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인간에게 관심이 많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대가 하는 얘기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일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혼자 분석하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대체로 그게 잘 맞는다. 내가 아주 관심있게 상대를 알려고 하고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세상을 더럽히고 망치고 악을 칠하려는 것이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인간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고 선을 덧칠하려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불완전한, 불안정한 마음이란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음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고은' 의 『마음 실험실』을 읽고자한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더 잘안다면 인간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 마음을 알고 싶고 인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다른 인간들을 알고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나는 나를 지금보다 좀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이고은은 이 책에서 감각, 삶, 시간,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감각과 삶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라면야 그저 책장을 넘기는 게 전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익히 아는 이야기였지만, 시간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3,4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두 눈 부릅뜨고 읽어가며 북마크를 엄청나게 붙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모르는 신비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는가, 앎으로 가득했는가, 라고 물으면 '아니오'다. 아니.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 거기에 다시 이론적으로 설명되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을 연구와 실험을 근거로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실험들은 굳이 실험을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 내 삶이 주는 경험에서 알기도 했고, 소설이 다 알려주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실험해서 아는 것들을 소설을 읽으면 다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이 실험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이 실험은 행해져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실험 결과로써 나타나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을 사용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이유를 우리는 소설이 알려줘서 알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별에 관한 실험을 통해서 알기도 한다.




이고은이 들려준 이별에 관한 실험 중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게 있다. 한그룹에는 과제를 마치게 하고 한그룹에게는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끝맺게 했더니 시간이 흐른 후에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그룹이 그 과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더 상세하게 기억했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헤어진 사람 때문에 슬픈 이유는 완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p.160)



위의 구절은 나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정말 그런가. 내가 정말 그것을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래 고통스러워하는것인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숙제를 매우 잘해가는 학생이었다. 집에 가면 일단 숙제부터 해야 했다.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해야 할 것을 미뤄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숙제는 해야 했고, 시간에 맞춰 등교하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 그러니 '이런 성격'의 나에게 '미처 해해내지 못한 숙제'처럼, 이별은 느껴졌던 걸까.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이 숙제를 앞으로 영영 끝내지 못할것인가.



상실에 대해서는 이고은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과외가 끊기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데, 과외학생의 아버지가 퇴직금이라며 30만원을 보내준거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 돈을 찾아 봉투에 넣고 책에 꽂았는데, 그날 학교를 갔다가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때의 상실감은 그 돈을 얻게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더 컸다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등치될 수 없는 크기라는 얘기를 한다.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p.160)



나는 위의 문장에서 '줄리언 반스'가 말한 상실을 떠올렸다. 정확히 이런 말을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책에서 한 적이 있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p.109)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 이 책의 3,4부에 몽땅 나와있다. 기다림, 이별, 짝사랑, 질투, 사랑 까지.




질투에 대해서라면 내가 몹시 괴로워한 적이 있다. 평소 무심한 사람이라고 나는 나를 정의했었지만, 나 역시 어떤 확신을 갖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것이 몹시 필요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질투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확신이 흐트러짐을 느꼈을 때 발생한다. 상대의 관심이 오롯하게 나에게만 집중되지 않는다 느꼈을 때, 질투는 발생한다. 왜 당신은 나만 보는 게 아니라 곁눈질을 하는가. 나는 그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이 싹트는 걸 느꼈고, 그것이 몹시 괴로웠다. 너무 힘들어서 땅으로 꺼져버리고만 싶었다. 나를 좀 어떻게 해달라고, 이 괴로운 감정에서 나를 좀 꺼내달라고 상대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고은은 이 책에서 질투라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p.219)



내가 질투한 그 순간, 나는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에 비해 상대는 나에게 좀처럼 질투란 감정을 보이지 않았는데, 바꿔말하면 나는 그로 하여금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것. 나는 이고은이 말한 질투에 대해 읽다가, 이승우가 말한 질투를 생각한다. 이승우의 책을 읽다가도 나는, 내 안에 있었던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질투에 대해, 그 질투로 인한 고통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사랑의 생애, 이승우, p.232)




