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쓴다면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드러낼 것이다. 사상이 너무 거창하다면 평소 자기가 지향하는 바 혹은 지양한 것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표시가 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적에 '버지니아 앤드류스'라는 작가의 삶이 그렇게나 궁금했더랬다. 다락방에 갇힌 남매들과 근친상간을 그려내는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던걸까. 역자후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에서는 버지니아 앤드류스가 사고로 어릴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며 바깥에 나가지 않았었다고 적혀있었다.


소설에는 나쁜 인물이, 악한 인물이 등장할 수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 악한 인물로 작가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가는 다른 얘기다. 악한 인물을 등장시켜도 우리는 악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고 딱히 악하지 않은 인물을 평범하게 등장시켜도 어떤 소설은 불쾌함을 던져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바로 생각나는 작품이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이다.



박완서의 단편 10개가 실린 이 단편집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박완서란 작가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뒷말하는 걸 정말 진저리나게 싫어하는구나, 했다. 왜 다른 사람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들 멋대로 그렇게 숙덕댄담.

특히 여고동창들이 그랬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도 여고동창들이 그렇게나 결혼 세번 한 거에 대해 숙덕대고 캐묻고 싶어 오지랖이더니,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에서는 동네 여자들이 모여 한 노인에 대해 숙덕댄다. 새로 맞은 남편과 잠자리는 가졌을까 어쨌을까, 돈 때문에 들어앉았을까 어쨌을까. <대범한 밥상>에서도 동창들이 모여 이제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친구에 대해 얘기한다.




비행기 사고로 함께 여행하려했던 부부가 죽는다. 이 부부에게는 자식이 있었는데 여섯살,세살의 남매다. 졸지에 이 어린 남매가 부모 없이 남겨진 것. 이 부부는 각자 외동딸,외동아들이기도 해 이들이 죽고나자 이들의 부모는 역시 자식 없이 남겨져야 한다. 아내쪽도 어머니만 살아계시고 남편쪽도 아버지만 살아계셔 결국 살아남은 건 어린 남매와 이남매의 친할아버지,외할머니였다. 부부의 장례식장에서 아이들은 제 외할머니와 친할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있는데, 그 후로 이 넷이 함께 시골에 내려가 살게 되는 거다. 이 일에 대해서 동창들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고, 끊임없이 이들에 대한 새로운 소문을 가지고 와 이야기들을 한다.그들이 살림을 합쳤다더라, 사망 보험금 나왔을텐데 돈에 환장을 했다 등등.



나는 이들이 함께 사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고작 여섯살 세살인데, 그러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물론 한 명이 키우는 것이 세상에선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면 체력에도 경제력에도 한계가 있을 터. 둘이 한다면 오히려 더 낫지 않겠는가.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들이 함께 산다는 걸 혹여라도 듣거나 보아서 알게 된다면, '응, 그래 그럴 수 있지, 오히려 그게 낫겠네, 혼자 보다는 둘이 함께인 게 낫지 않겠는가' 라고 나는 생각할 것 같은데, 이 동창들에게 그건 꽤나 해괴망측한 일인가 보았다. 누구도 친구에게 어찌된 영문이냐, 어떻게 살고있냐 그 사정을 물어보지는 않고 자기들 추측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낸다. 그건 아주 그들에게 재미진 이야깃거리다.




소문을 물어들이는 건 여전히 혜자였다. 사고 당시 경실이 사돈 영감은 지방도시 C시에 인접한 C군 군청 주사였다. 나는 주사라는 직위가 어느 정도의 높이인지 가늠할 수 없는데 혜자가 만년 6급이라고 얕잡아 말하는 투로 봐서는 그다지 높은 자리는 아닌 듯했다. 경실이가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사돈집이 있는 시골로 내려가 홀아비 사돈영감하고 살림을 합쳤다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우리끼리니까 말이지 하도 해괴망측해서 입에 담기도 뭣하다. 그러면서 주위를 살피는 시늉까지 하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하고 불쌍해 보이던 과부와 홀아비 사이에 느닷없이 썩어가는 과일 냄새 같은 부도덕의 낌새가 감돌기 마련이었다. (대단한 밥상, p.373-374)




