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은 만남에 앞서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아니, 진작 만들걸, 이 단톡방을 통해 수시로 어디까지 읽었냐 서로 체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단톡방 개설을 한 후로 나는 계속 일등을 달리고 있다. 학창시절에도 못해본 일등.. 내가 그것을 하고 있는데, 아아, 나란 여자, 겸손이란 것을 모르므로, 한없이 잘난척 뿜뿜중이다. 게다가 나란 여자, 정말이지 겸손이란 것을 모르므로, 2,3등을 상위권으로 쳐주지도 않아, 나란 여자, 2등부터 모두 하위권으로 후려치기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매번매번 새로운 잘난척을 해, 멤버중 1인은 "(잘난척)어쩜 그렇게 잘하냐" 라고도 내게 물었던 것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잘난척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잘난척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괜히 그래서 사람들한테 미움 받을까봐 신은 나를 학창시절 일등 못하게 하셨는가보다. 울아빠도 진작에 내가 이런 걸 알아보고, 너는 잘난척을 심하게 할 사람이라서 자만하지 말라고 외모도 요정도로 태어나게 한 거라고 하셨지.. 네, 아빠... -.-



아무튼 계속 일등하고 있는 나는 하위권들이 따라오느라 애를 쓰고 있는 지금, 잠시 여유를 부리느라,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설을 읽고 있다. 이야- 소설 원래 재미있었지반, 보부아르 님의 속사포같은 랩을 읽다가 소설 읽으니 세상 재미있는 것. 그렇게 엊그제는 《우먼 인 윈도우》를 읽었는데, 어휴, 이 여자가.. ㅠㅠ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어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 자꾸 술과 약을 함께 먹어서 취해버린다. 이웃집 살인까지 목격했는데 그걸 신고했지만 이 여자가 술과 약에 의존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는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지구상에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1도 없다, 1도.. 별거중인 남편 조차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내가 책 읽으면서 술 좀 그만 마셔 이 여자야 ㅠㅠ 이런 잔소리를 얼마나 했던지, 그 약 술하고 먹지 말라고 닥터가 그랬잖아 왜그래 ㅠㅠ 이런 잔소리까지... 휴....



(지금 사무실 책상에 소세지빵 있는데 너무 한 입 깨물고 싶은데 먹을까 말까 내적갈등중..)




그리고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꺅 >.< '샤론 볼턴'의 《피의 수확》이다.

















샤론 볼턴이니까, 샤론 언니 좋을 줄 알았지만, 아니 세상에 너무 좋고요. 어제 자기 전에는 30페이지 가량 읽고서도 흑흑 초반 긴장감 쩔어, 밤에 악몽 꾸면 어떡하지 무서워 ㅠㅠ 막 이렇게 되었더랬다. 샤론 언니의 전작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고도 나는 무서워했더랬는데. 뱀 나오면 어떡해 으악 진짜 집안에 뱀 들어오면 개무서움 ㅠㅠ 막 이러면서 ㅠㅠㅠ 진짜 긴장감 쩐다. 게다가 초반에 등장하는 아이 둘이 학급의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거 너무 힘들고 ㅠㅠ 어떻게 이렇게 긴장감을 잘 쓰나 진짜 천재천재 이러면서 어제 잤는데, 오늘 출근길에도 또 새삼 샤론 언니의 천재성에 내가 감탄을 한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주인공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좋다. 애초에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 라고 던져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 사람의 일상을 드러내면서 나중에 이런 특징이 있지, 를 보여주는 식인데, 이게 너무 좋은 거다. 게다가 주인공의 성격, 결코 사교적이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성격, 그러나 일에는 열중하는 성격을 보여주면서 그 성격 안에 메세지까지 담고 있어. 진짜 세상 좋다. 이 책, 피의 수확에서는 정신과 상담의인데 그러고보면 샤론 언니는 다 의사인 사람을 주인공으로 썼네. 뱀이 깨어나는 마을에서 주인공은 수의사였고 《희생양의 섬》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였지. 아아, 희생양의 섬 읽고 팔아버렸는데 다시 사야겠다. 책장 한 칸을 샤론 볼턴 전용으로 만들어둬야겠어. 오만년전에 하루키 책장 두 칸 만들었다가 한 칸으로 줄여뒀는데, 샤론 볼턴을 위한 책장도 만들어야겠다.