이승우는 질투를 열등감에 다름 아니라 말한다. 나는 이승우가 말하는 질투에 공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기에 생기는 열등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내가' 느꼈다면,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한 질투로 이어지는 것일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저 사람은 가졌구나' 라는 느낌이, 애초에 왜 생겼을까. 비교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왜 비교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의 상대가 나만 온전히 보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사랑이 내게 온전히 오지 않았다. 어? 이 사람의 사랑에 나는 확신을 못하겠네? 왜? 저사람 때문에. 저 사람은 뭐가 있지? 왜 저기에 있고 이 사람의 관심을 받지?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기다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고은은 마시멜로 실험과 그 후속실험에 대해 얘기하며(삶의 실험실 中),



마시멜로를 그대로 올려둔 조건에서는 평균 6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덮개로 덮어두자 11분 넘게 기다렸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라고 지시받는 아이들은 평균 13분 정도를 기다렸고, 기다리느 다음에 받을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라고 지시받은 아이들은 4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이는 15분이라는 긴 시간을 참게 한 인내심이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또는 '터득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p.63)



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것에 집중하면 그 기다림을 좀 더 유연하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느냐' ,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이 후속실험을 하게된 계기는 처음 마시멜로 실험을 할 때 아이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기다린 아이는 눈을 가리거나 머리를 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어떤 아이는 식탁에서 등을 돌렸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손장난을 치거나, 식탁 미틍로 기어들어가거나, 잠을 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p.62)



이고은은, 기다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p.184)



나는 삶의 목표가 구체적인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편이 우리가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리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있으려면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내가 가는 목표, 내가 가는 방향을 잘 알고 있다면, 나는 기다림 역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기다린지 안다면,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 스스로 기다림에만 나를 쏟아 넣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주의를 전환할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의미한 것들로 채워나가면서, 그 유의미한 것들로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면서, 내 기다림 자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설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걸 얻는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내게 주는 게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로 그걸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소설로 그게 잘 얻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실험을 통하여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 질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떻게든 각자 다른 방법으로 알 수 있게 될테니까. 나는 소설이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매만지는 편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고은의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같다. 이고은은 쓸모없는 마음, 필요없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다정한 인지심리학자 이고은' 이라고 적혀있는데, 정말이지 다정하다, 이고은은. 마음에 대해서라면, 다정한 사람의 글을 읽는 쪽이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다정하지 않은 사람 쪽보다는.





타이레놀은 상실을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줄여주는 효과를 낸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데도 진통제를 자주 먹느 ㄴ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가방엔 항상 두통약이 들어 있다. 혹시 정신적 고통, 즉 마음 고생을 감당하려고 몸이 미리 진통제를 원하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약효가 잘 발휘해주길 바란다. 누군가가 던지는 비수를 맞아도 좀 덜 아프거나 빨리 나으려고 미리 연고칠을 해두는 것이니 말이다. - P36

신체적 고통을 떠올릴 때 가장 활성화된 영역은 우리 몸의 감각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 이었다. 반면에 정신적 고통을 떠올릴 경우에는 분위기와 정서 또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관여하는 배내측 전전두엽피질dors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더 활성화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떠올리면 그때의 감정이나 분위기도 쉽게 떠올린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올리지 못하거나 이미 잊은 경우가 많다. - P37

우리 뇌는 복잡한 사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힘을 들어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가 가진 회고절정기의 경험과 사고방식으로 앞으로의 긴 세월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특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35세 전후를 기점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장르의 음악에 감동받지 못한다고 한다. 순간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어도 그때뿐이고 반복해 들어보려 애쓰지 않고 기억도 잘 못하게 된다. 점점 게을러지는 뇌는 새로운 음악이 요구하는 새로운 정보와 감성, 새로운 사고 패턴을 밀어내기 바쁘다. 더 먹기엔 배가 부르다는 듯 우리 마음은 새로운 음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마음의 노화는 새로운 음악을 들을 만한 감성이 무뎌지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 P4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유사한 특성이 있는데, 매사에 신중하고 들뜨지 않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나쁜 일이 생겨도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나쁜 일을 겪으면 지금 당장은 기분이 나쁘지만,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이내 돌아선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냐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다. 역술가들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점을 쳐보면 대체로 좋은 운수가 나온다고 한다. - P89