손자손녀가 이제 고작 여섯살, 세살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제자식 잃은 설움을 삼켜가며 일단 눈앞에 놓인 아이들 키우는데 애를 써야한다. 놓인 상황 자체가 가슴이 턱 막힐 노릇인데, 그들이 함께 살기로 한 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소설 속의 화자는 암선고를 받고 친구 경실이를 찾아 시골로 내려간다. 그리고 한껏 자기의 천박한 호기심을 채우고자 한다. 경실은 친구가 처음부터 그것이 궁금했을 거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게 척척 대답을 해준다. 그 안에는 어떤 천박함도 없다. 자식을 잃고 애끓는 부모가 있고, 어린 손주들을 돌보아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을 뿐이다. 




"직접적으로는 아무 얘기도 한 것 같지 않네. 오늘 저녁에 뭐 해먹을까도 아이들을 통해 물어보고, 영감님도 오늘 점심땐 하니한테 수제비 해달랄까, 이런 식으로 말했으니까. 깊은 속내는 말이 필요 없는 거 아니니? 같이 자는 것보다 더 깊은 속내 말야. 영감님은 먼 산이나 마당가에 핀 일년초를 바라보거나 아이들이 재잘대고 노는 양을 바라보다가도 느닷없이 아, 소리를 삼키며 가슴을 움켜쥘 적이 있었지. 뭐가 생각나서 그러는지 나도 알지. 나도 그럴 적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가슴을 저미기에 그렇게 비명을 질러야 하는지. 그 통증이 영감님이나 나나 유일한 존재감이었어. 그밖의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 남이 뭐라고 하든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아닌데. 소문뿐 아냐." (p.391)




아, 소리를 삼키며 가슴을 움켜쥐는 영감님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덩달아 나도 울컥해졌다. 혼자라면, 차라리 혼자라면 소리내어 울 수라도 있을텐데,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그저 가슴을 움켜쥘 밖에.


이런 사정을 모르면서 그렇게나 타인들은 쑥덕쑥덕, 그러면서 재미있어 하는 거다. 아이고 징그러워라, 아이고 끔찍해라. 들여다보면 징그럽고 끔찍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자기들의 재미는 좋기만 하다.







<대범한 밥상>을 읽다가 며칠 전 본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가 생각났다. 소문과 천박한 호기심 혹은 더 천박한 재미.



재훈(김래원)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고 그래서 함께할 살림집도 전세로 구해놓았지만, 어느날 말없이 일찍 퇴근했다가 약혼녀가 다른 남자랑 함께 집에 있는 걸 보고 파혼을 하게 된다. 그 뒤로 그는 매일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신다. 술을 마시면 전여친에게 자니? 문자를 보내기 일쑤. 그렇게 사랑해 결혼까지 생각했으니 쉬이 용서도 되지 않고 잊혀지지도 않는거지만, 답도 없는 메세지를 보내고 또 보낸다.


선영(공효진)은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 자신도 맞바람을 피웠고 그리고 남친에게 헤어지자고 했지만 남친은 헤어질 생각이 없다. 싫다는 그녀의 회식자리에 찾아오고, 출근길에 억지로 데려다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으.. 정말 싫은 남자의 전형이다.


그런 재훈과 선영이 같은 직장의 선후배로 만나 같이 일하게 되면서 서로의 속사정을 알게 된다. 재훈은 술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버릇이 있고, 게다가 술을 마시면 진짜 하염없이 마셔서 넘어지고 다치고 아무튼 정말 싫은 남자의 전형인데 선영은 왜 점차로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지 나는 정말 모를일이다. 나였으면 정말이지 1도 좋아할 수 없는 남자인데 으으.. 그렇지만 뭐, 다른 사람이 나같으란 법은 없으니까.. 아무튼,


재훈과 선영이 사이가 좋아질 무렵, 회사내의 사람들은 선영이 함께 있는 단톡방인줄도 모르고 선영에 대한 험담을 한다. 그녀는 전직장에서 유부남 꼬셔서 짤렸다더라, 이번에도 우리 팀장 꼬시는데 잘 안되는 것 같더라, 그녀가 꽃뱀이라는 게시글도 있더라, 하며 링크까지 주고 받는 것. 그 단톡방에 있던 선영은 그 모든 것들을 다 보게 되는 거다. 그리고 당연한듯 퇴사한다.


