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고전의 특징이겠지만, 오래 읽히다 보니 개정판 나올 때 서문 나오고 10년 됐을 때 서문 나오고..아주 서문들로 파티를 벌인다. 이 책도 10주년 기념 서문에 개정판 서문에 난리 난리 대난리. 어제 유난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서 이 책을 펼쳤는데 서문이 끝이 안나고 내 눈은 자꾸만 감긴다. 왜 읽어도 읽어도 서문인것인가. 지난 3월의 도서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때처럼 서문이었다가 서문이었다가 서문일 것이었다가...


아, 너무 졸려..서문만이라도 다 읽고 자려했건만 안되겠다, 서문이 끝이 안나는걸. 나는 서문 읽기를 포기하고 잠을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서문을 드디어(!) 다 읽었는데(폭죽 팡팡-), 하하하하. 난 몰랐지요. 서문 다음에 <들어가는 말>이 나올줄은...


본문...

언제 나와요? (그렁그렁)



자, 드디어 본문에 들어갔다. <01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 이었다. 나는 결혼을 한 적이 없지만, 이 책의 처음부터 나오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하겠다. 자, 일단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한동안은 명확히 보지 못했지만, 나는 조금씩 오늘날 미국 여성들이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뭔가 아주 잘못된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내 능력과 교육을 사용하면서,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반쯤은 죄책감을 느끼고 반쯤은 열의가 없는 내 삶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을 처음으로 감지했다. (p.53)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문제를 느낀 여성들은 결혼 생활이나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성들은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엌 바닥에 윤을 내면서 불가사의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도대체 자기는 어떻게 된 여성이란 말인가? 그런 여성은 자기 불만을 인정하는 행동을 너무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같은 불만을 지니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말해보려고 애썼지만 남편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조차도 정말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15년 넘게 미국 여성들은 섹스보다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조차 이런 증상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이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러 간 어느 여성은 "무척 수치스러워요" 또는 "전 절망적일 정도로 신경질적이에요"라고 말했다. 교외의 어느 정신과 의사는 불안해하며 말했다. "요새 여자들이 뭐가 문제인지 통 모르겠어요. 우연찮게도 환자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어요. 성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러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대체로 정신과 의사에게 가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정말 문제될 게 없어. 아무 문제도 없단 말이야."

1959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뉴욕에서 15마일 떨어진 교외의 새 주택가에서 주부 네 명과 커피를 마시다가 아이가 넷 있는 엄마가 절망적인 어조로 조용히 '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나머지 부인들은 그가 남편이나 아이들 또는 가정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모두 똑같은 문제, 설명할 수도 없는 그 문제를 같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깨달았다. 그들은 주저하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아이들을 보육원에서 데려와서 낮잠을 재운 두 명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순수한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렸다. (p.67-68)




이것이 베티 프리단이 말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이다. 남편들을 결코 이해시킬 수 없는 문제, 정신과 의사조차도 이해시킬 수 없는 문제, 자기 자신조차도 뭐라 이름붙여야 할 지 모르는 바로 '그 문제'. 자기 혼자만 앓고 있는 것인지, 모든게 다 준비되어 있는것 같은데, 세상이 정해둔 것들을 다 이뤘는데,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데, 그런데 왜 나는 우울하고 신경질적인지 알 수 없어 괴로운 바로 그 문제.


나는 그 문제가 바로 보바리 부인의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빵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겨울에 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바로 그 문제. 빵이 부족한 게 아니라서, 불이 부족한 게 아니라서 다른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그 문제.



「사실」 하고 그는 엠마 곁으로 되돌아와서는 커다란 사라사 손수건을 이빨로 물어 펴면서 말했다. 「농민들은 정말 불쌍해요」

「그들 말고도 또 있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예를 들어서 도시의 노동자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실례지만 말입니다, 내가 아는 불쌍한 가정의 어머니들은, 정숙한 여성들은, 정말이지 거의 성녀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인데 빵 한 조각 없이 헐벗고……」

「하지만 저어……」 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 양쪽 끝이 일그러졌다). 「신부님, 빵은 있어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여자들이……」

「겨울에 불이 없는 여자들」하고 신부가 말했다.

「아니!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때요?」

「뭐라고요! 아무려면 어떠냐고요? 내가 보기엔 사람이란 몸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만 하면……왜냐하면……결국……」

「아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담 보바리》, 구스타브 플로베르,p.167)




보바리 부인은 무언가 부족해서 교회 신부를 찾았다. 그러나 신부는 보바리 부인에게 빵이 있고 겨울에 불이 있으니 문제될 게 없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자 보바리 부인은 답답하여 어쩌면 좋아, 하는 것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1857년 소설이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1963년 책이다. 보바리 부인이 느꼈던 문제와 베티 프리단이 느꼈던 문제는 어쩌면 살짝은 결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보바리 부인에게는 아이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보바리 부인이 느낀 것, 그리고 베티 프리단이 느낀 것 모두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느낀 문제들이다. 남편들도 그리고 교회의 신부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다른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의 책 《제2의 성》에서 수많은 남자 작가들을 언급하며 그들의 여성혐오적인 시선을 지적하고(대표적으로 발자크가 있다) 또 어떤 남자 작가들은 놀랍게도 여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칭찬하기도 한다(대표적으로 스탕달이 있다). 플로베르는 남자 작가인데 이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한 바,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플로베르를 언급한 적이 있던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가 쓴 제2의성 페이퍼를 찾아봤는데, 플로베르에 대한 건 나오지 않았다. 으윽. 책의 본문을 뒤져봐야 되는건가.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통해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언급한다.