반면 매사에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고집이 말도 못하게 세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어서다.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없이 주로 남 탓을 한다. 자신의 성장 배경이, 부모가, 환경이 나빴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성찰할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떤 점괘가 나와도 나쁘게 해석 하기에 당연히 운이 좋을 수가 없다. 점괘는 우리의 마음을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 P89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 P160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들만 기억하며 살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음은 그보다 아팠던 순간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실수나 아픔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강력한 안전장치다. 뇌는 잃는다는 것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한다. 즉ㅇ, 인간이 가진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마음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때 생긴다.
인간의 욕심 많고 이기적인 본성이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의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 P170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 P184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실 놀랍도록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에도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도 마찬가지다. 사랑할 때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변심도 아니고, 그 사람과의 다툼도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내 마음일 때가 많다. 상대방이 내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 P192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확신하는 비율도 덩달아 커졌다. 연인이 함께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스스로 상대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는 연인이 사귄 시간의 길이와 상대에 대한 정확한 예측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혔다.
더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상대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가 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은 그저 오해일지 모른다. 같이 사랑했어도 같은 사랑을 한 건 아니다. - P196

인간은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외부 자극을 다르게 지각한다. 예컨대 경쟁 상황에 놓였을 때 마음은 상대의 얼굴을 훨씬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기억해버린다. 또 두려워하는 대상은 실제 거리보다 더 가까이 있다고 인식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진심으로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결코 인정받기 어렵다거나, 내 아이가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은데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인간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P202

생각해보면 이별은 사건이라기보다는 사고다. 시간이 흘러 사고가 수습될수록 길이 덜 힘들어진다. 나는 연구 결과를 열심히 분석해보다가, 일주일 이내에 이별을 겪은 몇몇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강의실에 오는 길이 이리 멀고도 험난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완만하고 가까워지겠지만. - P203

연애는 기대만큼 짜릿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이별도 예상만큼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이 원리는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형 사건들을 저평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때는 죽을 만큼 좋았거나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어느덧 이불킥을 하게 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음을 안다면, 내 마음을 갉아 먹는 걱정과 근심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 P205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 P207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 하거나 극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놀라운 자극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과제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돈을 지급하면 중단한 과제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제를 완료했지만 돈이 지급되는 시기를 늦추었더니 수행한 과제를 놀랍도록 명확하게 기억했다.
혹시 이별에 대한 마음이 남달리 괴롭다고 느끼거나 아픔이 오래간다 싶으면 애인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긁었던 카드 할부금이 남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할부금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괜찮아져있을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기를. 우리 마음 기능이 그렇듯 마음은 늘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P208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 P219

질투심을 느끼던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이해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우리 마음의 기능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저급한 건 더욱 아닌데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순간이 정말 많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알아가는 마음들이 차츰 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 P220

맥락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불륜은 실패한 관계가 초래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관심과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불행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것을 받지 못하면 결핍된 욕구를 채워줄 다른 사람을 또는 다른 사랑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 P229

어떤 ‘사건‘을 개인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그 일이 벌어진 이유를 반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일은, 사건의 본질로 들어가는 길목을 열어주는 일이 될것이다. - P231

그 사람을 알고 난 이후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알고 싶어서 답답하다가 알 길이 있어도 불안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억해주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마음이란 게 생기는 거지 붙잡는다고 오는 건 아니어서 진심으로 막막했다.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는 나를 흔든 적이 없는데 나는 삶 전체가 휘청거렸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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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20-01-0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단하십니다.
저는 국민학생 6년 내내 ‘밀린 일기 몰아쓰기‘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다락방 2020-01-08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일기 밀려서 쓰려면 그게 더 스트레스 일것 같은데 말입니다. ㅎㅎ
저는 그 때의 습관 탓인지 지금까지도 엄청 일기를 써요. 이렇게 알라딘에 글 쓰고 네이버에도 일기 쓰고 종이 다이어리에도 일기를 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20-01-08 14:24   좋아요 0 | URL
오, 아주 좋고 바람직한 습관입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