그 소문은 전혀 사실과 달랐다. 그녀는 억울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그녀가 피해자란 사실을 그녀가 아무리 말하고 다녀봤자 이미 자신이 꽃뱀이 되어있었던 게 돌이켜지질 않았다. 사람을 사서 게시물을 지우고 지우고 해봤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재훈은 그녀에게 '너가 그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에게 말해' 라고 하지만, 그녀는 이미 전직장에서 해볼만큼 해본 터였다. 이미 바깥으로 내뱉어지고 굳어진 그녀에 대한 이미지, 그 소문에서 사람들은 '사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거다.




그녀는 퇴사 후에 그 회사의 회식자리에 술을 마시고 찾아온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그들 각자에 대해 떠도는 얘기들을 폭로한다. 사장을 짝사랑하다 차여서 결혼도 못하고 있다더라, 남자들만 꼬시는 게이라더라, 고자라더라, 띠동갑 만나는 남자 전자발찌라고 부르는 거 알고 있니. 나만 그런 이야기가 도는 게 아니었어, 너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하나하나 다 얘기하는 거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묻는다.



"진심으로 이게 재밌어요?"



소문의 당사자가 된 다음에야 그것이 재미있을 리 있겠는가. '그렇지않다'고 해명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고, 포기하고 체념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더 오랜 시간들이 있을 뿐.


폭로에 앞서 선영은 그런 얘기를 한다. 초등학교시절 자신을 때린 남자애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렇다고 너도 때리면 너도 똑같은 애가 된다'고 했다는 것. 그런데 선영은 똑같은 사람 되기 싫어서 정신승리 하느니, 그냥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대범한 밥상>에서 그리고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나는 나 역시 재미 위주로 흥미 위주로 누군가에 대해 어떤 말들을 듣고 전하지 않았는가 떠올려보았다. 거침없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지금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해도, 내가 그런 순간들을 때로는 즐긴 적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재미삼아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천박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질낮은 험담의 대상이 되어 이리저리 튕겨다녔을 것이다.


모든건 아주 단순하다.

내가 소문속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 역시 소문 속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 나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게 싫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을 농담의 소재로 삼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가 괴로워하는데 나는 웃는다면, 그건 더이상 농담도 유머도 아니다. 그건 그저 괴롭힘일 뿐이다.



국민학교시절 열심히 교회를 다녔었는데, 그때 어쩐일인지 성경책을 펴본 일이 있다. 평소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 때는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무작위로 그냥 성경책을 확 펼쳤을 때 나온 부분은 마태복음  7장 1절이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마태복음 7장 1절(인터넷 검색으로 찾음)




어릴 적에 스스로 찾아본 때문인지 잊히지 않는 구절이다.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겠다.


아침 해가 며칠전보다 빨리 뜨고있다. 저녁 해는 그전보다 좀 늦게 지고. 이런 변화가 나는 반갑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어둠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환할 때 움직이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2-0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2-06 08: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비소가 뭘까... 궁금해하면서 결국 독약으로 이해한 것 같아요. 쥐약, 독약.
저는 다락방의 꽃들 읽으면서 섹스가 어떻게 하는건지 알게되었어요. 엄청 충격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으..
그 책 읽은 게 저한테는 너무 강한 인상을 줘서 버지니아 앤드류스 책은 다 찾아 읽었더랬어요. 그리고 지금의 제가 되었지요.......... (응?) ㅋㅋㅋㅋㅋ

han22598 2020-02-06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박한 관심과 소문을 즐기는 사람일 수록 자신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요 ㅎㅎ..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그럴까봐..ㅋㅋ

다락방 2020-02-06 09:00   좋아요 0 | URL
남얘기 하기는 너무 쉬운 것 같아요. 그냥 하면 되는거니까요. 그렇게 소문이 만들어지고 그 소문은 당연히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당사자는 괴로워해야 하지요. 어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