자, 오늘 읽은 부분을 가져와보겠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라고? 이비는 길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러면 그를 노려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녀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다친 사람은 화를 낼 자유도 없다는 점이었다. 비장애인이 화가 날 때 짜증을 낸다 해도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면 뭔가 문제가 있고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p.73)



이비는 말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말을 놀래켜주려는 짓궂은 장난을 치는 소년들 때문에(사실 이건 짓궂은 장난이라기보다는, '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떤 소년들은 악을 품고 있는 걸까.)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 때 근처에 살고 있는 남자가 와서 그녀를 일으켜주고 도와주고 물을 가져다주는데, 그는 키가 크고 강인하고 사지를 모두 잘 쓸 수 있는(p.73) 남자였던 것. 이비는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짜증나고 그렇지만 도움을 받고 있고 뭐 여러가지로 빡치는 상황에서 이 남자가 너무 얄미워..

그래서 이 남자한테 좀 뭐랄까, 틱틱거린다고 해야하나.




이비가 항복의 뜻으로 양손을 들어올려 보이고 다시 앉았다. 남자는 교환원에게 사과를 하고 주머니에 전화를 넣었다. 이비는 시간에 관심도 없었고 자신이 유치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란 듯이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그녀 옆에 앉았다.

"차 한잔할래요?" 그가 제안했다.

"아뇨, 괜찮아요."

"물 한 잔 더?"

"가져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부탁할게요."

남자가 겸연쩍은 듯 낮게 킥 웃었다. "나 참. 사촌 결혼식에 갔을 때 잔뜩 취해서 목사 들러리한테 토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숙녀분께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처음인데요."

"아, 그래요. 그 숙녀분만큼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 숙녀와 저는 열여덟 달 동안 사귀었는데요?"

침묵. 이비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p.7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는 이런거 너무 좋다. 투닥투닥대는 거. 사실 이 뒷이야기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저 남자가 이야기가 흐르면서 어떤 남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저 장면 너무 좋았다. 뭔가 서로 갈구는데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쓰벌 연애의 시작은 갈굼이련가... 



아무튼 그래서 엄청 재미있게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샤론 볼턴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갈지 너무 흥미진진하다. 묘지에서 발견된 시체가 아주 어린 아이의 그것이었다는 것 때문에 내내 좀 마음이 안좋지만 ㅠㅠ 전체적인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샤론 언니만 믿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것은 순전히 그냥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이비'인 것은 매우 불만이다. 개인적으로 그 이름을 매우 싫어하므로.. 왜 하필 이비인 것일까. 쩝..

그러나 주인공이 락방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그것은 내가 직접 써야하는 것이겠지.

지난번에 조 올로클린 책에서 '비비안' 이란 이름 보고도 확 빡이 쳤는데 이비 라는 이름에도 딥빡이 올라온다..

진정하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아직 초반이라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얼른 이 책 읽고 다시 제2의성 하권으로 돌아가야만 나는 계속해서 일등도 유지할 수 있고(빼앗기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이 잘난척하는 걸 볼 수 없어!!), 완독도 가능해지겠지. 자, 부지런히 책을 읽자. 그러나 여기는 사무실... 시무룩.........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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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11-05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2


다락방 2019-11-05 15:15   좋아요 1 | URL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요? 에휴..
열심히 돈벌어서 더덕구이나 사먹읍시다 ㅠㅠ

단발머리 2019-11-05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평생 소설 읽고 쓰는 이런 리뷰를 이렇게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feat. 일등의 맛)

다락방 2019-11-05 15:16   좋아요 1 | URL
일등은 해볼만한 것 같아요. 잘난척하는 맛이 일품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11-05 19: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동감!! 다른 책 맘놓고 읽는 모습 넘나... 부러워요! 물론 저도 다른책 엄청 두리번 거리고 있지만 뭔가 압박이...(꼴지의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