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헌법 재판소는 현재의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렸다. 바로 위헌 결정이 내려기질 바랐지만, 혹시라도 합헌이라 결정날까봐 조마조마하던 터라, 헌법불합치 결정만으로도 나는 이미 울컥했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도 하면서. 덕분에 그날 축하하며 민우회에 후원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친구들과도 서로 축하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어제, 이 책, [여자 전쟁]에서 아일랜드 편을 읽었다. 3장인데, 소제목은 <종교가 박해한 '타락한' 여자들> 이었다. 아, 어쩌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이렇게 아일랜드 편을 읽게 되었을까. 읽는 내내, 얼마전 사진으로 본, 아일랜드 낙태죄 폐지를 위해 외국에서 귀국하던 여자들 행렬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봄알람 출판사의 [유럽 낙태여행] 에서였나, 이미 막달라 마리아 세탁소에 관해 알고 있던 터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세탁소에 관해 아주 자세히 알려준다. 그 세탁소에 감금당했던 생존한 여성과 '수 로이드 로버츠'는 인터뷰를 했던 거다.




대체 아일랜드의 종교단체가 운영한 세탁소 체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1767년 처음 문을 열었던 세탁소는 200년 이상 지속되어 마지막 세탁소가 1996년 문을 닫았다. '타락한 여자들'로 낙인 찍힌 여자 수만 명이 창피해하는 가족들과 위선적인 사제들에 의해 이곳으로 보내졌다. 도덕적 탈선으로부터 지역사회를 지킨다는 명목이었다. 단체의 이름은 예수의 추종자 가운데 한 명이자 '회개한 창녀'로 일컬어지는 막달라 마리아에서 비롯됐다.

여성의 성에 대해 성모마리아가 비현실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세운 이래 남성들은 이에 대비되는 '타락한 여자' 에 집착해왔다. 초기 기독교의 현자로 통하는 성 예로니모는 4세기에 "여성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글을 남겼다. 13세기에 발의된 교회법Canon laws은 여성 감금을 정당화했다. "추악한 육욕으로 인해 결혼의 침상을 내버리고 타락한 여성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종교에 귀의한 여성들이 있는 수녀원에 배속시켜 영구적인 고행을 하도록 해야한다" 19세기 초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사상이 인기를 얻었고 대부분의 대형 세탁소가 이때 지어졌다.(p.86)



이곳에 감금당했던 여자 중 한 명은 중간에 탈출해 신부를 찾아갔는데 신부에게는 강간당하고 다시 세탁소로 돌려보내진다. 그런데도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어야 하는 사람은 감금당한 여자였다. 강간을 당했고 감금을 당하고 그리고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찰스 디킨스에 관해서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찰스 디킨스에 관해서는 나쁜 말들을 여러차례 들어오곤 했지만, 이 보호시설... 까지 관련됐을 줄이야.



아내를 경멸하고 정부를 두었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타락한 여자들을 돌보는 보호시설 운영에 관여했다. 그는 '여성의 속죄를 위한 우라니아 코티지Urania Cottage for Redemption of Women'가 "질서와 꼼꼼함, 청결, 그리고 세탁, 수선, 요리 같은 모든 일상의 가사 임무"라는 덕목을 떠받쳐야 하며 그러면 비로소 구원의 길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정신 업이 바쁜 세탁일이 영혼을 정화화는 공인된 방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금지된 성교에 관여한 남자들을 찾아내고 처벌하는 데 이런 에너지를 쏟은 적은 없었다. (p.87)





아일랜드는 도대체 여자들에게 무슨 짓을 한것인가.



