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마 하틀리'의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는 읽기를 포기했다. 읽는 동안 그리고 읽기를 포기하고나서도 감정 노동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골라든 책이 '민혜영'의 《여자-공부하는 여자》였는데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이거 읽고 나서 공부 뿜뿜될줄 알았는데, 감정노동의 후유증이 이 책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거다.
민혜영의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같은 의문을 갖게 됐다.
대체 같은 집에 살고,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아내가 미칠 것 같고, 그래서 상담을 받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지쳐 나가 떨어질 때, 소리지를 때, 남편은 어디에 있나. 남편은 어디에 있었나. 왜 잘 유지되어 보이는 듯한 평범한(그렇게 보이는) 가정에서 아내는 미치기 직전이고 남편은 아내의 그런 상태를 짐작조차 못하는가. 왜죠?
물론 어떤 사람들은 유독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캐치해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유독 눈치가 없고. 나도 최근에 눈치 없는 사람 때문에 혼자 속으로 조용히 스트레스 받았었는데, 그런데 말이다, 한 집에서 같이 살잖아,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잖아, 그리고 오래 함께 했잖아, 그런데 왜 한 쪽이 미쳐버릴 때까지 내버려두는거지?
잘 모르겠다.
함께 산다는 건 과연 답일까?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함께살기를 선택하고 난 뒤에 돌아버릴 것 같아지는거야? 왜 지치는거지? 왜죠?
후-
진짜 잘 모르겠다.
나의 좋았던 연애에서는 상대가 내 감정을 읽는 것에 매우 능숙했다. 목소리만으로도 내 상태를 충분히 짐작하고 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냐에 따라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았다. 그러니까 연애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러지 못한 남자들과도 연애했지만) 그런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결혼 후에도 그게 유지되는 거 아닌가. 나는 아무래도 이해도 안되고 상상도 안돼. 만약 내가 그 남자랑 결혼했다면, 그런 후 몇 년 있다가 나도 미쳐버릴것 같았을까? 상담 선생님을 알아보게 되었을까? 실제로 주변에 결혼한 지 일 년도 안됐는데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여자를 내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남편은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혼까지 결심하게 됐을 때는 우리가 서로의 감정을 잘 캐치한다는 암묵적 동의 같은 게 있는 거 아닌가? 수시로, 수시로 나는 내가 사랑했던 남자와 내가 함께 사는 걸 그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가 내 감정을 눈치채지 못해서 나 혼자 미쳐버릴 것 같은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은데, 다들 그럴거라 생각 못하고 결혼한거겠지?
한 명은 미칠 것 같고 한 명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상을 살아간다는 거, 너무 이상하잖아?
페미니즘 이론서를 읽을 때는 분노하게 되는데, 차라리 분노가 나은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민혜영의 책을 끝으로 페미니즘 에세이는 당분간 읽기를 그만둬야겠다. 여자들 공부하고 책읽고 글쓰고 이 모든 과정을 응원하고 나 역시 계속 읽고 쓰기를 유지할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겪어온 남자들과 함께한 삶을 읽노라면 스트레스가 너무 커져버려. 차라리 이런 스트레스보다는 분노를 감당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책 읽다 보면 민혜영의 글은 굉장히 전문적이고 또 이런 걸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깊다? 깊은데, 그러니까 같은 책을 읽었는데 풀어나가는 게 다르달까. 게다가 요약하는 것도 나와는 급이 다르다. 이것은 민혜영 개인의 능력이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대학원 여성학 수업이 끄집어내준 것인지 궁금했다. 대학원 다니고 공부하면 이렇게 깊이 있는 글쓰기가 가능한가요. 같은 책 읽고 이렇게 유려한 글쓰는 게 가능해지는가요. 같은 책 읽고 거기서 느낀 점 쓰는데 왜 민혜영은 이렇게 전문적이며 지적인 느낌의 글을 쓰고 나는 막글을 쓰는가.. 이것은 능력 차이인가 교육의 영향인가.... 쓰읍.
게다가 그렇게나 어려운《성의 변증법》에 대한 에세이는 정말이지 감탄을 자아낸다. 개인의 능력인가 교육의 힘인가.. 저는 성의 변증법이 너무 어려웠단 말이에요 ㅠㅠ
이 다음책으로 읽으려고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가지고 왔었는데, 당분간 보류해야겠다. 스트레스로 터져버릴 것 같아.
책 몇 권을 나도 읽어보고자 담는다.
능력 있고 일 잘하고 성실한 남자들은 결코 시간 부족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있는 남편들은 밤 열두 시에 집에 돌아와 몇 시간 후 뉴욕으로 출장을 갈 수도 있다. 업무 시간에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 학원 선생님의 문자에 답을 할 일도 없다. 당연히 생일, 졸업, 입학, 크리스마스 등등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기념일에 맞추어 아이들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아내가 있다는 건 경제적 특혜이기도 하다. 집안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것은 물론, 여러 통계에서는 ‘가정 있는 남자‘라는 사실이 승진과 CEO 최종 발탁에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밝힌다. 지난 50년간 일을 하는 여자의 비율은 현격히 높아졌지만, 여성은 가정에서 여전히 무급 노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은 아내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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