「마님은 게린느하고 똑같네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디에프에서 알았던 폴레의 어부 게렝 영감님이ㅡ 딸이었죠. 표정이 어찌나 슬퍼 보였는지 이 아가씨가 그 집 문간에 서 있는 걸 보면 마치 그 집에 초상이라도 난 걸로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 아가씨 병은 꼭 머릿속에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은 증세였는데 의사 선생님도 신부님도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어요. 병이 심해지면 혼자서 바닷가에 나가서는, 세관 관리가 순회하면서 보니까, 파도가 밀어닥치는 자갈 위에 뒹굴면서 울더래요. 그렇던 것이 결혼을 하고 나자 깨끗이 나았다는 소문이더군요.」

「하지만 내 경우는」 하고 엠마는 대답했다. 「결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생긴 병인걸」(《마담 보바리》, 구스타브 플로베르,p.161)


그녀는 아들을 갖고 싶었다. 튼튼한 갈색 머리의 애였으면 했다. 이름은 조르주라고 지으리라. 이렇게 사내아이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치 과거의 모든 무력감에 대하여 희망으로 앙갚음하는 느낌이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마담 보바리》, 구스타브 플로베르,p.131-132)




플로베르는 여성들에게 삶에 제약이 가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를 통해 그걸 보여준다. 아들을 원하는 이유도 아들의 존재를 의지하고 싶다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나야 이 세상에서 비로소 자유롭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언급한 수많은 남자 작가들 중에 플로베르가 있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도 있다면 호의적 시선을 가졌겠구나, 생각하다가 앗! 플로베르...《미친 사랑의 서》에 나왔었잖아? 그 책, 보통의 연애를 한 사람이라면 등장할 수 없는데? 아, 세상이여. 세상엔 책이 너무나 많아서, 플로베르님 미안..난 당신의 사생활에 대한 책도 읽어버린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어떤 연애였더라? 엄마 모시고 살면서 결혼 안하고 연애했던가...단순히 그것 뿐이라면 그 책에 나오지 않았을텐데... 아 기억이 안나네 답다비...

각설하고.




'여성성 신화'는 여성이 가진 욕망을 억누른다. 여성이 살아가야 할 삶을 정해주고는, 그것이 여성들이 누려야할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이 실제 그 욕망을 본인 안에 갖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은 괴롭다. 여성성 신화 대로라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렇게 내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지금은 세상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뭔가 부족하고 우울하다. 신경질이 난다. 그렇다면 나는 잘못된 것인가. 행복해야 한다는 이 삶이 나는 행복하지 않으니 미치겠다, 죄책감이 느껴진다. 베티 프리단은 바로 그 점에 대해서 인지하고 설문조사를 하고 책으로 써내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막는 것, 남편들의 아내나 아이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이것에 대해 무엇이든 적당한 이름을 붙여야 했다. 여성들이 성욕이 생겼을 때 느끼던 죄책감과 달리, 지금 느끼는 죄책감은 여성에 대한 성적 정의와 들어맞지 않는 욕구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여성적 성취에 대한 신화, 바로 '여성성의 신화' 였다. (p.19)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학의 고전이다. 그러니 10주년 기념 서문이 나오고 개정판 기념 서문도 나올 수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팔리고 있는 것일테다.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은 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읽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는 것이 힘들기 짝이없다. 학교다닐 때 전공서적들 너무 무거워서 잘라가지고 다녔는데, 과애들이 다 나 미쳤다고 했더랬다. 아이들은 제본해서 들고 다녔는데 나는 꼭 제본 안하고 서점 가서 샀거든. 근데 제본도 아닌 책 잘라서 가지고 다닌다고.... 그러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2,3만원 책 사두고(20년 전의 금액이라고 ㅠㅠ) 너무 무거워서 집에 두고 다녔는데(네?), '책 무겁게 들고 다니기 총량의 법칙' 같은게 있는거 아닌가 몰라. 대학 졸업하고 나서 맨날 가방 무겁게 다닌다... 인생 뭘까?




아무튼 베티 프리단이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그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뭐라고 글을 쓰게될지, 책 더럽게 무겁지만 열심히 읽어보도록 하겠다. 갈 길이 멀다. 멀고 고되다. 피곤해...

책 샀고 커피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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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4-1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담 보봐리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와요. 제2의 성을 읽은 1인으로서(흠흠) 보부아르가 플로베르를 언급했던거 같기도 한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ㅠㅠ 앞으로도 흥미진진한 독서후기 기대합니다.
훌라춤은 여기서 출까봐요! 훌라훌라! 훌라훌라!

다락방 2020-04-14 10:51   좋아요 0 | URL
되게 많은 작가들을 끌어오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기에도 플로베르 있었을 것 같은데 기억이 1도 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책 대체 왜 읽는건지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우리가 그걸 다 기억하면 제2의 성을 썼겠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