아일랜드에서는 전통적인 아일랜드 도덕 관습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누구에게나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를 너무나도 쉽게 붙였다. 창녀는 물론이고 근친상간이나 강간 혹은 사고로 인해 임신하게 된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도 '타락한 여자'로 분류됐다. 어떤 여자들은 심지어 '예방 차원'에서 세탁소로 보내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수녀들은 외모가 특출하게 빼어난 소녀들을 '타락할 위험이 높다'며 세탁소로 보냈다. 메리 메릿은 아마 반항기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세탁소에 보내졌고, 그것이 파멸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와, 노동자를 공짜로 부려먹으면서 이익을 얻으려는 종교단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이들 세탁소는 그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확보했다. (p.88)



피해자인 여자들을 타락한 여자로 몰며 감금시키고 노동시킨 것도 모자라, 아일랜드에서는 임신한 여자는 무조건 애를 낳아야 했고, 애를 여러명 낳는 것이 힘들으 남편과의 동침을 거부하려고 하면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골반이 너무 작아 출산이 힘든 여자들의 골반 뼈를 부러뜨려 아이를 낳게 하는 수술도 만들어냈다. 




아일랜드 의사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여성의 골반이 너무 작아 자연분만을 하기 힘들다면 골반 뼈를 부러뜨려서 출산하도록 처치한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쇠톱을 가져오는 걸 봤습니다." 노라 클라크Nora Clarke가 기억을 떠올린다. "정육점에서 동물을 자를 때 그걸 사용하는 걸 봤기 때문에 이사가 가져온 게 쇠톱인 걸 알았죠. 그 의사는 내 뼈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피가 샘처럼 솟아올랐고, 사방으로 튀었어요. 간호사들은 뼈를 자르는 걸 보고 속이 뒤집혔어요. 의사는 피가 안경에 튄다며 화를 냈고요."  (p.98-99)



이렇게 살아온 여자들에게 낙태죄 폐지는 정말이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이 어디에 있든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아일랜드르 돌아오던 모습은 정말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그래야만 했구나. 그리고, 너무 오래 고생했구나.




아일랜드에서도 이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세탁소에 감금당했던 여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짓을 폭로하고 보상받고 사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고 몸이 불편해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사과 받고자 한다. 아, 정말이지 어디에서든 억압을 당했던 여자들은 그 자체로 무너지기 보다는 옳지 못하다는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너무 가혹했고, 여자들은 정말 강했다. 그리고 강하다. 앞으로도 강할 것이다. 



나는 어쩌자고 4월의 도서를 여자 전쟁으로 정했을까 ㅠㅠ 진짜 짱이야 너무 딱딱 맞아 떨어져 최고다 ㅠㅠㅠ




그런 의미에서 5월의 도서 예고합니다. 5월 도서는 [여자는 인질이다]로 하겠습니다. 자, 미리미리 책 준비하세요! 이 책도 엄청 쎄니까 각오하셔야 할겁니다. 빠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출산을 하면 처벌을 받고 아이를 빼앗기는 한편으론 결혼한 여성은 죽을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이를 낳아야 했다. - P100

게다가 아기의 죽음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로라 맨Laura Mann은 1940~1950년대에 더블린에서 조산사로 일했다. "끔찍하게도 가난했던, 10명의 아이가 있는 가족이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며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던 시기"였다고 그녀는 기억한다. 피임은 불법이었고, 불임수술은 엄두도 못내었다.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어머니들은 쇠약해져서는 사제들에게 잠깐 휴식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남편과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사제들은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속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답니다." 로라 맨이 말한다.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계속 임신을 장려한 셈이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중요한 건 아이를 낳는 거였으니까요. 출산 중에 불구가 되거나 죽더라도 말이죠. 실제로 많은 산모들이 그렇게 됐고요." - P97

1931년에 교황은 회칙을 통해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여인은 순교자다"라는 교령을 내렸다. - P97

종교 지도자들에게 불임수술은 ‘여성이 꼭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독실한 가톨릭교도 의사들은 이것이 은밀한 피임법으로 활용될 것을 우려했다. - P98

사적으로는 남성과 접촉 자체가 금지되는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필사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은 남성들이 하달한 종교 규율에 스스로 복종하고, 다른 여성들을 처벌해 맹목적인 열정으로 따르게 압박한다.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부정한 채 그저 거꾸로 자신들을 통제하는 남성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필사적으로 자신이 통제하는 여성들을 학대한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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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4-16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남자가 피임만 하면 여성들이 임신의 불안에서 해방될수 있을텐데 말이죠.뭐 앞으로는 먹는 남성용 피임약이 나올테니 더이상 낙태의 공포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네요ㅜ.ㅜ

