니까.


그렇지만 이 노동자 모드 사이사이에 책읽는 내가 필요하다. 나는 출근 전에도 이렇게 책을 읽는 '책읽는 나'가 되지만, 퇴근 후에도 역시 그렇다. 퇴근 후에는 여러가지로 지쳐서 책 읽는데 온 신경을 쏟을 수가 없고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자기 전에 단 한 쪽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역시, 노동자 모드로 마무리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책 읽는 나, 글 쓰는 나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다. 그렇게 노동자 모드의 스위치를 켜고 또 끄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충전이 되니까.




일전에 별자리 선생님을 찾아가 나의 별자리에 대해 들었을 때, 그 때 선생님은 내게 '방문을 닫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방문을 닫고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그래야 다시 또 방문을 열고 나가 사람들을 만나 에너지를 받는다고.


마찬가지로 내게는 노동자 모드의 스위치를 켜기전에 그리고 끄고나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이 작은 의식-노동자 모드의 스위치를 온,오프 하는-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이것을 그저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것보다는, 그러니까 일어나서 어쩌다보니 회사에 와있고 그러다보니 하루가 다 가서 잠을 자는 것보다는, 이렇게 '일하는 나'와 '책 읽는 나'를 내가 순간순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의식은 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오늘 퇴근 후에는 노동자 모드의 스위치를 끄고 '책읽는 나' 대신에 '술마시는 나'가 될 예정이다. 이것도 다 인생에 필요한 시간들이야. 후훗.



아, 그리고 내가 얘기했던가? 얼마전에는 누군가로부터 '올해 다락방님 만난 게 최고인 것 같아요'라는 말도 들었다? 여러가지로 최고되는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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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5-2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문 닫는 시간이 필요한 다락방님..* 일과 책!!! 좋당!

다락방 2020-05-23 16:46   좋아요 1 | URL
일하기 싫지만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책을 사는 것입니다. 노동자 퐛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