다락방 2019-04-16 16:06   좋아요 0 | URL
먹는 피임약이 나와도 남자들이 안먹으면 아무 소용없고요, 그보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랙겟타 2019-05-2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반을 부러뜨려서 아이를 낳게하는 수술을 의사들이 기발하다고 떠올렸다고 하는 대목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게 맞았을까요? 하나의 부속품에 불가했다고.. 느껴지네요.
가부장제의 질서유지와 노동착취로 인한 이득의 이해관계속에서 암묵적으로 자행되어 왔던 수녀회의 세탁소사업이 저도 살아 있었던 90년 후반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 빌어먹을 이해관계가 지금이라고 없어졌을까 하는 의문도 품게되네요.

다락방 2019-05-22 14:29   좋아요 1 | URL
아마 다른식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여성을 혐오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쉽게 없어질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지금만 하더라도 여경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아 여성을 혐오하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대체 어떻게 해야 뿌리뽑을 수 있을까요, 블랙겟타님?

말씀하신 것처럼 골반 부러뜨려 출산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절대 저지를 수 없는 일이죠. 그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억울하고 분해서 미치겠더라고요. 왜이렇게 여자로 사는 일은 억울하고 분한 일의 연속일까요?

블랙겟타 2019-05-22 16:53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여권이 나아졌다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빈 틈이 보인다면 여성을 혐오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상태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너무 민감하다고.. 그냥 예전처럼 내말을 말했을 뿐인데
그것은 예전에도 발언들이 잘못된 것이었지만 잘못된 것인지 모르거나 용인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사회전체가 잘못된 것으로 받아드려졌기때문에 대부분의 남자쪽에선 더 민감하게 받아드린다라고 아직도 착각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아직 남성-여성간의 인식의 갭이 크네요.
성평등에 대한 문제가 공론의 장으로 나온만큼 당장의 잡음이 많겠지만..ㅜㅜ 장기적으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야겠죠.
일단 저부터도 모르는 부분이 많거나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많다보니 앞으로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어요.
다락방님의 마지막 말은 저로서도 어떤 말조차 해드리기가 어렵네요...ㅠ

다락방 2019-05-23 15:32   좋아요 1 | URL
남성-여성간의 인식의 갭이 큰 건, 남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공포와 두려움, 불편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들에게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가해지는 압박이 아니기 때문에 ‘뭘 그렇게까지 해‘ 라는 남일보듯하는 사고방식이랄까요. 그래서 공부를 할 생각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살던대로 살면 세상 편한데 왜들 차별이다, 불편하다, 혐오다 라고 말들하는지 쯧쯧...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만 세상은 분명히 바뀔겁니다. 일단 저부터가 달라졌고, 제 주변 사람들도 달라졌어요. 물론 대부분 여자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요즘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고요. 이렇게 달라지는 사람이 많아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뭐가 문제야! 예민하게 굴지마!‘라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은, 분명 뒤로 쳐질겁니다. 그건 확실해요. 그들이야말로 가만히 있는 지금이 퇴보라는 것을 알게될 날이 올겁니다.

블랙겟타님, 계속 같이 공부하고 계속 같이 나아갑시다!

블랙겟타 2019-05-24 18:5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남성에겐 실제의 압박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요.
다락방님 말대로 그.럼.에.도. 역사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바뀔 것 같아요.
저도 뭐 처음부터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요? 저도 변했고 이렇게 온라인 상이긴 하지만 여성주의 책을 같이 읽는 모임도 참여하고 말이죠.. 하하..

이제껏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권 읽으면서 느끼는게 앞으로는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시선에서 이러한 생각의 격차를 줄이기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지 더더 공부해보고 싶은 지식욕구가 생겨요. (˘⌣˘*)